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시작
며칠째 첫 태풍이 몰려온다는
소식이 머얼리서 들려왔습니다.
닫힌 창틈 사이를 비집고서
덜컥거리는 음습한 바람이 헤집고
어둠의 전조와도 같은 먹구름이
벌거벗은 나신의 형상을 하고서
그 까만 밤들을 하얗게 지새우도록
그 들뜬 공기들을 무겁게 가라앉도록
그 모든 거짓들을 순결한 진실이도록
간절히 갈망하였지만
나의 기도가 절망한 까닭은
그 어디에도 당신의 형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눈, 코, 입이 사라져버린
얼굴이 되어, 관념이 사라져버린
도살된 고깃덩이처럼 뭉글뭉글
부푼 몸뚱이가 되어, 사라져버린
첫 태풍의 전조였을 뿐입니다.
다음 날, 바람이 헤집고 간 짙은 녹음 사이로
묵은 정액 냄새가 난자하였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