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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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그 마지막까지 왔다. 마지막은 늘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지만 레판토 해전이 의미하는 마지막은 지중해 세계인 중세의 끝을 의미한다. 1571년 10월 7일이 그 운명의 날이었고 대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함대 사이에 벌어진 해전을 그녀가 들려준다. 전쟁사지만 잔인함이나 영웅담이 아닌 역사의 바탕에 기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역사라는 큰 이름의 물줄기에서 파묻혀 보이지 않고 사라진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에게 쉽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기독교 연합 함대란 베네치아 공화국과 로마 교황 그리고 스페인 동맹함으로 이루어졌다. 투르크는 해군 전통이 빈약해서 실전에서 해적이 해군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강한 투르크도 약점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이를 극명하게 보인 투르크 내 온건파와 강경파는 갈등하고 있었다.
 
 1571년이라는 숫자를 보면 감도 안 오지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해로 20대였다. 또한 카라바조가 10월에 태어났다. 재미있는 사실 또 한 가지는「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도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의 세르반테스는 이 해전을 겪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레판토 해전은 기독교 연합 함대와 투르크의 해전이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해 많은 관심이 간다. 막대한 부를 가진 풍족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여러 면에서 매력이 있었다. 에스파냐 왕국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좋지 않게 생각한 이유만 보아도 그렇다.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하려던 에스파냐를 가로막은 유일한 국가(강력히 저항)가 베네치아 공화국이었으며 비타협적인 반종교개혁 운동의 진원지였던 에스파냐와 대조적으로 베네치아는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타종교를 믿는 민족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관용적이었다는 점, 정교분리의 입장에 서서 늘 교황청과 일정한 선을 그어온 당시 서유럽 국가에서 유일하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라틴계 민족이면서도 에스파냐와 베네치아의 민족성이 극단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로 변화하는 관계란 전쟁사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다시 레판토 해전으로 돌아가자면 당시 상황이 투르크와 기독교 연합 양군을 합쳐 500척의 갤리선과 17만 명의 인간이 충돌한 싸움이었다니 상상만으로도 그 일대의 바다가 덮어온 역사 앞에 진지해진다. 각국의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자면 전쟁은 늘 슬픔이 따른다. 승리했더라도 누군가는 희생하거나 죽어서 이룩된 게 전쟁이기에 말이다. 기독교 연합이란 이유로 그들이 배에 내건 동맹기에는 가운데는 십자가형을 받는 그리스도를 수놓고 그 발치에 동맹 참가국인 교황청과 에스파냐 왕국, 베네치아공화국의 문장을 새겼다. 투르크는 그러면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이었겠지. 터키 역사 교과서에는 레판토 해전이 실리지도 않을 만큼 그들에게는 치욕의 역사라고 하던데 말이다.
 
 치욕의 역사라도 역사는 역사지 아니한가.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에 우세하게 전하더라도 그러니 더더욱 반대쪽도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승자, 강자에 의한 역사를 바로잡거나 제대로 보고자 유적을 발굴하고 다른 기록을 찾는 것일 테니까.
 
 아무튼 무적의 투르크군에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 기독교 세력이 동맹하여 118년 만에 얻어낸 값진 승리가 바로 레판토 해전이었다.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이고 정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한 말이다. 역사란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소시민으로 머나먼 나라의 옛이야기가 다시금 삶 속에서 꽃 피는 이유이다. 
 
 
■간단 서평: 전쟁 3부작 마지막. 한 시대의 끝에서, 전쟁사에서 역사의 의미와 이름 없는 이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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