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력당 9월의 선정도서는 김소진님의 <장석조네 사람들>이었다. 선정되자마자 잽싸게 도서관에서 빌려 그날로 다 읽고는 '조금 뒀다 리뷰를 써야지...'하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는데....아이들이 아프고 어쩌고 하던 명절 연휴 끝날, 문자 메시지가 왔다.
"대출하신 <장석조네 사람들>이 연체되었습니다. 반납 예정일은 9월 24일 어쩌고..."
흑! 내가 제일 싫어하던 연체족! 그 반열에 엉겁결에 오른 것이다.

퇴근길, 미안한 마음을 품고 책을 반납하고 나니 이젠 리뷰 쓸 일이 막막하다. 읽은 지 한 달 밖에 안 되었는데도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냥, 전반적인 문장의 느낌 - 사어에 가까운 우리 말을 잘 골라 쓰려고 애쓴다는 느낌. 그런데, 그 노력이 가끔 지나쳐서 삐걱거린다는 -과 그, 오리였나 닭이었냐의 에피소드 뿐. 참, 시동생과 사이를 오해 받은 슬픈 사랑 얘기도 있었는데.... TT  도통 오리무중, 짙은 안개 속이다.
그렇게 머리 속을 더듬다가 커다란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진/우맘, 너는 책을 뭐하러 읽냐?"

덮은 순간 내용의 90%는 잊어버리고, 심지어 시간이 경과하면 책 제목과 내용, 혹은 작가도 매치를 못 시키면서. 그냥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한 말장난 같은 감상만 남길거면, 대체 책을 왜 읽는거냐고?
그래서야, 그렇게 기억나는 게 적어서야, 대화 중에 <김소진> 이름이 나오면 "어, 나 그 책 읽어봤어, 장석조네 사람들." 하며 잘난 척 하는 용도 이외에 무슨 소용이 있담?

"용도는 무슨....재미있으니까 읽는 거지. ㅡ.ㅡ;"

그, 그렇구나! 잠깐 또 헛길로 샜다. 책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교과서적인 발상, 평소에 그런 생각 정말 싫다고 나불대던 그 요상한 실용주의에 잠시 빠졌다.
나는, 똑똑해 지려고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즐기는 거였지. pleasure.

ㅋㅋ 그러고 보면, <책은 즐기는 거다>라는 내 신조는....내가 선택했다기 보다는, 짧은 기억력으로 인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 도리어 내가 선택 당한 - 믿음인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계속 즐기자. 뭐, 퀴즈 대회에 못 나가는 것 빼고는...책 내용 기억 못해서 크게 낭패 볼 일도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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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10-0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요즘 며칠 계속 머리 속을 맴돌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이 글의 제목과 같습니다.
용도를 생각하고 읽는 것...책에게 좀 미안해 지고 있네요.

깍두기 2004-10-0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힛, 저도 그래서 서재를 만들었다죠. 기억에 좀 도움이 될까 하고. 가끔 내 글을 내가 읽어보면 도움이 좀 되데요^^

sweetrain 2004-10-0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즐거우라고 읽는 거지요...^^ 전 그렇습니다.^^

니르바나 2004-10-0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신 내용 그거 다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신경회로망에 간섭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신경정신과 찾아가실거고, 기억용량 줄여달라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서 약을 복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별생각이 드는군요.
책읽으시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고 사시는데 필요한 사고를 가능케하니 다 괜찮은 일 아닌가요.

mira95 2004-10-0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재밌고 제 취향에 따라 책을 읽기 때문에 뭐 기억하려고 하는 건 아예 없습니다.. 두뇌 용량도 모자라고.. ㅋㅋ 그냥 마음가는 대로 읽으면 안 될까요?

LAYLA 2004-10-03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그냥 좋으니까 읽는거죠 머 ' _ ' 헤헤헤

갈대 2004-10-0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읽는다고나 할까요. 책을 통한 '배움'이 주된 이유죠.

비로그인 2004-10-03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부라보~!부라보~! 저도요 에헴!

마태우스 2004-10-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고나면 그래도 정리가 됩니다. 제가 리뷰를 쓰는 이유는 책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그리고 제가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데 가서 "나도 그 책 읽어봤어"라고 자랑할 목적도 꽤 있답니다.

가을산 2004-10-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 저는 갈대님과 비슷해요. ^^
세상과 문명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이 모습이 어떻게 생겨왔는지, 어떻게 생겨갈지가 궁금해요. ^^

비로그인 2004-10-0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이 느는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즐거움이 있는거 같지도 않은... 심지어 읽은 책 제목도 기억 못하는 저는 책을 왜 읽는 걸까요? 후후... 독서도 중독입니다. ^^

ceylontea 2004-10-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이 있으니 올라가듯.. 책이 있으니 읽는거죠.

mannerist 2004-10-0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넌 왜 책보냐?"

"신경 꺼. 팔자야."

이게 정답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