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이 그렇듯이 문제의 발단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친구에게 건 한통의 전화가 이토록 큰 비극을 낳을 줄은 당시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전화를 하지는 않았을텐데, 라라~ 토요일 오후2시 어찌나 심심하던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주말마다 나가는 영어회화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모임을 가지 말고 나와 놀아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한사코 가야 한다는 것이다(그 모임은 여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모임이 끝나는 저녁 일곱 시에 만나기로 했다.
무조건 집을 나와 만화방에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은과 금>이라는 만화를 보았다. 예전에 본 작품인데, 주인공들이 마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는 이해를 못 해서 그냥 넘겼지만, 살짝 배운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본 건데, 감동이었다. 지금 비록 마작을 능수능란하게 돌릴 실력은 못되지만 어느 정도 배운 관계로 그 전에 그냥 지나친 장면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 짜릿한 감동이라니. 혹시 마작 만화를 보실 분들은 어느 정도 배우고 난 후에 보실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재미와 느낌이 확 달라진다(이상 마작 홍보였다). 아무튼 약속 시간 일곱 시가 되어 나는 친구를 만났다.
돈은 없고 시간만 많은 우리들이 갈 곳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곳은 찜질방! 단돈 5,000원에 찜질 시설과 각종 부대시설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우리는 택시를 타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우리 둘은 국내에 찜질방이 도입된 초창기부터 열심히 찾아다닌 자타 공인 극렬 찜질 마니아였던 것이다. 인천 시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A부터 D까지 랭크를 매긴 적도 있을 정도다. 우리가 작성한 평가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록 별 영향력은 없지만 그래도 당시 우리는 진지했다. 이번에 간 곳은 시설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편한 건 매점이나 식당 이용시에 직접 현금을 내지 않고 들고 있던 열쇠에 내장된 센서로 나중에 나갈 때 후불 처리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현금을 들고 찜질을 하다보면 주머니 속에 땀이 차 지폐가 오뉴얼 개 혓바닥처럼 축축 늘어지게 된다. 분실의 위험도 있고...이 얼마나 편리한 변화인가. 역시 인간은 진화하는 것이다, 살짝 감동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간교한 악마의 속임수였다. 현금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감이 없어지고 만다. 주머니 속에 돈이 있다면, 그것을 쓸 때마다 자동적으로 남은 돈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겠지만, 열쇠를 센서판에 갖다 대는 순간 일체의 계산이 완료되니 도통 경제 관념이 희박해지고 마는 것이다. 사용자의 편의를 봐준다는 것은 속임수였다. 멀쩡한 인간의 경제 관념을 무너뜨려 최후의 한푼까지 쥐어짜고 말겠다는 자본주의의 치명적 유혹이었던 것이다!
우리 둘은 찜질 한 번에 냉면 한 그릇, 찜질 두 번에 팥빙수, 찜질 세 번에 핫바...이런 식으로 자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 순간, 우리가 차고 잇던 파멸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먹다 지쳐 잠이 든 우리는 10시 30분에 일어났고, 대충 씻고 체크 아웃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계산대에 찍힌 액수는 34,000원. 우리가 가진 돈은 32,000원에 불과했다(많이도 쳐 먹었다). 파멸의 구렁텅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인생의 절반에 접어든 우리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던져지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찜질방으로 올라갔다. 친구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우리가 인생을 그리 잘못 살지 않았다면 구출해줄 친구들이 나타날 거야." 우리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 친구들과의 연락은 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은 점점 인간의 이성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먹고 놀기로 했다. 2층에 있는 무료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왕창 들고 와 토굴방(사진 참조)에 한 명씩 들어가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진심으로 만화책을 즐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허영만 선생의 <들개이빨>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내가 들어가 있던 토굴에 누군가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내 소원은 당신이 햇빛을 가리지 않는 것이 전부요' 했던 디오게네스가 이해가 간다는 것이었다.
찜질방 억류 16시간째, 친구는 배고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원래 대식가이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기 시작한다. 사람이란 의식주가 만족되야 예절을 아는 법이다. 우리의 화목한 분위기는 깨졌다. 그는 나에게 공개적인 비난을 가한다. "네가 너무 생각없게 돈을 썼어. 이 머저리야." 나는 '누가 돼지같이 쳐 먹으래.' 하며 맞받았다. 결국 이렇게 가다간 공멸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화해를 했다. 나는 그에게 물을 먹고 오라고 했다. 그는 60년대 고학생처럼 수돗가로 가서 물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배고픈 설움을 요즘같이 풍요로운 세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그러나 오늘 좀 배웠다. 물배가 참으로 금방 꺼진다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찜질방 억류 20시간째,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찜질방 특유의 촉수 낮은 불빛에 생각이 흐리멍텅해지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은 이런 식으로 파괴되는 것인가. 그러나 그순간 다른 친구와의 연락이 닿았다. 그는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우리를 극적으로 구원해주었다. 나와 친구야말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밖으로 나와 삼겹살 집으로 갔다. 그간 고생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볼이 미어져라 삼겹살을 먹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찜질방 사장으로 대표되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우리 두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가 억압되었다는 생각에 울분이 끓어오른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 세명은 밥을 먹고 PC방 가서 스타 크래프트 3시간 하고, 지금 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