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도 독서

 

 

우치다 타츠루의 구조주의 강의서를 읽었다. 읽기 시작할 때부터 찜찜한 부분이 있었다. 구조주의 이론과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고, 이 책의 주요 부분도 아니지만.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까뮈의 정직함에 대한 부분이다.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났을 때 서로 다투는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에 절대적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고 사르트르는 그 상식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프랑스와 알제리 어느 쪽이 더 정당한지 판정을 내리기 힘들다. 양쪽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라고 정직하게 말한 프랑스 지식인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알베르 카뮈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 일로 카뮈는 당시 거의 고립무원이 되었조.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갈라파고스, 2010), p.26.

 

우치다 타츠루의 책은 구조주의 맛보기 책이다. 이 책이 쉽게 이해된다고 열광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구조주의를 이미 접해 본 사람이 아닐까. 무언가를 쉽다고 느끼려면 어려운 걸 접해 봐야 한다. 철학자 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철학자의 이론을 한 권에, 그것도 쉽게 적으려면 아무래도 핵심만 적게 된다. 그런데 이 맛보기용 철학서에서 철학 내용만 전달해도 모자랄 텐데 자꾸 사르트르를 데리고 온다. 사르트르만 데리고 오면 되는데 까뮈도 데려온다. 까뮈와 구조주의가 무슨 상관이지?

 

어쨌든 위 구절에 마음이 걸렸다. 아마도 내가 한국인이고 저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해일 것이다. 프랑스가 일본으로, 알제리가 조선으로 보이는 것은. 까뮈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어서 카뮈가 정직하게 양비론을 펼쳤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알제리인이 나오는 까뮈 책이다. 이방인. 프랑스인 뫼르소가 알제리인을 죽인다. 감옥에 갇힌다. 재판 중에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점이 부각된다. 알제리인을 죽였다는 데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뫼르소 역시 엄마 생각도 하고, 애인 생각도 하지만 죽은 알제리인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름을 살짝 바꾸면 일본인이 조선에서 조선인을 죽였는데 조선인 죽인 것보다 자기 엄마 장례 때 슬퍼하지 않은 걸로 심판 받는 거다. 소설은, 삶은 훨씬 더 복잡하겠지만 여기에선 프랑스와 알제리만 본다. 까뮈가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정직하게 말했을까.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왜 정직하다고 받아들여야 할까. 구조주의 이야기도 시작하기 전에 저자는 왜 이 이야기를 꺼낼까.

 

우리는 모두 고유한 역사적 상황에 휘말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로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사람들로부터 전쟁의 책임에 대해 추궁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태어난 이 나라가 반세기 전에 저지른 행위에 나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에 대해 사죄를 하든 무시를 하든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관계가 없어요. 나는 중립입니다라고 우는 소리를 해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상황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참여라는 사태입니다. -같은 책, p.155.

 

그 참여라는 사태를 부르짖은 사람이 사르트르고, 사르트르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분쇄되었다고 한다. 구조주의가 실존주의에 승리했다고 한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니까 나는 다 믿어야 할까. 사르트르와 까뮈는 같은 실존주의자가 아니었나. 왜 자꾸 사르트르와 까뮈의 논쟁을 이야기에 끼어 넣지? 이 간단한 책에서 두 번씩이나 언급될 만큼 구조주의와 긴밀한가? 이 내용은 몇 페이지 되지 않지만 여러 철학자를 소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몇 페이지는 적지 않은 분량이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가 사르트르와의 논쟁에서 이겼다고 레비스트로스의 말이 역사를 이해하는 옳은 방법인가? 정말 이상하다. 구조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다.

 

어차피 맛보기용 책이니 이렇게 따지기도 뭐하지만 혹시 저자가 일본과 일본이 식민 지배했던 나라 양쪽 중 어느 쪽이 더 정당한지 판정 내리기 힘들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대놓고 말할 수 없어서 사르트르와 까뮈와 레비스트로스를 데리고 온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는 정말 교묘하게 교활한 사람이 된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 어쩌면 식민 지배를 받았던 후손의 피해망상일 것이다. 지독한 오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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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1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는 프랑스 본토의 부르조아 지식인 출신으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만 충실할 수 있었던 출생배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알제리 독립운동에 대해서 프랑스를 비판하고 독립운동을 지지할 수 있었죠. 하지만 까뮈는 프랑스인이지만 알제리 빈민가 출신이에요. 자신이 함께 자랐던 고향과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이 독립운동으로 인한 프랑스의 분쟁의 틈에서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햇었던듯해요. 까뮈에게는 알제리인과 프랑스인이라는 이중적인 기준이 있었던 거죠. 물론 이것은 역사적인 판단으로는 옳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요. 알제리인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기를 고민하고 고군붙우했던게 까뮈의 입장이 아니었을까 저는 까뮈의 생각을 그렇게 해석합니다.

이 책의 지은이의 입장은 사르트르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역사적 비판이나 반성에 대해서 더 명확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요.

이누아 2021-03-21 21:46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와 까뮈 이야기가 비교적 앞부분에 나왔다가 레비스트로스 부분에 다시 등장해요. 저는 사르트르와 까뮈의 의견은 그렇다 해도 이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했어요. 까뮈가 구조주의적인 사고를 했다고 받아들여야 하나 싶게 말이에요.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냥 마음에 걸려서요. 입문서에서 이 부분이 강조될 이유가 있었나 생각하다... 까뮈에게 정직하다는 판단을 한 게 눈에 띄었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정직하지 않았단 말이잖아요. 저자는 왜 특별히 까뮈를 정직하다고 평가했을까. 까뮈의 입장에서 말하고 싶은 게 있나, 생각하다 이런 글까지 쓰게 됐어요. 저자의 의도가 궁금했어요. 별 의도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구조주의가 실존주의를 이겼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싶기도. 무식하니까 읽다 마음에 걸리는 것을 살펴기도 쉽지 않네요. 하아.

바람돌이 2021-03-21 21:46   좋아요 1 | URL
이누아님 말씀대로 딱히 관련없는 이야기를 저토록 중요하게 끌어왔다면 뭔가 다른 의도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누아님의 오독이 아닐 가능성이 더 많을 듯.... 책을 안 읽은 저로서는 이정도 얘기밖에 못하겠네요. ^^ 저도 저자의 의도가 궁금해서 저 책을 봐야 하나? 하다가 아 철학은 너무 힘들어. 난 다른 책이 더 보고 싶어하면서 그냥 꼬리를 내립니다. ^^

이누아 2021-03-21 21:55   좋아요 0 | URL
‘저토록 중요하게도‘ 아닌데 그냥 제 자격지심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까뮈 말대로 프랑스와 알제리가 연방정부를 이루었다면 전쟁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식민 지배국과 식민지가 수평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해요.

서평이 아주 좋아서 읽었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여기 있었다는 증거

 

 

저는 청소를 하고, 요리를 돕고, 불을 피워요. 제가 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거나, 더러워지거나, 불에 타서 없어져요. 하루가 끝날 때면 제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가 하나도 안 남아요.” 리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치마 끝단에 놓인 자수를 어루만졌다. 자수는 내가 관목 가시에 걸려 치마를 찢어먹었을 때 리지가 꿰매준 부분을 가려주었다.

제가 놓은 자수는 언제나 여기 있을 거예요.” 리지가 말했다.

이걸 보면 왠지...... 글쎄, 단어를 모르겠네요. 제가 언제나 여기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필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엘리, 2021), pp.60-61.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쓸쓸해져.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어떤 철학자가 그랬어. 나는 나를 볼 수 없다고,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고, 거울 속 나는 가짜라고, 가짜인 나밖에 볼 수 없다고. 그래서 불안하다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나의 탄생을 내가 알 수 없다는 생각. 나는 타인의 기억으로부터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어. 그 말을 들으면 무언가 안쓰러워. 무엇을 증명하려고 미치려고 애쓸까. 미친 사람들은 그냥 미쳐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지만 미치지도 않은 사람이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고 미친 척하는 건 우스꽝스럽지 않니? 미치는 건 그냥 미치는 거지. 미쳐야 된다니. ‘미쳐야보다 미친다에 더 관심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도달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걸 좀 봐 줬으면 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 다른 빛깔로, 조금 다른 강도로 대부분 다 가지고 있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리지와 같은 마음이라고,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안됐어. 우리 모두 그대로 있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떠는 걸까. 나는 여기 있었다는 증거로 지금 네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걸까.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더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까.

 

불쑥 너에게 말을 걸어. 봄이니까. 봄에게 말을 걸 듯이.

 

 

 

평범한 하루

_변영현

 

 

느슨한 공간을 돌고 도는 시계 소리

수북하던 설거지는 말갛게 씻어두고

빨래는 햇볕을 찾아 탈탈 털어 넌다

 

단정한 일상을 지탱하는 수고로움

헛바퀴 같아도 쉼 없는 물레방아

오늘도 거친 시간을 곱게 빻고 있다

 

기대도 후회도 없는 밤을 뒤척이며

제자리 걸음에도 내 몫을 살고 있다고

묵묵히 가는 하루를 다독여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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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외숙모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친정 엄마처럼 의지하는 분이다. 외사촌 오빠는 나와 친정 오빠가 자취할 때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마땅히 가야할 장례였지만 외사촌 오빠는 코로나로 아무도 못 오게 했다. 어쨌든 울적했다. 큰외숙모가 어떻게 사셨는지 엄마에게 여러 번 들어 마음이 안됐기도 했지만 혼자 사는 엄마가 큰외숙모를 생각하며 울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 마음이 쓰였다. 결국 남을 염려하는 것은 짧고 나를 염려하는 것은 길다. 나는 돌아가신 분보다 엄마를 더 염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평안은 나와 밀접하다.

 

시골집 보일러 배관이 터졌다. 배관 공사도 하고, 보일러도 바꾸었다. 살다 보면 예정에 없는 이런저런 일이 생긴다. 전염병이나 전쟁이나 천재지변, 사업 실패나 암 같은 큰병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사를 하거나 집을 수리하거나 갑자기 다치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사람만 그렇겠는가. 살아 있는 것들이 저마다 이런 번거로움을 겪는다는 생각을 하면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내고, 간간이 떠오르는 기억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

 

문성해 시인의 시는 편안하게 읽히면서 시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 대부분 새로운 것을 원하고, 새로운 것을 쓰려고 한다. 낯설고 새로운 것이 놀람을 주기도 하지만 피로감을 느끼게 할 때도 있다. 그에 비해 시인의 시는 익숙한 느낌을 준다. 그 편안함 안에서 잔잔한 파문이 인다. 가만히 들여다 보게 된다. 시인의 다른 시집도 주문해 두었다. 

 

책이 어렵다기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혼돈스런 책이 좀 있었다. 그중 막스 피가르트의 책이 있다. [침묵의 세계]가 무척 좋았는데 [인간과 말]을 읽다 보니 침묵의 세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말의 선험성에 대한 이야기가 첫 장에 있다. 말이 있기 전에 말이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떠오르게 한다. 아이디어가 있고,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느낌은 그가 말하는 말의 세계에 이끌리지만 생각은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어진다.

 

다음 주엔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단축 수업이긴 하지만 점심을 먹고 오니 내가 좀 편할 것 같다. 이렇게 계속 단축 수업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몰라도 시간은 간다. 벌써 3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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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문성해

산책하는 사람에게-안태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김희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땀 흘리는 시-김선산, 김성규, 오연경, 최지혜 엮음

로르카 시 선집-로르카

천 개의 아침-메리 올리버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정훈교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데이비드 실베스터

플러쉬-버지니아 울프

인상과 풍경-로르카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

헤테로피아-미셸 푸코

인간과 말-막스 피카르트

아직도 시를 배우지 못하였느냐-김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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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28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때문에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어머님도 너무 상심하지 않으시기를....

이누아 2021-02-28 20:43   좋아요 2 | URL
예. 그렇네요. 함께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축하 받을 일이 있어 마음과 몸이 분주했다. 새해가 되면 서재에도 자주 오고, 글도 좀 쓰려고 했는데 서재 지인들 글 읽는 것조차 제대로 못했다. 못해도 괜찮다, 소리내어 말해본다. 작년이나 올해나 하루는 하루다. 하루가 지는 저녁이다.

 

몇 년 전 모임에서 이규리 시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슬픔에 관한 이야기였다. 곧 터질 것 같은 슬픔, 슬픔을 에워싸고 있는 침묵 같은 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나는 좀 버거웠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지금은 버거운 느낌은 바래고 햇살만 남아 있다. [당신은 첫눈입니까]는 시인의 목소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시집이다.

 

[뿔바지]는 읽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준규 시인의 [삼척]에 '뿔바지'에 관한 글이 있다. 이게 뭔가 싶어 검색했더니 품절. 중고책을 샀다. 후반부를 읽다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의 글인 것 같은 느낌. 판권에도 지은이가 자끄 드뉘망으로 나와 있지만 번역자와 해설자를 보고 확신했다. 장난쳤구나. 자기들끼리 재미있었겠다. 나는 재미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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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첫눈입니까-이규리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이은규

우울은 허밍-천수호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삼척-이준규

아무는 밤-김안

뿔바지-자끄 드뉘망

 

밝은 방-롤랑 바르트

뭉크-유성혜

저항하는 지성, 고야-박홍규

독서의 궁극: 서평 잘 쓰는 법-조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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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31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선 이누아님 돌아오신것 반갑워서 별가루 *˝˝*.*˝˝*.*˝˝*.뿌리고 잘모르지만ㅋㅋ 추카 추카 *˝˝*.*˝˝*.*˝˝*.합니다 ㅋㅋ 뭉크저책 많이 우울해져여 ㅜ.ㅜ 이누아님 1월에 마지막날 따숩고 평안하게 보내세요.^.^

이누아 2021-01-31 22:38   좋아요 2 | URL
별가루까지 맞으니 서재에 올 기분 납니다.^^ 축하할 일이 뭔지 묻지 않고 축하해 주는 이런 배려가 좋아요.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1-31 2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뿔바지 같은 책도 있군요. 음 이런 책이 뭔가 정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시도이거나, 아니면 최고의 성취를 보여주거나 하는게 아니라면 모르고 읽는 사람은 정말 기분 나쁠 듯합니다. 축하받을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일이겠거니 하고 살짝 축하인사를 건넵니다. ^^

이누아 2021-01-31 22:49   좋아요 0 | URL
뭔가 의미가 있는데 제가 못 알아봤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약간 낚인 느낌이에요. 이준규 시인 시집에 몇 번 나오거든요. 이준규 시인이 해설을 썼더군요. 김태용 소설가가 진짜 지은이고. 모두 책 속에선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고요.

살짝 건넨 축하인사, 건네 받아요. 고맙습니다.
 

이달에 읽은 책에 대해 몇 마디 하려고 앉았는데 입이 안 열린다. 쓰면 되니까 입 따위는 필요 없는데 입이 안 열려서 머리가 안 열리는 건지, 머리가 안 열려서 입이 안 열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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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옹 파율, 돌의 부드러움

레옹 크노, 문체 연습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G.H에 따른 수난

필립 로스, 전락

주노 디아스, 드라운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임승유,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김행숙,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김경미, 카프카식 이별

김생, 여기는 눈이 내리는 중입니다

이승은, 첫, 이라는 쓸쓸이 내게도 왔다

박기섭, 오동꽃을 보며

-다시-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송현섭, 착한 마녀의 일기

박소란, 한 사람의 닫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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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30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옹 크노의 책은 74쪽 까지 읽다가
결국 못 다 읽고 오늘 반납했네요...

리스펙토르 작가의 책은 두 권이나
샀는데 언제 읽을 지 미정이고요.

주노 디아스의 <드라운>은 정말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네요.

마리옹 파욜 작가는 처음 들어 보네요.
내일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볼까봐요.

이누아 2020-12-30 18:06   좋아요 2 | URL
문체 연습은 앞부분이 좋았어요. 뒷부분도 다른 문체를 보여 주지만 언어의 차이 때문에 의역(?)이 있어서...74쪽까지면 거의 다 읽으신 것 같은데요.^^

돌의 부드러움은 그림책이에요. 독특하고 묘해요. 아빠는 암으로 죽어가고 가족들은 그를 돌보는 이야기다, 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책이에요. 그걸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저는 맘에 들었어요.

scott 2020-12-31 12:07   좋아요 0 | URL
매냐님이 중도 포기 하셨다고 하시니 ,,,
문체 연습,,,
망설여지네요

하나 2020-12-30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멋있는 이웃분들이 계속 언급하시니 피할 수 없을 거 같네요. 이누아님이 읽으시자마자 문체랑 사유가 막 변신하시는 거 보고는 더 궁금해진 1인입니당. 올해 덕분에 서양미술순례와 오래 전에 사랑했던 시집들에 대한 추억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누아 2020-12-31 21:29   좋아요 1 | URL
올해 그 멋있는 이웃 덕분에 저도 안 읽던 소설 몇 편 읽었어요.^^

내일이 새해군요! 내년에도 맛있는 책 시식하러 님의 서재에 어슬렁거릴게요. 책으로 즐겁고 글로 흥하는 새해 맞으시길!

scott 2020-12-31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2021년 복주머니 요기 놓고 가여 ㅋㅋ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이누아 2020-12-31 21:32   좋아요 1 | URL
신통한 재주를 가지셨네요. 알라딘의 지니 같아요. 복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몰랑몰랑하고 동그란 복이 만져지네요. 어떤 복일까요? 나눠주신 복만큼, 아니 그 이상 복 받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누아 2020-12-31 21:36   좋아요 1 | URL
문체 연습은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하고 즐겁게 읽고 지겹거나 재미없어지면 그만 읽어도 괜찮은 책이에요. 발상 자체가 책의 중요한 부분이라 문체를 달리할 때의 느낌을 알고, 자기 글에 적용해 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끝까지 읽는 게 목표가 되지 않아도 돼요.

서니데이 2020-12-31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새해인사 왔습니다.
올해는 조금 남았지만, 새해는 그만큼 더 가까워졌습니다.
내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을 거예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날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누아 2020-12-31 22:02   좋아요 1 | URL
서재에 들어오면 님의 글이 있나 살펴보게 돼요. 꽃다발을 받는 느낌이기도 하고, 불 켜진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했어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