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의 드라마, '거짓말'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매니아적 명성만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새 드라마가 시작된다곤 했지만, 애써 챙겨볼 생각도 기대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제 저녁 6회를 시작으로 나는 '노희경'과 접속했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에서 베스트셀러 극장이나, 특집극을 빼고 가장 기억에 남는 TV 극본은 '네 멋대로 해라'이다. 청춘의 나날을 스피드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그 모든 것을 돋보이게 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너무나 잘 줄타기했기 때문에 좋아한다.

어제 '꽃보다 아름다워' 6회를 보면서 두 번 울뻔 했다. 2번 시도에 성공은 마지막 한 번뿐이었지만, 이런 드라마가 있다는 게 무척 흥분됐고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방으로 이동해 인터넷으로 1,2회를 연달아 시청했다.

다소 '노희경스러운' 멘트가 반복되긴 했지만 그래도 참 쫀득쫀득한 극본이다. 대사가 힘이 있어서 삶의 무게를 잘 버틴다. 고두심의 그 순진한 연기하며, 배종옥의 악악대는 목소리 연기, 한고은의 쿨한 커리어 우먼 연기는, 금방 마음을 꾀어가게 돼 있다.

나는 사랑이 참으로 하기 어려운 것임을 '연애'를 통해서 알게 됐다. 아무리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하려고 해도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또는 '이거 바보짓 아니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검열로 부대끼고 나풀거린다. 그런데 온갖 드라마에서 사랑은 서로 확인만 되면, 그보다 더 행복한 게 없고 그보다 더 짜릿한 게 없다는 듯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는 게 아니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게 되거나 또는 '아니, 이게 무슨 사랑이야?' 하고 되묻는 초등학교 수준의 사랑학 개론을 품게 되었다(아직도 내 안에는 이런 환상이 많다).

최소한 노희경의 드라마는 그런 여지가 없다. 가족은 말할 수 없이 까다로운 파트너고, 따뜻할 때보다 괴로울 때가 더 많고, 피붙이보다 생판 남이 더 내 맘을 잘 알아줄 수도 있다는 걸 분연히 떠들어댄다. '아, XX 가족이 별 거냐? 응, 별 거야?' 이러면서도 '그래도 마음이 쓰여.' 같은 이중적인 사랑을, 그 정신나간 사랑을 점묘해낸다.

그녀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뚫는 힘이 강한' 작가다. 작년에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을 보면서 '이렇게 대사를 잘 치다니 예술이야!' 했는데.... 이 장편 드라마 한 회에서 두 번씩 마음을 울리다니, 노희경은 진짜 예술이다.

이 작가가 지상에서의 하루하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라마를 보고 알겠다. 얼마나 솔직하고 용감한지도, 얼마나 화가 난 사람인지도, 왜 귀여운지도. 그녀가 이뻐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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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4-01-1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나도 올인 중인데 못 봤어요 ㅠ.ㅠ 그나저나 배종옥도 정말 빼어나죠?

요다 2004-01-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그럼요..
배종옥, 어떨 때 참 이쁘고 어떨 때 정말 이혼한 아줌마 같고.
악 쓰느라 목 상할까 걱정이에요.

땡구 2004-01-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그게 그렇게 재밌어? 그럼... 월, 화...는 대장금 보고, 수, 목은 그거 보면 되겠군. 어디 정리해보자. 수, 목은... 프렌즈 보고 돌려서 MBC에서 일일연속극 보고, 9시 뉴스 보다 말다 하고, 돌려서 '꽃보다 아름다워' 보고, 한 30분 쉬었다가 프렌즈 또 보고, 섹스 앤 더 시티.. 보고 자면 되겠군. -_-;; 에이 정말..이러면 안되는데.. 한창 일할 30대 사내의 일상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에이 정말 한창 일할 30대 사내가... 요즘..새벽녘 5시 즈음 되면 KBS 드라마넷에서 [거짓말] 틀어주고 있다는거..그런거까지 알고 있으면 안되는데. 이힝...~

요다 2004-01-1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뭐야! 나보고 새벽 5시쯤 하는 '거짓말'을 보라고?
아.. 아침형 인간은 이럴 때도 쓸모가 있겠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저녁형을 확인한 지금, 거의 쓸데없는 정보라오.. ㅠ.ㅠ 정말 한창 일할 30대 사내가.. 부럽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