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박가분아저씨 > 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안도현]

양철지붕에 대하여-[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하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
*'양철지붕에 대하여'를 읽다 보면
뜨, 뜨거운 어느 해 여름이 생각난다.
세월도 지나고 보면
나달나달 닳아진 실밥같은 거
숱한 추억처럼 흔적만 옛이야기처럼 희미한 거

그렇지
삶에도 적당한 은유가 필요하다면
그렁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
눈물 어룽어룽 잊혀진 노래가사도 생각나고....
쪼작쪼작 껌처럼 오래 씹으며 앙다물던 맹세도 생각나고...
죄처럼 상처를 둘렀으되 온전히 버텨온 지나온 길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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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12-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녹슬어 그렁그렁 속앓는 소리였구나.
너를 위해 나도 같이 녹슬어가는 소리.. 속앓음에도 몸 뒤척이지 못하는 그렁그렁 소리...
뜨거운 양철지붕의 빗소리에 저리도 가슴시린 사랑이 있었구나.

2005-12-1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12-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흠...그런 일이 있었군요. 난감하셨겠구려! 지난 여름 뜨겁게 내리쬐던 빨간 양철지붕 표지도 생각나고. 삐거덕 삐거덕 녹슨 못 자리가 바람에 힘겨워 하던 소리도 생각나고, 빗방울 연신 퉁탕퉁탕 거리던 양철지붕 못구멍 사이도 생각나고...

미네르바 2005-12-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양철 지붕 아래에서 빗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생각해 보네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아요.
양철지붕 아래서 빗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잉크님은 들어 보셨나요? 그냥, 궁금...^^

잉크냄새 2005-12-2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레르바님 / 아주 어릴적 기억이죠. 철 들고 나서는 한번 정도인가 경험이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