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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섬 공방전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평점 :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두 번째 책 「로도스 섬 공방전」을 읽기 전에 로도스 섬을 먼저 찾아보았다. 로도스의 어원은 장미꽃 피는 섬이라는 낭만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와 환경을 가진 로도스 섬은 지중해의 낙원 같은 곳으로 지금도 남아있는 로도스인들의 예술작품은 그들의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지중해에 간다면 이스탄불의 소피아 대성당뿐 아니라 로도스 섬도 보고 싶다.
오스만투르크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다르게 이 작은 로도스 섬을 침략한 이유는 그곳의 성 요한 기사단을 치기 위함이었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메메드 2세는 수도를 아예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1480년 로도스 섬도 정복하고자 10만 대군을 파견했으나 성 요한 기사단이 버텨냈고 운 좋게도 투르크 병사들은 역병이 도는 등의 이유도 있었다. 이후 1520년 쉴레이만 1세가 로도스를 아예 접수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
이슬람 세계에 맞서는 기독교 세계의 최전선 기지 로도스 섬은 에게 해(다도해라는 의미)의 작은 섬일 뿐이었다. 수도복을 걸친 성 요한 기사단은 20대 귀족 출신 수도사로 전투시에나 갑옷을 착용했다. 쉴레이만 1세가 즉위 즉시 로도스 섬을 제압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당시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를 비롯한 대정복 사업이 1517년 일단락되었으나 그 와중에도 눈엣가시로 남은 서방 세계의 상징을 부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투르그 인들이 그쪽으로 가면 성 요한 기사단이 해적질을 했다고 한다. 대국 오스만투르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물론 로도스 섬 말고도 베네치아 공화국 소유의 크레타, 키프로스도 있었지만 해군력이 약한 투르크가 해군력 강한 그들에게 무모하게 덤비지는 않는다.
책 프롤로그의 이탈리어어로 '카데토'(cadetto)는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에서 생겨나 중세 이후 전 유럽에 퍼진 말. 봉건 귀족의 둘째 이하 아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중세 봉제 아래서 지위나 재산은 모두 장남에게 상속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둘째 이하 아들은 성직이나 군사 방면에서 자수성가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귀족의 둘째 이하 자제라는 본래 뜻은 사라지고 군사적인 면만이 남아서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생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어 cardet, 영어 cadet." (프롤로그 17쪽)
저자는 로도스 섬의 성 요한 기사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교양 역사서에 저자만의 감성도 살짝 들어있다. 성 요한 기사단과 맞설 세력은 터키 술탄의 친위부대 예니체리 군단으로 역시 20대로 절대충성을 했다고 한다. 수도사처럼 결혼, 자기 소유의 집 등이 금지되었고 오직 알라신과 술탄을 따른다고 한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은 언제나 이렇듯 젊은이들이었다. 로도스 섬의 성 요한 기사단으로 대부분이 카데토로 20대 젊은이들. 성 요한 기사단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 28세. 잠바스타 오르시니 25세. 안토니오 델 카레토 20세. 그들과 대적하는 투르크 용사들은 터키 술탄의 친위부대인 예니체리 군단. 당시 술탄 쉴레이만 1세 28세. 이 꽃다운 20대들의 로도스 섬 공방전.
"교황청의 주인이 누가 되든 간에 2년 전 루터의 파문 뒤로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는 루터파에 관한 대책이 지상 과제로 간주될테니까요."(안토니오)
"그래. 로마 교황으로서는 만사를 제쳐놓더라도 이것만은 끝을 봐야 되는 문제야. 프로테스탄트라는 루터 일파의 세력이 아직 침투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성직자건 평신도건 할 것 없이 동요하고 있어. 나같이 맨날 빈정대기만 하는 놈도 일단 교황 자리에 앉으면 이 문제만은 피할 수 없어. 이교도 투르크한테 어떻게 대처한다 하는 것은 나중 문제지.
더구나 우리는 유럽 내 세력들이 치고받는 재편기에 전투를 벌여야 해. 운도 정말 없지. 아라곤과 카스티야 군주가 결혼해서 정식으로 통합된 에스파냐, 유럽에서 중앙집권화가 제일 잘된 프랑스, 대륙 진출에 실패한 덕에 오히려 국내 통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영국, 명목상 왕 위의 왕이라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선거후들이 다들 힘이 강해서 중앙집권화에 뒤처진 독일, 그리고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교황청, 나폴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나라들이 균형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균형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기묘한 상태를 유지했지.
그게 조금씩 변하더니 이제 결정적으로 옛날하고는 달라지기 시작했어. 역시 동쪽의 투르크가 자극한 거라고 봐야겠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비잔틴제국도 없어지고, 대신에 투르크가 그 자리에 차고앉아서 옛 비잔틴제국 영토의 '계승'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게 됐지. 투르크는 이 대의명분을 최대한 활용해가면서 북으로는 빈을 압박하고 동으로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서 페르시아 땅까지 갔고, 남쪽으로 홍해를 포위했고, 서쪽으로는 이집트부터 알제리까지 북아프리카 전체를 영유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으니까. (…중략…) 나폴리 이남은 에스파냐령이 되어버렸지만 밀라노 중심의 북이탈리아 지방 영유권을 두고 두 나라가 다투고 있으니까. 피렌체공화국도 프랑스 밑에 들어가서 형식적인 독립만 유지하는 상태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이탈리아에 남은 독립국이라곤 이제 실질적으로 베네치아공화국밖에 없어. 베네치아도 이탈리아 내의 상황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만큼 괜히 동쪽에서 투르크와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겠지. 그 때문에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이 로도스가 죽게 내버려두는 거고.
자, 이런 게 우리가 태어난 고향 유럽이야. 이런 상태에서 성 요한 기사단을 도와 이교도를 정벌하자고 떠들어보았자 누가 이 멀고 먼 남쪽 섬까지 와주겠나? 이탈리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에스파냐와 프랑스를 합쳐 5만 명의 군사가 동원되지만, 그 10분의 1만큼이라도 이곳에 파견해줄 왕은 없어……. 같은 또래인 그들은 앞으로도 세상을 좌우하겠지만, 우리는 외롭게 싸우다 이 남쪽 섬에서 죽는 수밖에 없겠지." (오르시니) / (119~122쪽 부분 인용)
서유럽의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했던 성 요한 기사단. 그들의 신념만이 남아 역사로 전한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야만인 오스만투르크가 아닌 신사적인 오스만투르크의 모습이다. 로도스 섬을 차지하고 나서도 대학살을 감행하지 않고 그저 성 요한 기사단이 떠나도록 두었다. 갈 사람은 가도록 자유롭게. 종교적 이념의 차이로 역사는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피 흘리며 죽었다. 물론 지금도 자살폭탄이나 테러가 존재한다. 다만 예전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많은 인원이 서로를 죽이지 않을 뿐 전쟁은 끝이 없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가서 투르크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성 요한 기사단은 이후 로도스 섬을 떠나 방랑하다 몰타섬에 정착했으나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이 터전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나 기사단의 후예는 지금도 남아서 의료활동을 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가장 멋지다는 거리로 유명 상점이 많은 콘도티 거리에 성 요한 기사단 본부가 있으며 기사로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결혼을 못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것으로 기사단 창설의 처음 이유였던 당시의 사명으로 돌아간 것이다. 전쟁 기사가 아닌 의료활동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머나먼 옛이야기만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닿게 느껴진다.
신념을 지키고자 무모해 보여도 그 무엇과 싸울 수 있는 용기. 그런 대의명분이 나에게는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간단 서평: 전쟁 3부작 그 두 번째. 얇은 책이지만 읽을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