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순원의 나무. 이 단순한 한 마디는 내게 퍽 정감있게 들려온다. 마치 꾸미지 않은 청초함을 마주하듯
그렇게. 그것은 이순원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미풍이 나무와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들려
주는 이야기 속에 삶의 과정이 오롯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 밤나무가 손자 밤나무에게 들려주는 훈훈하고 교훈적인 가르침은 그저 옳고 배워야 할 이야
기만이 아닌 삶을 빗댄 우화였다. 언젠가 꼬마였을 때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처럼 꿈결 같지
만 잊을 수 없는 이야기. 모든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처럼 손자나무도 계속 뿌리를 깊이깊이 내릴 것
이다. 손자나무는 일 년의 과정을 통해 사계절을 맞으며 인내하고, 때로는 시련을 겪으며 다음을 준비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 나무의 마음을 다 알길 없는 어린나무는 가끔 투정도 부리지만 조금씩
성숙해진다. 그리고 머지않아 홀로서기를 할 것이다.

 풍년에 가득 열린 밤나무를 보듯 책을 잡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잔잔한 내용의 흐름을 따라
가면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기분이며 여러 문장에서 공감했다. 크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읽으면 누구나
알아볼 그런 힘이 이 책에는 있다. 어렵게 꾸미지 않은 글. 그래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어린나무의 위기였던 태풍이 와서 가지와 뿌리를 마구 흔드는 장면 또한 많은 생각을 불러냈다. 그런데
도 할아버지 나무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 그리고 나중에 그로 인해 스스로 깨닫게 된 모
습에서 지나간 유년기, 청년기 등이 떠올랐다. 나 또한 고집도 세고 어른들 속을 썩였던 경험이 있기 때
문이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자만하고,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던 시절도 있었음을 실
로 오랜만에 기억해낸 것이다.


비가 온다고 해서 이미 정해 놓은 꽃을 줄이고 말고 하는 게 아니란다. 네가 정해 놓은 것은 어느 경우
에나 정성을 다해 피워야 하는 게야. 비가 온다고 꽃을 안 피우면 그나마 그것마저 놓치고 말지 않겠니?

ㅡ 105쪽, 할아버지 나무.



오늘 잃은 열매 몇 개는 지금 너를 지탱하고 있는 땅속의 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ㅡ 143쪽, 할아버지 나무.



 손자나무에게 전해주는 따끔한 충고와 위로에서 함께 혼쭐이 나고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
나 갈수록 마음 한 쪽에 온기가 가득 찼다. 아직도 성숙하지 않기에 배울 것이 많으며 삶은 아무리 배워
도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꽃과 열매를 맺듯 우리네 삶도 다를 바 없
다. 견고하지 못한 뿌리는 가벼운 비바람에도 쓰러짐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나의 아람도
때를 맞춰 벌어지겠지.


 올해도 알알이 여물어 노란 은행을 내어준 부모님 집 앞의 은행나무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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