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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거 빙벽 ㅣ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타인의 취미나 인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가 바로 암벽 등반이다. 무엇보다 고생스럽고, 위험하고, 춥고, 배고프니까. 그러나 동상으로 발가락이 모두 잘린 산악인이 또 등반에 나서는 걸 보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매력이 있구나 싶다. 사실 내가 암벽 등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일종의 질투에 가깝다. 고소공포증이 심해 높은 곳을 워낙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그 성취감을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동경하기만 할 뿐이다.
<아이거 빙벽>은 바로 그 암벽 등반을 소재로 한 모험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정복해야 할 주된 대상으로 그려지는 아이거란 스위스 알프스에 실제로 있는 산으로 독어로는 오우거라 부른다. 오우거는 괴물이란 뜻이다. 엄청나게 많은 산악인들이 이 괴물의 먹이가 되었다고 한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암벽으로 최고도의 난이도를 자랑한단다.
아이거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은 조나단 햄록이라는 사나이. 예술 비평가이자 교수, 산악인이라는 세 가지 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은데 과외로 정부의 암살자 노릇까지 하고 있다. 한 마디로 007 제임스 본드를 능가하는 만능 사나이인 것이다. 이번에 조나단 햄록에게 내려온 지령은 아이거 등반대 중 한 명을 암살하는 것. 하지만 이미 과거에 그는 아이거에서 두 번이나 패퇴한 전력이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의 인생 최악의 위기가 닥쳐온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아이거 산을 무사히 오르는 것과 그를 제외한 세 명의 등반 대원 중 한 명의 스파이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다. 어느 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는 조나단의 엄청난 고생담을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자의 행복 아니겠는가.
이 책은 1972년에 발간되었다. 당시는 007을 비롯한 스파이소설이나 딕 프랜시스, 알리스태어 맥클린 등의 남성 모험 소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모든 게 베일에 가려진 작가 트레베니안에게는 이런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찬 소설들이 참으로 같잖게 느껴졌나 보다. 작가는 상당한 반골 기질의 소유자인 듯 <아이거 빙벽>에서 당시의 모든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분야를 냉소하며 공격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처럼 조나단 햄록에게도 여자들이 많이 따른다. 손짓 한 번에도 여자들이 줄줄이 쓰러질 정도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조나단 햄록은 허랑방탕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사실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단 007의 패러디이다. 그래도 007은 애국심이라도 있었지, 조나단은 애국심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자기만 호의호식하면 된다는 주의다.이 조나단 햄록이라는 주인공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되는 인물이다. 언급했듯이 뭐든지 만능에 여자들까지 줄줄이 꼬인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60~70년대 모험 소설의 남성 주인공들을 몸소 패러디하는 인물인 셈이다. 이 외에도 작가의 발언은 끝이 없다. CII 라는 정보부는 당연히 CIA를 패러디한 이름인데 여기 사람들은 무능하기 그지없으며, 미국 정부는 세계 평화를 지킨답시고 오히려 세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폭로하기도 한다. 조나단이 가르치는 대학생들은 새 만큼의 지능도 없다. 학점을 올려 달라고 몸으로 유혹하는 여제자가 나오는가 하면, 부자집 마나님들은 바람 피우는 데만 눈이 벌겋다. 나중에는 아이거를 오르는 등반대가 등반에 실패하고 처참하게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잔인하고 우매한 군중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들은 지루한 일상의 고통을 등반대의 죽음이라는 짜릿한 흥분제로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관심은 전방위에 뻗쳐 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사정없이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트레베니안의 최대 매력은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거 빙벽>에는 거의 문장 하나 하나마다 유머가 튀어 나오는데 작가의 유머 감각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의 유머는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고 신경을 건드리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날 인종에 관한 농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냉소, 언급된 나라 사람들이 보면 화가 날 정도의 나라와 민족성에 대한 꼬집음 등이 정신없이 섞여 돌아간다. 예를 들어 스위스인은 돈을 밝히고, 프랑스인은 멍청하고, 터키인은 배신을 밥먹듯 한다는 등의 읽는 사람이 다 불편할 정도의 유머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요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공정성이다 뭐다 해서 작가라는 사람들이 눈치만 살살 보기 일쑤인데, 트레베니안은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해 버리니 참으로 감탄스럽다. 그렇다고 무작정 말도 안되는 비난으로 일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작가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때로는 쓴웃음을 짓고, 폭소를 터트리거나, 불쾌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작가의 유머와 풍자를 보며 그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자 후기에서 보니 작가는 이 작품을 세상을 조롱하기 위해 쓴 일종의 가벼운 장난이라고 여겼는데 뜻밖에 독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놀랐다고 한다. 여기는 작가의 오판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디 하나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아이거 등반의 세부적인 사항 하나까지 작가의 전문가적인 솜씨가 듬뿍 배어 있다. 오히려 깊이 몰입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정교한 작품을 써놓고 장난으로 받아들여 달라니 어느 독자가 납득하겠는가. 그만큼 작품 전체에 장인의 손맛이 감돌고 있다는 것이다. 트레베니안은 진정한 즐거움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고, 작품의 재미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속도가 느린 감도 있겠지만 그건 세월을 감안해야 할 것이고, 주인공의 마초성은 작가의 의도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거 빙벽>은 4명의 등반대가 아이거를 정복하는 산악 모험 소설로, 혹은 등반대 안에 잠입한 스파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의 반전이 돋보이는 스파이 소설로, 어쩌면 당대 사회 문화를 조롱하는 풍자 소설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 권의 소설에서 이처럼 다양한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자의 행복 아니겠는가.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