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후

금강경을 읽다가 조금 놀랐다. 언제나 금강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구체적으로 몰라지는 책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읽을 때마다 의문이 하나씩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제 금강경을 읽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늘 금강경에서 왜 이 구절이 갑자기 튀어 나왔나, 왜 이 비유가 쓰여졌나 하는 것들이 궁금했는데 어제는 연결이 잘 되었다. 문득 아, 이 말이군, 금강경은 금강경 안의 다른 구절로 모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들...그러나 생각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안의 의미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해와 깨달음은 다르다. 모든 깨달음에는 실천이 동반된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알게 되면 그대로 행하게 된다. 그것이 바른 앎이다. 그래서 깨달음과 자비는 새의 양 날개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날 수 있다. 그래도 겨우 읽기 시작했다고는 할 수 있겠다. 좌선과 금강경 읽기는 직접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지만 해제 후에 읽으니 그랬다는 말이다. 아무 관계가 없기야 하겠는가 하는.   

요즘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읽다가 잘 운다. 잘 웃기도 하고. 누구는 좌선을 하면 감정이 평온하다 못해 메말라진다고 걱정한다던데 난 마음에 슬픔이 잘 인다.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를 봐도 그렇고, 전쟁 이야기며, 인질극에...보고 있으면 가슴이 떨리다가 눈물이 난다. 역시나 코메디 프로나 예쁜 장면을 보면 내 일처럼 기뻐서 웃는다. 그렇게 울고 웃다가 문득 내가 뭐하나 싶기도 하고.

 또다른 점은 좌선하지 않을 때도 계속은 아니지만 화두가 함께 한다. 결제 기간에도 안 되었는데...오매일여는 그만두고라도 좌선할 때라도 일여하면 좋겠다 싶다.

수행은 짧고 바램은 주절댄다. 또 해제 전과 후를 바라보는 나의 비교의 습관은 여전하다. 그러나 수행하다 깨치면 좋겠지만 안 되면 수행하다 죽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노보살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게도 낡은 습관과 주절댐 대신 그런 간절함이 스며든다.

이뭐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는 하안거 해제일이었다. 해제 법문을 들으러 동화사에 갔다. 선방 보살님들과 조금 일찍 나서서 미리 진제 스님과 주지 스님께 인사도 드렸다.

이 시대의 이름난 스님을 만났는데 절만 하고 나왔다. 한 마디 질문도 못하고 나왔다. 의심이 치열하지 못한 까닭일게다. 좀 씁쓸..

법문이 끝나고 같은 팔공산에 있는 군위 삼존불에 갔다. 바람도 시원하고, 기분도 상쾌했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어도 90일 동안 무사히 마친 것이 흐뭇하다. 산철 결제 때는 없던 안거증도 받았다. 음력 8월 1일부터 또다시 산철 결제가 시작된다. 참석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휴가 같다. 냉장고와 주방 정리를 했다. 수성못까지 걸어가서 산책도 했다. 못이라 그런지 바람이 좋다. 오는 길에 시장도 봤다. 이제 씻고 좌선할 생각이다.

길고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종종 힘든 이유는 부조화 때문이다.

 

게으르고 쉽게 피로한 몸과 부지런하고 지칠 줄 모르는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쿵!

선방에 앉아 있는데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 보살님이 졸다가 땅에 머리를 박은 소리다.

용맹정진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번 용맹정진은 음력 7월 초하루부터 7일간 잠을 자지 않고 하루에 16시간 정도 말 그대로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것이다. 나는 참석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오후에만 가서 좌선을 하지만 많은 분들이 참가하셨다. 나이가 조금 젊은 분들은 해인사 부근의 원당암으로 가서 하시고 연세가 있는 분들은 그대로 우리 선방에서 수행을 하신다.  

여든이 넘은 한 보살님은 이제까지 한번도 용맹정진을 못해 봤다고 참선수행하는 사람인데 죽기 전에 해 봐야 겠다고 참석하셨다. 이 말씀에 나도 꼭 기회를 마련해서 용맹정진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어쨌든 오늘이 사흘째...졸아서도 안 되겠지만 밤을 새지 않아도 오후에 졸음이 와서 힘이 드는데 이틀을 눈을 못 붙였으니 그렇게 졸았다고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조용한 선방에서 졸다가 쿵 소리를 냈으니 본인도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무척 놀라고, 또 그 모양이 우스운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웃는 소리마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그 소리가 무거운 돌처럼 가슴에 쿵 떨어졌다. 못 견딜 지경까지 채찍으로 몰아가는구나. 나는 너무 편안하구나. 너무 편안해서 망상이 끊이지 않는구나. 비록 졸다가 넘어지는 소리일지라도 수행하는 자리에서, 수행하다 쓰러지는 소리구나. 아래 입술을 지긋이 물었다. 선방에서는 졸다 넘어지는 소리도 내게는 모두 가르침이다.

연세도 많으신 어르신들이 무사히 용맹정진을 마치시기를 기원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발~* 2004-08-19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많이 내립니다. 영산강이 범람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아는 분들이 그쪽에 계시니 마음이 쓰입니다.

비로그인 2004-08-20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두 읽으면서 엄청 웃었는데...아, 이거 점점 경건한 웃음으로 변해갑니다. 이누아님, 셤셤 정진하셔요..^^

이누아 2004-08-2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매년 태풍이 마음을 졸이게 만드네요. 아는 분들은 별탈 없으셨는지? 사실, 잘 모르는 분들도 모두 별탈 없으셔야 할텐데, 벌써 피해가 생긴 뒤네요.
그림이 또 바뀌었네요. 좀 익숙한 친굽니다. 반갑네요.
복돌님, "셤셤"이 뭐죠?-아, 쉬엄쉬엄인가요? 이렇게 제가 좀 늦습니다. 지금도 너무 쉬엄쉬엄해서 문제입니다. 이달 말이면 벌써 해제입니다. 석달이 지났는데 저는 여전히 쉬엄쉬엄이라...다짐만 하고, 몸은 게으르고...아,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선희야, 좀 그만 쉬어라!" 하고 말입니다. 어쨌든 격려 고맙습니다.
 

누군가 내게 손을 내민다. 덥석 잡으면 한많은 이야기 속에 내게 요구하는 것들이 계속 될까 두렵고,  손을 놓으면 그 슬픔이 내게로 와 나를 무겁게 할까 두렵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누가 말했던가?

길을 모르면 길을 걷는 것이 두렵다. 지혜가 부족한 이는 두려움 속에 서 있다.

어떤 것이 유익함인지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오늘은 듣는다. 누군가 운다. 내게 말한다. 나는 그분을 잘 모르지만 그분의 한이 풀어지기를 마음으로 빈다. 나도 따라 울 뻔한다. 울지 않고 듣는다. 나도 이렇게 한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일까?

이런 한많은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한 인간의 생이 이다지도 슬픈가 싶다.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데, 인류의 구원과 중생의 제도를 결심하는 분들은 또한 어떤 분들인가?

이웃이 슬픔 속에 있으면 내가 기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지옥의 모든 중생이 지옥고를 벗어날 때 부처가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 평온했지만 한참을 울었던 내 이웃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내 평온 속으로 이웃을 머무르게 하지 못하고, 이웃의 울음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내 평온은 그 정도였나 보다.

내 평온이 흘러넘쳐 이웃을 젖힐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지혜가 넘쳐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에게 유익한지 내가 잘 알고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