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귀신을 무서워했다.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는 믿으며,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힘든 영혼의 세계란 것은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귀신을 무서워하게 된 건 <전설의 고향> 탓이 크다. 어린 시절 엄마의 등 뒤에 숨어서 보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들은 대체로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는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당하기도 한다. 그래, 이 부분. 나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나타나는 귀신은 인정할 수 있지만, 죄 없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귀신은 인정할 수 없었다. 죄도 없는 내가, 그 사람이, 그들이, 귀신에게 쫓겨다니는 모습에서 아마도 나는, 귀신이란 존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즉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마냥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특별한 죄를 지지 않았어도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래도 매년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공포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여름에 한 번쯤은 공포영화를 봐줘야 한다는 나의 말에 친구들은 웃는다. 영화는 반이나 볼까 말까 이고, 나의 몸은 어느새 의자 속으로 파고든다. 친구는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네가 없어서 놀랐다며 킬킬거렸다.

 

올해도 극장을 찾았다. <검은 집>은 심리 스릴러라고 생각했지, 공포물이라고 생각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잔인했고 여운은 길게 남았다. 웬만한 일에는 일 분이면 잠드는 내가, 그날은 몇 시간을 뒤척였고 겨우 선잠에 들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잠이 깰 때마다 칼을 들고 노려보는 유선이 나타났다.-_- 어릴 때는 겁이 많아서 무서운 얘기를 들으면 불을 켜고 자거나 했지만 스무 살이 넘은 이후에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들은 아무 해가 없는 사람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라는 것. 하지만 그들이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관념 속에서 영혼에게서 무언가 나쁜 일을 당하는 것은, 자연재해나 뜻밖의 사고처럼 인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 영혼에다 대고 뭘 어쩌겠어? 라고. 하지만 그것이 사람일 때는,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사람일지라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는 왠지 수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은 집>의 황정민이 그들을 사람이라 믿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런데 또 공포영화를 봤다. <기담>이라는 영화. 올해는 유독 더 무서워하면서도 유독 더 보려고 기를 쓴다. 조금이나마 극복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공포는 적응이란 게 잘 안 되는 놈인가 보다. 볼수록 무서워지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진다.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잘 보는 친구에게 너는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흘린다고 한다. 어어어헉!!! 높은 경지다. 나도 그러고 싶다.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공포를 즐기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왜 그들은 온 세포가 곤두서는 그 경험에서 찌릿함을 느끼고 왜 나 같은 사람은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느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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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포장하면 자기만 힘들고 거짓말의 연속이 된다.

 

나를 까발릴 때 영혼의 편안함이 있다.

 

그리고 내가 먼저 포장을 벗으면 남들도 함부로 손가락질 못한다.

 

-뮤지컬 배우,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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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8-0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진리는 이리 간단하면서도 어려운건가 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0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고!! :)
 

 



홍대 지하철 역에 빠알간 의자가 생겼다.

그 끝에 앉아 멍하니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엉엉 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공교롭게도 같은 의자의 반대쪽 끝,

너무도 선명한 그 붉은 빛 위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다.

여자라고 하기엔, 아직 앳된,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양갈래로 묶은 머리 위에 얹어진 분홍색 캡모자의,

여자아이가.

 

 

문득 다가가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괜찮다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더라고.

그런 상투적인 말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은 오지랖,

아님 휴지라도 한 장 건네고 싶은 안쓰러움.

 

 

언젠가도 집에 가는 길,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다가

우는 여잘 본 적이 있다.

손에 잔뜩 쇼핑백을 든 그 여자는

모자도 쓰지 않았는데,

주변 상황은 전혀 인식할 수 없다는 듯

대성통곡을 하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기분 좋게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갑작스런 비보에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다는 듯.

 

 

그들에게서 어느 시절의 나를 만난다.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던 적도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상실, 혐오 때문이었던 적도, 나 하나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 때문이었던 적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판단을 내리거나 생각할 틈은 없다.

그냥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 폭발적인 울음소리와 끝이 없을 것 같은 눈물의 양은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슬픔이든 고통이든, 찾아오는 그 감정에

잠시잠깐이나마 자신을 내맡길 줄 안다는 건,

그건 건강하고 자연스럽다.

우는 여자의 울음소리와 흔들리는 어깨,

남을 의식한다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일그러진 표정엔

살아 있다는 생동감,이 있었다.

나, 지금 너무 슬퍼요. 도와줘요. 나 어떡해요...

빛나던 슬픔의 순간은 눈물을 타고 사라져버릴 거다.

그러면 그 빈 자리엔 또 긍정의 감정이 자리잡겠지.

그것이, 최대의 자연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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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7-1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도 그렇게 보일까요?ㅎㅎ
남자의 울음은 가슴이 울고, 어깨가 울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전 우는 남자의 들썩이는 어깨가 제일 슬퍼 보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울면 왠지 더 슬퍼보이죠? 왜 그럴까. 아마도 남자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많은 시간을 억누르고 자제해왔을 텐데 오죽하면 저렇게 울까 싶어서 더 안타깝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우는 남자는 건강한 남자라고 생각한답니다.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건,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D
 

 

나는 실물을 보고 책 사는 것을 좋아한다.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꽂혀서 산 책들은 대부분 그때의 내 상황과 감정상태에 충실히 들어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분은 오프라인 서점이 죽을 수 없는 이유로 책과의 우연한 만남, 예를 들면『데미안』을 사러 왔다가 『수레 바퀴 아래에서』를 알고 가는 경우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책과의 인연은 사람과의 인연만큼이나 묘한 구석이 있다, 고 나는 믿는다.

이병률의 『끌림』, 잉크냄새님의 블로그에서 말이 좋아서 퍼오기도 했지만, 이 책은 오래전부터 눈여겨둔 책이기도 했다. 어떤 책은 한번 쓰윽 보고 사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데려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한번 들었다가 다시 놓기를 반복하게 되는 책, 이 책도 그랬다. 요즘은 안 그러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점에 가면 여행기 코너는 꼭 한 번씩 들렀는데 그때마다 화려한 여행기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 깔끔한 표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몇 번을 들었다 놨을까. 그러다가 서점도 잘 안가게 되고, 가도 여행기 코너는 잘 들르지 않게 되면서 이 책도 서서히 멀어져 가는 듯했다.

그런데 언젠간 한 번 읽어봐야지 했던 이 책이, 얼마전 내게로 왔다. 어떤 사람의 손을 거치고, 그의 친구의 손을 거치고, 그의 손을 거쳐.

만나야 할 사람이 반드시 만나는 것처럼, 책도 만나야 할 책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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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7-1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나 봅니다. 님의 영혼과 책의 영혼의 끌림이 님의 손에 이병률의 <끌림>을 턱하니 가져다 놓은 모양입니다.^^

비로그인 2007-07-1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지다.
저도 간절히 원하는 게 하나 있는데...
제손에 들어오게 될 날이 있을까요? 돌고 돌고 돌아서라도...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1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 님의 홈피에서 끌림의 구절을 퍼다나른 순간 그 끌림이 증폭된 건 아닐까요? :D
체셔고양이님 - 사진이랑 닉넴이랑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간절히 원하는 건 시간이 걸릴지언정 반드시 들어오는 것 같아요. 꼭! 기필코! 님 손에 들어올 거예요.^^
 

-글쓰기, 도전해봐야 할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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