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장 그르니에는 까다로운 사람인 거 같다. 감수성이 있으나 그에 기대지 않고 논리적인 설명을 꾀하는
스타일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그가 쓰면 확연히 달라지는데 바로 그점이 매력이다.
『 어느 개의 죽음 』처럼 에세이지만 훨씬 흥미로운 이 책은 그만큼 논리적인 동시에 마음속까지
촉촉하게 적신다. 물론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선이나 사고방식이 좋다.
어쩌면 이런 식의 대화법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에는 제목에서 요약되듯 일상에 거쳐 널려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해 적고 있다. 여행, 포도주, 향수 등
인데 이중 침묵과 독서 편이 기억이 남는다. 하나의 주제에 걸맞게 상세하고도 또박또박 들어내는 글
쓰기란 실로 많은 내공을 요한다. 이럴 때 특히나 철학자의 사고의 폭을 한 수 배우고 싶어진다. 그가
인용한 다른 작가나 철학자, 시인 등을 통해 우리도 익히 관심 있는 보들레르, 쥘 베른, 헤겔 등도 가볍
게 떠오른다.


 읽기는 쓰기를 방해한다...(중략)...
독서는 당신이 다루려는 주제에 관해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다 ㅡ 물론, 읽는 와중에 당신의 목표를 시
야에서 놓쳐버리는 일만 없다면. 그렇지만 독서는 당신으로하여금 끊임없이 샛길로 빠지게 만든다. 책
의 노예가 되지 않고 확실한 방향성을 유지한 채 주체적으로 책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우리 모두 몽테
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줄타기 곡예를 하는 것처럼 자기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요구하는 일이다.

(136쪽 독서편)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 것 같은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김승희의 시에
서 말하듯 신문의 활자가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 말이다. 순수하게 읽기보다 고시를 준비하는
것처럼 맹렬한 기세로 책을 쏘아보고 먹어치우고 다음 책을 접시에 올리는 것...실로 내가 지양하는 책
읽기의 하나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경계했는지 모른다. 작가의 저 글을 접하자 보르헤스의
말도 생각났다. 살면서 만 권의 책을 돌파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책을 수집하거나 잠시 대여한 것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다만, 뇌에 스트레스
를 주는 방법의 하나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을 포착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진지하게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다. 그를 음미하고 분석
해서 때로는 재조립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상의 여
러면은 어쩌면 정형화된 완제품처럼 누군가가 제공한 틀일지도 모른다는 착각. 아니 착각이 아닌 사실
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적당한 상상력과 의심(혹은 새로운 시도)은 언제나 필요하다.

 날마다 좋아하는 일상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은 것들이 분명히 있
다. 좋아하는 차를 마신다거나 산책하거나 글을 쓰거나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는 일까지 생각보다 많
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면 단조롭고 지겨운 삶에서 즐거움을 찾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장 그르니에의 이 책은 언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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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3 22:40   좋아요 0 | URL
음... 인용하신 부분이 굉장히 와닿습니다.
많이 읽어야 잘 쓴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게
격언처럼 녹록치는 않더군요 :) 저도 모르게 독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 한데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평안한 밤되셔요 ^^

마늘빵 2007-04-13 22:45   좋아요 0 | URL
^^ 그르니에 좋죠. 편안해지는 작가입니다.

은비뫼 2007-04-16 01:32   좋아요 0 | URL
체셔고양2// 저도 그랬습니다. 마음에 닿는 글이네요.
즐거운 책읽기 계속되시길 빌겠습니다. :)

아프락사스// 네, 마음에 드는 작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