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그렇듯이 문제의 발단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친구에게 건 한통의 전화가 이토록 큰 비극을 낳을 줄은 당시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전화를 하지는 않았을텐데, 라라~ 토요일 오후2시 어찌나 심심하던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주말마다 나가는 영어회화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모임을 가지 말고 나와 놀아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한사코 가야 한다는 것이다(그 모임은 여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모임이 끝나는 저녁 일곱 시에 만나기로 했다.

 

무조건 집을 나와 만화방에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은과 금>이라는 만화를 보았다. 예전에 본 작품인데, 주인공들이 마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는 이해를 못 해서 그냥 넘겼지만, 살짝 배운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본 건데, 감동이었다. 지금 비록 마작을 능수능란하게 돌릴 실력은 못되지만 어느 정도 배운 관계로 그 전에 그냥 지나친 장면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 짜릿한 감동이라니. 혹시 마작 만화를 보실 분들은 어느 정도 배우고 난 후에 보실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재미와 느낌이 확 달라진다(이상 마작 홍보였다). 아무튼 약속 시간 일곱 시가 되어 나는 친구를 만났다.

 

돈은 없고 시간만 많은 우리들이 갈 곳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곳은 찜질방! 단돈 5,000원에 찜질 시설과 각종 부대시설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우리는 택시를 타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우리 둘은 국내에 찜질방이 도입된 초창기부터 열심히 찾아다닌 자타 공인 극렬 찜질 마니아였던 것이다. 인천 시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A부터 D까지 랭크를 매긴 적도 있을 정도다. 우리가 작성한 평가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록 별 영향력은 없지만 그래도 당시 우리는 진지했다. 이번에 간 곳은 시설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편한 건 매점이나 식당 이용시에 직접 현금을 내지 않고 들고 있던 열쇠에 내장된 센서로 나중에 나갈 때 후불 처리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현금을 들고 찜질을 하다보면 주머니 속에 땀이 차 지폐가 오뉴얼 개 혓바닥처럼 축축 늘어지게 된다. 분실의 위험도 있고...이 얼마나 편리한 변화인가. 역시 인간은 진화하는 것이다, 살짝 감동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간교한 악마의 속임수였다. 현금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감이 없어지고 만다. 주머니 속에 돈이 있다면, 그것을 쓸 때마다 자동적으로 남은 돈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겠지만, 열쇠를 센서판에 갖다 대는 순간 일체의 계산이 완료되니 도통 경제 관념이 희박해지고 마는 것이다. 사용자의 편의를 봐준다는 것은 속임수였다. 멀쩡한 인간의 경제 관념을 무너뜨려 최후의 한푼까지 쥐어짜고 말겠다는 자본주의의 치명적 유혹이었던 것이다!

 

우리 둘은 찜질 한 번에 냉면 한 그릇, 찜질 두 번에 팥빙수, 찜질 세 번에 핫바...이런 식으로 자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 순간, 우리가 차고 잇던 파멸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먹다 지쳐 잠이 든 우리는 10시 30분에 일어났고, 대충 씻고 체크 아웃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계산대에 찍힌 액수는 34,000원. 우리가 가진 돈은 32,000원에 불과했다(많이도 쳐 먹었다). 파멸의 구렁텅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인생의 절반에 접어든 우리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던져지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찜질방으로 올라갔다. 친구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우리가 인생을 그리 잘못 살지 않았다면 구출해줄 친구들이 나타날 거야." 우리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 친구들과의 연락은 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은 점점 인간의 이성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먹고 놀기로 했다. 2층에 있는 무료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왕창 들고 와 토굴방(사진 참조)에 한 명씩 들어가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진심으로 만화책을 즐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허영만 선생의 <들개이빨>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내가 들어가 있던 토굴에 누군가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내 소원은 당신이 햇빛을 가리지 않는 것이 전부요' 했던 디오게네스가 이해가 간다는 것이었다.

 

찜질방 억류 16시간째, 친구는 배고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원래 대식가이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기 시작한다. 사람이란 의식주가 만족되야 예절을 아는 법이다. 우리의 화목한 분위기는 깨졌다. 그는 나에게 공개적인 비난을 가한다. "네가 너무 생각없게 돈을 썼어. 이 머저리야." 나는 '누가 돼지같이 쳐 먹으래.' 하며 맞받았다. 결국 이렇게 가다간 공멸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화해를 했다. 나는 그에게 물을 먹고 오라고 했다. 그는 60년대 고학생처럼 수돗가로 가서 물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배고픈 설움을 요즘같이 풍요로운 세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그러나 오늘 좀 배웠다. 물배가 참으로 금방 꺼진다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찜질방 억류 20시간째,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찜질방 특유의 촉수 낮은 불빛에 생각이 흐리멍텅해지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은 이런 식으로 파괴되는 것인가. 그러나 그순간 다른 친구와의 연락이 닿았다. 그는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우리를 극적으로 구원해주었다. 나와 친구야말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밖으로 나와 삼겹살 집으로 갔다. 그간 고생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볼이 미어져라 삼겹살을 먹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찜질방 사장으로 대표되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우리 두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가 억압되었다는 생각에 울분이 끓어오른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 세명은 밥을 먹고 PC방 가서 스타 크래프트 3시간 하고, 지금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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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4-1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너무 재미있어요. 그리고 뜨끔하네요.

jedai2000 2006-04-1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감사합니다. 뜨끔하시다니 혹시 비슷한 경험이라도? ^^;

2006-04-1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04-2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이거 지금도 하나요. 빨랑 가봐야겠네요.
 
아이거 빙벽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타인의 취미나 인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가 바로 암벽 등반이다. 무엇보다 고생스럽고, 위험하고, 춥고, 배고프니까. 그러나 동상으로 발가락이 모두 잘린 산악인이 또 등반에 나서는 걸 보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매력이 있구나 싶다. 사실 내가 암벽 등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일종의 질투에 가깝다. 고소공포증이 심해 높은 곳을 워낙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그 성취감을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동경하기만 할 뿐이다.

 

<아이거 빙벽>은 바로 그 암벽 등반을 소재로 한 모험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정복해야 할 주된 대상으로 그려지는 아이거란 스위스 알프스에 실제로 있는 산으로 독어로는 오우거라 부른다. 오우거는 괴물이란 뜻이다. 엄청나게 많은 산악인들이 이 괴물의 먹이가 되었다고 한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암벽으로 최고도의 난이도를 자랑한단다.

 

아이거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은 조나단 햄록이라는 사나이. 예술 비평가이자 교수, 산악인이라는 세 가지 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은데 과외로 정부의 암살자 노릇까지 하고 있다. 한 마디로 007 제임스 본드를 능가하는 만능 사나이인 것이다. 이번에 조나단 햄록에게 내려온 지령은 아이거 등반대 중 한 명을 암살하는 것. 하지만 이미 과거에 그는 아이거에서 두 번이나 패퇴한 전력이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의 인생 최악의 위기가 닥쳐온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아이거 산을 무사히 오르는 것과 그를 제외한 세 명의 등반 대원 중 한 명의 스파이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다. 어느 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는 조나단의 엄청난 고생담을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자의 행복 아니겠는가.

 

이 책은 1972년에 발간되었다. 당시는 007을 비롯한 스파이소설이나 딕 프랜시스, 알리스태어 맥클린 등의 남성 모험 소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모든 게 베일에 가려진 작가 트레베니안에게는 이런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찬 소설들이 참으로 같잖게 느껴졌나 보다. 작가는 상당한 반골 기질의 소유자인 듯 <아이거 빙벽>에서 당시의 모든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분야를 냉소하며 공격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처럼 조나단 햄록에게도 여자들이 많이 따른다. 손짓 한 번에도 여자들이 줄줄이 쓰러질 정도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조나단 햄록은 허랑방탕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사실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단 007의 패러디이다. 그래도 007은 애국심이라도 있었지, 조나단은 애국심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자기만 호의호식하면 된다는 주의다.이 조나단 햄록이라는 주인공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되는 인물이다. 언급했듯이 뭐든지 만능에 여자들까지 줄줄이 꼬인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60~70년대 모험 소설의 남성 주인공들을 몸소 패러디하는 인물인 셈이다. 이 외에도 작가의 발언은 끝이 없다. CII 라는 정보부는 당연히 CIA를 패러디한 이름인데 여기 사람들은 무능하기 그지없으며, 미국 정부는 세계 평화를 지킨답시고 오히려 세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폭로하기도 한다. 조나단이 가르치는 대학생들은 새 만큼의 지능도 없다. 학점을 올려 달라고 몸으로 유혹하는 여제자가 나오는가 하면, 부자집 마나님들은 바람 피우는 데만 눈이 벌겋다. 나중에는 아이거를 오르는 등반대가 등반에 실패하고 처참하게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잔인하고 우매한 군중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들은 지루한 일상의 고통을 등반대의 죽음이라는 짜릿한 흥분제로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관심은 전방위에 뻗쳐 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사정없이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트레베니안의 최대 매력은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거 빙벽>에는 거의 문장 하나 하나마다 유머가 튀어 나오는데 작가의 유머 감각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의 유머는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고 신경을 건드리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날 인종에 관한 농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냉소, 언급된 나라 사람들이 보면 화가 날 정도의 나라와 민족성에 대한 꼬집음 등이 정신없이 섞여 돌아간다. 예를 들어 스위스인은 돈을 밝히고, 프랑스인은 멍청하고, 터키인은 배신을 밥먹듯 한다는 등의 읽는 사람이 다 불편할 정도의 유머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요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공정성이다 뭐다 해서 작가라는 사람들이 눈치만 살살 보기 일쑤인데, 트레베니안은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해 버리니 참으로 감탄스럽다. 그렇다고 무작정 말도 안되는 비난으로 일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작가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때로는 쓴웃음을 짓고, 폭소를 터트리거나, 불쾌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작가의 유머와 풍자를 보며 그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자 후기에서 보니 작가는 이 작품을 세상을 조롱하기 위해 쓴 일종의 가벼운 장난이라고 여겼는데 뜻밖에 독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놀랐다고 한다. 여기는 작가의 오판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디 하나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아이거 등반의 세부적인 사항 하나까지 작가의 전문가적인 솜씨가 듬뿍 배어 있다. 오히려 깊이 몰입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정교한 작품을 써놓고 장난으로 받아들여 달라니 어느 독자가 납득하겠는가. 그만큼 작품 전체에 장인의 손맛이 감돌고 있다는 것이다. 트레베니안은 진정한 즐거움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고, 작품의 재미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속도가 느린 감도 있겠지만 그건 세월을 감안해야 할 것이고, 주인공의 마초성은 작가의 의도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거 빙벽>은 4명의 등반대가 아이거를 정복하는 산악 모험 소설로, 혹은 등반대 안에 잠입한 스파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의 반전이 돋보이는 스파이 소설로, 어쩌면 당대 사회 문화를 조롱하는 풍자 소설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 권의 소설에서 이처럼 다양한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자의 행복 아니겠는가.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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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달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사람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었다. 그는 <카포티>라는 작품에서 소설가이자 기자였던 트루먼 카포티 역할을 잘 소화해내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트루먼 카포티는 1959년 실제 있었던 일가족 살해 사건의 범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논픽션 소설의 명작 <인 콜드 블러드>. 영화는 이 당시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집필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고 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70년대에 국내에도 <냉혈>과 <냉혹>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고 하지만 실체를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에 새로 번역된 책으로 잘 묶어져 나와 많은 독서가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동시에 영화 <카포티>도 개봉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트루먼 카포티와 <인 콜드 블러드>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영화 개봉은 흥행성이 불투명하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힘들 것 같다고 한다.

 

1959년 11월 15일 캔자스 주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린다. 총성은 네 발이지만 결국 죽는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 되는 '클러터 일가족 살해 사건'의 서막이 울린 것이다. 존경받는 농장 주인 허버트 클러터와 그의 부인 보니, 딸 낸시, 막내아들 캐년은 홀컴 마을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허버트 클러터씨의 아내인 보니가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옥의 티일뿐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으며, 이웃들에게는 사랑을 받았고, 가족들 끼리도 화목했다. 한 마디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라는 것. 그러나 11월 15일의 가을 밤, 그들은 두 명의 낯선 방문객을 받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떠나고 말았다.

 

홀컴 마을의 두 불청객,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은 도둑, 강도, 사기 행각을 아무 죄책감없이 저지리는 불량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부유한 클러터 가를 털기 위해 자동차에 탔고, 1,287 킬로미터를 여행해, 그렇게 했다. 유감스럽게도 페리와 딕이 가져간 건 돈이 전부가 아니라, 클러터 가족의 목숨까지 함께였다는 게 비극의 씨앗이 된 셈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필자에게 항의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범인을 밝혀 놓으면 무슨 재미로 읽냐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가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나고, 비범하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전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6년간 직접 범인들을 포함해 수천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써 내려간 진실의 기록이 바로 <인 콜드 블러드>인 것이다.

 

따라서 범인의 정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범인의 이름은 아예 처음부터 나온다. 작가는 책 앞머리에 이 책에 묘사된 것들은 전부 사실이라고 적어 놓았다. 저널리즘의 형식에 소설의 기법을 적용한 논픽션 소설의 출발점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거칠게 나누어 클러터 일가가 살아있었던 마지막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 첫 번째 장,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의 이야기, 페리와 딕의 도피행각과 체포, 그들의 재판과 교수형 장면이 마지막 장이다. 이 모든 실제 이야기들을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 속에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대화의 94% 이상을 기억에 저장할 수 있는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렇듯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가 사건 관련자 모두를 취재해 기록한 이 작품에는 그날밤의 진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취재와 인터뷰 등을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지만은 않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소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답게 사건 직전의 불길한 분위기, 홀컴 마을의 전원 풍경, 섬세한 인물의 내면 묘사 등에서 우수한 소설의 향기 또한 풍겨난다. 이런 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를 보자. 일가족 살인 사건의 충격이 어느 정도 지나간 홀컴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 풍조가 나타난다. 문을 잠그고 자는 집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친하고 서로를 아는 시골 마을이 공포에 지배당하고 만 것이다. 그때만 해도 범인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라, 마을 사람들은 범인이 이웃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이제 누구도 서로 믿지 못하는 미국의 현대적 삶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싹 튼 불신 풍조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실성을 강조하는 신문 기사라면 결코 이런 사실이 아닌 부분을 적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트루먼 카포티는 이 비극적 사건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인 것을 직시하고 있었고 이 작품에 그것을 녹여내고 있다. 그는 기자의 눈과 소설가의 가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고향 친구였던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와 함께 이 사건을 6년간 취재하고 집필한 끝에 결국 걸작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한다. 이 작품으로 명예와 부를 누렸지만 사생활에 있어서 절제를 모르는 사람이라 약물 중독으로 죽었다. <인 콜드 블러드> 이후에 그럴듯한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 하나 만으로도 그는 불후의 업적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 콜드 블러드>는 그를 둘러싼 모순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논픽션이면서 소설이라는 작법 상의 모순이 첫째라면, 범인 중 한 사람인 페리 스미스에 대한 애정의 모순이 두 번째이다. 작품을 읽다보면 그냥 불량끼 있는 건달풍의 딕 히콕보다는, 감성적이고 예술적 재능이 많은 신비로운 사나이 페리 스미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더욱 느낄 수 있는데, 항간에는 작가가 페리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도 떠돌았다. 실제로 페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증명하는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작가는 페리가 빨리 사형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소설의 끝을 하루속히 냈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을테고, 주인공이 사형되는 극적인 결말이 작품의 성공을 더욱 높일 거라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애정을 느끼는 대상이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 속의 격렬한 모순이 그 두 번째인 것이다. 이처럼 <인 콜드 블러드>는 모순으로 가득차 폭발할 듯한 작가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토록 진실한 이야기 속에서 이토록 개인적인 모순이라니...도무지 모를 작품이다. 하지만 단언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걸작이다.

 

"정말로 진지한 대작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작품은 소설과 아주 똑같을 거야. 한 가지 다른 점만 빼면. 그 안에 적힌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이라는거지."

- 트루먼 카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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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6-04-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작품인 건 알겠는데, 막연한 윤리적 망설임 같은 것이 생겨요. 이런 글쓰기에 대한.

물만두 2006-04-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답답해도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어요.

jedai2000 2006-04-1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이런 방식의 글쓰기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성공의 열망으로 인해 그것이 보이지 않았겠죠.

물만두님...그렇습니다.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간 열렬히 시청했던 <신돈>의 종영이 한달 앞으로 다가와 정확히 9회분 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슬슬 출연진이나 작가, 연출진 모두  숨가쁘게 달려온 말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애청했던 팬으로써 아쉬움이 큽니다. 현재까지 50회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큰 실망을 주지 않았고, 그 완성도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대단한 드라마였습니다. 제가 그동안 드라마를 즐겨보면서 김수현이라는 이름만 알았었는데, 이번에 정하연 님을 새로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 그 정도 베테랑 작가님의 진가를 이제야 알아보노라고 부끄럽게 고백하고 있는 셈입니다.

 

1+1이 언제나 2가 된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이 아닐 것입니다. 1+1의 답이 3이 될 수도 있고, 1,000이 될 수도 있음을 <신돈>은 보여주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신돈>은 이미 고정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도 비할 데 없는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우리에게 역사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해석이 참신합니다. 예를 들어, 간절히 회임을 원하는 노국공주를 부추긴 건 초선입니다. 초선은 자신이 사모하는 신돈의 마음이 노국공주에게 쏠려 있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3년 기한으로 암자에 은거한 신돈이 노국공주의 부탁으로 인해 1년만에 나오게 된 걸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노국공주에게 임신의 비책을 알려주고, 약까지 갖다주며 정성을 다하는 초선의 모습에는 노국공주에 대한 질투가 깔려 있습니다. 임신을 하면 필연적으로 죽게 되는 노국공주를 제거하고 싶었던 거죠. 게다가 만에 하나 출산에 성공을 하면 자신이 사모하는 신돈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굳건해집니다. 그녀는 노국공주의 임신을 부추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기존의 사극이라면 초선은 단지 노국공주에 대한 봉건주의적 충성심 때문에 임신의 비책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려졌을 겁니다. 드라마 <신돈>에서는 인물의 행동에 더욱 그럴싸한 이유를 제공함으로 한층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질투와 정치적 성공이라는 이중의 이유가 초선에게 더해짐으로써 그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더욱 공감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이라는 낡은 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이 작품의 역사 해석 및 인물 해석은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최영이라는 인물도 그간의 충성심 강한 장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는 왕이 정치적 이유로 정변을 유도해 정적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으며, 군부의 수장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지키는데도 여념이 없습니다. 악역인 김용마저도 단순한 악의 화신이 아닌, 자신보다 다른 신하를 더욱 편애하는 왕에 대한 애증이 폭발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왕을 죽이려 흥왕사의 난을 일으키면서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지금까지 왕을 죽이려는 역신의 눈물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극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악역이라고 언제나 사람을 죽이는 생각만 할까요? 그들도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김용의 눈물은 감히 말해 사극의 새로운 지점을 밝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공민왕은 지엄한 왕의 신분이면서도 약한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하고, 눈물을 자주 흘립니다. 다정다감한 노국공주는 그 누구보다, 심지어 왕보다 더 강한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어요. 타이틀롤인 신돈은 핍박받는 백성을 구하는 수호자이지만, 미천한 자신의 신분에 강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개혁의 와중에 입만 열면 뱉어내는 '노비의 자식'운운은 신분에 컴플렉스를 가진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렇듯 <신돈>에서는 종이장처럼 얇은 인물이 없습니다. 모두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정말로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드라마 <신돈>의 성과는 너무 많습니다. 그동안의 드라마에서 고승이랍시고 나오는 인물이 '나무아미타불'만 지껄이기 일쑤였는데, 여기 나오는 월선 스님은 정말 고승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썩어빠진 세상에 절망하며 부처님을 원망하는 신돈에게 월선 스님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부처님께서도 꿈을 꾸신게야. 설마하니 부처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이 그리 쉽게 오시리라고 생각했겠느냐. 부처님께서도 꿈을 꾸신거지. 그 꿈이 아름다우니 사람들도 그 꿈을 믿고 의지하는 게 아니겠느냐. 천년의 세월을 기다렸는데, 다시 천년을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무에 있겠느냐."

드라마에서 들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명대사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꿈을 꾸셨다, 이거야말로 고승의 화두에 손색없는 말씀입니다. 이건 어느 문학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신돈>의 출연진들도 자신들이 일생일대의 작품을 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모두들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돈 역의 손창민과 공민왕의 정보석은 올해 말 연기대상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기 충분합니다. 두 분 모두 당대 제일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노국공주 역의 서지혜는 이 작품 최고의 발견입니다. 신인 여배우에 불과한 서지혜가 이 정도의 연기력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지혜는 드라마가 정체기에 빠져 있을 때마다 한방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반전시켜 왔습니다. 이것은 각본이 아무리 좋아도 연기자가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차려진 밥상을 놓치지 않고 똑 따먹는 감각이 있는 배우로 앞으로 더욱 대성할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신돈>의 인기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도 대단한 스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아 있습니다. 영리하고 근성이 있는 배우니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공감하다시피 <신돈>의 미술과 세트 등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드라마가 연극은 아니니 볼거리도 무시못하는 법인데, <신돈>을 보면 일단 눈이 즐겁습니다. 되도 않는 싸구려 소품과 세트로 빈축을 샀던 모 방송국의 사극과는 상당히 비교됩니다. 이렇듯 <신돈>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최선을 선보였습니다. 이 정도의 작품은 운때가 맞아야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이 작품을 정하연 선생이 아닌 다른 분이 썼더라면, 손창민 씨가 신돈 역을 고사했더라면 우리가 보는 <신돈>은 없었을 것입니다. 뭐가 되려니까 하늘이 도운 셈이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방영되는 시점에 열혈팬이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습니다. 처음으로 드라마의 커뮤니티 사이트도 방문해봤고, 그 분들에게도 큰 애정을 느꼈습니다. 비록 떵떵거리며 잘 나가는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욱 이 드라마의 팬들은 서로 더 아껴주며 깊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돈>을 응원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역시 시청률 20%의 장벽을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100명을 초대해 마음껏 먹고 배를 채우라는 잔치상에 20명 밖에 오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좀 답답합니다. 100명이 아니라 1,000명도 즐길 수 있는 이 기름진 잔치에 왜 오지 않을까 하고 말예요.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잔치의 진가를 아는 20명이 실컷 즐기는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우리는 잔치에 오지 않은 80명을 비웃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포함한 20명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잔치도 <신돈> 정도면 할 만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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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마작을 배우고 싶다는 글을 자주 올려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마작이냐며, 백수 주제에 일 할 생각은 안하고 도박을 배우려 하냐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분들은 한 가지 잊고 있다. 마작으로 대박 터트리면 평생 일을 안해도 된다는 것을...(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농담이고 본인 성격이 끌탕이라 하고 싶은 건 죽어도 해야 직성이 풀리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 되며, 배우고 싶은 건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마작을 구입했다. 이러면 사놓은 게 아까워서라도 빨리 배우고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무언가 공부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꼭 이 방법을 추천한다. 일단 사놓고 보라고. 서랍 속에 쳐박아 두더라도 나중엔 본전 생각나서 공부하게 된다니까.

 

 
중국제 마작이다. 사실 2만4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라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패 조금만 돌리면 갈라지고, 잔기스(?)가 날 것 같았다. 열어보기 전까지는 조마조마했다.그러나 막상 열어보니...

 

 열어보니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하얀 바탕에 녹색 글씨, 빨간 글씨가 어우러져 눈을 시원하게 한다. 아아~ 내 마음은 벌써 대가집 후원 정자에 앉아 녹음을 바라보며, 빼빼빼빼 하는 새소리를 들으며 마작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숫자패이다. 보시다시피 1부터 9까지 써 있다. 숫자 뒤에 글자는 다 아시겠지만 일만 만자이다. 그래서 이 패를 만수(萬數) 패라고 한다. 숫자 패는 이 외에도...

 

이 통수패라는 것이 있다. 둥글둥글한 통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통수패다. 이것도 1부터 9까지 있다. 마지막 숫자 패는...

 



 

 

 

 

 

 

 삭수패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길죽한 것에 마디가 있다. 그렇다. 대나무를 상징한 것이다. 이 삭수패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원래 이 패는 마작에 없었는데 궁녀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신세가 대나무 새장 안에 든 새와 다를 바 없구나, 하면서...그렇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궁녀들은 마작으로 외로움을 달랬던 것이다. 봄이라고 애인 하나 없는 내 신세와 다를 바가 없구나. 그러나 즐기지 못할 이유 또한 무엇이랴. 다만 세상사 일이 변화가 무쌍해 어제 보았던 벚꽃을 오늘 볼 수 없으니 그저 한숨만 나오는구나. (갑자기 또 흥분했다 ㅋㅋ)

 

 

 

 

 

 

 

 

 만수패, 통수패, 삭수패의 세 가지 숫자패 말고, 마지막으로 문자패가 있다. 이것이그 문자패이다. 동서남북의 네 바람을 상징하는 사풍패, 가운데 중(中)과 흴 백(白), 쏠 발(發) 자가 삼원패라는 것이다. 옆의 꽃 그림은 그냥 보너스 그림이다. 이 숫자패와 문자패는 보시다시피 각각 4개씩 존재한다. 그래서 총 마작의 패 갯수는 136개이다. 이 136개의 패 속에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울고 웃고, 지치고 떠들고, 성내고 희롱하는 것이 다 이 안에 있는 셈이다.

 

본인도 마작을 전혀 못 하지만, 여기저기 책을 보니 기본은 이렇다. 같은 마작 패가 3개가 있으면 그게 바로 한 세트다. 예를 들어, 3만+3만+3만이 있으면 한 세트 성립이다. 이건 문자 패도 마찬가지다. 中+中+中 이 한 세트가 되는 것이다. 이걸 '앙꼬'라고 한다. 또 숫자패가 순서대로 3개 성립되면 이것도 한 세트다. 예를 들어 1만+2만+3만이면 한 세트가 갖춰진 것이다. 이건 '치'라고 부른단다.

 

이걸 기본으로 해서 총 14개의 패를 이용해 점수를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앙꼬나 치를 기본으로 해서 이런 식으로 패를 구성해야 한다. 3+3+3+3+2... 여기서 마지막의 2는 '머리' 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패가 두 개 있어야 한다. 대충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천변만화하는 규칙들과 다양한 재미를 주는 요소들이 있어 한 번 빠지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소감을 자주 읽어보았다.

 

 

 

 

 

 

 

 

 

 

 

 이것은 본인의 손. 마작패 두개를 손에 들고 손맛을 느껴보고 있는 중이다. 마작의 어원은 참새가 재잘재잘대는 소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그 소리가 청량하기 그지없다. 나도 한참을 주물럭거리며 그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시베리아 맘모스의 상아로 만든 것을 살 것이다.

 

아직 룰도 하나도 모르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좀 그렇다. 마작을 배운 후 다시 정식으로 마작의 재미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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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한솔로 2006-04-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만 있으면 저도 따라 배우고 싶지만..휴....

한솔로 2006-04-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친한 형은 중국과 우리나라 수교 되고 여행 왕래가 그리 활발하지 않던 시절, 어머니가 중국 가게 되서 뭘 선물로 갖고 싶냐고 하니까, 인민복이랑 마작이라고 얘기했다가 혼만 났다고 하더군요. 인민복은 대체 왜 필요하며, 마작 따위 배워서 뭘 하겠냐고...ㅎㅎ

Koni 2006-04-0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사셨군요. 며칠 전 본 영화 '나나'에서도 마작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영화가 예뻐서 그런지 멋져 보였어요.^^ 미남미녀들이 하얀 나무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하고 있었어요.

jedai2000 2006-04-0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아직 하나도 못해요..^^;;

한솔로님...제가 잘 배워서 나중에 한가해지시면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마작은 그렇다치고, 인민복은 왜 필요하신지 궁금하네요..^^;;

냐오님...예. 샀습니다. 저는 미남은 전혀 아니지만 하얀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마작을 하면 운치가 끝내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