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해지고 싶은 고매한 희망을 품고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헛수고로 끝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당초 그러한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믿어버린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잘못은 오히려 난해한 책을 한 번밖에 읽지 않고 그것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던 데에 있다.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면, 전문서가 아닌 바에야 설령 아무리 난해한 책이라도 독자를 절망시키는 일은 없다.
올바른 접근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 규칙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난해한 책과 처음 맞붙었을 때에는 좌우간 통독하는 것만을 명심한다. 금방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있어도 깊이 생각하거나 어구 조사에 시간을 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마음에 새겨두고 난해한 부분은 건너뛰어 자꾸자꾸 계속해서 읽어간다. 각주, 주해, 인용문헌도 여기서는 참조하지 않는다. 지금 그러한 것에 구애되어도 어차피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차질의 근원'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여 여하튼 통독하는 것이다. 최초의 통독으로 반쯤밖에 알지 못하더라도 재독하면 훨씬 잘 알게 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온 독서의 유의점을 생각해보자.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주의를 집중할 것,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사전을 찾아볼 것, 모르는 비유나 기술에 부닥치면 백과사전이나 참고문헌을 살펴볼 것, 좀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각주나 전문가의 주해나 기타의 2차 자료를 차분하게 읽을 것 등이 그 유의점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든 시기라는 것이 있다. 아직 그 시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이러한 것을 하면, 독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고 만다.
예를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 것은 굉장히 즐겁다. 그런데, 영국이나 미국의 고교생은, 예로부터 <줄리어스 시저>나 <마음 내키시는 대로>나 <햄릿>을 교실에서 읽을 때, 각 장면마다 어휘집에서 단어를 찾고, 학자의 각주를 조사하는 식으로 해야만 되기 때문에 모처럼의 즐거움도 어디론지 날아가버리고 만다. 이리하여 희곡의 결말에 이를 무렵에는 발단을 잊어버리고 전체의 파악이 소홀해진다. 이렇게 되면 학생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사실은 아무것도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문 지식을 강요하지 말고 1회의 수업으로 하나의 희곡을 다 읽고, 최초의 속독에서 얻은 것에 대하여 서로 논의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바탕을 마련해두면, 똑같은 희곡을 다시 한 번 정성들여 자세히 읽었을 때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상의 원칙은 교양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표면적인 읽기를 하라'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한 예로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들어보자(이것은 일반 교양서로서 선택한 것이다.). 어떤 페이지에 씌어 있는 것이든지 모두 잘 알았다고 독자가 믿어버렸다면, 그 다음의 더욱 깊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독자의 관심이 세세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에, 커다란 문제를 놓쳐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임금, 지대, 이윤, 금리 등 원가를 생각할 때의 요인, 물가를 정할 때의 시장의 역할, 독점의 폐해, 자유 무역을 필요로 하는 이유 등이 커다란 문제이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독서의 기술, 38~39p 점검 독서2 - 표면 읽기
'현명해지고 싶은 고매한 희망을 품고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헛수고로 끝났던 경험' ㅎㅎ 마음을 후비는 명문장이다. '난해한 책과 처음 맞붙었을 때에는 좌우간 통독하는 것만을 명심한다. ' 이제 이 문장을 알았으니, 끈기와 시간만 있으면 나도 '신곡'을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