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길을 묻다 - 영상아포리즘 01
김판용 지음 / 예감출판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에 저절로 이끌리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다.
책읽기 계획 때문에 바로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자꾸만 책장을 들춰보며 사진을 보고는 했다.
어느덧 눈에 사진이 익을 무렵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길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이 꽃입니다.

이 말을 외는 순간 책에서 향기가 밀려나와 퍼진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시인의 글이라 그런지 표현 하나하나가 마음에 포근하게 와 닿았다. 아니 그보다 그의 진정한 마음이
고스란이 녹아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시를 가슴으로 쓰던 시인의 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리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꽤 있지만 마음까지 동하게 쓰는 사람은 그보다 적다. 그의 글과 사진이 내 마음을
향기롭게 수놓았다.

자연을 찬양하거나 식물을 살펴보는 책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돌아갈 곳이기 때문이
라 그럴까. 이 책은 길에서 보고 느낀 것과 그것에서 기억해내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전한다.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적셔가며 깨닫기도 하고 반성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수레가 무겁다고 여긴다. 한때 그런 생각에 자살을 꿈꾼 적이 있었을 것이다. 죽고 싶을
만큼 잘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겠지만 살아남아 있듯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일 속에 산다. 그러니 다시 노동의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흔들리지 말자. 그곳에 모두 있으므로…….(73쪽)


완벽해지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그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스스로 옭아매었던 시간이 있었
다. 체통 같은 데서는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 철저함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었다. 후에 많이 반성했고 지
금도 노력하고 있다. 왜 그런 별 것 아닌 일이 내게는 하나의 넘어서야 할 크고 작은 산이 되었는지 모
르겠다. 잡초는 비록 밟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더 꿋꿋하게 일어서며 꽃은 화려하게 피고 나면 곧 지
기 시작하는데 말이다.

먼 그대까지의 거리를 불로 지져가는 뜨거움, 그런 사랑을 겪지 않았다면 삶이 금강석처럼 단단하지는
못할 것이다. (146쪽)


가혹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때는 왜 그런 가혹함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만큼 더 단단해졌음을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을 때의 부끄러움. 햇볕은 누구에게나 따뜻함을
준다. 벌거숭이로 나만이 태워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눈 위로 피어나는 복수초의 강인
함이 늘 새로운 하나의 잠언이다.

학교나 은사에 관한 글도 좋았다. 청초한 달개비꽃 사진, 스님과 자연은 하나의 풍경화보다 아름답고,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서 그 사진은 숨 막히게 좋았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에 아득함이 스
며들어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끼사진도 좋았다. 이끼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끼에
관심을 가진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좋아한다. 지구에서 오래 살아온 이끼의 존재성 그리고 습기를 잔뜩
머금고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것까지 좋았다. 이끼의 꽃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서 더 와 닿았다. 예쁜
꽃을 찬양하는 글은 많지만 이렇듯 작은 이끼에게까지 관심을 보인 작가의 관심이 마음에 든다. 영상아
포리즘 01의 출발이 순조롭다. 이후도 기대가 된다. 내게 이 책은 하나의 여유이며 휴식이었다. 선물하
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느낌이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끝 부분의 마무리가 조금 미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끝 페이지
의 여백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자가 있었는데 바로 수정되길 원하면서 적어본다.


-53쪽/ 홍역을 앓 난 후에야-> 홍역을 앓 난 후에야
-63쪽/ 지 온 것들은-> 지 온 것들은
-120쪽/ 소나무를 보면 힘이 는다-> 소나무를 보면 힘이 는다
-124쪽/ 오지 현상에 충실하며-> 오지 현상에 충실하며
-168쪽/ 자식, 며느리, 손자, 녀들의-> 자식, 며느리, 손자, 녀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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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3-30 12:33   좋아요 0 | URL
아, 전 바람에게 길을 묻고 싶군요.^^
그런 아픔을 겪으면 진정 금강석처럼 단단한 삶이 만들어지나요. 전 아직 물컹거리고 쉽게 흔들리는것 같네요. 그 희망함을 알기게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어쩌면 단단한 금강석보다는 말랑말랑한 갯벌의 삶을 영원히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은비뫼 2007-04-04 04:54   좋아요 0 | URL
바람에게...^^ 갑자기 밥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던가요. 그 책 생각이 납니다. 금강석과 갯벌...모두 멋지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