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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 제 4 공화국 (1946-1958)

    • 1945.10.21 국민투표에 의하여 제 3공화국 헌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1945.11.2 드골 장군이 임시헌법에 의한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취임하였으나, 의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점한 좌파와의 대립으로 1946.1. 사임하고 드골 사임후 1946.10.27 내각책임제 형태의 제 4 공화국이 수립됨

    • 제 4 공화국에서는 정당의 난립으로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다가 1958.5월 알제리 사태 관련, 알제리 주둔 군부의 쿠데타조짐으로 정국이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드골 장군에게 사태수습을 위촉하였고, 드골 장군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함으로써 제 4 공화국은 종료하였음.

    나. 제 5 공화국 (1958-현재)

    1)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 집권 (1958-69)

      • 1958.9.28 국민투표를 통하여 신헌법안이 채택되고, 1958.10.4 신헌법이 공포되었으며, 신헌법에 의거 1959.1.8. 드골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음

      • 제5공화국의 신헌법에 의거, 막강한 권한을 장악한 드골 대통령은 1962년 알제리에 독립을 부여하고, 동년 10월 28일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후 1965.12.19 직선대통령에 당선되었음

      • 알제리 사태수습 후 안정되었던 정정은 1968년 대대적인 학생데모와 총파업사태로 난국을 맞았으며, 1969년 4월 드골 대통령은 지방행정개혁과 상원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1969.4.28 하야함

      2) 뽕삐두(Georges Pompidou) 대통령 집권 (1969-74) : 1969.5.16 뽕삐두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드골 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 호응코자 노력하였음

      3) 지스까르 데스땡(Valery Giscard d'Estaing) 대통령 집권 (1974-81) : 1972.4.2 뽕삐두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1974.5.19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중도우파인 독립공화당의 지스까르 데스땡이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음

      4) 미테랑(Fran ois Mitterrand) 대통령 집권 (1981-1995) : 1981.5.10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가 지스까르 데스땡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미테랑 대통령은 취임후 곧 하원을 해산, 총선을 실시하여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함

        가) Mauroy 내각 (1981-1984) : 사회당 집권초기 Mauroy내각은 사회주의이념에 충실한 정책을 수행, 사회복지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했으나, 이로 인해 경제사정이 악화됨

        나) Fabius 내각 (1984-86) : 능률 위주의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 사회주의 이념이 상당히 탈색됨

        다) Chirac 내각 (제 1차 꼬아비따시옹(좌우파 동거정부) : 1986-88) : 사회당 집권초기 인플레 심화, 실업자 증가, 대외수지 악화 등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사회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약화되어, 1986.3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미테랑 대통령은 RPR의 시락 당수를 총리로 지명,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과 우파연합의 시락 행정부 간의 공존체제(Cohabitation)가 수립됨

        라) Rocard 내각(1988-91)

        • 1988.5.8 대통령선거 2차 투표에서 미테랑 대통령이 시락 후보를 누르고 재선되어 시락 총리는 5.10 사임하고 사회당의 로까르 총리가 취임함

        • 미테랑 대통령은 원내 안정의석 확보를 위하여 1988.5.4. 하원을 해산하고 6.5-12 하원 총선을 실시하였던 바, 과반수 의석확보에는 실패 (과반수 289석에 13석 모자라는 276석) 하였으나, 우파연합보다는 많은 의석을 확보, 사회당 단독 내각을 구성함

        마) Cresson 내각 (최초의 여총리 1991-92) : 1991.5.15. 로까르 총리는 자진 사임하고, Edith Cresson 총리가 프랑스 최초의 여총리로 취임하였으나, 1992.3 지방선거에서의 참패 여파로 1992.4.3 사임함

        바) Beregovoy 내각 (1992-93) : 1992.4.3 취임한 Pierre Beregovoy 총리는 사회당 이념에 보다 충실한 인사들로 행정부를 구성하고 300만에 육박하는 실업자 구제에 진력하였으나, 실적이 부진 하였고 사회당의 장기집권에 따르는 제요인이 겹쳐, 1993.3.21-28 실시된 하원총선에서 사회당이 참패함에 따라 Beregovoy 총리는 3.29 자로 사임함

        사) Balladur 내각 (제 2차 꼬아비따시옹 : 1993-1995)

        • 1993.3. 하원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압승함에 따라 미테랑 대통령은 RPR소속 Edouard Balladur를 총리로 지명, 제 2차 동거정부 체제가 성립됨

        • Balladur총리는 RPR와 UDF에 각료직을 안배하여 우파연정을 구성하고 경제재건과 실업구제에 역점을 둔 정책을 추진함

      5) Jacques Chirac 대통령 집권 (1995-현재)

        가) 집권초기 Juppé 내각(1995.5-1997.5)

        • 95.5.7 프랑스 대통령 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RPR의 시락 후보가 죠스팽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프랑스 제 5공화국 제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됨. 시락의 당선으로 14년간 계속된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보수주의 우파정권이 들어섬

        • 5.18 Alain Juppé 를 총리로 하는 내각이 들어섬. 쥐페 내각은 범우파 연합내각으로 제 1당인 RPR과 UDF등 우파의 안배가 고르게 이루어짐

        • Juppé 총리는 12%의 높은 실업을 해소하고, EMU통합을 위한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재정적자의 축소를 우선과제로 추진하였으나, 고용확대정책의 부진, 사회보장비의 축소를 골자로 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에 대한 전국적인 파업 등 일반국민들의 반발이 심화됨

        • 계속적인 개혁정책의 이행과 순조로운 단일통화 체제 참여와 국내 다수세력 유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97.4.21 시락 대통령은 하원 해산을 발표하고, 98.3로 예정된 하원 총선을 앞당겨 5.21 실시하였으나, 좌파연합이 총의석 577석중 과반수가 넘는 314석을 차지함으로써 동거정부 체제가 들어섬

        나) Jospin내각 (1997.6-2002.5.6, 제 3차 꼬아비따시옹)

        • 97.6 총선에서 좌파의 승리로 사회당 당수인 죠스팽이 총리로 입각하여, 시락 대통령과 죠스팽 총리가 이끄는 좌우파 동거정부가 탄생함

        • 동거 정부하의 죠스팽 총리는 실업난의 해소, 주요 국영기업 민영화 중단, EMU 정시출범을 위한 긴축 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함.

        • 죠스팽 총리는 99.9월 발표한 실업방지대책, 새로운 경제규제입법 조치, 직업교육개혁 등 사회당 집권 2기 제반 주요정책의 적극적 실현을 통해 2002년 총선 및 대선에 대비할 것으로 전망됨.

        다) Raffarin 내각 (2002.5.7-현재)
        • 2002.5.5 대선에서 Chirac 후보는 82%라는 사상 최고의 지지율로 Le Pen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

        • 2002.5.7 Raffain 상원의원을 총리에 임명

        • UMP (Union pour la Majorié Présidentielle)을 결성, 우파단합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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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 제 4 공화국 (1946-1958)

    • 1945.10.21 국민투표에 의하여 제 3공화국 헌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1945.11.2 드골 장군이 임시헌법에 의한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취임하였으나, 의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점한 좌파와의 대립으로 1946.1. 사임하고 드골 사임후 1946.10.27 내각책임제 형태의 제 4 공화국이 수립됨

    • 제 4 공화국에서는 정당의 난립으로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다가 1958.5월 알제리 사태 관련, 알제리 주둔 군부의 쿠데타조짐으로 정국이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드골 장군에게 사태수습을 위촉하였고, 드골 장군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함으로써 제 4 공화국은 종료하였음.

    나. 제 5 공화국 (1958-현재)

    1)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 집권 (1958-69)

      • 1958.9.28 국민투표를 통하여 신헌법안이 채택되고, 1958.10.4 신헌법이 공포되었으며, 신헌법에 의거 1959.1.8. 드골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음

      • 제5공화국의 신헌법에 의거, 막강한 권한을 장악한 드골 대통령은 1962년 알제리에 독립을 부여하고, 동년 10월 28일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후 1965.12.19 직선대통령에 당선되었음

      • 알제리 사태수습 후 안정되었던 정정은 1968년 대대적인 학생데모와 총파업사태로 난국을 맞았으며, 1969년 4월 드골 대통령은 지방행정개혁과 상원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1969.4.28 하야함

      2) 뽕삐두(Georges Pompidou) 대통령 집권 (1969-74) : 1969.5.16 뽕삐두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드골 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 호응코자 노력하였음

      3) 지스까르 데스땡(Valery Giscard d'Estaing) 대통령 집권 (1974-81) : 1972.4.2 뽕삐두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1974.5.19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중도우파인 독립공화당의 지스까르 데스땡이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음

      4) 미테랑(Fran ois Mitterrand) 대통령 집권 (1981-1995) : 1981.5.10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가 지스까르 데스땡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미테랑 대통령은 취임후 곧 하원을 해산, 총선을 실시하여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함

        가) Mauroy 내각 (1981-1984) : 사회당 집권초기 Mauroy내각은 사회주의이념에 충실한 정책을 수행, 사회복지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했으나, 이로 인해 경제사정이 악화됨

        나) Fabius 내각 (1984-86) : 능률 위주의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 사회주의 이념이 상당히 탈색됨

        다) Chirac 내각 (제 1차 꼬아비따시옹(좌우파 동거정부) : 1986-88) : 사회당 집권초기 인플레 심화, 실업자 증가, 대외수지 악화 등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사회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약화되어, 1986.3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미테랑 대통령은 RPR의 시락 당수를 총리로 지명,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과 우파연합의 시락 행정부 간의 공존체제(Cohabitation)가 수립됨

        라) Rocard 내각(1988-91)

        • 1988.5.8 대통령선거 2차 투표에서 미테랑 대통령이 시락 후보를 누르고 재선되어 시락 총리는 5.10 사임하고 사회당의 로까르 총리가 취임함

        • 미테랑 대통령은 원내 안정의석 확보를 위하여 1988.5.4. 하원을 해산하고 6.5-12 하원 총선을 실시하였던 바, 과반수 의석확보에는 실패 (과반수 289석에 13석 모자라는 276석) 하였으나, 우파연합보다는 많은 의석을 확보, 사회당 단독 내각을 구성함

        마) Cresson 내각 (최초의 여총리 1991-92) : 1991.5.15. 로까르 총리는 자진 사임하고, Edith Cresson 총리가 프랑스 최초의 여총리로 취임하였으나, 1992.3 지방선거에서의 참패 여파로 1992.4.3 사임함

        바) Beregovoy 내각 (1992-93) : 1992.4.3 취임한 Pierre Beregovoy 총리는 사회당 이념에 보다 충실한 인사들로 행정부를 구성하고 300만에 육박하는 실업자 구제에 진력하였으나, 실적이 부진 하였고 사회당의 장기집권에 따르는 제요인이 겹쳐, 1993.3.21-28 실시된 하원총선에서 사회당이 참패함에 따라 Beregovoy 총리는 3.29 자로 사임함

        사) Balladur 내각 (제 2차 꼬아비따시옹 : 1993-1995)

        • 1993.3. 하원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압승함에 따라 미테랑 대통령은 RPR소속 Edouard Balladur를 총리로 지명, 제 2차 동거정부 체제가 성립됨

        • Balladur총리는 RPR와 UDF에 각료직을 안배하여 우파연정을 구성하고 경제재건과 실업구제에 역점을 둔 정책을 추진함

      5) Jacques Chirac 대통령 집권 (1995-현재)

        가) 집권초기 Juppé 내각(1995.5-1997.5)

        • 95.5.7 프랑스 대통령 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RPR의 시락 후보가 죠스팽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프랑스 제 5공화국 제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됨. 시락의 당선으로 14년간 계속된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보수주의 우파정권이 들어섬

        • 5.18 Alain Juppé 를 총리로 하는 내각이 들어섬. 쥐페 내각은 범우파 연합내각으로 제 1당인 RPR과 UDF등 우파의 안배가 고르게 이루어짐

        • Juppé 총리는 12%의 높은 실업을 해소하고, EMU통합을 위한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재정적자의 축소를 우선과제로 추진하였으나, 고용확대정책의 부진, 사회보장비의 축소를 골자로 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에 대한 전국적인 파업 등 일반국민들의 반발이 심화됨

        • 계속적인 개혁정책의 이행과 순조로운 단일통화 체제 참여와 국내 다수세력 유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97.4.21 시락 대통령은 하원 해산을 발표하고, 98.3로 예정된 하원 총선을 앞당겨 5.21 실시하였으나, 좌파연합이 총의석 577석중 과반수가 넘는 314석을 차지함으로써 동거정부 체제가 들어섬

        나) Jospin내각 (1997.6-2002.5.6, 제 3차 꼬아비따시옹)

        • 97.6 총선에서 좌파의 승리로 사회당 당수인 죠스팽이 총리로 입각하여, 시락 대통령과 죠스팽 총리가 이끄는 좌우파 동거정부가 탄생함

        • 동거 정부하의 죠스팽 총리는 실업난의 해소, 주요 국영기업 민영화 중단, EMU 정시출범을 위한 긴축 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함.

        • 죠스팽 총리는 99.9월 발표한 실업방지대책, 새로운 경제규제입법 조치, 직업교육개혁 등 사회당 집권 2기 제반 주요정책의 적극적 실현을 통해 2002년 총선 및 대선에 대비할 것으로 전망됨.

        다) Raffarin 내각 (2002.5.7-현재)
        • 2002.5.5 대선에서 Chirac 후보는 82%라는 사상 최고의 지지율로 Le Pen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

        • 2002.5.7 Raffain 상원의원을 총리에 임명

        • UMP (Union pour la Majorié Présidentielle)을 결성, 우파단합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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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 세
  • 부르봉 (Bourbon) 왕조 (1589-1792) : 1589년 Capet 왕가의 또 다른 방계인 Bourbon가의 Henri 4세에 의하여 수립된 Bourbon 왕조 초기에는 왕권이 미약하였으나, Henri 4세가 제후들과의 오랜 투쟁을 통하여 지배권을 확보하였고, 이어 Louis 13세, Louis 14세 시대에는 절대주의 왕권의 절정을 이루어 Louis 14세는 태양왕이라 불렸음
  • Louis 13세와 Louis 14세에 걸친 1618-1648년의 30년 전쟁을 통하여 Bourbon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Habsburg 왕가와 대륙 패권 경쟁을 하였고, 특히 Louis 14세는 수차의 전쟁을 통하여 유럽대륙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도 힘을 기울여 신대륙에 Louisiana, Canada, Antilles 등 방대한 해외령을 확보하고 인도에도 식민지 개척의 거점을 확보하였음
  • 17세기 후반에는 라틴문화와 이태리 르네상스의 영향에서 탈피, 독자적인 프랑스 고전주의 문화를 꽃피워, Moli re, Corneille, Racine 등 문호와 Pascal, Decartes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배출되었고, 불어문법과 불란서 고유의 법체계가 정비되기 시작하였음
4. 대혁명 - 제2차 세계대전

    가. 대혁명

      1) 혁명의 발발

      • Louis 14세에 절정에 달하였던 Bourbon 왕조는 Louis 15세와 Louis 16세에 걸쳐 점차 약화된 반면, 상업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부르주아 계급이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하였고 Voltaire, Montesquieu, Rousseau 및 백과전서파에 의하여 확산된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평등주의 사상이 확산되어 귀족, 승려 등 특권층에 대한 피지배 평민계층의 비판의식이 높아진데다 부패한 왕실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고조되어 대혁명이 발발하게 되었음.

      • 1789.5.5 Louis 14세는 재정난 해결을 위하여 3부회를 소집하였는 바, 평민대표들은 봉건특권폐지, 평등과세 등 개혁을 주장하다가 관철되지 않자 1789.6.17 평민대표들만으로 구성된 국민의회를 선포하였고, 1789. 7.9 귀족 및 승려 계급의 참여하에 국민의회를 제헌의회로 개칭하여 헌법 제정을 추진하였음. 한편, 1789.7.14 파리 시민군에 의하여 정치범 수용소인 Bastille 감옥이 파괴됨으로써,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였고, 1789. 7.16 파리시 자치정부(Commune de Paris)가 수립되었으며, 1789. 8.26 인권선언이 선포되었음

      2) 제 1 공화국

      • 혁명초기에는 La Fayette, Mirabeau, Bailly, Sieyes등 입헌군주파가 주도권을 장악, 1791.10.1 헌법을 채택하고 입헌군주제를 성립시켰음. 그러나, 1791.6. Louis 16세 일가의 국외탈출 기도, 프러시아 및 오스트리아의 혁명 진압 출병을 계기로 혁명이 과격화되어 입헌군주파들이 밀려나고 1792년부터는 공화파들이 혁명의 주도권을 장악, 1792.9.21 왕정폐지를 선포하고 국민공회(Convention)가 통치하는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1793. 1.21 Louis 16세를 처형하였음

      • 공화국 초기에는 공화파중에서 계몽 부르주아 중심의 혁명을 지향하는 온건 지롱드당(Girondins)이 우세하였으나, 1793년초부터 Danton, Marat, Robespierre 등 산악당을 주축으로 하는 급진 자코벵당(Jacobins)이 지롱드당을 축출하고 공안위원회(Comit de Salut Public)라는 일종의 혁명재판소를 구성, 반혁명 협의자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감행, 공포정치를 하였음

      • Marat는 1793.7.14 암살되고, Danton은 1794.4.4 Robespierre에 의하여 처형됨에 따라 Robespierre가 독재권을 장악했으나, Robespierre의 지나친 공포정치에 반대하는 국민공회가 1794.7. Robespierre를 처단함으로써 공포정치가 종식되고 5인의 집정관(Directoire)에 의한 집단지도체제가 수립되었음

      3) 혁명의 중단 : 1795.9.23 수립된 5인 집정관체제는 구심점이 없이 약체화 되고, 재정난에 부딪치게 되자 왕당파를 비롯한 반혁명 세력의 도전이 강화되었음.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Napoleon이 1799.12.13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였음. Napoleon은 형식상 3인의 집정관(Consul)으로 구성되는 집정체제(Consulat)를 수립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제1집정관인 Napoleon이 모든 실권을 장악하는 독재정권이었으며, 1804.5.18 Napoleon이 제위에 오름으로써 대혁명은 일단 중단되었음

    나. 제 1 제정 (1804-1814)

    • 1799년 쿠데타로 집권한 Napoleon은 근대 민법전(일명 나폴 레옹 법전) 제정, 근대적인 행정, 사법, 교육, 군사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피정복지에 근대적인 제도를 확산하여 프랑스 혁명정신을 구현하는데 기여한 바 있음

    • 반면, Napoleon은 국내적으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1804년에는 황제로 즉위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전 유럽을 전쟁 으로 몰아넣었음. 영국을 비롯,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등이 연합하여 Napolon에게 대항하였으나 Napol on의 연속적인 군사적 승리로 인하여 유럽 대륙의 대부분이 Napolon제국의 직접통치하에 들어가거나 Napolon의 헤게모니 하에 들게 되었음. Napolon은 대 Napol on연합의 주축인 영국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1805.10 Trafalgar 해전에서 영국에게 패하였고, 경제적 압박으로 영국을 굴복시키고자 1806.11 Berlin칙령과 1807.11 Milano칙령으로 유럽대륙과 영국의 교역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발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음. Napol on은 1812.6-11에 걸친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고, 1813.10 Leipzig에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연합군에게 패하여 1814.4 퇴위하고 지중해의 Elba섬에 유배되었음. 이후 Elba섬을 탈출 재집권하였으나 1815.6 Waterloo에서 영국, 프러시아 연합군에게 패하여 1815.6.22 재차 퇴임함으로써, Napolon의 복위는 100일 천하로 끝나고 제 1 제정도 완전히 종료하였음

    다. 부르봉 왕정복고 (1814-1830) : Napoleon 퇴진의 중심세력인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등 군주국가의 영향으로 Bourbon 왕가의 Louis 18세가 1814년 6월에 즉위하여 (100일 천하중 망명) 왕정복고가 이루어졌고, 1824년 Charles 10세가 즉위하였으나 곧 이어 혁명의 재발로 Bourbon 왕조는 종료됨

    라. 7월 왕정 (1830-1848) : 1830년 7월 혁명의 발발로 Charles 10세가 퇴위하였으며, Bourbon왕가의 방계인 Orl ans 왕가의 진취적인 인물인 Louis-Philippe이 프랑스 국민의 왕으로 즉위하였음

    마. 제 2 공화국 (1848-1852) : 1848년 2월 혁명이 발발하여 Louis-Philippe이 퇴위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음. 1848.12 Napoleon 1세의 조카 Louis Napoleon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음

    바. 제 2 제정 (1852-1871) : Louis Napoleon은 1852년 12월 황제로 즉위 Napoleon 3세가 되었음. Napoleon 3세 시대에는 국내적으로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고, 문예가 진흥되었으며, Paris시의 도시계획 등 많은 발전을 구가하였으며, 대외적으로도 Crimea 전쟁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인도차이나, 중국에 진출하였음. 그러나 1870년 보불전쟁에서 Bismark에게 패하여 퇴위하고 제 2제정이 종료되었음

    사. 제 3 공화국 (1871-1945)

    • Napoleon 3세의 몰락후 왕당파와 공화파의 팽팽한 대립속에서 1875년까지 과도체제가 유지되다가 1875년 의회우위의 대통령제 공화정이 수립됨으로써 프랑스는 100년에 걸친 단속적인 혁명 끝에 공화제로 정착하게 되었음. 그러나 제정파간 타협의 산물로 제정된 제3공화국 헌법은 단일 법체계가 되지 못하고 각 권력기관별로 그 권한을 규정하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고, 또 권력기관간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을 따로 제정하여 운영하였던 바, 이러한 법체계의 통일성 결여와 제정당의 난립으로 불안정한 정국이 지속되었음

    • 제 3공화국은 양차대전을 겪었으며, 2차대전의 와중에 종료되었음. 1차 대전(1914-1918)에서 프랑스는 초기에 수세에 몰리고 독일군이 파리근교까지 진격했으나 대전 후반기에는 프랑스가 대독 연합군의 주축이 되어 전세를 역전시키고, Foch 원수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1918.11.11 대독 휴전협정을 체결함. 또한 1차 대전 전후 처리문제를 위한 강화회의도 프랑스 Versailles에서 개최하는 등 주역을 담당하였음

    • 제 2차 대전에서는 대전초기에 독일군에 패주하여 본토내에는 나치점령군의 괴뢰정권인 Vichy 정권이 P tain 장군의 지휘하에 수립되었고(1940-1944), 드골 장군이 수립한 망명정부가 연합국에 의하여 승인됨으로써, 종전후 프랑스는 전승국의 대오에 가담할 수 있게 되었음

    •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과 Vichy 정부의 수립으로 제3공화국은 사실상 1940년 종료하였으나, 법적으로는 제 3공화국 헌법이 1945.10월까지 존속하였으므로 제 3공화국의 종료시점에는 애매한 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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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 대

    가. 골(Gaule)족의 정착 : 기원전 8세기경부터 Indo-European 계의 일파인 Celt족이 현재의 프랑스 영토에 이주, 원주민을 몰아내고 정착하였는 바, 이 지역을 로마인들이 Gallia라 부르고 이 지역에 정착한 Celt족을 Gallia족이라 불렀음(이후 Gallia가 불어명으로 Gaule이 됨)
    나. 로마의 지배 : 남불 해안지역은 B. C. 121년 로마의 속령이 되었고, 나머지 Gaule 지역은 B. C. 58-51년에 걸쳐 Caesar가 로마에 복속시켰음. 이후 Gaule족의 라틴화가 추진되었고, Gaule족의 고유문화에 로마문화가 이식된 Gallo-romaine 문화가 형성되었음. 이 시대에 Gaule 족에 보급되어 변형된 라틴어가 불어의 기원이 되었음

2. 중 세

     가. 프랑크(Frank) 왕국
1) 메로빙(M rovingiens) 왕조 (481-752) : 4-5세기에 걸쳐 진행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시 프랑스 동북부는 Frank족이, 서남부는 Wisigoth족이, 동남부는 Burgundy족이 점령하였음. 481년 Frank 부족중의 하나인 메로빙 가(M rovingiens)의 Clovis가 Frank왕국을 건설한 이후 Frank왕국은 Wisigoth와 Burgundy 족을 물리치고 세를 확장, Gaule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음. 이후 소수 지배민족인 프랑크족과 다수 피지배 민족인 Gaule족간에 동화가 서서히 진행되었음

2) 카롤링 (Carolingiens) 왕조 (752-987) : 752년 카롤링가(Carolingiens) 의 P pin이 Frank 왕국의 왕으로 추대되어 카롤링 왕조가 수립되었고, 800년에는 Frank왕국의 Charlemagne 대제가 Gaule 지방 전체, 이태리 북부, 라인강 유역 일대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한편, 회교도의 유럽침입을 막아내어 로마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칭호를 받음

843년 Charlemagne 대제의 손자 3형제간에 체결된 Verdun 조약에 의하여 Frank 제국이 3분 되었는 바, 이중 Charles 2세가 차지한 서부 프랑크 (Frank Occidentalis)가 프랑스의 모체가 됨. 9세기말 노르만족(바이킹)이 프랑스 북부지역과 세느강 유역에 침입, 정착하였음. (현재의 노르망디 지방)

     나. 중세봉건왕조

1) 카페(Cap tiens) 왕조 (987-1328) : 987년 Hugues Capet가 왕으로 추대되어 Capet 왕조가 성립되었고, 전형적인 중세 봉건제도가 정립되었으며, Gaule 족과 Frank족간의 동화가 가속화 되었고, Frank족이 게르만어를 버리고 피지배민족의 언어인 불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나, 불어도 게르만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었음

2) 발로아 (Valois)왕조 (1328-1589) : 1328년 Philippe 6세에 의하여 Capet 왕가의 방계인 Valois 왕조가 수립되었고, 발로아 왕조는 영국의 침입을 받고 1337-1453년에 걸친 오랜 투쟁(백년전쟁) 끝에 영국인들을 축출하는데 성공하였음. 또한 영국과의 투쟁 와중인 1348-1360년간 흑사병의 창궐로 인구가 격감하고 국토가 황폐화되었음. 15세기말부터 이태리로부터 르네상스문화가 도입되어 16세기에 Loire강 유역을 중심으로 불란서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560-1598 년에 걸쳐 신교도와 구교도간 8차에 걸친 종교전쟁을 겪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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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리에서 길찾기 : 빠리의 주소는 번지수 개념이 아니라 거리 개념이기 때문에 쉽게 원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주소는 번지수, 거리 이름, 구의 순서대로 씌어 있다. 빠리의 구는 모두 20개이며 맨 앞에 750이라는 고유번호가 붙는다. 1구는 75001, 13구는 75013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구를 찾고 그 다음에 해당 거리를 찾아 숫자대로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가령 한국대사관이 경우, 125, rue de Grenelle, 75007이면, 7구 그르넬거리를 찾고 그곳에서 해당 번호를 찾으면 되는 것. 대부분의 주소지는 가까운 메트로 역이 함께 표기되므로 메트로 역을 찾고 그 주변에서 원하는 거리를 찾아도 된다.

2. 교통비(<Hellow Paris> p.47)
- 까르뜨 오랑쥬 에비도마데르 : 지하철 및 버스를 일정기간 무제한 사용. 1주일권 13.75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19,643원. 이 패스는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 자정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수요일에는 반드시 사용을 개시해야 한다. 수요일 이후에는 해당 주의 패스를 살 수도 사용할 수도 없다. 까르뜨 오랑쥬를 구입한 다음에는 반드시 오렌지색 카드에 본인의 증명사진을 붙이고, 승차권에는 카드에 적힌 고유번호를 기입해야 한다.


- 빠리 비지뜨 패스 : 1,2,3,5일간 연속 사용할 수 있는 패스. 지하철, 고속전철(RER), 버스, 몽마르뜨 케이블카를 일정기간 무제한으로 이용. 구간거리에 따라 Zone1-3(파리, 라데팡스, 생드니), Zone1-5(파리, 베르사이유, 공항, 유로디즈니) 등 2종류로 구분. 이 패스를 소지하고 있으면 박물관 같은 주요 관광지에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시내 관광고 근교의 작은 도시로 당일 여행을 다녀오려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Zone 5일권 45.70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65,286원.

- 택 시
원칙적으로 택시 정류장에서만 탑승
공항, 기차역 및 시내 곳곳에 택시 정류장 설치
호텔 리셉션 등을 통해 호출 가능(Call Taxi)

※ Call Taxi 연락처
Alpha Taxi : 01 45 85 85 85
Taxi Bleus : 01 49 36 10 10

3. 환율 (보통 식사 한 끼, 15-20유로)                                                                                       1유로=1,429원
5유로=7,143원
10유로= 14,286원
15유로=21,500원
20유로=28,571원

4. 벼룩시장(Les Puces)
- 생뚜앙(Saint-Ouen) 벼룩시장 :
지하철 4호선 종점 Clignancourt역. 토·일요일 08H-18H간 개장
파리 최대 규모 벼룩시장

- 방브(Vanves) 벼룩시장 : 지하철 13호선 종점 Vanves역. 토·일요일 07H-19H간 개장

- 우표시장 : 샹젤리제 거리 로터리(Rond-Point des Champs-Elysées) 부근에서 매주 목·토·일요일 및 공휴일 10H-18H사이에 개장

- 꽃시장 : 시테섬내 꽃시장이 가장 유명. Mètro 4호선 Cité 역 앞에 위치. 매일 08H-19H 개장(일요일, 공휴일은 휴장)

5. etc
- 샹송니에 (샹송을 곁들인 주점)
까보 데 우블리에트 (Caveau des Oubliettes) :
11, rue St. Julien-Pauvre 75005
Tel : 01 43 54 94 97
영업시간 : 매일 21H-02H

라뺑 아질(Le Lapin Agile)
22, rue des Saules 75008
Tel : 01 46 06 85 87
몽마르뜨 언덕에 위치
영업시간 : 매일 21H-02H (월요일 휴무)

까보 드 라 헤퍼블리끄 (Caveau de la Ré publique)
1, Bd. St-Martin
Tel : 01 42 52 02 42
주로 풍자적인 샹송 연주
영업시간 : 21H-00H30(일, 월요일 휴무)

오베르즈 드 라 본느 프랑게트 (Auberge de la Bonne Franquette)
18, rue St-Rustique
Tel : 01 42 52 02 42
영업시간 : 19H-24H (연중무휴)

-  재즈 하우스                                                                                                                    뉴 모닝 (Le New Morning)
7, rue des Petites-Ecuries 75010
클래식, 모던재즈, 블루스 등을 라이브로 연주
영업시간 : 20H30-01H

오 듁 데 롱바흐 (Au Duc des Lombards)
42, rue des Lombards 75001
영업시간 : 19H-0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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