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다보니...

헉슬리라는 이름이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물론 대부분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T. S 헉슬리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J. S. 헉슬리라는 이름도 인용된다.

이건 뭔가 있지...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헉슬리 가문의 계보를 추적했다. 무엇보다.....또 다른 헉슬리.....올더스 헉슬리는 나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작가 중 한사람이 아니던가!  중학생이던 무렵 읽었던 "멋진 신세계"는 어린 시절의 안락하고 포근한 껍데기를 깨뜨린 커다란 망치질 중 하나였다.

추적 결과...과연 헉슬리 가문은 보통 가문이 아니었다. 

엔간한 우리나라 백과사전을 들추어보면 헉슬리 항목에 다윈의 옹호자이자 그 자신이 유명한 진화론자였던 토마스 헨리 헉슬리와 그의 세 손자가 나란히 올라있다. 가장 형인 줄리언 소렐 헉슬리(줄리언 소렐...뭔 소설에 나오는 이름 아니던가? 이름 오지게 이쁘다....)가 지금 내가 번역하는 책에 인용된 진화학자 및 동물학자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다음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이고...가장 아래인 앤드류 휠딩 헉슬리는 신경생리학자로 196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과학애호가로서의 관심이 대한민국 열성 맹모로서의 관심으로 돌변한다.

아니 얘네들 엄마는 아이들을 어찌 키웠길래 하나도 나오기 힘든 메가톤급 "가문의 영광"을 삼연타로 뽑아냈다는 말인가? 헉슬리 가문의 교육 어쩌구 하는 책이 나왔을법도 한데...(우리나라 출판시장 같으면 수십권은 울궈먹고도 남을 재료다!)...하고 바로 아마존 검색 들어가 주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천박한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줄만한 대어를 건지지 못했다. 단지....올더스 헉슬리의 다른 저작들(소설, 에세이)이 제법 많이 있고..(그토록 충격적인 작품의 작가인데...왜 그 동안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그에 대한 전기...그리고 그의 사후에 부인이 쓴 회고록 같은 책들이 눈에 띄었다......헉슬리의 다른 작품들은 "죽기 전에 읽어보아야 할 책" 목록에 살포시 보관되었다....

Wikipedia 등에서 알아낸 헉슬리 가족과 올더스 헉슬리의 삶은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8명의 아이를 낳은 올더스의 어머니는( 유명한, 그러나 나는 전혀 모르는 영국의 문인 매튜 아놀드의 가문 출신이라고 한다.) 올더스가 열네살때 병으로 죽고 같은 해에 누이동생도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형 하나는 자살했다고 하고.... 

생물이 수많은 개체를 생산하고....그 중에서 자연 선택의 무자비한 체에 걸러진 오직 소수의 개체만 살아남고 심신이 나약하거나 불운한 다수의 개체들은 제거되는 잔혹한 진화의 법칙....the survival of the fittest의 법칙이 이 진화론의 전당과도 같은 가문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던 것일까........

아무튼 부모 입장에서는...아무리 자식이 기사 작위를 받고, 1000년 뒤에도 남을 작품을 쓰고, 노벨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런 불행을 댓가로 치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노벨상을 받은 앤드류 헉슬리는 새어머니가 낳은 아들로 올더스와는 배다른 형제이다.)

어찌되었든......헉슬리 가문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가슴을 뛰게 만드는...그리고 호기심과 질시와 존경과 애정이 뒤범벅된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가문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가문(가족)의 예를 들자면...세이건가 정도???

난 연예인들의 사생활보다 이런 사람들의 사생활......이 몹시 궁금하다. 별 하나만으로도 그 광채가 휘황찬란한데...한 가족, 한 가문이 빛나는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걸 보면,,,,그야말로 눈이 부셔 뜰 수 없을 지경이다....별의 탄생...별들의 전쟁....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낳고 지지고볶고 키우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서로 돕고 희생하고, 현실과 불멸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는지....무척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평전류를 무척 좋아한다. 물론 일차적으로 내가 관심 있는 주인공의 평전이겠지만...전반적으로 평전이라는 쟝르를 좋아한다.  일종의 관음증일 수도 있다....유명인의 안과 겉, 음지와 양지, 고통과 기쁨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기쁨..........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전류의 책이 모 아니면 도다. 아주 유명한 인물의 전기, 읽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약간 self-help류의 전기가 아니고서는 별로.....잘 안팔리는 듯 하다.

어린 시절 억지로 읽었던 구리구리한 위인전(칭찬과 찬양 일색의...어거지로 교훈을 잔뜩 주입한...)에 대한 반감이 진솔하고 인간적인 평전을 읽는 재미를 아예 앗아갔거나...아니면 아예 전기에서 그런 교훈과 찬양만을 기대하도록 만들어버린게 아닐까....

아...또 옆길로 샜다. (지금도 마감 앞두고 눈썹 휘날리며 번역하다가...헉슬리라는 단어 하나에 옆길로 새서...오전을 홀라당 날렸다...)

아무튼 덕분에 오랫동안 막연히 동경해오던 헉슬리 가문의 빛과 그림자를 어느 정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뽀너스로 알게된 잡다구리한, 그러나 잼있는 상식!

- 올더스 헉슬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헐리우드에서 영화 스크립트를 많이 썼는데 그 중에 디즈니 원작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있다.  집에 이 영화의 DVD가 있는데...확인해봐야겠다!

-올더스 헉슬리는 존 F 케네디와 C. S. 루이스와 같은 해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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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2-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

진주 2006-02-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슬리들의 어머니보다 제가 보기엔 님이 더 대단하십니다-집요한 검색 능력!!

톡톡캔디 2006-02-2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매튜 아놀드는 빅토리아 시대 작가로 제가 넘 넘 싫어하는 도덕적인 + 제국주의 찬양조의 작품을 잔뜩 남겼습니다.

톡톡캔디 2006-02-2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도 곧 제가 아는 계보 하나 올리겠습니다. ㅎㅎ

이네파벨 2006-02-28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________^
진주님/어설픈 지식으로 번역을 하다보니 느느니 검색실력뿐이랍니다. 번역가들은 www.google.com 사이트를 "구글신"이라고 부르죠..
톡토캔디님/ 매튜 아놀드가 그런 작가였군요...올더스 헉슬리의 엄마 성이 아놀드이고..그 매튜 아놀드의 조카쯤 되는거 같던데요...그 엄마쪽 계보를 보니까 매튜뿐만 아니라 거의 전 가족이 문명(文名)을 떨쳤더군요...올더스의 문학적 재능은 외가쪽에서 온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고요...SF와 영문학에 정통한 톡톡캔디님은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요...그가 <멋진 신세계>에서 던진 화두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하죠...아니 더 한 층 실감난다고 할까요...?

아, 톡톡캔디님이 올리실 계보도 벌써 궁금하네요^^

2006-06-29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3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과학의 발견 옥스퍼드 주니어 사이언스 1
찰스 테일러 외 지음, 김동광 옮김 / 비룡소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조리있는 설명과 엄선된 풍부한 사진들...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해도 빨려들어갈 듯 흥미와 매혹을 느낄만한 책이다.

주니어 과학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각 분야를 꽤 깊이있게 (그러나 어렵지 않게!) 다루고 있기때문에 어른들이 교양서로 읽기에도 좋을 듯 하다.  하드커버 양장에 좋은 종이질, 아름다운 최고 수준의 화보(실사 사진과 그림들)는 coffee table book으로도 손색이 없다.

책의 구성을 보면 감각과 지각으로 부터 시작해서 주변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자연과 개념(빛, 소리, 생물 등)을 다루다가 차츰 차츰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들(힘, 에너지, 기계, 신체, 전기전자, 시간여행)로 나아가는 식이다.

과학 전 분야의 개론서로, 본격적으로 과학책을 읽고자 하는 모든 독자(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에게 흥미를 돋우워줄 애피타이저와 같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에게 선물로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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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2-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좋은 책이라 거금주고 샀는데 아이가 거들떠도 안봐서 속상해 하고 있어요..ㅜㅜ(제가 너무 일찍 산 탓도 있어요. ^^;; 초등 3학년이 보기에는 쪼끔 어렵더군요.)

이네파벨 2005-12-2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반갑습니다. 초등 3학년이면 좀 어려울것 같긴 하네요...어른 눈높이에도 적당하니까요.....하지만 아이들 크면 나중에 제 값을 할겁니다.^^
 
 전출처 : 로쟈 > 2005년의 번역 트렌드(자연/사회과학)

2005년의 번역 트렌드(인문학)에 이어지는 글이다. 역시나 12월 02일자 교수신문에 게재된 이은혜 기자의 기사를 옮겨놓고 몇 마디 보태도록 하겠다.  

 

 

 

 

-자연과학은 각 분과뿐 아니라 과학철학도 포함하는 매우 방대한 영역이지만, 몇몇 이론들로 편중돼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우선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이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다. 올해에만 <조상 이야기>(이한음 옮김, 까치글방), <에덴의 강>(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악마의 사도>(이한음 옮김, 바다) 등 세 권이 출간됐다. <이기적 유전자> 이후 계속되는 ‘도킨스 붐’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계열로 <인간본성에 대하여>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과 <빈 서판>의 저자 스티븐 핀커가 있다. 윌슨 역시 올해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최재천 외 옮김, 바다)와 <통섭>(최재천 외 옮김, 사이언스북스)이 번역됐는데, 이들 모두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분야 역시 전공자들이 부지런히 발벗고 나선 탓에 널리 읽히고 있었다.

도킨스나 윌슨의 책들은 나 자신도 즐겨 읽으니 그들의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게 전혀 유감일 리는 없다. 하지만, 도킨스나 윌슨이 '유전자 결정론자'로 지목되는 것은 유감이다(왓슨이라면 모를까). 기자의 관심분야의 인문학(특히 종교학) 쪽이어서 다소 편향된 의견을 제시한 게 아닌가 싶다(그러니 우리는 좀더 계몽될 필요가 있다!) 이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에덴의 강>은 이전에 출간된 것이 재출간된 것이니까 올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번역자는 이한음, 최재천 등이다. 특히 최재천 교수는 도정일 교수와 <대화>(휴머니스트)도 책으로 펴냈으니 그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인다(이 책은 연말에 내가 꼽꼬자 하는 '올해의 책'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지난 주말에 <대화>를 좀 읽으며 떠올린 책은 존 브로크맨이 기획한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이다. 23명의 저명한 과학자 글쟁이들이 참여하여 C. P. 스노우의 <두 문화>(민음사, 1996; 사이언스북스, 2001)에 (게으론 인문학자들과는 달리) 자연과학자 23명이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는 모양새를 과시하고 있는 책이다(내용은 아주 훌륭하지만 만듦새는 미적 감각을 결여하고 있는 좀 부실한 책이다. 재출간되었으면 싶다. 편자의 말대로 임의적이긴 하나 23명의 책들과 함께).  "<두 문화>는 1959년에 5월 7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전통적인 연례 리드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사이언스북스판은 "당시 강연 제목은 <두 문화와 과학 혁명>이었다. 이 강연의 내용을 1부로 싣고, 2부는 4년 뒤인 1963년의 시점에서 앞의 강연과 관련하여 그때까지 제출된 논평과 반응, 비판들을 지은이가 직접 정리하고 해명하고 추가한 글을 실었다. 또 마지막 3부에는 90년대의 시점에서 스노우의 강연을 바라본 스테판 콜리니의 해제가 실려 있다."

 

 

 

 

<두 문화>를 나는 오래전에 박영문고판으로 읽었었는데, 줄기세포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한번쯤 다시 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지적 사기>(민음사, 2000)니 '과학의 사기'니 하는 논란의 틈새에서 문제를 원론적으로 재고해보는 일인 듯싶어서이다. <악마의 사도>에서의 도킨스처럼 인문학의 '지적 사기'에 대한 비판에 통쾌해 하는 만큼, 한편으론 <기술, 의학, 윤리>(솔출판사)에서 한스 요나스가 의학/기술의 윤리에 대해 윤리적 반성을 요청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이고 교양인 듯싶다. 해서, 우리의 뇌는 '원론적으로' 다시 단련될 필요가 있다. 다윈을 읽지 않는 문학도를 나는 신뢰하지 않으며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지 않는 과학도를 나는 (비록 좋아할 수는 있지만) 존경하지 않는다. 전공이 있지 않느냐고? '밥벌이의 지겨움'은 '교양'과 구별되어야 한다('교양'이란 밥먹을 때 서로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는 깜냥을 뜻한다. 먹는 건 도그나 카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유독 같은 계열의 이론만 과도하게 소개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상원 포항공대 교수는 “진화생물학자들과 반대의 입장인 로우즈나 굴드, 르원틴 같은 이들을 함께 접해야만 균형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로우즈의 저서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굴드는 <인간에 대한 오해> 등이, 르원틴은  등이 번역돼 나왔다.(*로우즈, 굴드, 르원틴의 책들도 '우려'를 씻어줄 만큼은 출간됐다. 도킨스의 맞수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만 하더라도 10여 권이 번역/출간돼 있다. 그러니 균형을 잡는 데 별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과학철학 쪽에선 교과서나 다름없는데 올해에야 출간된 것이 이언 해킹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이상원 옮김, 한울)다. 언어철학쪽 저서가 소개된 바는 있지만, 그의 과학철학서가 이제야 빛보게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번역을 감당할 이가 적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과학철학 분야가 철학에서 다뤄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자연학과의 거리감 때문에 전문번역가나 또는 한정된 과학철학자들이 소화해야만 한다”는 지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탓에 해킹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The Social Construction of What?’도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해킹의 책에 대해서는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나도 소개한 바가 있다. 그의 다른 책들도 물론 언제든 환영이다.) 

 

 

 

 

-해킹 뿐 아니라, 과학철학 쪽에 파이어아벤트나 라카토스 등의 번역도 학문적 중요성에 비해 번역성과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라카토스의 경우 지난 2002년 <수학적 발견의 논리>와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이 출간된 반면, 파이어아벤트는 1987년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이 번역된 후 절판됐고 그 이래 역서가 단 한권도 나오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 

라카토스의 주저들은 번역된 듯한데, 더 번역되어야 하는 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헝가리 출신의 과학철학자에 대해서는 지난 8월에 이상욱 교수가 한겨레 지면에 소개한 바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흔히 '포퍼와 쿤 사이'로 입장이 규정되는 라카토스(라카토슈)가 '현대과학철학 논쟁'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이들의 포지션은 '파이어아벤트--쿤--라카토스--포퍼'로 정리하면 된다). 이상욱 교수에 따르면, "라카토슈는 파이어아벤트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포퍼주의자로 출발했지만 역시 파이어아벤트와 마찬가지로 점차 포퍼의 견해가 지닌 여러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지적으로 훨씬 자유분방했던 파이어아벤트는 포퍼와 쿤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길 원했지만, 라카토슈는 쿤을 따라 과학의 역사적인 실제 전개과정에 충실하면서도 포퍼를 따라 여전히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견해를 제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전히 포퍼식의 개인주의적 자유를 강조하면서 쿤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상대주의 과학관을 밀고나간 파이어아벤트와 죽을 때까지 좋은 맞수이자 친구로 지냈다."

"라카토슈는 파이어아벤트가 런던정경대학에 잠시 머물며 강의할 때 강의실 바로 앞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서 나와 파이어아벤트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져대곤 했고, 두 숙적의 눈부신 토론을 지켜보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할 수 있었던 당시 학생들은 너무나 즐거워했다고 한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어느 날 라카토슈가 자신은 과학적 방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쓰고 파이어아벤트는 왜 쓸모없는지를 써서 함께 묶어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과학방법론을 위하여 그리고 반대하며(For and Against Scientific Method)>라는 책을 함께 내기로 했다. 그러나 라카토슈가 197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파이어아벤트는 결국 자신의 부분만 홀로 출판하게 되고 이 책이 파이어아벤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반 과학방법론>이다."

<방법에의 도전>(한겨레, 1987)은 그 <반과학방법론>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방법론적 '무정부주의자'로도 불리지만, 파이어아벤트(1924-1994)에게 보다 적합한 호칭은 누군가의 말대로 '다다이스트'이다. 말년에 쓴 자서전의 제목이 <킬링 타임>인 것도 그답다. 그의 책들이 좀더 소개되었으면 한다. 비록 학부때 사둔 <방법에의 도전>은 아직도 완독하지 않았지만 <킬링 타임>만큼은 단번에 읽어볼 용의가 있다(우리의 시간을 죽이는 데 혹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

 

 

 

 

-가장 유명한 과학철학자로 꼽히는 토머스 쿤 역시 이름값에 비례하는 저술들은 소개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올해 쿤에 대한 연구서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 외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이 소개됐지만, 저서는 <과학혁명의 구조> 외엔 없다. 최소한 ‘The Essential Tension’, ‘The Road since Structure’ 정도는 번역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이 외에도 과학 쪽에선 우주에 관한 물리학 저서들이나 아인슈타인과 관련한 책들, 생명윤리에 관한 책들이 활발히 출간됐다.(*그러고 보니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이 대부분 과학철학쪽이다. 이건 유사-자연과학 아닌가?! 더불어, '학계의 의견'은 어느 학계의 의견인지? 번역을 담당해야 할 당사자들 같은데...) 이어지는 건 사회과학 분야이다.

-사회과학 쪽 번역상황은 시의성과 관련해 팔리는 책 중심으로 과도하게 시장이 형성된다거나, 이데올로기적 지형 내에서 이뤄지는 번역들, 나아가 몇몇 출판사들이 저항담론 위주로 출판을 집중하고 있는 까닭에 그리 풍부하지 않은 출판상황에서 번역구도는 단순하게 그려지는 편이다. 특히 공급이 수요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 상황이라, “학문의 저변을 확대시키기 위한 필독서 수준의 번역보다는 일부 인기 사상가들의 번역이 과도하게 치중돼 번역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몇몇 전공자들의 지적이다.

 

 

 

 

-그중 최근에 가장 많이 빛을 봤던 게 촘스키의 저서들이다. 올해엔 <지식인의 책무>(강주헌 옮김, 황소걸음 )와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송은경 옮김, 북폴리오) 등 두 권이 출간됐지만, 지난해 촘스키에 대한 번역서가 7권 나왔던 걸 보면 ‘촘스키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한 신문칼럼에서 “촘스키는 병적인 반미주의자로 미국의 진보진영도 멀리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한국 출판계의 기이함(?)을 지적한 바 있다.(*'두 권'이 나왔다는 건 이달초까지의 얘기이고, 12월에도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3권이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에, '촘스키의 시대'는 여전하다고 해야겠다. 비록 '미국의 진보진영'도 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네티즌들이 뽑은 '세계의 지성'에도 1위에 오른 걸 보면, 그의 '영향력'은 인정해줘야겠다. '촘스키의 시대'와 맞물려 있는 것이 국내에서는 '강준만의 시대'이다. 그는 올해도 6권 이상의 책을 펴냈다.

 

 

 

 

-물론 이 역시 동일선상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나온 발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출판계에서 저항담론의 출판이 우세한 건 사실이다. 그중 몇몇을 살펴보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영광 옮김, 갈무리),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윤길순 옮김, 당대), 마이클 만의 <분별없는 제국>(이규성 옮김, 심산)이 출간됐다. 또 <새로운 제국의 도전>(레오 파닛치 지음, 진보저널읽기모임 옮김, 한울)이나 아룬다티 로이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정병선 옮김, 시울) 등도 마찬가지 위치에 놓여질 것이다. 

이 중 하워드 진의 책은 모노드라마이다. 드라마를 써도 그의 책은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것!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반미 지식인으로 꼽히는 하워드 진 관한 글로 올해 내가 흥미롭게 읽은 건 그의 이 아니라 대담이다. 지난 11월 문화일보 지면에 실린 것인데, 대담자는 'Global Talk'란을 연재하고 있는 이미숙 워싱턴 특파원이다(이 연재 때문에 나는 다른 특파원들이 얼마나 게으른가를 알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원망을 듣지는 않을는지).

 

 

 

 

국내에 자서전 <다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포함해 여러 권의 책들이 번역/소개돼 있는 이 걸출한 좌파 지식인의 대담에서 흥미로운 대목 몇 가지. 먼저 83세인 그의 건강 비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나는 기본적으로 기분좋게 살아왔다. 많이 웃고, 인생을 즐겼다.”고 답한다. 조금 더 설명을 들어보자.

 ―당신이 그간 써온 글과 책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무거운 것들 인데, 인생을 즐겁게 살았다니 믿기지 않는다.

“내가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인생은 원 래 진지한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즐겨야한다. 친구와 세계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많이 웃고, 젊은이들의 생각을 접하고 함께 생 활하는 것, 이것이 내가 말하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건강유지를 위해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이나 운동이 있는가.

“토마토와 바나나 등 과일을 많이 먹고, 굴, 새우, 조개, 그리고 파스타를 아주 좋아한다. 테니스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요즘엔 산책으로 바꿨다.” 그는 음식얘기를 하다가 빼먹은 게 있다는 듯이 ‘참’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부인 로즐린과 60년 이상 함께 살아왔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은근히 부인자랑을 했다. 그는 22세가 되던 지난 19 44년 결혼했는데, 당시 로즐린은 21세였다. 두 사람은 남매를 낳 아 키우며 61년째 함께 살고있다.(*그러니까 오래 '운동'을 하려면 굴, 새우 등을 많이 먹고 배우자와 해로해야 한다는 것.)

―한국의 사회운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은 지나치게 무겁게 삶을 접근하는데.

“물론 정의를 위한 싸움은 진지하게 해야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도 늘 인생을 즐겨야한다. 만약 삶의 즐거움을 도외시한채 사회 운동만 하려든다면 그런 인생은 너무 무미건조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경우 젊은이들을 새롭게 사회운동에 끌어들일 수 없다.”

 ―진지함과 즐거움을 어느정도로 조화시켜야하나?

“누구나 100% 진지하게 살수는 없다. 굳이 수량화하라면, 9대 1 정도로 진지함과 즐거움을 배합해야하지 않을까.”

조금 건너뛰어서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그에게 기자는 한국에서의 반미정서에 관해 질문했다.

―미국의 진보주의 역사가로서, 한국의 반미정서를 어떻게 보는 가.

“한국 젊은세대의 반미감정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한다. 그런 데 알아둬야할 것은 미국정부에 대한 비판과 미국사람들 일반에 대한 비판을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우고있다. 반미정서를 가진 한국 젊은이들은 이런 건강한 미국인들과 연대해 함께 싸웠으면 좋겠 다.”

―한국에서는 당신의 책들이 반미주의 교과서로 읽히는데.

“한국 젊은이들에게 내 책이 반미주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잘못 읽는 것이다. 나는 미국을 좀 더 살기좋은 나라로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지 미국자체를 부 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반미주의와 친북적 사고의 친화력이 아주 강하다.

“한국의 반미정서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우호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부패한 이념의 관료독재 국가일 뿐이다. 국민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사회주의국가인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충고는?

“세계 역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야 한 다. 이게 내가 평생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온 이유이고, 미 국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 책을 써온 이유다. 한국의 젊은이 들에게 정말 말하고 싶다. 반미시위를 하는 대신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싸우라고.”(*'북한의 인권개선'이란...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인 하워드 진도 한국식 기준에 따르면 '수구우파' 정도 되겠다. '북한인권' 문제만을 잣대로 한다면 말이다. 한국의 좌파는 세계 최강의 좌파인가?) 다시 번역 트렌드로 넘어간다.

 

 

 

 

-물론 보수주의 쪽 견해도 반짝 기운을 입었다. 잘 팔리는 사상가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강한 국가의 조건>(안진환 옮김, 황금가지)뿐만 아니라 <더 라이트 네이션>(존 미클레스웨이트 외 지음, 박진 옮김, 물푸레) 등과 같이 네오콘의 붐은 지난해에 이어 좀 남아 있다.(*네오콘 관련 역서로 <미국의 힘>을 추가해놓는다.)

 

 

 


-그래도 이론쪽에서도 역시 틈을 두지 않고 출간되는 건 사회주의나 노동계급에 관한 번역이다. 올해 이들 관련 번역서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책갈피),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스티븐 레스닉 외 지음, 신조영 옮김, 이후), <노동의 힘>(비버리 실버 지음, 백승욱 외 옮김, 그린비) 이 출간됐다.(*모처럼 소장하고 있는 책 두 권이 나와서 반갑다.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에 대해선 나도 소개한 적이 있다.)

-보수건 진보건 사회과학계열은 시장논리와 이론적 입장이 상당한 작용을 하는 곳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학과 교수는 “제3세계적 취향을 만족시켜준다는 차원에서 계속해서 저항담론 쪽만 번역이 되고 있는데, 일반 학생들은 이런 비주류적 사상들을 주류로 오해할 수 있다”라며 비판한다. 이기홍 강원대 교수도 “촘스키를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그가 계속 번역되는 이유는 우리시장에서 팔리기 때문이다”라면서, “한국의 시장은 기묘하게 짜여져 있다.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사회과학의 기반을 다지는 게 아닌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한다. 이충훈 뉴스쿨대 박사과정생의 의견도 귀담아들을만하다. 이 씨는 “사회과학에서 번역은 이슈 중심이어야 하지만, 이것은 시류 편승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예전에 국가의 검열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시장의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이씨는 ‘이슈중심의 번역’이란 “시장 상황에의 종속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문제에 대한 공적 여론에 구성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면서 이를테면 시장의 시선 때문에 번역되지 않는 예로서 젱하스의 ‘The Clash within Civilizations’나 식민지시대 과거청산에 실패했을 때 사회가 어떤 파국을 맞을 수 있는가를 르완다 학살을 통해 탁절하게 분석한 맘다니의 ‘When Victims become Killers’ 역시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근 방법론 쪽에서 로이 바스카의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 <비판적 자연주의와 사회과학>(이기홍 옮김, 한울) 등이 나왔고, 정치사상 쪽에서 조지 세이빈 등 옛날의 정치사상 개론서와는 좀 달리 씌어진 <정치사상의 이해 I>(폴 슈마커 외 지음, 양길현 옮김, 오름) 등이 나왔다.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의 저자는 (역시나 저명한 실재론자인) '로이 바스카'가 아니라 '마가렛 아처'이다(기자의 착오인 듯). 정치사상 관련서로는 스티븐 엔릭 브론너의 <현대 정치와 사상>(원제는 Ideas in action)도 올해 나온 책이다.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이상이 올 2005년의 번역 트렌드였다고 한다. 비교적 덜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역시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없군!).

05. 12. 12.

 

 

 

 

P.S. 날짜를 적어놓고 보니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26년째 되는 날이군.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세월 같지도 않은 한 세월을 살아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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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공들여 힘들여 말씀하시다가...
중간중간 목소리가 떨리고 울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시더군요.

발표문은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모든걸 다 솔직히 인정했고...
더 이상이랄 수 없을만큼 몸을 낮추고 모든걸 버린 고백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과학과 윤리는 인류를 이끌어온 두 개의 수레바퀴이다. 앞서나가는 과학을 윤리가 미처 쫓아오지 못해 벌어진 혼란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더랬죠...

윤리..윤리...하는데 황교수 연구가 처음부터 윤리의 타겟이 된것은 사실 인간복제 가능성 때문 아니었던가요?

웬 난자가지고 갑자기 난리난리들 치는지...

그보다 비윤리적인 일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세상 아닌지???

어차피 절대적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삼척동자도 아는 세상에서
윤리는 사람들의 합의...."상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물론 생명과학법이니 과학자 커뮤니티의 윤리 규정을 포함 윤리의 embodiment인 법규 역시 중요한 것이고 지키라고 만들어놓은 것이지만...
매매에 의한 난자공급은 우리나라 생명과학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시행된 일이고
연구원의 난자제공 역시 사후에 알게된 일인걸...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도 말씀하셨듯 "법"을 어겼으면 벌을 받아야 할거고 "규정"을 어겼으면 국제 과학계에서 배척을 당하실수도 있겠죠.
암튼 받을거 다 받고 다 털고 용기 잃지 않고 꿋꿋이 앞으로 나가셨으면 합니다...

지분이 어떻고 특허가 어떻고 하지만 황교수님이 돈이나 명예를 쫓으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이런 순진한 믿음마져도 개박살을 내야 속이 시원한 인간들도 꼭 있죠.)

또 돈을 쫓으면 또 어때서요???? 돈을 안쫓고 보상을 안바라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여하간의 이유로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이 그 대가를 받는 것이나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보이고 별로 주목하는 사람도 없던 프로젝트의 초기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병원 이사장이 특허의 지분을 받는 것이나
그걸 가지고 딴지거는 인간들은 내킨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휘젓고 흠집내고 다니면서 그 대가로 잘난 회사에서 월급은 안받는지 물어보고 싶더군요.

(전 모 프로그램을 봤는데...폭로니 뭐니 그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멘트 하나하나가 수준 이하에 명백하게 "의도"를 가지고 흠집내는 방향으로 나가는데다가 전반적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더군요.)

너무 흥분했습니다. 황우석박사님 부디 지금 시련 이겨내시고 보란듯 다시 일어서셔요...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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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5-11-24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 짝! 짝! (박수소리) ^ ^

야클 2005-11-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태우스 2005-12-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싸이언스 논문이 조작 의혹을 받는거군요!
 

아이들과 점심을 먹는데 장래희망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큰 아이 수형이는 과학자가 될거라고 하고 작은 아이 소민이는 의사가 될거라며 어느 직업이 더 좋은지를 놓고 둘이서 설전을 벌였다. (참고로 큰 놈 일곱살 작은 뇬 다섯살)

둘이 뭐라뭐라뭐라 떠들더니 나에게 심판질을 요청했다. "엄마, 의사랑 과학자랑 뭐가 더 좋아요?"

난 원만하게 두 직업을 화해시켜주고자..."의사도 과학자나 마찬가지야. 사람 몸이랑 병을 연구하는 과학자."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수형 said...."에이.......목에서 가시빼는건 별로 어렵지 않을거 같은데? 그게 무슨 과학이예요?"

(ㅋㅋㅋ 애들아빠가 이빈후과인데 생선먹을떄마다 하도 가시조심 가시조심 잔소리를 해서 수형이 머리에는 "의사=가시빼는 사람"으로 각인된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시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는거 같아서 나름대로 의사라는 직업의 훌륭한 점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다시 수형이....

"난 그래도 의사 되기 싫어. 환자가 입 쩍 벌리면 입냄새날거 같아!"

난 속으로 박장대소했다. 과연 너는 내 아들이다. 욘석아!!!!

쿤데라의 불멸에서...아녜스가.....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더라도 만일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그의 콧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면....(이었던가...아무튼 그의 코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와 함께하기를 포기하겠노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

쿤데라가 편애한 여주인공들은......"몸"과 화해하지 못하고....자신의 몸이든 타인의 몸이든...... "몸"을 당혹스럽고 때론 혐오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마주했다.

아녜스는 죽은 뒤 육체를 남기고 떠나는 세상, 우연과 몰개성의 집약으로서의 얼굴을 혐오했고....몸과 자아와의 어색하고 부조리한 동거관계를 넘어서는 구원의 순간으로 섹스를 탐닉했다.

테레사에게 몸은 어머니의 세계였고 토마스의 정부들의 세계였고 그녀의 영혼을 꽁꽁 가둔 감옥이었고.....그녀는 그 몸의 세계에 대한 일종의 반항 내지는 결전의 심정으로 낯선 남자와의 성적 모험을 감행한다.

그녀들은 영혼이니 정신이니 하는 공중누각을 쌓아올렸던 심신이원론적 사상의 희생물들이었을까?

글쎄......

나는 마음이 몸의 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치의 여지도 없이 굳게 믿는 사람이지만...그렇다고 해서 몸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거나 "나의 몸=나"라는 공식에 더 익숙해지지는 않더라....

나는.....

몸이 주는 기쁨(오르가즘? runner's high?? 온천욕????...일단...몸땡이를 움직여서 얻는 기쁨에 한정하자. 시각, 청각, 미각 등등은 빼고...)보다 몸이 주는 고통(웬갖 잔병치레..통증들...공포의 체육시간...)에 더 민감하고

몸의 아름다움(어리고 젊고 탐스러운 몸들....)이 몸의 추함(늙고 추하고 냄새나는 몸들...그리고 뭣보다 죽은 몸.....게다가....당혹스러운 몸의 내부는 어떻고...)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몸들은 추한 상태로 귀결된다.)

엄밀하게 말해서.....지금 이런 생각하는 바로 이 주체가...단지 이 몸뚱아리의 시종이고, 그림자이고, 부록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도...이 시종이고, 그림자이고, 부록에 지나지 않는 무언가는 멍청하고 요령부득이고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제 주인을 마구 씹어대며 한 평생 갈 것이다...아마....

이런저런 이유를 붙였지만 몸에 대한 태도는 아마 기질적인 듯 하다.

수형이가 나를 닮았다면 아마....입냄새도 몸냄새도 전혀 날 리 없는....고도로 추상적인 세계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녀석을 핑계로 난다긴다하는 수학학원 설명회들은 빠짐없이 찾아다니고 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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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0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냄새도 몸냄새도 전혀 날 리 없는....고도로 추상적인 세계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ㅋㅋㅋ 이 글 너무 재밌어요. ^^

이네파벨 2007-10-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넘 오래되어 저도 낯선 글을...
(아들녀석 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2년은 됐네요..)
바쁘신 딸기님이 누추한 제 서재의 먼지나는 구석의 글까지 뒤적여 읽어주시다니...
그저 영광입니다요~ *^^*

딸기 2007-10-04 13:17   좋아요 0 | URL
ㅋㅋ 영광이라니요 저 이런 짓 잘해요, 남의 집 가서 속속들이 뒤지고 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