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영감 한길 헤르메스 7
장 그르니에 지음, 함유선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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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섬>에서 이어지는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에 대한 느낌. 지중해에서 태어난 시인 폴 발레리의 산문 제
목을 그대로 차용한 제목으로 이미 여러 번 말한 폴 발레리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저자만의 감성으로
엮인 아름다운 책이다.

지중해에 관심 있는 내게는 제목부터 느낌이 좋은 낯설지 않은 책이었다. 고백하지만 사실 <섬>도 그
렇고 이 책도 지독하게 숨 막히는 여름에 읽어야 한다고 늘 염두에 두지만 막상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
이면 멈출 수 없이 책으로 빨려든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도 이탈리아이며 지중해도 당연 그렇다. 생텍
쥐베리가 지중해의 어느 상공에서 야간비행 중 사라졌음을 알았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중해
의 어딘가로 잠식한 것이라고... 꿈에 이국의 바다가 펼쳐지면 여지없이 가본 적도 없는 지중해다. 이렇
듯 내게도 알 수 없는 아니 표현할 수도 없는 영감을 제공하는 미지의 장소가 지중해다.


단 하나의 그림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어린애처럼 무한을 암시하는 어떤 간결함, 지중해에 대한
정의는 이런 것이 아닐까? (65쪽, 북아프리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도 말한 지중해라는 것 때문이며 다음은 당연히 장 그르니에의 책이기 때
문이다. 그의 글은 마음을 후벼 판다. 비판은 일침을 가하기도 하며 때로 그 감수성에 절감하기도 한다.
글을 잘 쓰거나 마음에 닿는 글의 공통점은 글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를 쓴 저자의 통찰력이 돋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장 그르니에도 그렇다.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린 지식들이 오히려 우리의 지식을 막아놓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무익한
것을 배우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식들을 알게 된다. 삶을 지속하는 존재를 마음속에 간직
하고, 자신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24쪽, 북아프리카: 산타크루스.)



도대체 얼마만큼 마음의 창이 열려야 그런 예리함이 자연스레 스며 나올지 알 수 없다. 아니, 사실 부럽
다. 나는 내 생각을 얼마나 표현해내고 있는지도 모르며 한계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
이 책을 읽고 느끼며 감지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삶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100쪽,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세비아까지.)



위의 글은 앞부분에도 언급된다. 앙리 마르틴의 [노동]이라는 그림과 쓰인 이 말에 잠시 웃을 수 있었
던 것은 이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위안이 되었기 때문일까.


이탈리아 로마의 평원에서 비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둘 때도 흥미로웠다. 사춘기 때 스티븐슨의 진혼
곡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별빛 아름다운 넓은 하늘 아래 무덤 파고 눕히라는 그 말이 의미심장
하게 들렸다. 즐거이 살다 즐거이 갔으며 결국 돌아오라는 그 말이... 내 무덤의 비문에는 어떤 말을 새
기면 좋을지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은 무덤을 만들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비문이 하나의
문학은 아니지만 또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것이지만 그 시절의 내게는 그것이 하나의 낭만으로 유년시
절의 한페이지를 채웠다.

삶을 요약할 수 없듯 내 작은 삶조차도 비문 하나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면 주저 없
이 비문을 읽으며 한적한 오후를 보내고자 시간을 꼭 잡고 싶다. 고등학생 때처럼 학교 뒷동산에 올라
가 이름없는 무덤을 지나며 말없이 명상하는 시간이라도 갖는다면 좋겠지만 더는 그러지 않는 나를 발
견한다. 감성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만일 이 지구상에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감성이다. 과거 기계에 품은 그
경외감, 그로 인해 야기된 수많은 사람들의 예속(기계를 몰랐던 사람들이 드디어 기계에 대해 경탄하기
에 이르렀다). 차라리 인본주의는 질병과 같은 그 예속과 경탄에서 벗어나게 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문
법을 배우고 사전을 열심히 찾아가며 외우고 해독한 그리스어나 라틴어처럼, 학교에서 배운 인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을 새로이 부활시킬 수 있는
지중해 사람들의 지혜로움과 만나는 일이다. (133쪽, 프로방스: 들판의 풀.)



모든 관계 속에 인연이 있고 만나는 시기의 차이가 있다는 과정하에 나와 장 그르니에의 인연. 그리고
앞으로 만날 그 어떤 인연이 빠르거나 혹은 느리게 다가선다 해도 이렇듯 오롯하게 마음의 교감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지 모르겠다. 지중해에 가면 나를 앞서간 이들의 지중해적 영감을 느껴보고자 한다.
그래서 소중할 수밖에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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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하세요 - 전예원세계문학선 306 셰익스피어 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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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는 제목만 보면 수동적인 여자가 복종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그의 작품에서 실로 당차고 적극적인 여자가 주인공이다. 바로 로잘린드인
데 그녀는 <십이야(Twelfth Night)>의 남장여자 바이올라처럼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 주변을 맴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바이올라 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로잘린드가 남장한 채 올랜도에게 사랑을 시험하며 여자에 대해 폄하하며 비판할 때(4막)나 올랜도와
로잘린드, 피비와 실비어스의 되풀이되는 말(5막)에서 이들의 말투나 대화를 들으면 웃음이 나올 지경
이다. 셰익스피어는 언어유희를 즐겼지만 이 극에서는 그보다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실로 깃털처럼 가벼운 말장난이며 특히, 로잘린드는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이 수다스러움
이 로잘린드의 치밀한 성격을 말해줄 수도 있겠다.


오, 로잘린드여! 이 나무들을 수첩삼아 그 껍질에다 내 심정을 새겨 놓으리다. 그러면 이 숲에 사는 모
든 사람의 눈길이 그대의 미덕을 도처에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달려라 달려 올랜도여, 그 아름답
고 정숙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을 모든 나무에 새기자. (퇴장) ㅡ 78쪽, 올랜도.



첫눈에 서로 반한 로잘린드와 올랜도. 그리고 남장한 로잘린드와 올랜도. 이들 사랑의 줄다리기가 재미
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아덴 숲이다. 이 숲은 왕궁과 떨어진 쫓겨난 전 공작과 따로나선 귀족들이 살
아가는 숲으로 하나의 유토피아다. 마치 로빈후드가 숲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느때보
다 풍요한 마음을 갖고 생활하는 이들의 아덴 숲에 등장인물들이 모이면서 이야기는 활기를 띠고 결국
이 숲에서 아름다운 인연들이 맺어진다.


보다시피 불행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오. 이 넓디넓은 세계라는 무대에선 우리가 지금 연기하고 있는 장
면보다 더 비참한 연극이 행해지고 있는 거요. ㅡ 71쪽, 전 공작.


이 세상 모두가 하나의 무대요, ㅡ 71쪽, 제이퀴즈.


인생은 무대라는 개념은 셰익스피어 극에서 자주 등장하며 극과 현실을 두루 오간다. 이 무대에서 막이
내리기까지의 시간을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삶이 하나의 조롱이나 신의 인형놀이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무대라는 생각 말이다.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출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여기에서 광대 터취스턴은 다른 극에서 보이는 광대와도 조금 다르다. 정이 가는 타입은 아니나 귀엽기
그지없는 악동이다. 전 공작은 광대의 정의를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 바보인 척하며 그 그늘에 숨어
마음놓고 재담의 화살을 쏘아대는 거겠지.'(149쪽) 셰익스피어 극 대부분의 광대가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내 관심을 끈 것은 광대 터취스턴보다 제이퀴즈였다. 방랑벽에 우울증이 있으며 냉소적이며 비
판적인 그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우울증 로롯 마빈을 떠오르게 한다.
광대도 그렇고 제이퀴즈도 그렇고 둘 다 어딘가 나사가 빠졌다고 할까. 비어 있는 정신 속에 섬광처럼 스
쳐가는 그들의 재치가 마음에 든다.

이 희극은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희극처럼 단시간에 읽어낼 수 있으며 가볍게 지나칠 수 있다. 어쩌면
유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잘린드가 끝맺음 말에 전하듯 각자 마음에 품은 사랑에 초점을 두고 이 극을
즐기면 유쾌한 애정극으로 느껴질 것이다. 같은 해에 쓰인 <십이야>처럼 말이다.

제목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대한 의미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내식으로 정리하자면 각기
원하는 바를 이루라는 행운의 외침이라 생각한다. 가볍게 즐기라고 썼으니 그렇게 이해하고자 한다.

뜻대로 하세요!
당신이 진정 원하는 데로!!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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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신비 - 진화의 비밀을 움켜 쥔 손의 역사
존 네이피어 지음, 이민아 옮김 / 지호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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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신비는 미술과목을 통해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곡선과 균형까지 모두가 신기했다. 거기서 나아
아가 인체의 실질적인 구성을 살피는 쪽은 의학, 과학 등의 분야면 깊이있게 알 수 있다. 내 몸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는 손이기에 또 책표지의 아름다운 손 사진(알프레드 스타글리츠의 작품, 조지아
오키프)에도 관심이 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뒤러의 작품 등 손에 관한 사진, 그림 등이 조금 실려있다.

일단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명칭을 알았다.
엄지 두덩: 손목에서 엄지손가락 아래쪽을 이루는 근육과 불룩한 부분.
새끼 두덩: 새끼손가락 쪽의 불록한 근육 부분.

두덩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뭐 눈두덩이라는 말도 그다지 많이 쓰지 않으니 거의 없
다고 보면 된다. 손바닥을 들여다 보며 엄지 두덩과 새끼 두덩을 자꾸만 쳐다보았다. 특히 엄지두덩은
불룩한 곡선이 귀엽다. 또 읽으며 새삼 엄지손가락의 소중함을 느꼈다. 엄지가 없다면 과연 어떨까 상
상만해도 몸서리쳐진다. 엄지가 없이는 손가락의 수가 늘어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엄지구조가 아닌 손
가락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적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도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으며 다소 지루했다. 그렇더라도 여러 가지를 배
웠고 책을 읽으며 손을 이렇게 자주 쳐다본 적은 없었으니 이 정도면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잠시 손
을 들여다 본다. 어떤 모양이며 색은 어떤지 푸르스름한 정맥이 보이고 구멍도 있고 감촉도 느껴보고
자세히 보니 예전에 링거를 꽂았던 자리까지 보인다. 손은 두뇌의 거울(43쪽)이라는데 내 두뇌는 어떤
지... 또 손금을 쳐다보긴 했어도 손바닥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 본적은 처음이다.

그래도 지문은 친구들끼리 가끔 이야기했기에 다시 한 번 보았다. 나는 2개만 말굽형이고 나머지는
아치형의 지문을 가졌다. 그래서 친구들이 특이한 지문이라고 늘 말하고는 했는데 아치형 지문은 전체
인구의 약 0.5퍼센트로 드문 지문이라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난 친구들처럼 달팽이형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여기서 말굽형이란 가장 흔한 지문으로 보통 갖고 있는 무늬이며 달팽이형도 흔한 동그란
모양이다. 인간복제가 가능하더라도 지문은 복제할 수 없으며 일란성 쌍둥이라도 지문은 다르다.

오랑우탄과는 절대 줄다리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절대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인데 이유는 손바닥이
손가락보다 길어서 이 두개가 만나는 지점의 피부가 접히는 부분 속으로 손가락 끝이 접혀 들어가며 관
절이 접히면서 물린 손가락 끝이 밀려들어가 이중 잠금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손에 관한 여러 이야
기를 풀어가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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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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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가 아끼는 책으로 찬탄을 마지않은 또 그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이 책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카뮈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많은 이의 마음에 큰 파장을 전한다.

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독이다. 수많은 파도가 드나들지만 결코 머무르지 않는
미지의 신전. 남해안에 펼쳐진 다도해를 바라보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평화이다. 그 적막함이 너무도 깊
고 고요해서 공(空)의 상태로 내면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길이 순식간에 생겨난다. 그리고는 그 길을 따
라 내면의 섬을 어느덧 떠도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어느 해 힘든 일을 겪던 때 일부러 집과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직장을 잡았다. 길을 나서는 날 차창 밖
으로 빗물이 연방 배웅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고립이었다. 매
일 일도 많았지만 자진해서 늦게까지 일을 하다 퇴근하기 일쑤였으며 집에 와서의 유일한 취미는 내 안
의 섬을 가꾸는 일뿐이었다. 내게 너무도 큰방의 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 섬에 물을 주었고 그러다 보
니 어느덧 나무 한 그루가 자랐다. 가끔 삶의 회의감이 버겁게 덮치는 날이면 나를 대신해 초록 잎을 흔
들며 울기도 하는 나무였다. 섬은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지만 부유(浮遊)하는 하나의 절망이기도 했다.
그때처럼 침잠한 일이 그 후로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섬하면 그때 생각이 난다.

존재의 근원은 이다지도 뿌리째 흔들며 의미를 찾으라 하기도 하고 또 운 좋으면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하나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장 그르니에의 가장 유명한 책인 <섬>에는 그의 진가가 들어 있다. 그는 어쩌면 이토록 얇은 책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지 모른다. 카뮈의 추천서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온통 살랑거리게 한 책이다. 물론
뒷부분의 인도 이야기는 몇 번 읽어도 그냥 읽고 넘어간다. 사실 인도는 예전에 너무도 가고 싶은 나라
였으나 책으로만 만난 인도지만 더는 흥미로운 나라가 아니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물루의 죽음
이야기는 <어느 개의 죽음>처럼 동물과 저자의 일상이 그려져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그르니에
의 글이 좋다. 유려하다는 말은 그에게 어울린다. 거침없는 그의 정신이 깃든 하나하나의 말은 친근하
기까지 하다. 그래서 장 그르니에를, 이 책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되는 것일까? 난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
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 isole> ㅡ 섬 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
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123~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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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4-24 09:33   좋아요 0 | URL
장 그리니에, 그의 책을 대학교때 도서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네요. 섬,섬,섬...풀잎이라 말하면 휘파람 소리가 난다지만 섬이라 말하면 왠지 멜랑코리한 고독이 느껴지지 않나요?ㅎㅎ

은비뫼 2007-04-28 02:59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잉크냄새님. ^^*
섬...특히나 섬의 받침인 'ㅁ'의 폐쇄성이 섬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풋.
 
한 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 모음집
류시화 옮겨엮음 / 이레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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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와 만나지 몇 년이 지났다.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한 때면 이 책을 꺼내
들고 주저 없이 넘긴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짧은 글은 내게 긴ㅡ아니 기나긴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ㅡ 물음을 주고 마음을 다독인다.

일본의 하이쿠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애송 되며 쓰인다. 심지어 자국이 아닌 서양에서도 사랑받
아 쓰일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몇 년 전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두줄시가 있다
는 사실이다. 아직 하이쿠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두줄시를 알리고자 노력하며 쓰는 두줄시인들
이 있다. 하이쿠나 두줄시나 맥락은 같다.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핵심이 들었으며 때론 유쾌하며 또 때
로는 감동을 준다. 장황한 글보다 어쩌면 더 쓰기 어려운 글이 짧은 글일 텐데 그 표현의 한계는 무한하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 이 하이쿠는 가끔 떠올릴 만큼 아낀다.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이싸>


->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절감하는 바이다. 꽃에 벌이 모이듯 똥에는 파리가 들끓게 마련이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바쇼>


-> 여름이면 시끄럽게 울어 되는 매미가 싫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며 그
순간을 힘껏 살다 간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어 알았다. 그래서 이젠 여름의 매미 소리가 좋아졌다. 나도
텅빌 만큼 실컷 울며 살아가야지...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소세키>


->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
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것은 여유가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여물어가며 감당하지 못할 일은 어쩌면 주어
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참 편안하게 살아온 느낌이다. 글쎄...



생선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려 보인다 <바쇼>


-> 예전에는 지나쳤는데 이번에 가장 인상적인 하이쿠. 내 잇몸이 더 시렸던 하이쿠.
바쇼 저 양반도 그렇게 잇몸이, 인생이 시렸었구나. 그랬어...



옮기고 보니 바쇼의 하이쿠가 많지만 사실 대부분이 마음에 든다.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을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보이고 관찰했는데, 남루한 방 한칸에서 같이 기거하는
미물까지도 벗처럼 느낀 그들의 삶이 참으로 값져 보인다. 벼룩, 뻐꾸기, 허수아비를 비롯한 자연을 돌
아보는 시선에 하이쿠 시인의 마음이 오롯하게 들어 있어 내게 전이되는 느낌. 가난함을 초라하게 생각
하지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절절하게 마주하여 포착한 글은 한 편의 생생한 사진과 닮았다. 만약 나였
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그래서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진정 행복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겠지. 어느덧 이
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절로 내 영혼도 풍요해진다.

이 책을 위해 수천 편의 하이쿠를 읽고 그 속에서 추려낸 류시화의 말이 와 닿았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시인이 할 일은 그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 아
니라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류시화 본인의 하이쿠로 끝을 맺는다.

봄이 피는 꽃들은
겨울 눈꽃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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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4-19 08:59   좋아요 0 | URL
<가을에 우는 매미 / 그 목소리에 / 죽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 - 소세키-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 - 바쇼-
<여름 매미 / 나무를 꼭 껴안으며 / 마지막 울음을 운다 > - 이싸 -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쓰라려,쓰라려 > - 이싸 -

---> 하이쿠의 많은 소재중 유독 매미가 많더군요. 저도 이책 읽었는데 느낌까지 곁들여 읽으니 또 새롭네요. 참, 알라딘에 두줄시 협회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아이디가 <진주> 이신 분입니다.

은비뫼 2007-04-23 00:57   좋아요 0 | URL
적어주신 매미 관련 하이쿠 기억에 남습니다. ^^
두줄시 협회 활동하시는 분이 알라딘에 계시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꼭 찾아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