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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평점 :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본 이들이라면 핵공감할 만한 책, 아나운서 임희정 작가의 <질문이 될 시간>을 소개합니다.
처음엔 흔한 육아에세이처럼 가볍게 쥐었건만, 몇 장 읽자마자 제목의 의미가 가슴을 두드립니다. 저도 엄마이지만 엄마의 손길이 하루종일 닿아야 하는 육아 그 자체는 벗어난 시기다 보니,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을 되새길 겸 읽기 시작했거든요. 이내 잘못 생각했단 걸 깨닫게 됩니다. 엄마라는 타이틀 안에서 생기는 숱한 의문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요.
<질문이 될 시간>은 임신과 출산, 돌봄과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땅에 사는 엄마라면 다 공감할 바로 그 이야기들입니다. 시대가 변하니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그 이야기들 말이죠. 제가 했던 고민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면 그제야 엄마라는 존재의 고통과 희생이 너무 오랫동안 저평가되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둬야 하는 걸까요? 임희정 작가는 한 걸음 나섭니다.
미화되지 않은 날것의 ‘엄마 됨’ 이야기를 통해 저출산 위기다 어쩌다 하면서도 정작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아직도 많은 편견과 오해에 둘러싸여 있음을, 임신과 출산과 돌봄의 영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엄마가 되는 순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고, 몸은 끊임없이 아프고 고단합니다. 사회적 가치관과 제도에 의해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출산하고 나니 아이를 '왜 낳는지'보다 '왜 안 낳으려고 하는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저자처럼, 아이가 주는 행복은 절망에 쉽게 가려집니다.
임신을 계획하는 여성은 경력단절을 미리 걱정해야 합니다. 저자도 임신 중기에 경력이 멈췄습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들은 '배부른' 아나운서를 부담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출산하고는 독박육아가 시작됩니다. 단순히 의지와 의욕만으로는 되지 않는 영역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생활이더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법적으로 육아휴직제도가 있지만 대부분은 쓰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왜 못 쓰는지를 정부만 모르는 걸까요. 육아를 위해 일을 멈춘 시간이 쓸모없는 시간인 걸까요? 출산 정책은 오히려 세종 때가 더 나았다고 합니다.
- 세종 8년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
- 세종 12년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지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으니 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라'
- 세종 16년 '그 남편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아 산모를 구호할 수 없게 되니, 한갓 부부가 서로 구원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어 진실로 가엾다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일하게 하라' - p212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과 단절하려고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모두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도 독박육아를 하는 엄마의 삶은 멈춰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찾아오고,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게 느껴집니다.
스스로를 돌볼 때 비로소 더 좋은 엄마가 됩니다. 우울 때문에 죽고 싶었다가 '결국 내가 살려고 우울이 왔구나' 깨닫게 되었다는 저자는 세밀하고 적나라한 임신, 출산, 육아기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신비로운 임신 여정은 열 달의 수많은 '불행복'에 밀려났고, 진통과 제왕절개 수술의 고통은 아기를 위해 참아야만 하는 것이었고, 아이와 집에서 놀아'준' 적은 있어도 그냥 놀아'본'적은 없었던 육아를 하며, 무급으로 가사노동을 이어갑니다.
산후우울증 치료를 알아보느라 검색하는 와중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멈추고 아이를 안아줘야 했습니다. 모성을 강조하는 사회. '너만 그런 거 아니다'라며 당연시 여기는 사회. 그렇게 엄마들은 '나는 왜'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속이 곪아갑니다.
내 우울은 자꾸만 돌봄에 밀려 하찮은 것이 됐다. - p149
우울을 벗어나는 과정도 세심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몸은 회복하려 노력하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복귀하려 애써야 합니다. 그 회복과 복귀가 살게 할 거라고 말이죠.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에서 매일같이 갈등하는 ‘엄마 됨’을 기록하며, 세상의 편견과 오해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질문이 될 시간>에서는 누구에게도 짐 지우거나 치우치지 않는 고른 육아를 위한 질문,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바라본 임신, 출산, 육아 영역의 담론을 펼쳐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엄마로 살고 '나'로도 살기 위한 방법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