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유전자란 무엇인가 - DNA는 이기주의자! 전파과학사 Blue Backs 블루백스 144
나카하라 히데오미. 사가와 다카시 지음, 한명수 옮김 / 전파과학사 / 199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를 읽고 나자 많은 흥미가 생겨 그 분야의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마침 추천받은 책도 많고 해서 읽을 책이 많았는데 이 책은 우연하게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고 얇아
서 제대로 설명이 된 책일지 의심이 들었으나 읽어보니 굉장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어서 웃음
도 나오고 상식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즉,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쉽게 풀어둔 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이기적 유전자 』가 조금 지루하고 어려웠다면 이 책을 먼저 보거나 나중에 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치웠을 만큼이며 동생도 이 책을 보고 흥미가 있었을 정도이다.

이 책의 장점은 내가『 이기적 유전자 』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
책 후반부에서 언급했던『 확장된 표현형 』(이 책에서는 연장된 표현형으로 번역)에 관한 내용도 살짝
소개하고 있다. 물론 정확하게 이해했거나 쉬이 넘어갔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학생 때 교과서에서 배운 다윈과 진화론, 멘델의 법칙, 미토콘드리아, 꿀벌, 각인(새가 부화 직후 처
음 접한 상대를 어미로 인정하여 추종반응을 보이는 현상) 등의 내용도 되새겨볼 수 있으며 번역 자체
가 매끄럽게 되어있어 무리 없이 읽어갈 수 있다.

저자가 정리한 도킨스의 2개 기둥은 아래와 같다. (99쪽)
(1) 유전자는 긍극적으로 자기자신을 증식시키려는 행동의 프로그램이다.
(2) 생물은 그 프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한 그릇 또는 탈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이기적 유전자 』에서 '실제로 하나의 몸은 이기적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
그램 기계이다.
(263쪽)'라고 리처드 도킨스는 말했다. 그때 내 반응은 좀 얼떨떨했는데 지금은 별거
부반응없이 인식한다. 이렇듯 이 책은 교과서(『 이기적 유전자 』)를 알기 쉽게 풀어쓴 해설서의 역
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ESS(Evolutionally Stable Strategy)인 진화적인 안정된 전략의 예로 대표되는 매-비둘기 게임도 다
시 돌아보며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남는다는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개체 그 자체보다 개체의 행
동이며 그러므로, 우열은 개체 간의 그것이 아니고 행동의 우열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태는 행동을 결
정하는 '무엇인가'에 작용한다고 해야 한다. 만일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다면 도태는
유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현상이 된다. (122쪽의 내용을 줄임.) 사람은 100년을 살지 못하므로 행동을 결
정하는 그 무엇인가가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유전자(불멸의 자기 복제라)'라는 말이다. 사
람을 비롯한 각 개체는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나 유전자는 후대에 전해져 살아남는다.

『 이기적 유전자 』의 서문에서 어떤 소녀는 그의 책을 읽고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우울해졌다
고 했는데(대략적인 내용)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러나 내 경우는 살아가면서 죽
음 등의 것을 생각해볼 때 오히려 더 담담해진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리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전해지고자 선택하는 여러 방법이 내게 어떤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하더
라도 그와 별도로 내 감정과 의지는 나만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도 알수록 따뜻해지는 학
문이다. 아주 작고 단순한 생물이나 원자에까지 관심을 두게 하는 것도 장점이다. 단지 쓸모없는 이론
을 쓸어담는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넓히는 일이다. 이 정도면 『 이기적
유전자 』를 처음 읽으며 생존 기계니 하는 말에 낯설어 적응 못하던 때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 아니겠
는가.

또 이 책에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이 변화되는 것도 짚고 넘어간다. 예를 들어 초판에서 인정하지
않고 회의적으로 표현했던 것을 후에 수정하여 인정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것을 절충과 보완이라
한다.

새로운 문화적 유전단위인 (meme)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저자는 풀어둔다. 쉽게 말해서 『 이기적
유전자 』를 읽은 한 사람의 독자의 머리(뇌)에 기억된 이론은 그 독자가 죽음과 동시에 소멸하여 버린
다. 그러나 그 이론은 그 독자의 수명길이만큼 살 수 있다. 계속 그 이론은 책으로 복제가 되고 여러 사
람에게 전해져 살아남는 것이다. (182-183의 대략적 내용)

즉, 우리가 흔히 접하는 종교 등도 밈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와 문화 등
을 전달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뇌에 속하는 밈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명징하게 이론을 세워 설명했
는지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를 읽는 것이리라. 유전자 이야기 그리고 그를 설명할 수 없
는 부분을 설명하고자 이용한 밈이라는 개념까지 말이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에 관해 맹신할 필요는 없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 밈에 이르기
까지를 정리한 시간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의문이 풀리려면 또 어떤 질문에도 만족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의 이론이 바탕이 될 수도 있으며 반
대로 획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

정말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전파과학사는 처음 접한 출판사이나 뒤에 보니 과학서를 꽤 많이 낸 출
판사였다. 일어를 번역한 과정도 매끄럽고(어쩌면 저자가 쉽게 풀어써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게 생각
외의 수확이었다. 사실 『 이기적 유전자 』를 읽고서 마음 한구석에 더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
었는데 이제 속이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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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즐거움
피에르 쌍소 외 지음, 함유선 옮김 / 호미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과 표지의 흑백사진이 시선을 잡아끈다. 깔끔한 구성... 그러고 보니 저자의 이름도 낯설지 않았다.
『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와 『 게으름의 즐거움 』제목으로도 일맥상통함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피에르 쌍소를 시작으로 정원 설계사, 철하자, 작가, 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쓴 글을 모아두었는데 몇몇 글은 깊이 있거나 신선하기도 했으나 또 몇몇은 그저 가볍게 쓴 것도 한
데 뒤엉켜있어 전체적인 느낌은 기대보다는 떨어졌다. 피에르 쌍소가 말하는 게으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게으르다는 건 느즈러질 대로 느즈러져서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하고는 다르다. (12쪽)

게으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남이다. 그러나 정신까지도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맞서는 것을 잠깐 멈추
는 식의 물러남이다...(중략)...말하자면,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13쪽)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여 있다. (14쪽)


지인 중에 게으름을 즐겁게 피우는 사람이 있다. 때로 그것을 두고 나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혹은 웃으
며 놀리도 했다. 내 성격과는 판이하여서 쉽게 적응이 어려웠는데 익숙해지니 이제 그 게으름이 그의
외투보다 중요한 신발같이 여겨지기까지 한다. 또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너그러운 마음을 갖
고 있다.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하며 수면시간도 넉넉하지 못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이다.

쉬는 날 빈둥거리는 즐거움을 누르기 좋아한다면 게으름의 즐거움을 이미 아는 사람일 것이다.
흑백사진을 보며 이들의 게으름 예찬을 들으며 아등바등 거릴 필요 없다는 나름의 위안을 했다.

어떤 책은 제목만으로도 편하게 해준다. 이 책도 그렇다. 알맹이는 덜 영근 것도 있지만 말이다.
잃어버린 시간은 우리를 키워 주는 풍요로운 시간(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이라는 말을 한참 생각
했다. 그 시간의 풍요로움은 뒤로한 채 잃어버렸다는 것만을 한탄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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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4-16 15:56   좋아요 0 | URL
미하엘 엔데가 모모에서 말한 시간과도 일맥상통하겠군요.
모모는 철부지...

은비뫼 2007-04-19 05:39   좋아요 0 | URL
철부지 모모 참 좋아했어요. ^^
 
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장 그르니에는 까다로운 사람인 거 같다. 감수성이 있으나 그에 기대지 않고 논리적인 설명을 꾀하는
스타일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그가 쓰면 확연히 달라지는데 바로 그점이 매력이다.
『 어느 개의 죽음 』처럼 에세이지만 훨씬 흥미로운 이 책은 그만큼 논리적인 동시에 마음속까지
촉촉하게 적신다. 물론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선이나 사고방식이 좋다.
어쩌면 이런 식의 대화법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에는 제목에서 요약되듯 일상에 거쳐 널려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해 적고 있다. 여행, 포도주, 향수 등
인데 이중 침묵과 독서 편이 기억이 남는다. 하나의 주제에 걸맞게 상세하고도 또박또박 들어내는 글
쓰기란 실로 많은 내공을 요한다. 이럴 때 특히나 철학자의 사고의 폭을 한 수 배우고 싶어진다. 그가
인용한 다른 작가나 철학자, 시인 등을 통해 우리도 익히 관심 있는 보들레르, 쥘 베른, 헤겔 등도 가볍
게 떠오른다.


 읽기는 쓰기를 방해한다...(중략)...
독서는 당신이 다루려는 주제에 관해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다 ㅡ 물론, 읽는 와중에 당신의 목표를 시
야에서 놓쳐버리는 일만 없다면. 그렇지만 독서는 당신으로하여금 끊임없이 샛길로 빠지게 만든다. 책
의 노예가 되지 않고 확실한 방향성을 유지한 채 주체적으로 책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우리 모두 몽테
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줄타기 곡예를 하는 것처럼 자기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요구하는 일이다.

(136쪽 독서편)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 것 같은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김승희의 시에
서 말하듯 신문의 활자가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 말이다. 순수하게 읽기보다 고시를 준비하는
것처럼 맹렬한 기세로 책을 쏘아보고 먹어치우고 다음 책을 접시에 올리는 것...실로 내가 지양하는 책
읽기의 하나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경계했는지 모른다. 작가의 저 글을 접하자 보르헤스의
말도 생각났다. 살면서 만 권의 책을 돌파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책을 수집하거나 잠시 대여한 것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다만, 뇌에 스트레스
를 주는 방법의 하나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을 포착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진지하게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다. 그를 음미하고 분석
해서 때로는 재조립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상의 여
러면은 어쩌면 정형화된 완제품처럼 누군가가 제공한 틀일지도 모른다는 착각. 아니 착각이 아닌 사실
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적당한 상상력과 의심(혹은 새로운 시도)은 언제나 필요하다.

 날마다 좋아하는 일상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은 것들이 분명히 있
다. 좋아하는 차를 마신다거나 산책하거나 글을 쓰거나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는 일까지 생각보다 많
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면 단조롭고 지겨운 삶에서 즐거움을 찾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장 그르니에의 이 책은 언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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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3 22:40   좋아요 0 | URL
음... 인용하신 부분이 굉장히 와닿습니다.
많이 읽어야 잘 쓴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게
격언처럼 녹록치는 않더군요 :) 저도 모르게 독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 한데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평안한 밤되셔요 ^^

마늘빵 2007-04-13 22:45   좋아요 0 | URL
^^ 그르니에 좋죠. 편안해지는 작가입니다.

은비뫼 2007-04-16 01:32   좋아요 0 | URL
체셔고양2// 저도 그랬습니다. 마음에 닿는 글이네요.
즐거운 책읽기 계속되시길 빌겠습니다. :)

아프락사스// 네, 마음에 드는 작가입니다. ^^*
 
고독하지 않은 홀로되기
필리프 들레름 지음, 박정오 옮김, 마르틴 들레름 그림 / 동문선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시간이 많지았았던 어느 날 이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부담없는 두께와 삽화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필리프 들레름이 글을 쓰고 일러스트 작가인 부인 마르틴 들레름
이 그림을 채웠다. 짧은 글 그리고 그림과 여백이 잘 어울렸다. 수채화를 보며 행복함
을 느끼기도 하며 다 읽고도 뒤에 나오는 차례를 재확인하며 책장을 거꾸로 넘겨도
보았다. 가끔은 모호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휴식 같은 책이다.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대의 시선. (15쪽, 영감)


고독하지 않은 홀로되기. 동시에 섬과 섬을 꿈꾸는 배가 되기.
움직이지 않은 채 공간을 차지하고, 쉼없이 나아가며 시간을 멈추게 하기.
행복하기, 실망하기, 다시 행복해 하기, 끓어오르기, 얼어붙기.
어린 시절 생각하기. 책읽기. (28쪽, 자유)



언제부터인가 따뜻한 책만 읽으면 예반의 『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가 자꾸만
떠오른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하이쿠 같은 짧은 글로 생각을 표현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더구나 물음을 던지거나 따뜻한 말은 더 힘들다.

마지막 그림의 머플러를 두른 수채화 속 인물에서 자연스레 『 어린왕자 』가 떠올
랐다. 어린왕자가 별로 떠난 후 텅 빈 사막의 풍경이 자꾸만 살아났다. 예쁜 책이다.
내 마음도 이 책처럼 예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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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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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글에 심취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책은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 섬 』이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회가 새롭다. 철학자이니 얼마나 사유의 폭이 넓고 명징하게 표현해내었을지는 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중 이 책은 내가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ㅡ나는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의 경험이 쉽게 말해
서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태도가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괜찮다.

개는 물론 고양이도 오래 정을 붙이고 길러본 경험이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호흡기가 약하기 때문이기
도 하고 민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어릴 때는 애완동물과 함께 자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부모님께 떼를 쓰고는 했었다. 그런 내가 기르던 개 타이오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며 그리는 작가의 시선
은 새로움이었다. 작가가 개와 여행하던 기억을 더듬을 때는 여행을 개와 간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작은 떨림이었다. 그렇더라도 눈가가 젖은 개의 눈빛과 마주친 경험은 있었기에 이해하
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읽으며 하나의 소중한 존재의 부재를 의식적으로
마주하는 사이에 마치 내가 기른 개의 죽음을 맞이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감히 고집할 것인가? 마찬가지의 감정? 오히려 우리가 개만큼 느끼지 못한다. 얽히고 설킨 감정 때문에
우리는 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쪽)



개의 죽음을 슬퍼하며 개와의 추억을 돌아보고 인간중심적 사고를 비난하며 철학자답게 많은 의문을
던지는데 책도 얇고 글도 짧지만 생각은 길게 요하고 있다. 가끔은 삐딱하다 싶게 간단명료하지만 핵심
을 찌른다. 그리고 동시에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하나의 소설이라기보다 개에 대한 작가의 회상을 메모
한 에세이로 봐야 한다. 재미보다 작가의 글이 던지는 물음이 좋았던 책이다.


질병, 노화, 죽음에 대해 종교와 철학이 제시한 해결책은 <결국> 하나뿐이다. 즉, 환자<처럼>, 노인
<처럼>, 시체<처럼> 살라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 즐거
움을 금할 것, 젊은 시절의 쾌락에 환멸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인처럼 굴 것, 삶이 주는 상처에서 벗어나
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송장처럼 지낼 것! (42쪽)



삶을 끔찍이 사랑하기에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는 장 그르니에의 말들은 내게 자꾸만 질문을 툭-툭-하
고 던졌다. 글 쓰는 일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가벼워진 적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도 작가의 말에 동감이
갔다. 물론 그래서 이 책도 만들어졌고 작가는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하나의 치유과정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며 모두 제 각각의 방법으로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혹은 책으로 접하면 내 영혼까지 달래지며 성장하
게 된다.

나는 동물과의 조우가 없었지만 어쩌면 식물이라면 이미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식물을 그리
면 마음이 편하고 좋다. 작가가 글을 쓰듯이 말이다. 또 장 그르니에를 만났다는 것도 내게 축복이라 생
각한다. 어느 개의 죽음에서 누구나의 죽음에 대한 하나의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가가 기
르던 개의 죽음은 내 죽음과 주변의 죽음으로 연결되었다. 죽음이 섬뜩한 것이 아닌 거쳐야 할 하나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시간...부르지 않아도 오고 붙잡아도 간다. 죽음도 바로 그렇다.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중략)...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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