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조인간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우선 나는 작가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 책을 받아들인 것 같다, 는 것을 밝혀둔다.

때때로 '나'라는 사람이,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이 아닌, '나'라는 사실에 절망할 때가 있다. 누구처럼 글도 잘 쓰고 싶고, 누구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누구처럼 예뻤으면 좋겠고, 누구처럼 춤을 잘 췄으면 좋겠다. 그래서 문체를 흉내내거나, 예뻐지는 비법을 따라해보거나, 말투를 따라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고, 원래 내 스타일로 원위치. 나는 결코 다른 누구와 똑같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만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학교,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롱하고, 그것에 끊임없이 반항하는 인물로 나오는, 이 책의 주인공 카즈히도는 자신은 당당하게 모조품이라고 말한다.

" 그런데 말씀이야, 인간은 모두 미완성의 모조품이지. 옛날 사람의 패러디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단 말이야. 나도 그래. 나는 누군가의 패러디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영향을 받을 것이야. 그런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거야. 당연히 시대나 상황이 다르므로 결국 패러디가 되고 말지."

솔직히 말하면, 악의적이고 발칙한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의 행동에 낄낄거릴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주인공이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번도 자신이었던 적은 없다. 자기 스스로조차도 자신을 '나'가 아닌 '아쿠마 카즈히도'라고 부른다((P92.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쿠마 카즈히도는 나랑 상관없이 열심히 실연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애를 하고 싶으면, 그 연애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대리 경험을 한다(p87. 아쿠마 카즈히도는 아즈키와 연애하는 란코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언젠가 두 사람에게 다가올 파국을 조장하고, 극적인 끝을 맞이하도록 꾀하면서 스스로도 그 파국에 참가하여 두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맛볼 생각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어차피 복사본이고, 모방이고, 패러디이기 때문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카즈히도는 외롭고 쓸쓸하다. 카즈히도가 그렇게 동경하던 미시마 유키오. 카즈히도는 '미시마 유키오의 모조품'은 될 수 있어도, '미시마 유키오'는 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모조인간이기에 그 외로움조차 자신은 알지 못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카즈히도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타인의 몸이나 사고회를 복사하는 기계라고 깨닫는다. 그러니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서.  

카즈히도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라는 것에서 발을 빼고, 모조인간으로 남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패러디와 모방을 반복하며 살아갈지라도 그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아 변했다가 흔들렸다가,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나는 그런 흔들림을 반복하면서 '나다운 진품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데... 그런 방황 속에서 진품인간이 되고 싶은데... 아무리 훌륭한 모조품이라도, 혹은 진품을 능가할 정도로 정교하게 복제된 모조품이라도 수많은 세월에 닳아버린 진품의 가치는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는 그런 진품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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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정체성을 잃을수록 또 다른 변형된 인격체가 나타나는것 같아요. 정체성을 잃은 인간이 모조인간인가요. 변형된 인격체가 모조인간인가요. 하여간 저도 진품인간이고 싶은 열망은 늘 품고 살아갑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5-2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 님은 이미 진품아니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