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하는 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24일 토요일 오후 1시를 막 지나고 있는 즈음에 고향을 향해 출발했다. DMB방송에서는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가 차량이 집중될 거라는 예상을 한다. 출발시간이 딱 그 시간대인지라 왠지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중부고속도로를 진입하자마자 차량들로 북새통이다. 이럴 때는 차량의 흐름대로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넉넉히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항상 최고의 지·정체 구간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출발시간대 조절을 못하면 5~6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날도 출발 시간 조절 실패로 인해 그 정도를 각오해야 했다.

예상은 일죽 IC에서 빠져 감곡~금왕~괴산으로 이어지는 새로 난 국도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중부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해 일죽IC를 목전에 두고 영동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연풍IC)로 급 수정을 단행했다.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코스변경이 훌륭했음을 자찬하면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진입하려는 순간 바로 후회를 하고 말았다. 영남지방으로 가는 모든 차량이 중부내륙으로 몰렸다고 할 정도로 꽉 막혀 있었다. 간간이 내리는 눈발이 점점 거세짐과 동시에 차량은 정지상태가 지속됐다. 다시 계획을 수정하여 감곡IC로 빠져 나왔다. 새로 난 국도가 뻥 뚫려 있었지만 문제는 눈이었다. 이미 음성, 괴산지역은 대설주의보를 지나 대설경보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국도인지라 쌓인 눈이 그대로였고,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더욱 줄기차게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갔다. 도로 옆으로 눈을 이기지 못하고 배를 하늘로 공개한 체 시위를 하고 있는 차량들을 심심찮게 만났다.

전날 친구가 청주에는 눈이 내려서 좋다라는 애교성 악담(?)이 현실이 되었다. 웬수덩어리 같으니라구. 오후 4시정도면 도착하겠지 하는 예상과 달리 감곡IC를 빠져 나올 때가 도착을 예상한 시간이었으니 아직도 1시간을 족히 더 가야하는 험난한 코스만이 남은 것이다. 쌓인 눈으로 인해 안전한 평지위주로 거북운전을 하며, 고향에 도착하니 오후 7시를 가리켰다. 장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폭설의 악천후를 뚫고 고향에 무사히 도착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몇 년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대설(폭설)이다.

설전날,  범석과 마당과 집 주변의 눈을 치웠다. 오랜만에 고향의 마당을 넉가래와 빗자루를 이용하여 눈을 밀고 쓸었다. 어릴 때 샘물 뜨러 가는 길, 장독대가는 길, 화장실 가는 길, 앞집과 연결된 길 등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범석에게 아빠의 어린 시절 눈 치우던 일, 비료포대 또는 세숫대야를 이용 눈 미끄럼을 타던 일, 군대에서의 눈에 대한 일화 등 추억이 가득 담긴 옛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처음엔 눈 치우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던 녀석이 워낙 많은 눈으로 인해 심신이 힘들어 지니까 눈이 싫어진다는 소리를 내 뱉는 다. 못 들은 척 하면서 집 주변의 눈을 모두 치웠다. 햇살에 반사되는 눈빛에 눈을 뜰 수 조차 없었지만 아들과 함께 옛 추억을 들려주며 땀을 흘린 설날 전의 눈 치우기는 범석에게는 색다른 추억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빠! 눈이 더이상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요" 

2시간 정도 눈을 다 치운 후 범석이 내게 한 말이다.
또한명의 중생이 눈에 대한 다른 면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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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1-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범석이 말이 재미있네요.
고생많이 하셨지요.
그래도 다녀와야 더 즐거운 설이에요.
전 못갔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호인 2009-01-29 11:31   좋아요 0 | URL
이렇게 뵐 수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폭설속에서의 힘든 운전이었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09-01-29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5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1-2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범석이가 큰 발견을 했네요.
눈 치우는 것, 어린시절의 일상이었죠!^^
그래도 잘 다녀오셨으니 다음 명절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야죠.

전호인 2009-02-05 11:54   좋아요 0 | URL
글게염.
사람들은 항상 좋은 단면의 일상들만 기억하곤 하죠.
아마도 어린나이기에 눈치우는 일이 힘에 부쳤을 수도 있지요.

꿈꾸는섬 2009-01-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겠지만 그래도 즐거운 설 보내셨겠어요. 복 많이 받으세요.^^

전호인 2009-02-05 11:56   좋아요 0 | URL
네, 님도 복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여.
고생?
많이 했습니다. 대설경보까지 발령된 상황이었기에 악전고투를 했지만 온통 하얀세상으로 변해 있는 풍경만큼은 최고 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