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독하게 되면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이 들여다보인다. 그리하여 타고난 속인이 몸에 제왕과 같은 주홍빛 옷을 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홀로 냉정히 자신을 돌이켜보면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는 짐, 즉 온갖 모순과 고뇌에 가득찬 무거운 짐으로 하여 절로 한숨을 쉬게 마련이다.

-쇼펜하우어 인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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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사건은 다만 순간적인 '있다'이며, 다음 찰나에 영원히 '있었다'로 되어 버린다. 우리는 저녁 때를 맞이할 적마다 우리의 인생은 하루씩 짧아져 간다. 그나마 이 가난한 생애가 이토록 급속히 흘러가버리는 데 대하여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지만 천만다행으로 우리들의 가슴 한복판에서 흘러나오며, 이 샘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시간이 무진장으로 넘쳐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소근거리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재를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만이 실재하며, 그 밖의 다른 것은 다만 시간 속에 간직된 표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현재를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 순간에 무로 돌아가, 꿈과 같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것은 결코 진정으로 추구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인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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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통해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을 통해 사회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에서 탈피하게 됐다고 하는데, 1부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런 시각이 잘 반영돼 있다. 2부에서 지하생활자는 경멸하는 친구의 환송회에 참가하여 모두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창녀에게 잔인한 말을 퍼붓는 등 비이성적이고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마 인간이 이토록 변덕스러우며 비합리적인데 어떻게 그런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겠는가, 라는 근거로서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는 교과서식 가르침을 믿었던 때라면 아마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리거나, 읽고도 꽤 불쾌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시각에 나는 몇 번이고 "맞아, 맞아"를 외쳤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아무리 무사안일이 보장된 생활 속에서도 권태를 못이기며 고통을 추구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마땅히 이득이 될 일만을 선택하는 법도 없다. 주인공처럼 자신은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충동적으로 남에게 잔인하게 대하기도 하며, 변덕스럽게 굴기도 한다.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상대방은 자신을 멸시한다고 생각하면서 속을 부글부글 끓이는 어리석은 인간.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인 동시에, 분수에 넘치는 것을 원하고,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바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단지 사회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역할을 해내야 하기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면이 부각된 것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 낸 '지하생활자의 모습'은 여차저차한 이유로 드러내지 못한 우리 안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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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 / 한울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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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여행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다. 무료하고 평범한 일상과는 달리, 여행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모든 게 설레고 새롭고 신기했다. 일상에서는 산만하기 그지없던 내가, 여행만 가면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마치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사는 게 지루해질 때면 또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면서 보내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여행을 마치고 나서, 더 이상 여행만을 꿈꾸지는 않게 되었다. 여기가 아닌, 저 어느 곳에 가면 즐겁고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깨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닌, 바로 지금, 바로 여기라는 것, 그리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깨달은 건 깨달은 거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삶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할지, 매번 헷갈리고 매번 흔들렸다. 사람은 분명,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하기 싫은 지루한 일들까지도 하면서 살아야하는 걸까,라고 투덜대면서도 딱히 이거에 평생 매진하면서 살고 싶다, 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순간을 사는 것=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라면서 즐거움을 택했다(이 책의 시각으로 보자면 내가 택한 즐거움은, 쾌락에 가깝다). 하지만 그러면서 또 고민이 되는 것이 지금 이 즐거움을 택했을 때, 그리고 앞으로도 즐거움만을 택했을 때 그것들이 쌓여서 얻어지는 미래의 결과, 미래의 내 모습이었다. 적어도 사람들한테 인정받지 못해도, 나 스스로에게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즐거움만을 택했을 경우 미래의 내 모습은 뻔한 게 아니겠는가.-_-

이런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는 것이 Flow가 아닌가 싶다.  Flow는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일컫는 심리상태라고 한다. 사람은 이 Flow상태를 경험할 때 행복감을 느끼며 자아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단순한 쾌락을 추구하면 그 순간은 즐겁지만 그 결과로 얻어지는 성장은 없다. 하지만 Flow를 경험할 경우 그 순간에 몰입하여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뿐 아니라, 그 결과로 내면의 성장까지도 꾀할 수 있다. 물론, 덤으로 사회적인 보상까지 주어질 수도 있다. 아, 그동안 고민해왔던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그 Flow는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문제인데,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을 적절하게 연마해야 하고, 자신이 그 순간에 하고 있는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즉 노력과 연습없이 거저로 주어지는 Flow란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지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처리하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 대개가 그런 식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몸과 마음이 분리돼 있으니 몰입이 될 리 없고 몰입이 되지 않으니 즐거울 리 없는 건 당연지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그 일에 집중하도록 해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 멀리 휭- 날아가는 마음을 지금 여기로 붙들어오고, 붙들어오고, 또 붙들어오는 일부터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과제의 하나로 그동안 '시집가면 평생 할 일'이라면서 멀리해왔던 요리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단순히 시간만 잡아먹고, 몇 분에 뚝딱 해치워져버리는 요리 따위에 시간낭비하기 싫다고 외쳐왔건만. 그 요리하는 순간을 즐길 수 있으면 또 그 몰입의 경험이 다른 일상까지 확장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앞으로 요리든 뭐든 즐거운 규칙들을 부과해가면서 Flow를 경험해보자고, 다짐해본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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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6-0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여행은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첫발걸음이라고 하나 봅니다.
아 그나저나 flow 에 저리도 깊은 뜻이... 이곳 제조업에서 flow는 auto insert 의 한 공정입니다. ㅎㅎ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6-08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첫발걸음,이라... 정말 맞는 말이네요.^^ 그걸 아는데 몇 년이 걸렸답니다. :)
 
나는 모조인간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우선 나는 작가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 책을 받아들인 것 같다, 는 것을 밝혀둔다.

때때로 '나'라는 사람이,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이 아닌, '나'라는 사실에 절망할 때가 있다. 누구처럼 글도 잘 쓰고 싶고, 누구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누구처럼 예뻤으면 좋겠고, 누구처럼 춤을 잘 췄으면 좋겠다. 그래서 문체를 흉내내거나, 예뻐지는 비법을 따라해보거나, 말투를 따라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고, 원래 내 스타일로 원위치. 나는 결코 다른 누구와 똑같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만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학교,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롱하고, 그것에 끊임없이 반항하는 인물로 나오는, 이 책의 주인공 카즈히도는 자신은 당당하게 모조품이라고 말한다.

" 그런데 말씀이야, 인간은 모두 미완성의 모조품이지. 옛날 사람의 패러디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단 말이야. 나도 그래. 나는 누군가의 패러디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영향을 받을 것이야. 그런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거야. 당연히 시대나 상황이 다르므로 결국 패러디가 되고 말지."

솔직히 말하면, 악의적이고 발칙한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의 행동에 낄낄거릴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주인공이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번도 자신이었던 적은 없다. 자기 스스로조차도 자신을 '나'가 아닌 '아쿠마 카즈히도'라고 부른다((P92.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쿠마 카즈히도는 나랑 상관없이 열심히 실연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애를 하고 싶으면, 그 연애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대리 경험을 한다(p87. 아쿠마 카즈히도는 아즈키와 연애하는 란코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언젠가 두 사람에게 다가올 파국을 조장하고, 극적인 끝을 맞이하도록 꾀하면서 스스로도 그 파국에 참가하여 두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맛볼 생각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어차피 복사본이고, 모방이고, 패러디이기 때문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카즈히도는 외롭고 쓸쓸하다. 카즈히도가 그렇게 동경하던 미시마 유키오. 카즈히도는 '미시마 유키오의 모조품'은 될 수 있어도, '미시마 유키오'는 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모조인간이기에 그 외로움조차 자신은 알지 못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카즈히도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타인의 몸이나 사고회를 복사하는 기계라고 깨닫는다. 그러니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서.  

카즈히도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라는 것에서 발을 빼고, 모조인간으로 남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패러디와 모방을 반복하며 살아갈지라도 그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아 변했다가 흔들렸다가,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나는 그런 흔들림을 반복하면서 '나다운 진품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데... 그런 방황 속에서 진품인간이 되고 싶은데... 아무리 훌륭한 모조품이라도, 혹은 진품을 능가할 정도로 정교하게 복제된 모조품이라도 수많은 세월에 닳아버린 진품의 가치는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는 그런 진품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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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정체성을 잃을수록 또 다른 변형된 인격체가 나타나는것 같아요. 정체성을 잃은 인간이 모조인간인가요. 변형된 인격체가 모조인간인가요. 하여간 저도 진품인간이고 싶은 열망은 늘 품고 살아갑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5-2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 님은 이미 진품아니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