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던가 지인의 블로그에서 도킨스의 짧은 글을 읽으며 그 하면 떠오르는 『 이기적 유전자』가 
생각났다. 오래전에 읽으며 어렵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했던 바로 그 책.
기회를 잡아 다시 읽어야겠다고 염두에 두었던 책이 작년에 출간 30주년을 맞아 기념판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야 진지하게 저자의 책과 만났다.

이기적이라는 제목부터 나를 잠시 멈추게 했는데 아마도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 같은 생
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기적이라는 단어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거기다 제목에 떡하니 쓰여있으니 참 막연했다. 저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책에서 오해하지 않고 받
아들이기를 원한다. 그만큼 차근하게 읽어야 하며 진화와 유전자의 관계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많은
예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41쪽) 뿐이다.

다음으로, 나를 낯설게 한 것은 생존기계라는 말이었다. 기계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생소하
며 그런 생각조차 한 적 없었기에 충격일수밖에. 유전자의 생존기계가 나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보
면 하나의 가정이라 여기고 지나면 될 일인데 난 적응이 더디었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니다. 자주 등
장하는 말에 곧 익숙해지니까. 저자는 굉장히 논리적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은 여러 복합적
인 것들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실제로 하나의 몸은 이기적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기계이다. (263쪽)

유전자는 스스로가 직접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의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119~120쪽)


또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글솜씨이다. 전문용어의 최소화로 일반인도 읽을 수 있다. 그래도 역시 어렵
고 지루하다. 번역에서 ~의 사용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잊지 않고 자주 오해하지 않기를 당
부하고 있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으니 자식들에
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252쪽)
고도 말한다.

생각지 못한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아마도 내가 동물학에 관심이 퍽 없었던 모양인 것을
이 책을 통해 거듭 확인했다. 브루스 효과(Bruce effect)만 해도 그렇다. 쥐의 경우 수컷이 분비하는
어떤 화학 물질을 임신 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현상(265쪽)이다.
여기서 암컷이 유산을 하는 경우는 이전의 배우자의 것과 다른 냄새를 맡았을 때로 한정된다. 잠재가능
한 의붓자식을 소멸시키는 이 효과는 잊을 수가 없었다. 시나브로 사람과 비교까지 되었다. 쥐와 같지
않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토록 유전
자의 생존양식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핏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되었다.

끝나가는 11장부터 더 흥미있어지는데 저자는 인간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지는 않으나 인간의 특이성에
관해 언급한다. 그가 말한 밈(meme)의 개념 그리고 다윈의 종의 기원 등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과
내가 이 책을 100%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앞으로 차근하게 더 풀어갈 과제로 남았다.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349쪽)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유전자에 반항할 수 있다. 확실히 우리는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상대를 택할 수 있
지만 그보다 감정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즉, 동물처럼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상대를 발견하더라도 100%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끌리는 감정 속에 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상대임을 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얼마든 그와 상관없이 선택하고 있다. 또 정해진 규범을 지키고자 노력
한다. 근친상간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질서이며 유전학적으로도 이득이 없다. 예로 에
드가 알랜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 』같은 소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
는 경우가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의지라 생각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동물 간의 교배를 마구 일삼는 모습이 떠올랐다. 유전자는 오랜 세월을 거쳐 살아
남아 전해지는 방법을 터득했을 텐데 그를 무시하고 인간은 창조자의 모습으로 변종을 만든다. 윤리의
식이 과학 발전과 비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럼에
도 유전자 연구는 끝없이 진행될 것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사실 이 책에서 윤리를 생각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비도덕적인 것은 사실 적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적 지식이 많았다면 더 즐겁게 이해하고 때로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다.
이 책을 통해 꽤 많은 생각을 하며 고민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누구나 생
각해 본다. 그러나 그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자 내리는 결론은 다르다. 종교 속에서 내릴 수도
있겠고 철학적인 사유로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으로 거기에 새로운 방향을 하나 더 얻었다는 것이 기
분 좋은 일이다.

진화나 생물학, 동물행동 등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유익한 책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솔직
히 이 책을 읽을 시간에 관심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영양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읽고 나면 의문이 아주
조금은 풀릴지 모르며 사고의 확장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확장된 표현형 』
으로 나를 또 유혹하고 있다. 그의 다음 책도 만나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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