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다보니...

헉슬리라는 이름이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물론 대부분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T. S 헉슬리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J. S. 헉슬리라는 이름도 인용된다.

이건 뭔가 있지...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헉슬리 가문의 계보를 추적했다. 무엇보다.....또 다른 헉슬리.....올더스 헉슬리는 나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작가 중 한사람이 아니던가!  중학생이던 무렵 읽었던 "멋진 신세계"는 어린 시절의 안락하고 포근한 껍데기를 깨뜨린 커다란 망치질 중 하나였다.

추적 결과...과연 헉슬리 가문은 보통 가문이 아니었다. 

엔간한 우리나라 백과사전을 들추어보면 헉슬리 항목에 다윈의 옹호자이자 그 자신이 유명한 진화론자였던 토마스 헨리 헉슬리와 그의 세 손자가 나란히 올라있다. 가장 형인 줄리언 소렐 헉슬리(줄리언 소렐...뭔 소설에 나오는 이름 아니던가? 이름 오지게 이쁘다....)가 지금 내가 번역하는 책에 인용된 진화학자 및 동물학자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다음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이고...가장 아래인 앤드류 휠딩 헉슬리는 신경생리학자로 196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과학애호가로서의 관심이 대한민국 열성 맹모로서의 관심으로 돌변한다.

아니 얘네들 엄마는 아이들을 어찌 키웠길래 하나도 나오기 힘든 메가톤급 "가문의 영광"을 삼연타로 뽑아냈다는 말인가? 헉슬리 가문의 교육 어쩌구 하는 책이 나왔을법도 한데...(우리나라 출판시장 같으면 수십권은 울궈먹고도 남을 재료다!)...하고 바로 아마존 검색 들어가 주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천박한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줄만한 대어를 건지지 못했다. 단지....올더스 헉슬리의 다른 저작들(소설, 에세이)이 제법 많이 있고..(그토록 충격적인 작품의 작가인데...왜 그 동안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그에 대한 전기...그리고 그의 사후에 부인이 쓴 회고록 같은 책들이 눈에 띄었다......헉슬리의 다른 작품들은 "죽기 전에 읽어보아야 할 책" 목록에 살포시 보관되었다....

Wikipedia 등에서 알아낸 헉슬리 가족과 올더스 헉슬리의 삶은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8명의 아이를 낳은 올더스의 어머니는( 유명한, 그러나 나는 전혀 모르는 영국의 문인 매튜 아놀드의 가문 출신이라고 한다.) 올더스가 열네살때 병으로 죽고 같은 해에 누이동생도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형 하나는 자살했다고 하고.... 

생물이 수많은 개체를 생산하고....그 중에서 자연 선택의 무자비한 체에 걸러진 오직 소수의 개체만 살아남고 심신이 나약하거나 불운한 다수의 개체들은 제거되는 잔혹한 진화의 법칙....the survival of the fittest의 법칙이 이 진화론의 전당과도 같은 가문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던 것일까........

아무튼 부모 입장에서는...아무리 자식이 기사 작위를 받고, 1000년 뒤에도 남을 작품을 쓰고, 노벨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런 불행을 댓가로 치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노벨상을 받은 앤드류 헉슬리는 새어머니가 낳은 아들로 올더스와는 배다른 형제이다.)

어찌되었든......헉슬리 가문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가슴을 뛰게 만드는...그리고 호기심과 질시와 존경과 애정이 뒤범벅된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가문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가문(가족)의 예를 들자면...세이건가 정도???

난 연예인들의 사생활보다 이런 사람들의 사생활......이 몹시 궁금하다. 별 하나만으로도 그 광채가 휘황찬란한데...한 가족, 한 가문이 빛나는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걸 보면,,,,그야말로 눈이 부셔 뜰 수 없을 지경이다....별의 탄생...별들의 전쟁....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낳고 지지고볶고 키우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서로 돕고 희생하고, 현실과 불멸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는지....무척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평전류를 무척 좋아한다. 물론 일차적으로 내가 관심 있는 주인공의 평전이겠지만...전반적으로 평전이라는 쟝르를 좋아한다.  일종의 관음증일 수도 있다....유명인의 안과 겉, 음지와 양지, 고통과 기쁨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기쁨..........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전류의 책이 모 아니면 도다. 아주 유명한 인물의 전기, 읽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약간 self-help류의 전기가 아니고서는 별로.....잘 안팔리는 듯 하다.

어린 시절 억지로 읽었던 구리구리한 위인전(칭찬과 찬양 일색의...어거지로 교훈을 잔뜩 주입한...)에 대한 반감이 진솔하고 인간적인 평전을 읽는 재미를 아예 앗아갔거나...아니면 아예 전기에서 그런 교훈과 찬양만을 기대하도록 만들어버린게 아닐까....

아...또 옆길로 샜다. (지금도 마감 앞두고 눈썹 휘날리며 번역하다가...헉슬리라는 단어 하나에 옆길로 새서...오전을 홀라당 날렸다...)

아무튼 덕분에 오랫동안 막연히 동경해오던 헉슬리 가문의 빛과 그림자를 어느 정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뽀너스로 알게된 잡다구리한, 그러나 잼있는 상식!

- 올더스 헉슬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헐리우드에서 영화 스크립트를 많이 썼는데 그 중에 디즈니 원작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있다.  집에 이 영화의 DVD가 있는데...확인해봐야겠다!

-올더스 헉슬리는 존 F 케네디와 C. S. 루이스와 같은 해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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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2-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

진주 2006-02-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슬리들의 어머니보다 제가 보기엔 님이 더 대단하십니다-집요한 검색 능력!!

톡톡캔디 2006-02-2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매튜 아놀드는 빅토리아 시대 작가로 제가 넘 넘 싫어하는 도덕적인 + 제국주의 찬양조의 작품을 잔뜩 남겼습니다.

톡톡캔디 2006-02-2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도 곧 제가 아는 계보 하나 올리겠습니다. ㅎㅎ

이네파벨 2006-02-28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________^
진주님/어설픈 지식으로 번역을 하다보니 느느니 검색실력뿐이랍니다. 번역가들은 www.google.com 사이트를 "구글신"이라고 부르죠..
톡토캔디님/ 매튜 아놀드가 그런 작가였군요...올더스 헉슬리의 엄마 성이 아놀드이고..그 매튜 아놀드의 조카쯤 되는거 같던데요...그 엄마쪽 계보를 보니까 매튜뿐만 아니라 거의 전 가족이 문명(文名)을 떨쳤더군요...올더스의 문학적 재능은 외가쪽에서 온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고요...SF와 영문학에 정통한 톡톡캔디님은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요...그가 <멋진 신세계>에서 던진 화두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하죠...아니 더 한 층 실감난다고 할까요...?

아, 톡톡캔디님이 올리실 계보도 벌써 궁금하네요^^

2006-06-29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3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