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캔맥주가 생각났다. 

뭔가 스윽, 머릿속을 스치면 왠만하면 하고 보는 나는,  

이 책의 엔딩은 맥주와 함께 해야지,란 결심을 하고 말았다. -_-

 

추리닝에 목도리까지 하고 밤골목을 나섰는데, 머랄까 밤나들이하는 기분?

루루라라거리면서 가게 앞까지 갔는데 어디선가 "냐아아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어디서 나는 소리지? 하고 두리번거리니까  

저쪽 구석에서 눈을 빛내며 약간은 수줍은 듯 울어대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밤에 듣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서울 만도 한데, 이 고양이는 뭐랄까

'나랑 놀아줘~'하는 분위기로 울고 있어서

왠지 '쟤는 사랑이 고픈가보다, 아니면 배가 고픈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목적 달성은 해야겠기에 맥주캔을 들고 나왔는데,

그 고양이가 이번엔 차 밑에서 '날 좀 봐죠요~'하면서 또 울고 있는 게 아닌가.

고양이든 개든 만나면 꼭 가까이 가서 유혹해보곤 하는 나는

이번에도 여김없이 고양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아아아핫, 그런데 이 녀석 대뜸 나를 향해 오더니

처음 본 나한테, 그것도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 녀석이!

손에 얼굴을 비비더니 온몸을 움직여가며 요리 부비고 저리 부비고 하면서

 예의 그 상냥한 울음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몸도 통통하고 눈도 고양이답지 않게 선하게 생긴 요녀석 하는 짓도 이쁘고,

왠지 배가 고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기다려."하고는

천하장사 소시지를 사왔다. 아, 껍질을 다 까지도 않았는데 맹렬히 달려들어

먹어대는 걸 보니 역시 배고픈 녀석이었다.

아아아, 그래도 배고프다고 요렇게 애교를 피울 고양이는 아닌 것 같고.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원래 천성이 애교쟁인가보다.

 

사람들은 고양이의 천성은 도도하고 오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보면 단지 사람에게 상냥하게 구는 것이,

사람과 노는 것이 친숙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외로움을 타는 것도 똑같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것고 똑같은데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서투르고 먼저 다가가는 법을 몰라서,

혹은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그 서투름을 감추다보니

도도해보이고 마는, 그런 류의 사람처럼.

고양이도 사실은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닐까?

단지 그 고양이처럼 선뜻 다가가 꼬리를 흔들 수 있는 배짱이 있는 고양이가

몇 없을 것일 뿐이라고.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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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1-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양이의 표독스런 느낌이 싫어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인간 유형을 읽어내시는 모습이 공감이 갑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0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어렸을 때 엄마가 고양이는 아기는 절대 할퀴는 법이 없다고 말해주셨던 게 생각나요. 어린 맘에도 아, 고양이는 약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 거 보면 의리가 있는 동물이구나 싶었는데. 그래서 아직도 고양이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거 같아요. :)

야클 2006-11-2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부럽네요. 인상이 좋으신가봅니다. 전 어제 우리집에 맨날 오는 길냥이들한테 게맛살 주다가 노란넘이 할퀴는 바람에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는... ㅜ.ㅠ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 님, 안녕하세요 :) 게맛살처럼, 그리 맛있는 걸 주시니 길냥이도 눈이 뒤집힌 겝니다. ㅎㅎㅎ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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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조적인 느낌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란

제목에 팍, 꽂히는 바람에 충동 구매한 책.

나도 언제나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인간 중의 하나이니까,

뭔가 통하겠지,란 본능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중간 정도까지 읽었을 때의 느낌은

이 작가, 되게 웃긴다,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였다.

이런 작가를 이제야 만나다니 좀 아쉽군,하는 마음도.

그러다가 버뜩 알아버렸다!

아,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 외롭구나.

외로워서 책을 읽어 줄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외로워서 흙을 파먹고

외로워서 중얼중얼거리고

또 외로워서 국기게양대와 사랑에 빠지는구나.

.

.

.

.

.

그러다가 마지막에 알았다.

작가도 외로워서 쓰기 시작했다는 걸.

언제나 불운의 늪에서 허덕거리던 소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무작정 쓰기밖에 없었던 게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며,

갈팡질팡 버둥버둥대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재밌고, 유쾌하고, 신선한데

그만큼 슬프고 따듯해서 나도 모르게 위로 받았다.

나만 흔들리고, 나만 외롭고, 나에게만 불운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것 같은 사람에겐

최고의 소설이 아닐까.

 

이제부턴 국기게양대가 예사로 보이지 않을 듯하다.

작가도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국기게양대도 있는 겁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껴안아주려고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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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구광본 - 오래 흔들렸으므로



오래 흔들렸으므로

구광본


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알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
얼키고 설킨 뿌리를 몰라도
오래 목말랐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파팍, 불꽃이 피는 운명적인 때가 있듯이 아름다운 글귀도, 꼭 그 글귀가 필요할 때 등장하기도 한다. 저 시의 '나'가 '지금의 나'라고 생각했다. 오래 흔들리고 오래 서러운 게 지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시 한 편에 위로 받는다.

역시 문학의 힘은 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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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1-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 좋은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나 마음에 팍,하고 박히던지요;;;
 
로그인하시겠습니까? - 국어시간에 쓴 중학생 소설 모음 아침이슬 청소년 4
이상대 엮음 / 아침이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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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소설을 썼다. 또래 아이들이 사용하는 비속어가 난무하고, 글은 거칠다. 하지만 마음에 여운이 남는 것은 왜일까. '중학생이 쓴 소설'이라는 편견은 다소 고압적인 자세로 책을 펴들게 하기 충분했다. 지들이 쓰면 얼마나 썼겠어, 라는 마음이랄까. 하지만 나는 내 청춘을 생각하며 낄낄거리기도 했고, 외로운 아이들의 마음이 전해져 뭉클하기도 했고, 아이들을 뒤흔들어놓는 주변의 상황들, 선생님, 부모님의 무지함에 같이 분개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생활과 심리상태가 생생하게 다가와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물질적인 것으로밖에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고, 따듯한 말 한마디 해주려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버리는, 우리의 보통 부모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은 흔히 "나는 모 그 시절이 없었는 줄 알아? 나도 다 겪어보고 하는 얘기야."라고 말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처해진 상황이 그때와는 또 얼마나 다른지, 간접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갈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부딪치고 저렇게 해도 부딪치고, 그러니 어디서고 마음 놓고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않나요? 이런 갈등 속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면."

왠지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은 보면, 나도 속으로 '니들 참, 대견해.'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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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섬 아침이슬 청소년 1
시어도어 테일러 지음, 김석희 옮김 / 아침이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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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이야기는, 나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비키니 섬'이라는 곳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거니와, 히로시마 원폭투하 이후에도 수차례 핵실험이 자행된 곳이 있었다니(내가 너무 상식이 부족했나-_-). 게다가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쫓아낸 후 수많은 동물들을 죽여가며 실험을 강행한 곳. 그곳이 이 비키니 섬이다.

권력과 힘, 과학의 오용은 무서운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조상이 물려준 지혜를 바탕으로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들이 스페인, 독일, 일본, 미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며 결국에는 핵실험의 장소로 자신들의 터전을 내줘야했다. 실험을 마친 후 2년 후에 섬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섬은 여전히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라고 한다.

미국의 패권주의, 전쟁과 핵무기 같은 문제들 외에도 그런 권력에 부딪혔을 때, 나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주인공 쏘리처럼 빨간 카누를 타고 원폭을 투하하지 말라는 저항의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결과가 어떻든), 아니면 마지못해 권력에 복종하게 될까. 지나간 역사이긴 하나, 현재도 되풀이 되고 있는 이 역사의 한가운데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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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7-2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미FTA가 떠오르네요. 1인시위를 한 어느 분의 글에서 역사가 지난후 그때에 자신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자신있게 말하기 위해 행동했다고 하더군요. 그 글을 읽고 참 부끄럽더군요. 난 지금 어디를 서성거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