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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ㅣ 하서명작선 43
이순신 지음, 박광순 옮김 / (주)하서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어제도 새벽까지 깨어있었고 일어나는 시간은 변함없다. 그로 인해 오전 약속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그 틈에 잠시 한숨 돌리고 유치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고 소아과에 가서 천식 예방제도 받고 약국서 아이들을 놀리고 오후에는 또 어린이집 예비소집일에 참가했다. 눈은 저녁시간부터 감기기 시작했지만 내일은 먼 길을 떠나야 해서 오늘까지 할 일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서평쓰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이보다 훨씬 피곤하겠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런 와중에 끊임없이 7년 동안 난중일기를 쓴 이순신의 글과 만났으니 엄살 부리지 말아야겠다. 개인의 전쟁사를 매일 쓰는 우리들이지만 이순신 장군의 글을 엿보니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었다. 한 줄 기록조차 못하는데 그는 7년을 난중에도 적었다는 사실. 작년에 하다 말았던 3줄 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최근에 간단하게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이 김훈의 「칼의 노래」가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인데 「칼의 노래」를 먼저 읽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소설이라 잘 읽혀서이기도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상황과 내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정이입이 훨씬 잘 되어서 김훈의 책을 우선 읽기를 권한다. 만약 반대로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이 정도의 몰입이 어려웠을듯하다. 물론 영화 〈명량〉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지만 명량 대첩을 중심으로 만든 영화라 난중일기의 후반부만 해당이 된다. 그래도 권하는 이유는 난중일기에서 가장 길게 쓴 일기의 날짜가 바로 명량 대첩이 있던 날이기 때문이다. 몇 줄이 아니라 페이지를 넘어갈 정도이다. 감독이 이순신 3부작으로 만든다고 했으니 아직 두 편의 영화가 남아있어 이 또한 기대된다.
임진왜란이 있었던 임진년(1592년)부터 장군이 노량 대첩에서 죽은 무술년(1598년)까지 7년의 기록. 이토록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적과 마주했던 장군의 상황이 가감 없이 솔직하고 짧게 적혀있다. 장군의 3대 대첩인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 노량 대첩이 모두 존재하나 우리가 원하는 드라마틱한 문장으로 전해지지는 않았다. 개인의 일기지만 장군의 일기 방식은 날씨와 군대 규율 잡기, 직무수행, 활쏘기, 찾아온 이들, 개인적 이야기 약간이 다이다. 역사적 기록으로의 가치가 훌륭하나 그에 못지않게 치열한 장군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 값진 시간이었다.
책에는 아마도 활쏘기가 가장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순신 장군하면 동상들도 그렇고 대개 갑옷 입고 칼을 쥔 모습만 떠오르는데 이젠 활쏘기도 기억하게 되었다. 수많은 활을 쏘며 장군은 번뇌도 함께 날려버렸을 것이다. 직무수행도 칼 같아서 곤장을 치고 효시(목을 베어 높은 곳에 걸어 본보기를 보임.) 하는 강단 있는 모습과 나라 걱정에 눈물짓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노모와 아들 생각(막내아들 면의 죽음은 칼의 노래를 통해 절로 그려졌다.) 에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장군의 모습을 생각하자니 개인의 슬픔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고 나랏일을 보는 삶의 무거움 또한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다. 묵묵하게 감내해내는 모습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장군의 상황은 안과 밖의 적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한 삶의 자세 역시 장군을 빛내는 것 중 하나이다. 게다가 난세에는 영웅이 난다지만 지금 시대는 리더의 부재가 크니 리더들이 제발 제대로 읽고 본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뇌물과 여종 등을 받쳐 위기를 모면하거나 요구했으니 사실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를 읽으며 개탄할 일이 많았다는 장군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후대에 국사를 읽으며 개탄할 일이 더 많아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원균 같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52쪽. 계사년(1593년, 49세.)의 기록 중에서.)
종일 혼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한의 바다를 보며 그가 싸워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서, 슬픔을 토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울어야 했을 텐데. 그가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한 무게는 그만의 진중함으로 다가온다.
색다른 모습으로 점을 치는 글을 보며 장군도 희망을 엿보려 했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박종평이란 이순신 연구가가 한 말이 인상 깊다. 이순신의 점이 100% 일치했던 이유가 '예측 불가능한 미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했던, 진정한 유비무환의 삶을 살았던 사람', '그의 점은 언제나 긍정적 결과에 이르렀다', '이순신의 점은 사리사욕을 위한 저급한 점이 아니라, 아버지와 남편의 점, 하늘을 공경하며 마음을 닦던 선비의 점, 국가와 백성의 생존을 책임진 장수의 점이었다. 이순신처럼 그런 마음과 자세로 점을 친다면 그 어떤 점이라도 확실하게 긍정적인 응답을 받을 것이다.'
출처: 신동아 =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4/12/23/201412230500014/201412230500014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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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을 담은 점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타로카드 해석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활쏘기를 하고 점을 치며 그만의 방식으로 어지러운 내면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몸이 안 좋아서 식은땀을 흘리는 날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임진년 사천해전에서 어깨에 맞은 총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책만을 봐서는 모르겠지만 「칼의 노래」를 읽었기에 충분히 그려진다. 이처럼 이 책만 읽어서는 모르는 것들이 제법 있다. 역사적 지식도 약간은 아는 것이 좋겠고 김훈의 글과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또 다른 「난중일기」도 계속 읽어야겠다.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무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모습 하나를 이야기하며 서평을 줄여야겠다. 바로 시문에 능한 장군의 모습이었다. 그의 문장을 직접적으로 많이 접할 수는 없었다. 다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를 읊으며 밤을 새웠다는 문장만으로도 충분했다. '북쪽에 갔을 때도 고락을 같이 하고, 남쪽에 왔을 때는 생사를 함께 하더니, 오늘 밤 달빛 아래 한 잔 술 나누면 내일은 이별을 아쉬워하겠네' (174쪽, 선수사와 작별하며 준 시.)
어쩌면 병영 일지와도 같은 이 책이 주는 의미를 깊게 느끼려면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을 버리지 않고 버텨내는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영웅으로의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써 직면한 상황과 맞서는 의지를 기억하고자 한다. 영웅으로 무조건 그리고 추앙해되는 건 정말 꼴사납지만 인간적인 그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모습을 느낀다는 건 바람직하다. 악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초월해내는듯한 아니 이런 거창한 의미가 아니다. 삶이 이어졌기에 따라간 그의 모습이 좋은 것이다. 그가 바라본 바다의 풍경이 궁금하다. 오래전 목포 유달산에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유달산에는 그때처럼 동백꽃이 흔들리고 있겠지. 내게는 「난중일기」가 좋은 소설만큼이나 뒷심이 강한 책이었다.
■간단 서평: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꼭 읽을 책.
미사여구 없는 글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생생함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