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남편'이 비빌 언덕이었는지, 누구는 내가 회사 그만둔다니까 대뜸 "남편 있잖아!" 하대. 그것도 신기하지. 지금 같은 때 남편이 비빌 언덕이 된다는 건지. 아니면, 결혼한 여자가 사표쓰면 누구나 쉽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결혼은 평생직업이라잖아. 그러니 무슨 걱정 있겠어?' 이렇게 힐난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나도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인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를 것 같다가도 알겠다.
이참에 하는 말이지만, 작년 이맘 때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둘까 했었다. 나는 과감하게, "그래 그만 두고 어디 여행 다녀와라" 했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도 나에게 그대로 말해주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남편은 회사를 그만 두지 않았고 나는 그만 두었다. 이게 바로 '남편이 있잖아'의 의미일까? 남편은 가장 먼저 비빌 언덕이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보루란 뜻의?
그러면 묻자. 남편이 그런 의미라면 나는 영악해도 너무 영악하다. 그리고 남편 등이나 쳐먹고, 뼈골이나 빼먹는 여자다. 내게는 '남편 있잖아'의 의미가 그렇게 들린다. '당신 남편, 능력있구나', '남편이 있어 든든하겠어' 이런 의미가 아니라, '이 도둑년!' 이렇게.
그러니, 함부로 '남편 있잖아'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생각은 할 수 있겠지. 남편이 있으니까 사표도 쉽게 쓰네라고. 그래, 생각까지 내가 어떻게 재단할 수 있나? 그러나 생각은 하되, 그런 말은 내뱉지 않는 게 좋겠다. 그건 나를 욕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 남편을 '봉'으로 보는 말이기도 하니까.
남편과 나는 사랑해서 결혼했다. 사랑하니까 먹여 살려야 한다고는 둘 다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벌어서 각자 삶을 연명하는 거다. 때로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산다. 그러니 엄한 말로 쓸데없이 결혼을 '모독'하는 건 금물이다.
결혼은 빌미가 아니다. 내 사표의 의미를 결혼에 갖다 붙이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사표'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 없는데, 이상하게 보면... 진짜 이상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