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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온라인 친구 중에 드레스덴 합창단을 좋아하며 그 음악을 자주 소개해서 들려준 분이 계셨다.
천상의 선율 같은 맑은 소리와 드레스덴에 관한 이야기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드레스덴을 알게 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의 파멸은 이 책으로 다시 떠올랐으며 드레스덴 합창단의 앳되지만 순수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서글프다. 독일의 유서깊은 문화도시 드레스덴의 사라짐도 그랬으며 배후에는 전쟁이 도사리고 있었다.
『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슐라흐 토프-퓐프(도살장-5)
공포소설에나 어울리는 제목의 의미는 드레스덴에 있는 곧 도살할 돼지들의 거처로 지은 건물로 정문
에서 다섯 번째인 곳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포로로 지냈다. 충격적인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저자가 전달하는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뿐이다. 쉰들러 리스트 등의 영
화나 포로수용소에 관한 책을 통해 이미 경험한 적 있겠지만 이 책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저자는 오래도록 무명 SF작가로 지내다가 이 책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드레스덴의 경험을 꼭 책으로
쓰겠다고 다짐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완성한 것이다. 그 기간동안 심사숙고하여 독특한 형태로 들려주
게 되었다. 자신의 전공인 SF 적 요소, 시간여행과 외계인(역시 SF), 정신분열증으로 서사적으로 표현
했다. 저자는 쉽게 흥분하지도 않으며 감성적이지도 않다. 참혹한 현장을 객관적으로 또 블랙코미디의
요소까지 가미했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있어도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머리에서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슬프다. 이 책도 슬프지만 우습
기도 하다. 음매 하는 울음소리에 아기 예수 잠이 깨요. 그래도 어린 주 예수 울지 않아요. 주인공 빌리
가 이따금 소리 없이 남몰래 울어도 결코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처럼 저자는 강력한 사건의 배열을 늘
어놓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어릿광대처럼 늘어지게 한바탕 춤을 출 뿐이다. 그것도 흥에 겨워서
가 아닌 전쟁이라는 이름의 실로 연결되어 조종되는 인형처럼. 그리고 이제 살아남은 그는 그 실을 끊
고 많은 사람에게 드레스덴의 이야기를 전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친것을 이해하지 못하듯 저자는 제정신이 아닌 이 사건을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즉
이 시대 저 시대 시간여행을 하는 방식으로 이어간다. 사실 저자의 나이 불과 20대 초반에 겪은 일이니
정신적인 손상이 컸을 것이다. 제정신을 찾기에도 부족했을 시간을 극복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가공하
고 조립한 것이다. 트랄파마도어 인의 시각을 빌려 객관적인 이야기 전하기도 시도하는데 자유 의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행성은 지구뿐이더군.(105쪽) 무엇이든 결정되어 있으며 나쁜 기억보다 좋
은 기억만을 잊지 말고 살라는 그들에게는 결정되지 않은 자유 의지가 이해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유 의지를 소중히 한다. 그래서 가끔은 쓸데없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말이다.
트랄파마도어 인들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이 책에서 빈번하게 쓰인 그렇게 가는 거지이
다. 주인공 빌리가 어김없이 하는 말로 예측할 수 없는 허무한 죽음을 말한다. 실은 그 허무함을 표현하
는 그만의 의식적인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종교의 아멘같은... 그만큼 많은 죽음이 책에 언급된다.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된 또 다른 형태였다.
이 책은 반전소설이다. 그러나 웃거나 울 수도 없다. 눈물이 흐르지도 않는다. 곳곳에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내용은 충분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눈물로 씻어낼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리 울어도 말이다. 가만히 귀기울여 들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리고 잊지 말라고. 이 부조리한 것들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이 방식이 낯설었지만 신선하다 생각했고 읽으며 조금은 산만하
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 작가의 특징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So it g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