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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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김갑수가 문화평론가라는 사실은 알아도 시인이라는 건 미처 몰랐다. 그러나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는 생각은 했는데 역시 맞았다. 예전에 <TV, 책을 말하다>에서 보는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와 생각 속에서 살 거 같은 그런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는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사람의 작업실을 엿본다는 사실은 흥미롭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역시나 박학다식한 저자답게 글 속에 많은 것들이 들어 있고 연상이 되었다. 물론 전문적이거나 지나치게 깊숙하게 들어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문학부터 음악, 커피, 오디오 등 실로 많은 부분이 크로스 오버 된다. 그리고 무엇하나 적당히 하는 법이 없어서 기가 막혔다. 물만 적시는 수준이 아니라 풍덩 들어가 깊숙하게 잠수를 해버릴 지경이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나만의 공간이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찾아나선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래서 언제나 나만의 비밀공간이 있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 공간에 들어박혀 몇 시간을 보낼 때가 행복했다. 물론 저자의 지하공간인 줄라이홀처럼 완벽한 요새수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는 집보다 줄라이홀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이곳은 오리지널 LP만 3만장이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볶는 등의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도 시간이 없어서 불만인 사람이다. 바리스타용 앞치마에 레이스 셔츠, 두건형 모자까지 복장을 갖추고 홀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이 부분에선 웃을 수밖에 없었다.  

 클래식 음악 이야기도 그렇고 이 사람 정말이지 재미있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성공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보다 부러운 사람은 바로 이런 부류다. 약간의 질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과 약간 떨어진 자신만의 공간에 있지만, 사람들 속에서 사는 저자가 부러웠다. 게다가 이 책은 따분한 구석이 조금도 없다. 그의 입담이랄까. 말발이라고 해야 하나. 말발과 글발이 장난 아니다. 두서없는 거 같은데 듣다 보면 이해가 또 간다는 게 말이다. 뜬금없이 아무튼 세상은 넓고 괴짜는 많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근사한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책으로 둘러싸인 혹은 LP나 CD, 빈티지 우드 스피커 라디오, 클래식한 가구들 등등.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공간의 크기나 물건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몰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곳이라면 다소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조합이 모여 있어도 그만의 독특함으로 자리 잡을 테니까.  

 책을 덮어도 갓 볶은 원두 향이 코를 간질이는 듯하다. 좋아하는 향이 가득한 곳에서 뒹글 거리기만 해도 안락함을 느낄 거 같다. 모두가 자신만의 공간인 작업실을 꿈꾸지만 말고 직접 만들라고 저자는 말한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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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사진의 모든 것 포토 라이브러리 8
브라이언 피터슨 지음, 공민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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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는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집에 있는 낡은 미놀타 수동 카메라였는데 내가 아닌 친구들이 나를 찍어주면 어김없이 거리조정 등을 못해 흐릿하게 나오는 일이 태반이었다. 이후 자동카메라가 생겨도 언제나 미놀타 카메라가 손에 익어 즐겁게 학창시절 졸업까지 사용했던 거 같다.   

 다음 필카는 로모 카메라였다. 20대 중반의 어느 생일날 자신에게 준 선물이었는데 색감이 마음에 들어서 흠뻑 빠졌었다. 이때 사진과 교감하고 감성을 나누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던 시기였다. 렌즈를 통해 담아내고 현상 되기까지의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고 설렜다. 그러나 로모에도 단점이 있었으니 접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접사를 위해 DSLR을 꼭 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DSLR과 디카가 여러 개 생겨도 접사를 시도하진 않았다. 가끔 꽃 사진을 찍고자 드물게 시도하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에서 카메라를 놓자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던 차에 다시 접사사진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브라이언 피터슨의 이 책 덕분이었다. 표지의 양귀비꽃을 찍은 모습부터 인상적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눈에 띄는 사진이 많아졌다. 게다가 상세하게 렌즈, 거리감, 속도,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 열심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사실 다는 모르겠더라. 카메라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고 자동디카만 사용해서 감이 늦게야 왔다. 그래도 이 책 물건이다 싶다. 나중에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과 옆지기가 탐을 내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동물의 눈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저 지나쳤는데 이 책에서 만난 눈을 보며 비로써 교감의 중요성에 대해 퍼뜩 생각이 났다. 교감이 없다면 절대로 담을 수 없는 것이 눈이다. 물론 과학장비 등을 통해서도 할 수는 있겠지만 생생한 날것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기에는 현장에서 직접 담는 것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클로즈업사진에서 찾을 수 있는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어떤 발견이 다른 발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53쪽.) 

 접사사진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적인 사진들이 가득한 책이다. 이슬 등 자연의 세세하고 생생한 것뿐 아니라 구겨지고 낡은 생활용품까지 클로즈업을 통하면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지나쳐 버린 것들을 재발견해내는 기쁨의 순간이다. 이런 경이로운 즐거움이 접사사진의 수고로움을 충분히 덜어준다. 게다가 예쁘거나 독특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질감까지 가미된다면 더없이 훌륭하다. 

 눈으로만 보던 것을 접사사진을 통해 시선을 옮기면 어떤 느낌일까. 그저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확대일 뿐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없이 소중하고 한없이 무한한 세계를 만나는 듯하다. 제대로 된 꽃접사사진을 찍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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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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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이 겪는 절망 중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위로를 위해 나온 말이 아닐까.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여지없이 무너질 테니까.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쭉. 그런 과정에서 절망을 겪으며 분노하고 몸과 마음이 으스러져도 기어이 진실에 접근한다. 과연 진실과 마주할 만큼 강한지 자문하면서 말이다. 비록 그것이 쓰디쓰고 소름끼치도록 무시무시해도 누군가는 그 문을 향해 돌진하고 다른 누군가는 주저한다.  

 작가 공지영은 신문에서 한 줄의 기사를 보며 <도가니>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끝까지 글을 쓰면서 상당히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펜으로 진실을 써가며 많이도 아파서 여러 번 마음을 다잡았을 작가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강한 파급력을 전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 고단한 여정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게 되자 나도 작가처럼 힘이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이 무진이라는 안개도시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무진이라는 지명을 듣자마자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났는데 역시 안개의 무진이 맞았다. 해무(海霧)에 쌓인 알 수 없는 낯선 소도시의 자애학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끔찍했다. 교장 등 학교 관계자들은 그들의 학생을 성폭행한다. 그리고 교사에게도 반말을 쓰고 청각장애아들이 모인 학교지만 수화를 할 줄 아는 교사조차도 없다. 자애학원은 안개에 쌓인 세상에서 고립된 하나의 왕국이었다. 교장이라는 세습된 폭군 같은 왕과 그에게 굽실거리는 간신배들인 쌍둥이 행정실장과 생활지도사를 포함해서 실세력들은 아이들을 상대로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만행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힘없는 월급쟁이들과 학생들의 편에 있지만 역시 힘없는 선생님들이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사회의 축소판과 다름없는 이곳에서 강인호는 괴로워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무언가를 깨 내려면 누군가는 다치고 잃을 각오를 해야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거대한 싸움이 시작된다. 강인호와 서유진은 아이들의 참다운 자유와 삶을 위해 자애학원이라는 권력과 돈으로 점철된 집단과 승부를 겨룬다. 그러나 지역사회라 이들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사람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경찰, 교육청, 시청 등 어디 하나 이들의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들의 더러운 공생관계라 하겠다. 법정영화 등을 보면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진실과 무관하게 힘없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현실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번 현실과 너무도 똑같이 그려내서 절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지의 의문과 진실이 반드시 승리하는 게 아니라는 걸 한 번 더 느껴야만 했다. 서유진의 말처럼 그야말로 "이 무슨 미친…… 광란의 도가니야?"  

여기서 진실을 말하면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니잖아요. 우리가 아니라 저 선생님들이 거짓말을 하는데 아무도 막아주지 않잖아요. 여기도 자애학교랑 똑같잖아요. (209쪽.) 

진실은 말이야. 그걸 지키려고 누군가 몸을 던질 때 비로소 일어나 제 힘을 내는 거야. 우리가 그걸 하찮게 여기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힘을 잃어. (211쪽.)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257쪽.)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들이다. 진실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과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문 기사 한 줄에서 시작된 이 여정의 끝은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동참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의 이야기는 희망적이었다. 서유진의 말처럼 진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애학원을 떠나 오히려 편안한 상태로 지내며 자신을 소중히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반복되는 수많은 부조리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오늘도 싸우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도가니라는 말은 보통 광란의 도가니니 하는 식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저자는 중첩된 의미를 둔 거 같다. 미친 광란의 도가니와 또 하나의 도가니는 그릇을 말하는 것 같다. 도가니탕에 쓰이는 그런 그릇 말이다. 단단하고 끓고 나서도 오래도록 지속되는 열기를 지닌 그 무엇……. 우리도 오래도록 이 열기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절망과 분노를 맛본 만큼 그곳에서 찾아 헤매던 빛 한줄기를 찾을 때까지 말이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지 말고 뚫고 나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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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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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평생 받는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작게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부터 내면에 받는 상처까지. 심리학에서는 특히나 마음에서 일어난 상처에 집중한다. 크고 작은 상처에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는 곧 잊혀지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그것이 평생을 가는 예도 있다. 그러니 상처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흔히 생각하듯 극단적이거나 무시무시한 사건만이 큰 상처로 남는다는 뜻이 아니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영화를 통해 독자에게 트라우마에 대해 쉽게 이야기한다. 24편의 영화캐릭터를 통해 들여다본 예는 구체적으로 다가오며 영화를 볼 때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이해하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해understanding야말로 치유healing의 진정한 시작인 것입니다. (29쪽.) 

 트라우마(Trauma)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말한다. 내가 트라우마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4~5년 전인 거 같다. 당시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돌발적인 행동을 주로 하는 직장동료가 있어서 이해하고자 했던데서 트라우마에 관해 알게 되었다. 나와 마주침은 적었지만 궁금했다.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끝내 알지는 못하고 어렴풋이 짐작만 한다. 그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상대를 더 잘 이해했을 거 같다. 그만큼 이 책을 통한 이해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문용어가 조금 나오기는 하지만 우리 몸의 신호체계와 반응을 통해 들여다보았기에 이해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었다.  

 쉽게 예를 들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거나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부모의 반응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기대해서 실망감도 크기에 아이에게 위로의 말보다 책망하고 야단치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또한 부모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위축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느낀다. 하물며 보통의 가정에서도 이런 데 만약 어릴 때 학대를 받았다면 그 영향은 더욱 크게 남을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에 가볍게 지나가서 잊어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런 상황이 인생에서 큰 흔적으로 남아 괴롭히기도 한다.  

 치유healing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나며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행동에는 대부분 원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간과하는 부분이었다. 현대인 대부분은 크고 작은 상처뿐 아니라 외로움까지 떠안고 있다. 그래서 이해는 더욱 중요하고 치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한, 자신의 상처는 바로 자신만이 치유할 수 있으니 두렵더라도 맞서야 한다. 이때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치유에 효과적이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 (91쪽.) 

 유명한 영화 <샤인>, <람보>, <포레스트 검프> 등을 통해 읽다 보면 더는 트라우마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람보> 편이 인상적이었다. 전쟁참전 후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얼마나 막강했는지 초기에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 후 그들의 행동은 이해받을 수도 없었고 인정되지도 않았고 결국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결국, 마음이 약한 사람만이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람보>는 인간병기가 아니라 전쟁으로 말미암은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이었다는 관점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일본과의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현재진행형인 아픔이 시간이 지난다고 더뎌지진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만 깨끗하게 나을 수 있다. 개인의 아픔을 국가에서 이해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면 좋겠다.  

 타인과 나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첫째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섣불리 이해한다고 말하지도 말 것이며 상대의 말을 들으며 감싸주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게 좋다. 편안함을 느낄 때 안정감을 느끼고 정신도 불안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영화 <레인 오버 미>에서처럼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마음을 열게 된다. 생각보다 쉬운 일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인을 찾아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해야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책에서 말하는 EMDR 치료법도 생소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더 많은 사람이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면 좋겠다. 

 트라우마에 대해 알리고 이해시킨다는 기획의도도 좋았으며 영화를 통해 쉽게 받아들이도록 선택했다는 것 또한 적절했다. 나와는 무관할 거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모두에게 분명히 유익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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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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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서아 가비>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머리에서 번쩍이는 게 있었다. 책장에서 문예지를 죄다 꺼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시작한다. 몇 권을 뒤적인 끝에 드디어 찾았다! 2007년 <한국문학> 여름호였다.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읽으면서 독특하고 흡입력 있는 글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이름은 잊어버렸어도 제목만은 잊을 수 없었다. 사실 김탁환이란 이름은 이후에 많이 듣게 되었는데 이렇게 그의 첫 작품을 만날 줄 몰랐다. 이제야 알았지만, 작가는 2006년 겨울부터 작품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안 커피라는 의미의 제목. 그리고 커피색의 책표지와 책장 안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커피 그림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목차까지 커피는__다라는 식으로 연결된다. 모든 주어는 커피로 시작된다. 예로 첫사랑이다, 두근두근 기대다, 흔들림이다.. 이런식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식으로 연결해도 어색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감성을 건드리는 카피와 편집이라 하겠다. 물론 커피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삽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절로 커피 향이 떠올라 맛있는 커피 한 잔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독특함이다. 

 개화기 유쾌 사기극을 쓰고 싶었다는 소망을 이룬 것이다. 실제 사건인 고종의 커피에 아편을 넣은 인물 김홍륙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작가는 구체적인 줄거리에 상상력을 덧달았다. 이렇게 유쾌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래서 잠을 줄이며 읽은 책이다. 간만에 소설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 몰입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소재도 신선할뿐더러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이란 말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이것이 팩션의 매력이며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따냐는 역관인 아버지가 노서아 가비를 마시는 것을 보며 또 여러 나라의 말을 배우며 자랐다. 이후 아버지는 청나라 수행 길에 하사품을 훔쳐 달아나다 죽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이후부터 따냐의 안락한 삶은 정지한다. 조국을 떠나 러시아까지 흘러가서 다양한 길 위의 삶을 살게 된 파란만장한 여인이 된다. 그리고 사랑이라 믿은 유일한 남자 이반과의 만남과 음모 등이 얽히고설켜서 진행은 급물살을 탄다. 그리고 후반부의 반전까지 정말이지 숨 가쁘다. 

 역사적 배경을 적절히 배치하여 당시 상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흥미로운 건 역시나 고종이 커피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따냐로 불리게 된 비운의 주인공이자 유쾌한 사기꾼과 고종은 커피라는 매개체로 연결된다. 고종의 바리스타이자 티타임의 친구가 된 것이다. 쓰고 검은 액체가 주는 향과 맛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상황이 어수선하고 절박해도 이런 시간은 소중하고 정지한듯한 느림으로 다가온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국내문학에서 김탁환이 차지하는 위치는 돋보인다. 이 밖에도 읽지 못했지만 리심이나 방각본살인사건 등의 줄거리와 소재 또한 훌륭하다. 팩션과 역사는 구별해야 하지만 역사의 사라진 공간을 재창조해낸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그래서 이 작가를 앞으로 지켜보고자 한다. 문학적 가치라는 것은 깊이 있고 무거운 것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으로 역사를 돌아보고 재조합하는 힘이 있는 것도 재능이라 하겠다. 올여름 시원한 한국소설 한 편을 찾는다면 <노서아 가비>를 추천한다. 다만, 재미있게 즐기며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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