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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ㅣ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글에 심취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책은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 섬 』이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회가 새롭다. 철학자이니 얼마나 사유의 폭이 넓고 명징하게 표현해내었을지는 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중 이 책은 내가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ㅡ나는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의 경험이 쉽게 말해
서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태도가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괜찮다.
개는 물론 고양이도 오래 정을 붙이고 길러본 경험이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호흡기가 약하기 때문이기
도 하고 민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어릴 때는 애완동물과 함께 자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부모님께 떼를 쓰고는 했었다. 그런 내가 기르던 개 타이오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며 그리는 작가의 시선
은 새로움이었다. 작가가 개와 여행하던 기억을 더듬을 때는 여행을 개와 간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작은 떨림이었다. 그렇더라도 눈가가 젖은 개의 눈빛과 마주친 경험은 있었기에 이해하
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읽으며 하나의 소중한 존재의 부재를 의식적으로
마주하는 사이에 마치 내가 기른 개의 죽음을 맞이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감히 고집할 것인가? 마찬가지의 감정? 오히려 우리가 개만큼 느끼지 못한다. 얽히고 설킨 감정 때문에
우리는 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쪽)
개의 죽음을 슬퍼하며 개와의 추억을 돌아보고 인간중심적 사고를 비난하며 철학자답게 많은 의문을
던지는데 책도 얇고 글도 짧지만 생각은 길게 요하고 있다. 가끔은 삐딱하다 싶게 간단명료하지만 핵심
을 찌른다. 그리고 동시에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하나의 소설이라기보다 개에 대한 작가의 회상을 메모
한 에세이로 봐야 한다. 재미보다 작가의 글이 던지는 물음이 좋았던 책이다.
질병, 노화, 죽음에 대해 종교와 철학이 제시한 해결책은 <결국> 하나뿐이다. 즉, 환자<처럼>, 노인
<처럼>, 시체<처럼> 살라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 즐거
움을 금할 것, 젊은 시절의 쾌락에 환멸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인처럼 굴 것, 삶이 주는 상처에서 벗어나
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송장처럼 지낼 것! (42쪽)
삶을 끔찍이 사랑하기에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는 장 그르니에의 말들은 내게 자꾸만 질문을 툭-툭-하
고 던졌다. 글 쓰는 일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가벼워진 적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도 작가의 말에 동감이
갔다. 물론 그래서 이 책도 만들어졌고 작가는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하나의 치유과정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며 모두 제 각각의 방법으로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혹은 책으로 접하면 내 영혼까지 달래지며 성장하
게 된다.
나는 동물과의 조우가 없었지만 어쩌면 식물이라면 이미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식물을 그리
면 마음이 편하고 좋다. 작가가 글을 쓰듯이 말이다. 또 장 그르니에를 만났다는 것도 내게 축복이라 생
각한다. 어느 개의 죽음에서 누구나의 죽음에 대한 하나의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가가 기
르던 개의 죽음은 내 죽음과 주변의 죽음으로 연결되었다. 죽음이 섬뜩한 것이 아닌 거쳐야 할 하나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시간...부르지 않아도 오고 붙잡아도 간다. 죽음도 바로 그렇다.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중략)...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