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온라인 친구 중에 드레스덴 합창단을 좋아하며 그 음악을 자주 소개해서 들려준 분이 계셨다.
천상의 선율 같은 맑은 소리와 드레스덴에 관한 이야기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드레스덴을 알게 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의 파멸은 이 책으로 다시 떠올랐으며 드레스덴 합창단의 앳되지만 순수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서글프다. 독일의 유서깊은 문화도시 드레스덴의 사라짐도 그랬으며 배후에는 전쟁이 도사리고 있었다.

『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슐라흐 토프-퓐프(도살장-5)

공포소설에나 어울리는 제목의 의미는 드레스덴에 있는 곧 도살할 돼지들의 거처로 지은 건물로 정문
에서 다섯 번째인 곳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포로로 지냈다. 충격적인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저자가 전달하는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뿐이다. 쉰들러 리스트 등의 영
화나 포로수용소에 관한 책을 통해 이미 경험한 적 있겠지만 이 책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저자는 오래도록 무명 SF작가로 지내다가 이 책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드레스덴의 경험을 꼭 책으로
쓰겠다고 다짐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완성한 것이다. 그 기간동안 심사숙고하여 독특한 형태로 들려주
게 되었다. 자신의 전공인 SF 적 요소, 시간여행과 외계인(역시 SF), 정신분열증으로 서사적으로 표현
했다. 저자는 쉽게 흥분하지도 않으며 감성적이지도 않다. 참혹한 현장을 객관적으로 또 블랙코미디의
요소까지 가미했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있어도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머리에서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슬프다. 이 책도 슬프지만 우습
기도 하다. 음매 하는 울음소리에 아기 예수 잠이 깨요. 그래도 어린 주 예수 울지 않아요. 주인공 빌리
가 이따금 소리 없이 남몰래 울어도 결코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처럼 저자는 강력한 사건의 배열을 늘
어놓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어릿광대처럼 늘어지게 한바탕 춤을 출 뿐이다. 그것도 흥에 겨워서
가 아닌 전쟁이라는 이름의 실로 연결되어 조종되는 인형처럼. 그리고 이제 살아남은 그는 그 실을 끊
고 많은 사람에게 드레스덴의 이야기를 전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친것을 이해하지 못하듯 저자는 제정신이 아닌 이 사건을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즉
이 시대 저 시대 시간여행을 하는 방식으로 이어간다. 사실 저자의 나이 불과 20대 초반에 겪은 일이니
정신적인 손상이 컸을 것이다. 제정신을 찾기에도 부족했을 시간을 극복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가공하
고 조립한 것이다. 트랄파마도어 인의 시각을 빌려 객관적인 이야기 전하기도 시도하는데 자유 의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행성은 지구뿐이더군.(105쪽)
무엇이든 결정되어 있으며 나쁜 기억보다 좋
은 기억만을 잊지 말고 살라는 그들에게는 결정되지 않은 자유 의지가 이해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유 의지를 소중히 한다. 그래서 가끔은 쓸데없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말이다.

트랄파마도어 인들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이 책에서 빈번하게 쓰인 그렇게 가는 거지
다. 주인공 빌리가 어김없이 하는 말로 예측할 수 없는 허무한 죽음을 말한다. 실은 그 허무함을 표현하
는 그만의 의식적인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종교의 아멘같은... 그만큼 많은 죽음이 책에 언급된다.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된 또 다른 형태였다.

이 책은 반전소설이다. 그러나 웃거나 울 수도 없다. 눈물이 흐르지도 않는다. 곳곳에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내용은 충분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눈물로 씻어낼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리 울어도 말이다. 가만히 귀기울여 들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리고 잊지 말라고. 이 부조리한 것들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이 방식이 낯설었지만 신선하다 생각했고 읽으며 조금은 산만하
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 작가의 특징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So it g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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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길을 묻다 - 영상아포리즘 01
김판용 지음 / 예감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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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제목에 저절로 이끌리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다.
책읽기 계획 때문에 바로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자꾸만 책장을 들춰보며 사진을 보고는 했다.
어느덧 눈에 사진이 익을 무렵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길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이 꽃입니다.

이 말을 외는 순간 책에서 향기가 밀려나와 퍼진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시인의 글이라 그런지 표현 하나하나가 마음에 포근하게 와 닿았다. 아니 그보다 그의 진정한 마음이
고스란이 녹아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시를 가슴으로 쓰던 시인의 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리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꽤 있지만 마음까지 동하게 쓰는 사람은 그보다 적다. 그의 글과 사진이 내 마음을
향기롭게 수놓았다.

자연을 찬양하거나 식물을 살펴보는 책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돌아갈 곳이기 때문이
라 그럴까. 이 책은 길에서 보고 느낀 것과 그것에서 기억해내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전한다.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적셔가며 깨닫기도 하고 반성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수레가 무겁다고 여긴다. 한때 그런 생각에 자살을 꿈꾼 적이 있었을 것이다. 죽고 싶을
만큼 잘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겠지만 살아남아 있듯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일 속에 산다. 그러니 다시 노동의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흔들리지 말자. 그곳에 모두 있으므로…….(73쪽)


완벽해지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그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스스로 옭아매었던 시간이 있었
다. 체통 같은 데서는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 철저함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었다. 후에 많이 반성했고 지
금도 노력하고 있다. 왜 그런 별 것 아닌 일이 내게는 하나의 넘어서야 할 크고 작은 산이 되었는지 모
르겠다. 잡초는 비록 밟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더 꿋꿋하게 일어서며 꽃은 화려하게 피고 나면 곧 지
기 시작하는데 말이다.

먼 그대까지의 거리를 불로 지져가는 뜨거움, 그런 사랑을 겪지 않았다면 삶이 금강석처럼 단단하지는
못할 것이다. (146쪽)


가혹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때는 왜 그런 가혹함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만큼 더 단단해졌음을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을 때의 부끄러움. 햇볕은 누구에게나 따뜻함을
준다. 벌거숭이로 나만이 태워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눈 위로 피어나는 복수초의 강인
함이 늘 새로운 하나의 잠언이다.

학교나 은사에 관한 글도 좋았다. 청초한 달개비꽃 사진, 스님과 자연은 하나의 풍경화보다 아름답고,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서 그 사진은 숨 막히게 좋았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에 아득함이 스
며들어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끼사진도 좋았다. 이끼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끼에
관심을 가진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좋아한다. 지구에서 오래 살아온 이끼의 존재성 그리고 습기를 잔뜩
머금고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것까지 좋았다. 이끼의 꽃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서 더 와 닿았다. 예쁜
꽃을 찬양하는 글은 많지만 이렇듯 작은 이끼에게까지 관심을 보인 작가의 관심이 마음에 든다. 영상아
포리즘 01의 출발이 순조롭다. 이후도 기대가 된다. 내게 이 책은 하나의 여유이며 휴식이었다. 선물하
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느낌이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끝 부분의 마무리가 조금 미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끝 페이지
의 여백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자가 있었는데 바로 수정되길 원하면서 적어본다.


-53쪽/ 홍역을 앓 난 후에야-> 홍역을 앓 난 후에야
-63쪽/ 지 온 것들은-> 지 온 것들은
-120쪽/ 소나무를 보면 힘이 는다-> 소나무를 보면 힘이 는다
-124쪽/ 오지 현상에 충실하며-> 오지 현상에 충실하며
-168쪽/ 자식, 며느리, 손자, 녀들의-> 자식, 며느리, 손자, 녀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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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3-30 12:33   좋아요 0 | URL
아, 전 바람에게 길을 묻고 싶군요.^^
그런 아픔을 겪으면 진정 금강석처럼 단단한 삶이 만들어지나요. 전 아직 물컹거리고 쉽게 흔들리는것 같네요. 그 희망함을 알기게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어쩌면 단단한 금강석보다는 말랑말랑한 갯벌의 삶을 영원히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은비뫼 2007-04-04 04:54   좋아요 0 | URL
바람에게...^^ 갑자기 밥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던가요. 그 책 생각이 납니다. 금강석과 갯벌...모두 멋지다고 생각됩니다.
 
자연을 담은 사계절 밥상 - 녹색연합이 추천하는 친환경요리 스페셜
녹색연합 엮음 / 북센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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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퇴원하신 어머니께 책 선물을 드린다 하니 요리책이면 좋겠다고 하신다.
화려한 색의 두터운 온갖 요리책부터 신세대 요리책까지 종류가 많았다.
고심 끝에 선택한 책이 바로『 자연을 담은 사계절 밥상 』이었다.
계절별 제철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식단을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계절별 요리를 소개하고
있는데다 녹색연합에서 엮어내어서 더욱 안심이 되었다.

친환경 요리를 선보이는데 그것은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이미 아는 나물 등의 음식이다.
요리법을 알고 있던 것은 다시 돌아보고, 매일 식단을 짜기 위해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
다. 제철요리는 마트나 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번거로운 요리도 없었다.
반찬이나 국종류가 아닌 간식이나 떡 같은 별미요리도 간단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 요리하는 시간이 즐
거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요리책으로의 기능을 충실히 한다고 볼 수 있다.

추가된 또 다른 내용은 좋은 기름구별 방법부터 재활용에 도움이 되는 유리병과 지렁이 등 유익한 내용
이었다. 나는 포도씨유를 선호하는데 현미유도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우유팩이 환경성이
그렇게 낮을 줄 몰랐다. 그리고 EM은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는데 EM(effective micro-organisms)이
란 유용한 미생물 군으로 친환경 유기농법에 미생물을 이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농업뿐 아니라 세탁,
목욕 등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흔히 알고 있는 베이킹 소다처럼 말이다.

특별한 날 평소에 해먹는 음식에서 탈피하고자 한다면 이 책보다는 다른 책을 권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해먹는 음식이라면 이 책은 그 역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사두고 책장에 박혀있는 요리책이 아닌 주방
에 늘 자리를 잡고 있을 쓸모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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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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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던가 지인의 블로그에서 도킨스의 짧은 글을 읽으며 그 하면 떠오르는 『 이기적 유전자』가 
생각났다. 오래전에 읽으며 어렵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했던 바로 그 책.
기회를 잡아 다시 읽어야겠다고 염두에 두었던 책이 작년에 출간 30주년을 맞아 기념판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야 진지하게 저자의 책과 만났다.

이기적이라는 제목부터 나를 잠시 멈추게 했는데 아마도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 같은 생
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기적이라는 단어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거기다 제목에 떡하니 쓰여있으니 참 막연했다. 저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책에서 오해하지 않고 받
아들이기를 원한다. 그만큼 차근하게 읽어야 하며 진화와 유전자의 관계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많은
예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41쪽) 뿐이다.

다음으로, 나를 낯설게 한 것은 생존기계라는 말이었다. 기계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생소하
며 그런 생각조차 한 적 없었기에 충격일수밖에. 유전자의 생존기계가 나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보
면 하나의 가정이라 여기고 지나면 될 일인데 난 적응이 더디었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니다. 자주 등
장하는 말에 곧 익숙해지니까. 저자는 굉장히 논리적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은 여러 복합적
인 것들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실제로 하나의 몸은 이기적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기계이다. (263쪽)

유전자는 스스로가 직접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의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119~120쪽)


또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글솜씨이다. 전문용어의 최소화로 일반인도 읽을 수 있다. 그래도 역시 어렵
고 지루하다. 번역에서 ~의 사용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잊지 않고 자주 오해하지 않기를 당
부하고 있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으니 자식들에
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252쪽)
고도 말한다.

생각지 못한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아마도 내가 동물학에 관심이 퍽 없었던 모양인 것을
이 책을 통해 거듭 확인했다. 브루스 효과(Bruce effect)만 해도 그렇다. 쥐의 경우 수컷이 분비하는
어떤 화학 물질을 임신 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현상(265쪽)이다.
여기서 암컷이 유산을 하는 경우는 이전의 배우자의 것과 다른 냄새를 맡았을 때로 한정된다. 잠재가능
한 의붓자식을 소멸시키는 이 효과는 잊을 수가 없었다. 시나브로 사람과 비교까지 되었다. 쥐와 같지
않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토록 유전
자의 생존양식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핏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되었다.

끝나가는 11장부터 더 흥미있어지는데 저자는 인간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지는 않으나 인간의 특이성에
관해 언급한다. 그가 말한 밈(meme)의 개념 그리고 다윈의 종의 기원 등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과
내가 이 책을 100%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앞으로 차근하게 더 풀어갈 과제로 남았다.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349쪽)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유전자에 반항할 수 있다. 확실히 우리는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상대를 택할 수 있
지만 그보다 감정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즉, 동물처럼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상대를 발견하더라도 100%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끌리는 감정 속에 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상대임을 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얼마든 그와 상관없이 선택하고 있다. 또 정해진 규범을 지키고자 노력
한다. 근친상간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질서이며 유전학적으로도 이득이 없다. 예로 에
드가 알랜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 』같은 소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
는 경우가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의지라 생각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동물 간의 교배를 마구 일삼는 모습이 떠올랐다. 유전자는 오랜 세월을 거쳐 살아
남아 전해지는 방법을 터득했을 텐데 그를 무시하고 인간은 창조자의 모습으로 변종을 만든다. 윤리의
식이 과학 발전과 비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럼에
도 유전자 연구는 끝없이 진행될 것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사실 이 책에서 윤리를 생각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비도덕적인 것은 사실 적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적 지식이 많았다면 더 즐겁게 이해하고 때로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다.
이 책을 통해 꽤 많은 생각을 하며 고민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누구나 생
각해 본다. 그러나 그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자 내리는 결론은 다르다. 종교 속에서 내릴 수도
있겠고 철학적인 사유로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으로 거기에 새로운 방향을 하나 더 얻었다는 것이 기
분 좋은 일이다.

진화나 생물학, 동물행동 등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유익한 책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솔직
히 이 책을 읽을 시간에 관심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영양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읽고 나면 의문이 아주
조금은 풀릴지 모르며 사고의 확장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확장된 표현형 』
으로 나를 또 유혹하고 있다. 그의 다음 책도 만나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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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야 - 전예원세계문학선 309 셰익스피어 전집 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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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야(十五夜) 밝은 둥근 달이 둥실둥실~ 이 노래처럼 흥겨운 셰익스피어의 희극이 바로 『 십이야 』
이다. 원제는 Twelfth Night로 보통 열두 번째 밤이라고도 한다.
우리에게 달이 밝은 보름(15일, 십오야)이 있다면 유럽에는 크리스마스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경을 십이야라 부르며 축제를 하는 즐거운 날이다.

즐거운 축일에는 연극이 빠질 수 없었고 이때 올려진 셰익스피어의 이 극은 십이야로 불린다.
그러니 대부분 셰익스피어 작품의 등장인물 이름은 아니다. 『 햄릿 』을 비롯한 4대 비극이 쓰여지기
직전의 작품으로 그의 희곡 18편 중 하나이다. 『 한여름밤의 꿈 』이 더 알려졌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는 두 작품 모두 그의 즐거운 희극의 최고봉에 있다. 또한 『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배경이 이탈리아
이다.


오시노 공작은 올리비아를 사랑하고 올리비아는 세자리오로 남장한 바이올라를 바이올라는 오시노 공
작을 사랑한다. 그리고 바이올라는 세바스찬과 쌍둥이인데 이로 인해 헤프닝이 벌어진다. 기본 줄거리
를 꼬아두지 않은 구성으로 희극의 흥미를 발하고 있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이 없어도 너무도
재미있으니 시간가는 줄 모른다. 물론 내 관심은 바보(광대)였지만 여기에서 비중은 미미하다. 한마디
로 십이야에서는 특별한 한 명의 주인공이 없으며 두드러지거나 돌출되지 않은 채 모두가 조화롭다.
그러니 반대로 말한다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등장인물도 없다는 말이다.

중심인물과 함께하는 또 다른 인물은 토비, 안드류, 마리아, 말볼리오이다. 이 유쾌한 사람들은 퍽 심술
맞은 악동들이다. 특히 토비라는 인물은 한바탕 벌어진 잔치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독식하는 인물이다.
마리아의 꾀로 말볼리오를 골탕먹이며 안드류를 부추기고 마리아와는 결혼하니 말이다. 이 극에서 가
장 곤혹스러움을 갖는 말볼리오는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다. 편지 한 장에 의심 없이 목숨
걸고 행동하는 순박함이 가관이다. 이 재간꾼때문에 폭소를 자아냈으니 한바탕 유쾌했다. 물론 자신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저 사람은 영리하니까 바로 흉내를 낼 수 있는 거야. 바보 역을 능숙하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해.
농을 거는 데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사람됨, 그리고 때와 장소를 분간해야 하니까.
그리고 야생 매처럼 눈앞에 날아가는 새를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솜씨가 있어야 해.
이것은 똑똑한 인간이 지혜를 부리는 것 이상으로 힘이 드는 일이야. 저 사람이 알맞게 바보 수작을
벌이지만 영리한 사람이 바보짓을 피게 되면 지혜의 타락이 아니겠는가.

ㅡ 87~88쪽, 바이올라가 바보를 생각하며 하는 대사.



내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관심을 두고 보는 역할이 바로 바보 혹은 광대이다.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
겠다. 그들의 입에서 종알종알 나오는 말을 나열하면 현자이기도 바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일침을 가하
는 날카로움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극의 재미가 가중된다. 나는 절대 될 수없는 즉, 내게 없는 부분을 가
진 절묘한 등장인물이 바보(광대)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광대의 역은 현자나 은유보다 그 본연의
역인 어릿광대에 충실하게 그려진다. 노래를 부르는데 극의 처음과 끝도 광대의 노래로 처리된다. 물론
토비를 비롯한 말볼리오 등의 인물이 있기에 광대가 전면에 나서 익살을 던지지 않아도 그들이 부려대
니 충분했을 것이다. 이렇듯 즐거운 십이야에 열린 이 극은 축제에 걸맞게 끝이 난다.

번역한 신정옥 교수는 전예원 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 42권을 오래도록 번역해 완성한 장본
인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갖고 참여했는지 능히 알 만하다. 오~ 신정옥 여사 멋지오라고 가끔
장난도 하며 책을 잡고 읽지만 아직도 읽을 책이 많다는 사실이 즐겁다. 더러 예전에 있었던 책, 읽어도
잊어버린 책, 제목만 아는 책 이 모든 셰익스피어의 책과 만날 생각에 스트레스가 풀린다. 물론 신교수
의 번역도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피 말리는 작업하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이 책만해
도 <뙈년>이란식의 번역은 이해하기에 명확하지 않았다. 민음사(최종철)나 달궁(이윤기·다희 부녀)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더라도 전예원에서 나온 신정옥 교수의 셰익스피어 전집은 훌륭하니 많은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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