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8

 

 

  춥고 구름 구질구질한 아침. 허겁지겁 먹은 밥이 뱃속에서 다시 벼가 되려는지 꿈틀거린다. 머리스타일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 강의 프린트 하날 까먹은 듯도 하다. 애써 웃어보지만 신발끈 묶는 것조차 귀찮다. 못난 오빠 배웅한다고 뒤에서 꾸벅꾸벅 동생은 졸고 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이런 부탁을 한다.


  “내년 생일에는 아이언맨 슈트 좀 사줘.”


  “빨리 가.”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드래곤 길들이기>의 ‘나이트 퓨리’도 얼마 전 추가됐다. 동생에게 실없는 웃음이나 주고 현관문을 연다. ‘학교까지 날아가고 싶다.’ 내가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을 좋아하는 건, 순전히 게으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언맨 슈트가 있었으면.’


  오늘 밤 여덟시에 나는 희뿌옇게 가려 흡사 달무리도 보이는 것 같은, 밤하늘의 보름달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자주 그런 생각을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정말 빨리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단어들이 국경을 넘어 도망가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작가 김애란을 만났다.

 

 

 

 

 

 

 

 

  가히 여학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가였다. 차분한 화법 사이사이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위트와 농담에 우리는 적극적인 웃음으로 화답했다. 분위기는 좋았고,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교시(敎示)의 느낌이 전연 없었다. 공감의 의지가 확연히 느껴졌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생각이 많고 깊었다. 섬세하고 세련된 면이 있었다.


  비유가 될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녀의 강연을 듣고 나서 “스펀지 케익 같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케익들보다도 스펀지 케익이라면 한 번 쯤 꾹 눌러보고 싶지 않은가. 그러면 케익은 누르는 만큼 들어갔다가 제자리로 얌전히 돌아간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사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날카롭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언니, 누나의 분위기였다.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아우르려고 하는. 글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품’이 얼마나 넓어야 하는가를 나는 문득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어 추려봤다. 그녀는 아포리아를 동경하던 20대에서 벗어나 자신이 30대가 되었음을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들을 나의 아포리아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면지에 거칠게 적어 내려갔다. 김애란의 문학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좋은 말들을 이 누추한 공간에 옮겨본다.

 

 

 

  “픽션이란 푹신한 빵 같은 거짓이다. 현실이 착지하려고 할 때 재빨리 그 밑으로 끼어드는.”


  “독자가 책을 덮었을 때, ‘아, 나도 나의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요즘 나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에 대한, 가령 인권, 약자 등 추상명사들에 대한 대단함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가 이런 것들에 게으르면 이 단어들이 지닌 활력과 생기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을 살려내는 것이 문학이지 않을까. 이런 짐작들을 하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농담이란 수치심을 주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위로해주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과는 어울리기 쉽지 않다. ‘나’에게의 농담은 거리낌 없을지 몰라도 그 대상이 ‘너’라면 조심스러워야 한다.”


  “말이 글보다 앞서고, 글이 삶보다 앞서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이해란 내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일종의 상상이다.”


  “가장 젊은 작품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작품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저 선배(작가)는 얼마나 통찰력이 좋기에 100살이나 어린 나와 말이 통할까?”


  “영화가 문학의 위기를 야기했다고 하고, 최근에는 게임으로 인한 영화의 위기가 거론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잠깐 게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 게임은 성공과 영웅을 다루지만 문학은 실패와 평범한 인간을 소재로 삼는다. 게임은 만족할 수 있지만 문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리뷰는 ‘삼천포로 빠지는 유형’이라고 했다. 텍스트 자체에 집중해서 주제를 찾아내는 것보다는 - 물론 그것이 저급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비평이 더 어렵고 생소하다는 건 이번 학기 소설론을 들으며 내가 근래 절실히 느끼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 “맞아. 나는 옛날에 그랬었지.”라는 반추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독자를 그녀는 원하는 듯했다.


  선배 작가들, 가령 성석제, 김연수, 김영하 등 자신보다 10년은 더 작품생활을 하고 책도 10권 이상 낸 베테랑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을 솔직히 고백한 것도 나는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김연수를 예로 들며, 그가 ‘토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토할 정도로 퇴고하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해 학생들을 ‘빵’ 터뜨렸다. 요컨대, 글쓰기란 고민과 반성, 교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노력들에 비해 내가 그들의 글을 얼마나 대충 읽으려고 했는지 자책하게 됐다. 글 좀 쓰고 싶다는 핑계로 이러쿵저러쿵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심보를 나도 이제 버려야 할 내공 즈음 됐을 텐데, 아직도 키보드 앞에만 앉으면 손가락이 간질간질하다. 철이 덜 들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 ‘김연수’하니 그녀가 들려준 재미난 일화가 갑자기 기억났다. 홍대거리에서 작가들끼리 술을 마셨나보다. 반주에 기분이 좋아서 막대사탕을 사들고 서로서로 퇴폐적으로 쪽쪽 먹으면서 걷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지나가다가 김연수를 봤는지 “야, 김연수야. 김연수.”라고 소곤거렸단다. 그 소리를 들은 김애란이 술김에 “맞아요. 김연수에요. 김연수!”라고 소리 지르며 본의 아닌(?) 난동을 부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여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야, 김애란이야. 김애란.”이라고 했단다. 나는 공교롭게도 딱 이 때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앞자리의 남학생에게 폭우를 쏟을 뻔 했다.

 

 

 

 

 

  한편, 나는 “여자를 읽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학기에 나는 여자의 소설을 몇 편 읽었다. 박완서, 오정희, 권지예, 이현수, 공지영, 김애란. 방학 때 읽을 계획으로 윤고은과 전아리 소설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놨고, 김애란 장편도 읽어볼 생각이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신경숙과 은희경도 조만간 천천히 읽기 시작할 것 같다.


  나에게는 도전이다. 남성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담겨졌던 시선을 여성적 소재와 플롯에 담그는 것은 생경한 일이고 때론 신경이 곤두서거나 갑갑한 작업이 되기도 한다. 오정희를 읽고 내가 어머니에게 처음 한 말이 “여자는 이렇게 생각이 많아요?”였으니.


  사람은 으레 남도 저처럼 생각하겠거니, 한다. 더군다나 개인화가 됐다는 이 사회는 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타인의 이해를 구하려는, 그래 놓고 공감이니 뭐니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이걸 생각하지 않으니, 성질나면 찌르고 때리고 죽이는 것 아니겠는가. 즉자적으로. 나만 생각하면 마음의 정지(pause)가 생략되기 십상이다. 생각도 없다. 그래서 나는 [-female]이라 표기할 수 있을 ‘나’를 [+female]의 영역으로 가급적 붙여보려는 것이다. 여자를 읽는 시도를 부단히 해야겠다는 새삼스런 다짐을 이번 강연이 끝나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김애란은 그런 두려움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이 두려움이 공포가 아닌 경외의 정초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p.s  나는 성격이 그래서 뭐 한다고 하면 ‘차자작’ 가서 빨리빨리 하질 못한다. 숫기도 없고. 우물쭈물 서 있다가 거의 싸인 다 받았나 싶어 작가 옆으로 늘어선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 뒤에 가 쭈삣쭈삣 거리고 있었다. 말을 붙이려니 왜 이리 두근거리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뭐라고 좋은 말을 마지막에 해준 것 같았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버스 차창에 새겨진 나의 옆모습에게 한심하다는 듯 “야, 이 자식아.”라고 쏘아봤다. 하기야 작가를 만난 건 이번이 태어나서 처음이었으니, 아직까지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겠다. 잠은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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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1-2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직접 가볼수 없는 사람에게 단비같은 페이퍼였어요.

탕기 2012-11-29 22:40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북극곰 2012-11-2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김애란 작가가 한 말들을 정리해주신 부분, 저도 좋네요!

탕기 2012-11-29 22:41   좋아요 0 | URL
더 많이 적을 수도 있었는데, 강연이 강의가 될 것 같아서 어렴풋하게 기억만 하는 좋은 말들도 많아요. 다음 강연에도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락방 2012-11-2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에 대해 호기심(어쩌면 호감)이 생기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

탕기 2012-11-29 22:42   좋아요 0 | URL
저는 소설론 강의 때문에 반강제(?)로 읽었는데,
이번 방학 때에는 장편을 한 번 읽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2012-11-29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꽃나무 2012-11-2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작가를 만나셨군요..
소설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직접 만나면 작품에 대해서 더 잘 이해가 되더라구요~
잘보고가요^^

탕기 2012-11-29 22:45   좋아요 0 | URL
창작과정이나 동기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니까 이해가 빨리 되더군요.
보통 독자들은 작가가 뭔가 거창한 이벤트 때문에 작품을 쓸 거라 생각하는데,
가령, 저 같은 경우는 <물속 골리앗>이 그렇지 않았나 싶었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새삼 "작가도 사람이구나."라고 무릎을 친 기억이 있습니다.^^

2012-12-07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7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5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5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5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5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