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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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사랑은 단백질.

매우 당혹스러웠다. 끌끌거리며 웃다가 문득, '어..이거 웃으면 안 되는거 아닌가?' 싶고, 다음 순간엔 방금 전의 자각이 무색하게 키득거리고....그 소리가 잦아들 때 쯤 눈물이 비치고. 미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세 사람 중에 나는 아마도 안경 쓴 놈인 듯 하다. 먹을 땐 먹고, 그 후에는 슬픈 척 뼈를 빻는.... 내가 누리고 있는 소소한 행복이, 어쩌면 다른이들의 피와 땀이 배인 흔적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가, 잠시 섬뜩한 자문을 던진다.

다섯번째 이야기...선택

내 인생은 원만히 풀린 편이다. 미래를 담보로 뼈 아픈 선택을 해 본 경험이, 내겐 없다. 헌데 책을 들여다 보며 떠오른 생각 하나....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당면한 선택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매번의 선택에서 나의 기준은 '더 쉬운 것'이었던 듯 하다. 쉬운 길로만...쉬운 길로만...그 길 끝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책은, 두 종류로 나눌 수(도) 있다. '쉽게 읽고 어렵게 덮는 책'과 '어렵게 읽고 쉽게 덮는 책' (뭐? 쉽게 읽고 쉽게 덮는 책은 왜 없냐고? 딴지 걸지 말자.-.-) 이 낯선 만화는 전자이다. 보는 것은 너무도 즐겁고 쉬웠다. 하지만 매번, 하나의 작품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애연가 였다면 아마,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을....그런 기분. 만화를 보며, 이렇게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던가?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웃음이 존재하지만, 웃으면서 이런 죄책감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최규석, 이 사람의 만화는 매우 파격적이다. 엄청난 함의를 품고 있으며 거침이 없다. 이제껏 그런 만화는 많았다. 하지만.....삶에 대해 이런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만화(혹은 글)들은 대개 거칠었다. 토해낸 사람의 고충이 반영된 듯 작품 자체도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규석은 다르다. 그의 작품은 너무도 깔끔하고 잔잔하다.(사랑은 단백질을 보라!) 그렇지만 그 속내는.... 다 읽고 나자, 마치 정리되지 않은 벽장을 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귀가 꼭 맞아 있는 벽장 문을 무심히 열었는데, 뒤엉킨 이불이며 온갖 잡동사니가 우르르....밀려 떨어질 때의 당혹스러움. 아마, 최규석이 열어 준 벽장은, 내가 이제껏 모른 척, 무심한 척 하고 버티던 현실의 일부분-어둡고, 적의에 찬-을 여며 둔 내 머리, 혹은 심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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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심이 2004-06-1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저장 안하고 추천 눌렀다가 코멘트는 다 날라갔네요..T.T
저도 오늘 이책 받습니다. 얼른 읽고 싶어져요..

진/우맘 2004-06-1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