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죽을 때와 애도할 때
익히 매스컴을 통해 그녀의 말과 행동을 알고 있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들었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누구나 죽음앞에서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그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간에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았기 때문이다. 대신 자살이 미화되어서는 안된다. 소설이었든 소설적이었든 영화였든 영화적이었든 그것이 행복이라는, 사랑이라는 전제를 달더라도 아름답게 표현될 일은 아니다.
사람의 견해에 따라 양론으로 나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전제다. 더구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사랑을 위해 동반을 선택했다는 것, 그게 미화되어야 할 일일까? 그냥 허접한 죽음일 뿐이다. 이 세상에 고통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고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보다 휠씬 많은 것이다. 자살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앞에 유서를 써놓고 생을 끝내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껴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의지란 것이 크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고통을 잊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늘 방송에서 행복이라는 말을,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는 것이 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현재 살고 있음을 탁월한 선택이라고 그렇게 믿은 사람이 어디 나 혼자만의 일일까? 결국은 그것이 입에 발린 말이었고 위선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본인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곧 생을 스스로 마감할 거면서도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 했다는 것에 적잖은 실망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적이라느니 영화적이라느니 식으로 자살이 마치 숙명적 아름다움이나 되는 것처럼 포장하고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그냥 의미없는 죽음일 뿐이다.
고통?
700여가지의 육체적인 고통보다 단 한가지도 못되는 정신적인 고통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고 다 자살을 선택해야 하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표현해야 하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사랑때문에, 정신적인 고통, 육체적인 고통 등으로 인해 올해도 수십명이 차안에서 동반자살을 택하거나 목을 매거나 음독을 택하고 있고 자살사이트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기도 하다. 과연 그들의 선택이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걸까?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 지는 유서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그것 외에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녀와 그남편의 끝을 왈가왈부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미화되는 것만은 막고 싶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행복전도사는 본인이 주장하는 것에 따라 만들어진 단어일 뿐이다. 최소한 공인으로서 그렇게 말해야 했다면 그 말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했는 데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위선이었나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끝까지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고 했는 데 과연 그럴까? 그것은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겠지만 절대 그녀와 그녀 옆지기의 선택을 아름답다거나 행복이라고 보고싶지는 않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옳았다고 해서는 안된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이 시대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을 위해 제2, 제3의 행복전도사가 계속 나와서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이어주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