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곳
캐런 크리스텐슨 지음, 곽영미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캐런 크리스텐슨은 환경운동가가 아니었다. 다만, 부지런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도움될만한 환경 관련 정보를 찾다가 얻을 수가 없어서 직접 찾아낸 정보를 글로 썼다.
이렇듯 우리의 지구를 지키는 방법은 아주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며 할 수 있는 행동 또한 작은 것
것들이다. 그래서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일들이다.

 나 또한 환경문제에 적지않은 관심이 있다. 그래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아주 소소한 일들을 하나씩 지켜
가고 있다. 사실 환경에 관계없이 내가 편해서 혹은 좋아서 하던 작은 습관이 환경에 보탬이 된다는 사
실을 알게 되니 뿌듯함이 일었다. 결국, 환경문제란 우리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은 컴퓨터를 사용한다. 컴퓨터 본체, 모니터 그 외 연결된 여러 장치들은
전선으로 이어졌고 전선의 끝에는 플러그가 있다. 사용 후 전원만 내리지 말고 플러그 자체를 뽑아두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모든 전기용품이 마찬가지이다. 물론 냉장고처럼 항상 켜둬야 할 경우는 제외가
된다. 이렇게 하면 무엇이 좋을까. 전기료가 덜 나온다는 경제적인 혜택도 있지만 전기부하를 줄여서
전자파 노출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다. 자원을 남용하지 않아야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원을 공급하려 성급한 공업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넘치지 않게 단순한
것이 최고로 좋은 것이다.

 책에는 여러 가지로 알기 쉽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많아 읽어보면 인식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많은 것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관심의 시작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이니까.
모두가 하나씩만 바꿔도 그것은 큰 효과로 다가올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환경운동이라는 이
름을 걸고 해야 한다는 현실이 실로 안타깝다.

 사람들은 과거에 정복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정복하고 있다. 세균도 마찬가지로 그 공포 때문에 각종
화학약품을 이용한다. 욕실청소 등에 이용하는 살균제품 등을 무조건 과신하면 안 된다. 뉴스에서도 보
도했듯 실제로 항균 처리된 비누와 일반비누의 차이는 크지 않았으며 천천히 제대로만 씻어도 세균은
어느 정도 제거된다. 과잉사용 시 오히려 내성이 생길 뿐이다. 내성이 생기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어서
농약도 더 강해진다. 이유는 각종 해충도 내성이 강해져 잘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욱 강한 약품
을 만들고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모든 세균이 죽는 것도 아니며 이로운 세균을 죽일 수도 있다. 결국,
약품을 이기는 것은 또 다른 슈퍼바이러스가 될 뿐이다. 면역성의 깨짐과 호르몬 불균형은 이미 그 피
해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항생제의 남용을 지적했듯 우리는 필요 이외의 것을 너무도 남용하고 있다.

 유기농 정원 부분에도 알찬 내용이 많았다. 정원 혹은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들,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라면 꼭 참고할 만하다. 그리고 해충방제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다양한 원산지 식물을 함께 심는 것이
라는 사실도 배웠다. 그래야, 해충에 대한 숙주 식물이 생겨서 면역력이 강한 식물이 된다고 한다. 다양
성 없는 일률적인 나무심기나 농작물은 우리의 산과 들을 해충으로 들끓게 할 뿐이다. 이 의견은 박병
상의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에도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이 책은 환경서지만 동시에 살림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전문성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캐런 크리스텐슨은 패스트 푸드인 맥도널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영국 역사상 가장 비싼 법정
투쟁까지 했었고 지금은 당당하게 환경운동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녀가 전하는 작지만 단순한 생활
이야말로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식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려고 노력한 결과 발전은 했지만 잃은 것이 무
엇인지 돌아볼 때이다. 한참 성장하는 중국의 각종 오염물과 환경파괴는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우리의 모습이며 함께 사는 지구의 모습이다.

 서양 저자의 말이라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100% 맞지는 않지만 읽기만 해도 마음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실정에 맞는 환경서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이 지구에서 우리 자신이 처한 입장을 알아야만
우리가 지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열정을 찾을 수 있다. (140쪽)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박병상의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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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 산.들.강.바다.하늘에 사는 우리 동물 54가지
박병상 지음, 박흥렬 그림 / 알마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10월 말에 산에 다녀왔다.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 이곳의 산은 처음이었는데 단풍철이라 그런지 우르르
몰려온 등반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자주 보는 광경도 아니고 단풍놀이 하러 나온 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나야 가까운 곳에 사니 멀리서부터 찾아온 이들보다 산을 찾을 기회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산에 사람이 가득 차면 산의 소리는 작아지고 사람의 소리만이 들린다. 그날도 그랬다. 동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새소리도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서 듣는 소리보다 작았으며 다람쥐나 청설모도 한 마리
찾을 수 없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산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였던 산행이었다.

솔직히 나는 환경에 관심이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산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다람쥐의 귀함을 이제야 느낀 것이다. 저자는 알기 쉽게 주제에 따라 4부로 나
눠 차근차근 사라져 가는 생명의 목록을 이야기한다. 각 동식물체의 현재상태를 전달해주어 어느새 자
연스레 마음에서부터 느끼게 돕고 있다. 강한 의견을 피력하는 바가 아닌 저자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글이 오히려 호소력이 짙어졌다.


1부 한반도 생태에 눈뜨게 해 주는 동물들

영화 <쉬리>로 알려진 동명의 물고기 쉬리는 일급수에서 살며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아름다운 종
이다. 그런데 그저 좋고 희귀하면 다 보신용으로 사용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었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
었다. 쉬리탕이라니, 당치도 않다. 그리고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간다는 참새서부터 개인적으로 추억이
있는 박새 등 수많은 동물이 우리의 생태를 그대로 나타내었다. 하천은 사행천으로 구불구불한 자연 그
대로의 모습에 이유가 있음에도 직선으로 건설한 모습은 예전에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일본의 하천과 비교했는데 사행천으로 되살려야 생태계가 살 수 있으니 이제라도 적극지원 했으면 좋
겠다. 민간이 아닌 정부가 나서서 생태계 보전을 주도해야 한다. 생태계에서 사람 때문에 살아남지 못
하게 된 동물은 결국 최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그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 그걸 사람만이 모른
단 말인지. 호랑이가 전설로만 남았듯 다른 동물도 그 길을 밟게 되는 걸 막아야 한다.



2부 생태 위기를 알려 주는 동물들

아름다운 제주도는 나라의 보물이다. 그런 제주도의 조랑말이 골프장 건설로 줄어들고 있다. 말을 방목
해서 키우던 자리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골프장의 스코틀랜드산 잔디를 유지하
려고 농약과 살충제를 뿌려서 한라산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관광 제주도가 앓는 몸살은 하나의 신호
이다. 한 번 파괴된 생태계를 복구하려면 노력을 몇 배나 더 들여야 하며 시간 또한 오래 걸림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더는 생명이 들어설 수 없을 지경이 된다면 기다리다 모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이밖에도 백합, 재첩, 짱뚱어 등의 이야기가 함께한다.



3부 생존의 길목에 선 멸종 위기 동물들

책을 통해 배운 것 중 산양이 우리나라에도 살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비무장 지대에 살고 있으
며 설악산에도 살아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신비롭다. 이제는 이름만 전해지지 실제로 보기도 어려운
멸종 동물에 늑대, 수달, 두루미, 황새 등이 포함된다. 멸종된 동물은 어디에서 다시 되살린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비효율적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멸종 동물이 더욱 늘어만 갈 것이다.



4부 아주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동물들

20살 캠퍼스를 종종걸음으로 다닐 때 가장 빈번하게 들락거린 곳은 도서관 동이다. 뒤쪽으로 작은 산이
있었고 그곳은 나무들이 울창했다. 가끔은 도서관 가는 길에 청설모를 만나고는 했다. 그때 청설모를
보고는 까만 다람쥐라고만 생각했는데 친구가 알려줬었다. 이름도 예쁘고 귀여워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동물이었다. 그런데 그 청설모가 유해조수로 규정되어 퇴치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먹이를
저장하려 땅에 파묻는 습성 때문에 잣나무 등이 자라게 되어 숲을 이루게 한 장본인이 이제는 골치 아
픈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의 근본적인 물음은 생략한 채 지금
의 현실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송사리, 두꺼비, 꿀벌이 줄어 들고있다. 흔하다고 당연하게 생
각했던 동물이 더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선조들은 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이 궁핍했어도 자연 속에서 그
들과 나누며 살았는데 과연 비만으로 먹을게 넘치는 세상에서는 무엇을 더 잘 먹겠다고 천연기념물이
나 보호동물을 잡아먹으며 그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효과는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진리이다. 환경보호에 앞장서지 않더
라도 인식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와 어린 시절을 함께하던 동물이 추억의 동물로 잊혀져 간
다는 구슬픈 현실 앞에서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식물에는 그나마 관심을 많이 두면서도 동물에는 그보다 소홀했던 것도 반성했다.
이 긴 제목의 글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어찌 잊을까.
저자의 절실한 마음 또한 잊을 수 없으며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원인이 우리들 때문이라는 사
실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만난 우리 동물 54가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얼마나 기다
려야 할지 모르지만 더디더라도 꼭 그런 날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환경단체가 반대하는 일은
한 번쯤 귀담아들어야 될 것이다. 우리의 생명줄을 스스로 자르는 것이 아닌지 자문하며 심사숙고할
중요한 일이다.


* 저자 박병삼 블로그 = http://blog.daum.net/brilsym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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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순원의 나무. 이 단순한 한 마디는 내게 퍽 정감있게 들려온다. 마치 꾸미지 않은 청초함을 마주하듯
그렇게. 그것은 이순원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미풍이 나무와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들려
주는 이야기 속에 삶의 과정이 오롯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 밤나무가 손자 밤나무에게 들려주는 훈훈하고 교훈적인 가르침은 그저 옳고 배워야 할 이야
기만이 아닌 삶을 빗댄 우화였다. 언젠가 꼬마였을 때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처럼 꿈결 같지
만 잊을 수 없는 이야기. 모든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처럼 손자나무도 계속 뿌리를 깊이깊이 내릴 것
이다. 손자나무는 일 년의 과정을 통해 사계절을 맞으며 인내하고, 때로는 시련을 겪으며 다음을 준비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 나무의 마음을 다 알길 없는 어린나무는 가끔 투정도 부리지만 조금씩
성숙해진다. 그리고 머지않아 홀로서기를 할 것이다.

 풍년에 가득 열린 밤나무를 보듯 책을 잡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잔잔한 내용의 흐름을 따라
가면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기분이며 여러 문장에서 공감했다. 크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읽으면 누구나
알아볼 그런 힘이 이 책에는 있다. 어렵게 꾸미지 않은 글. 그래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어린나무의 위기였던 태풍이 와서 가지와 뿌리를 마구 흔드는 장면 또한 많은 생각을 불러냈다. 그런데
도 할아버지 나무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 그리고 나중에 그로 인해 스스로 깨닫게 된 모
습에서 지나간 유년기, 청년기 등이 떠올랐다. 나 또한 고집도 세고 어른들 속을 썩였던 경험이 있기 때
문이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자만하고,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던 시절도 있었음을 실
로 오랜만에 기억해낸 것이다.


비가 온다고 해서 이미 정해 놓은 꽃을 줄이고 말고 하는 게 아니란다. 네가 정해 놓은 것은 어느 경우
에나 정성을 다해 피워야 하는 게야. 비가 온다고 꽃을 안 피우면 그나마 그것마저 놓치고 말지 않겠니?

ㅡ 105쪽, 할아버지 나무.



오늘 잃은 열매 몇 개는 지금 너를 지탱하고 있는 땅속의 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ㅡ 143쪽, 할아버지 나무.



 손자나무에게 전해주는 따끔한 충고와 위로에서 함께 혼쭐이 나고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
나 갈수록 마음 한 쪽에 온기가 가득 찼다. 아직도 성숙하지 않기에 배울 것이 많으며 삶은 아무리 배워
도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꽃과 열매를 맺듯 우리네 삶도 다를 바 없
다. 견고하지 못한 뿌리는 가벼운 비바람에도 쓰러짐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나의 아람도
때를 맞춰 벌어지겠지.


 올해도 알알이 여물어 노란 은행을 내어준 부모님 집 앞의 은행나무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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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매순간 깨어있기를 갈망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에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해도 어느
순간 연기처럼 흩어지는 제 모양을 유쾌하게 들여다볼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밖에서라도 나를
눈뜨게 하는 번쩍이는 순간은 참으로 소중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매개체를 찾았다면 옆에 두고 손에
서 놓치 않음은 당연할 터. <죽비소리>는 바로 그런 책이다.

 작가가 선인들의 글에서 가려뽑은 주옥같은 우리문장 120편은 1년 열두 달의 의미를 따라 열두 장으로
나뉘어 있다. 더불어 정민이 풀어놓은 글에서 또 한 번 마음에 공명을 일으킴은 두말할 것도 없다. 처음
에는 하루 하나씩만 읽자고 마음먹었건만 어느새 여러 장을 또 되풀이해 읽는 나를 발견한다. 그만큼
마음을 다독이고 한편으로는 정신이 번쩍 나게 일침을 가하기 때문이다. 한겨울의 냉수마찰처럼 등줄
기를 시원하게 적시는 가르침을 얻어가며 날마다 고마웠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가 진귀한 보물이었다.
하나도 지나칠 수 없는 문장 속에서 딱 한문장만 올려본다.


정신은 쉬 소모되고, 세월은 금세 지나가버린다. 천지간에 가장 애석한 일은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精神易耗, 歲月易邁, 天地間最可惜, 惟此二者而已. 정신역모, 세월역매, 천지간최가석, 유차이자이이.


ㅡ 가석(可惜) 이덕무, 「 이목구심서 耳目口心書 」


총명하던 정신은 금세 흐리멍덩해지고, 세월은 귓가게 쌩 하는 소리를 남기고 지나가버린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연못가 봄풀의 꿈이 깨지도 않았는데 섬돌 앞에는 어느새 오동잎이 진
다. 잠깐 왔다 가는 세상. 그나마 멍청히 넋 놓다 지나쳐 버린다면 애석하지 않으랴. 오늘 놀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문득 내 자신을 바른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나이 들어 정신
의 긴장이 풀어지면 지겹도록 더디 가는 시간이지만, 젊은 날의 시간은 고밀도로 농축된 시간이다.
젊은 날의 시간이 아깝고, 쏜살같은 세월이 아쉽다.


ㅡ 224-225쪽.




-4340.11.06.불의 날.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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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 - 전예원세계문학선 316 셰익스피어 전집 16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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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극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인간의 욕망이 다시금 거대한 역사정치극에서 빛을 발하는 작
품.
참 서두가 길기도 하지만 <리처드 3세>를 한 줄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보아왔
던 인물들을 합쳐보아도 이렇게 간악한 등장인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4대 비극은 물론 그의 희극
에서도 만날 수 없는(희극에서 이런 인물이 있을 필요가 있겠느냐마는) 인물이 바로 리처드 3세.

여기 권력에 눈먼 글로스터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에드워드 4세의 둘째 동생으로 후에 리처드 3세로
불린다. 꼽추에 절름발이라는 신체조건을 타고난 그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천
사가 아니다. 오히려 악마에 가깝다. 첫 장의 그의 대사에서 이미 악한 계략이 드러나는데 소위 요즘말
로 꽃미남이 되어 사교계에서 주목받을 수 없기에 그는 차라리 악마가 되어 그런 쾌락을 조롱하기로 한
다. 피붙이도 매몰차게 죽여버리는 그의 뒤틀린 내면은 결국 탐욕으로 이 정치극을 완성한다. 언급되지
는 않았지만 추론해 보건대 열등감의 표출이 이렇게 나타난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가 얼마나 악역인지 몇 마디 하자면, 자신이 죽인 형의 형수에게서 조카들까지 죽이고 나서는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그 형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하는 인물이라니! 결코
사랑 때문이 아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자신에게 위험이 될 모든 요소를 말끔하게 제
거하고도 모자라 왕이라는 직함을 빼앗길 가능성까지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다. 형의 딸은 왕족의 혈통
으로 그녀와 결혼하는 자는 곧 그의 왕이라는 자리에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눈치챘지만
이쯤 되면 인간말종임을 의심할수 없다. 아예 여기서는 인간이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자고 벼루는 느낌
이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어제의 지인이 오늘의 적이 되는 형국이라 혼란스럽다. 피로 얼룩진 목숨이 많
아지자 살아남은 그의 피붙이나 미망인들은 자연 그를 저주한다. 극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마가렛 왕비
를 제외하고는 모두 두루뭉술하고 유약하다고나 할까. 글로스터의 간교한 혓바닥에 감겨 앤은 그와 결
혼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며, 형의 딸(마가렛)과 결혼할 수 있도록 설득하라는 말에 설득당하는 형수.
그리고 글로스터의 생모는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글로스터의 악행을 보며 한탄한다.

그러나 형의 살아남은 아들 도셋은 바다 건너 리치먼드 백작(후에 헨리 7세, 랭커스트 가문)에게 가고
결국 리치먼드와 같이 영국으로 진격해 온다. 글로스터(리처드 3세)는 요크 가문이었는데 이 정치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국 왕의 역대 계보를 참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5세기 후반 이 두 가문은 왕
위 계승을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였다. 그리고 승리했던 요크 가(家)의 이야기가 리처드 3세에서 진행
되는 것이다. 그리고 리치먼드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인데도 전혀 후기작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4대 비극과 비교해도 정말로 잘 만들
었다고 판단된다. 또한,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와 비슷한 느낌이나 맥베스 왕과 리처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맥베스는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이다. 강하게 밀고 나가는데 다소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
유가 된 것이었다. 옆에서 부추기는 부인의 말이라던가, 마녀들의 예언을 믿는 모습 등에서 고민하는
맥베스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리처드 3세는 그야말로 거침없이 일을 진행시킨다. 한순간의 갈등도 없
는 것이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욕설이 꽤 난무하는 이번 작품은 한편으로는 시원시원하기도
했다. 이 간사하고도 망설임 없는 악역의 매력 때문에 <맥베스>보다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인간적인 모습의 맥베스도 훌륭하지만 극의 흐름을 보면 긴장감이나 가독성 면에서 리처드 3세가 뛰어
났다. 그리고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만이 인간적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러냄과 드러내
지 않음 속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각자가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리처드의 대사를 한 개만 적어본다.


내 양심은 천 개의 혀를 갖고 있어.
그런데 그 혓바닥 하나하나가 제멋대로 말할 밑천이 있단 말이야.

ㅡ 187쪽, 5막. 리처드(글로스터).



결국 마가렛(헨리 6세의 미망인)의 분노에 찬 저주가 모두에게 내려졌다. 책장을 덮고 나서 시나브로
되뇌는 한마디. '피로 얻은 것은 피로 잃고 말 것이다.' (51쪽, 1막. 마가렛)

역시 그 많은 혓바닥의 대가 끝에는 피를 뿌린 자 피로 젖어 가버리는 것이다. 한동안 셰익스피어의 희
극의 달콤함에 젖어 있다가 <리처드 3세>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고나 할까. 요즘 사극 열풍 속에서도
느껴지지만 절대권력을 지향하는 세월은 태평하지 못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채워질 수도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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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1-06 14:33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네요.
리처드3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윌리암 세바스찬 주니어 2세> 가 아닐까요?ㅎㅎ

은비뫼 2007-11-07 01:17   좋아요 0 | URL
올해 책읽기 계획이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라서요. ^^
윌리암 세바스찬 주니어 2세. 크크크크크큭.

음유시인미스트 2012-06-19 17:43   좋아요 0 | URL
하지만 영국판 용비어천가 (..................)
본래는 십대부터 전쟁터를 전전했던 용맹한 기사이자 뛰어난 행정관이었고, 궁중의 일에도 관심이 별로 없었던 (형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도 북방에서 머무르고 궁중에는 거의 안들렀다고 함) 리처드 3세를 희대의 악한, 존속살해자, 악마나 다름없는 자로 만들어 악의 화신 리처드와 신의 사자 리치몬드의 대결 구도를 통해 튜더왕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작품.... ㅠ_ㅠ

그래서 전 리처드 3세를 응원합니다.
Loyaulté me 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