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차를 타면 인도가 새롭게 다가올겁니다" 
인도에서 기차를 처음 탄것은 도착후 열흘 정도가 지난 델리-자이살메르 구간이다. 무려 19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이기도 하지만 걱정거리는 처음으로 기차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만난 여행자들은 인도 기차를 즐겁고 이채로운 경험으로 이야기하는데 인도 여행전 수원에서 열린 어느 온라인까페의 여행설명회에서 가장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곳이 인도 기차였기에 막연한 상상을 하곤 했다. 배낭여행자들은 주로 이등석인 SL(Second Sleeper)을 이용하는데 처음 올드델리 역에서 자이살메르행 기차를 기다리다 바라본 이등석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으로 꽉 들어찬 객실 복도와 연결칸에 짐이 비어져 나올 정도로 싣는데 저곳에 19시간을 갇혀 실려간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본 열차칸은 또 다른 2등석인 ∥(Two) 이다. SL은 8개의 침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잠을 자기 전에는 두번째 침대를 젖히고 맨 아래칸에 옹기종기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때는 가만히 앉아서 현지인들을 한시간만 바라보면 길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긴 시간을 엉덩이를 부딪히며 마주보고 있으면, 어색한 인사나마 나누다보면, 아무말없이 건네는 음식을 받아들다보면, 대책없이 터져나오는 그들의 웃음소리에 휩싸이다보면, 그들의 코골이를 자장가삼아 잠이 들다 보면 그동안 그들에 대해 막연히 품고 있던 두려움이라든지 어색함이 하나둘 벗겨진다. 인도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꼭 기차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기전 잠이 덜깬 눈을 비비며 바라본 밤하늘에 기차 소리를 배경삼아 하얗게 흐르던 별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뛸테니.  



<인도 기차 - 어느 구간인지는 잊어버렸다>

자이살메르를 방문하는 많은 여행자의 목적은 샴 샌드 듄(Sam Sand Dune)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낙타사파리이다. 내가 방문한 목적도 다르지 않지만 그곳은 낙타사파리로만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자이살메르성은 인도 라자스탄주의 많은 성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곳으로 유적지만 덩그러이 놓여있는 다른 곳과는 달리 현지인의 삶이 녹아들어 골목골목 꼬마들의 수줍은 미소와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조심스레 쳐다보는 인도여인의 매혹적인 눈동자를 만나곤 한다. 자이살메르는 "골든 시티"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우는데 해질녘 성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은 물론이거니와 한낮의 골목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떨어지는 벽을 만지며 돌바닥을 걷노라면 흡사 황금성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아쉬운 점은 거주민들의 생활오수로 인한 지반침하로 성이 무너질 위험이 있기에 앞으로 10년안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유적지로 변할수도 있다고 한다. 황금빛 노을이 계속되는한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도 계속되었으면 한다. 천년의 숨결이 후욱 느껴지는 골목을 하루종일 헤매곤 했다. 



<자이살메르 골목 - 햇살이 비집고 들면 골든시티가 허명이 아님을 알수 있다>

"머드미러(Mud Mirror)"라는 동화속에 등장할것같은 숙소를 운영하는 친구는 20대 후반의 "수리아" 라는 청년이다. 그는 브라만 계급 출신이라 고기,양파,마늘은 보지도 만지지도 먹지도 못하지만 술과 담배는 몰래몰래 한다. 가끔 내 어깨를 툭 치며 담배를 피우자고 할땐 우린 2층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피웠으며 술은 한밤중 자이살메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의 어둠속에서 몰래몰래 마시곤 했다. 커다란 돌을 자르고 쌓아올린 옛건물 그대로를 숙소로 이용하는데 현재 방은 3개 뿐이다. 조만간 방을 2개 늘리고 그중 하나는 무료 도미토리로 사용한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흙냄새가 아직 남아있는 방은 한달동안 머물던 한국인 여성 여행자가 양탄자 유리로 그림을 모자이크하여 흡사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어느 숙소에 머무는 느낌이 든다. 한국인 여행자가 주로 이용하는 까닭에 한글 공부에 열심인 수리아를 위해 여행자들이 교재삼아 적어둔 한글 표현중에 틀린 맞춤법을 교정해주었다. 결혼후 출산을 위해 아내가 친정으로 떠난 7개월이 가장 자유로왔노라고 "Freedom!"을 큰 소리로 외치며 웃던, 투표용지에 "난 살인자를 뽑을수 없다" 라고 썼다며 인도정치를 개탄하던 브라만 친구를 한동안 잊지 못할것 같다.  



<Mud Mirror 숙소 벽 모자이크- 저 방에서 잠들면 아라비아의 꿈을 꾸리라>

사막에 비라니! 낙타사파리를 하는 이유는 낙타 등에서 흔들거리며 사막을 걷는 경험도 있지만 더 멋진 것은 칠흑같은 어둠속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이 드는 것인데 사막에 비라니. 오전부터 변덕을 부리던 날씨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는 온통 먹구름에 간간히 비가 흩뿌리곤 한다. 사막옆에 위치한 전통 마을의 가옥에서 밤을 보낼 것을 요구하는 낙타몰이꾼의 요청을 뿌리치고 무작정 사막 한가운데로 간다. 사막의 밤은 춥다. 캠프파이어용으로 가져온 나무는 한참 모자라기에 어두운 사막을 헤매며 나무를 모아 불을 지핀다. 바람이 불고 간간히 비까지 내리니 불을 밤새 지펴야할 처지이다. 일행과 순번을 정하여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한다. 내 순서가 되어 잠에서 깬 시간은 자정경이다. 담배 한개비를 피고 불을 뒤적이며 상념에 젖어 있으려니 문득 뒷쪽에서 인기척이 난듯하다. 살며시 손전등을 비추니 하얀 모래위에 온통 하얀털의 사막여우가 꼬리로 몸을 감싸고 엎드려 고개만 내쪽으로 돌린채 아무 동요도 없는듯한 눈동자로 한참을 응시한다. 사막의 추위에 쫓겨 모닥불까지 온걸까. 손짓으로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도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말을 알아들을것 같은 생각이 든 때문이다. 잠시후 살며시 일어나 모래둔덕을 넘어간다. 모래둔덕 위에서 한참을 다시 바라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사라져간다. 새벽녘 여우가 머물던 곳으로 가본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발자욱이 멀리 사막 너머로 이어진다. 한번 따라가볼까 싶은 호기심을 누르고 돌아온다. 가끔 세상에는 가슴속으로만, 그리움으로만 남아야할 대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막에서 만난 소년 - 다이하드 1편의 악당을 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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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2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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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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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2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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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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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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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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