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으면 가끔 한밤의 배처럼 흔들리며 선잠을 잤던 그 날을 떠올린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켜놓은 티비에선 삐익-쓰나미 경보가 울리고, 그러면 잠에 취해 눈을 뜬 나와 신랑이 손을 꼭 잡고, 온 집안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림이 잦아들면 꼭 잡은 손을 헐겁게 쥐고 잠이 들고 또 흔들림이 찾아오면 다시 손을 꼭 잡던,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꿈처럼 기억하는.
3.11 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는 도쿄 근처의 사이타마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일본에 온 지 2년이 넘은 그때, 우리는 특별한 희망도 없으면서 왠지 고향은 금의환향해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일본을 떠나지도, 뭘 이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왔고, 우리는 그걸 잡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어지럼증과 같은 지진이 찾아왔다.
오후 3시쯤 추워서 나가기는 싫은데 집엔 먹을 게 없어서 마트를 향해 집을 나섰다. 가까운 곳에 '야오코'란 대형마트가 있지만, 전철 선로 위 육교를 지나면 건너편엔 더 싼 대형마트가 있으니까, 10엔, 20엔이 아까운 나는 자연스레 싼 곳을 향한다.
육교로 가기 위해 길을 걷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왔다. 어어, 왜이러지? 그런데 그건 현기증이 아니라 땅이 흔들리는 거였다. 그리고 저 하늘 위로 새떼들이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어디선가 새를 따라가면 죽진 않는다는 얘기가 생각났고, 나는 그곳을 향해 냅다 뛰었다. 그리고 가까운 마트 '야오코'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진이 나자 사람들을 밖으로 대피시킨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착했고, 너무 놀란 한 여인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쓸어리고 있었다. 그러고도 흔들림은 5분 정도 지속됐다.
그때만 해도 가볍게 지나가는 지진이려니, 이 지역에서만 일어난 일이려니,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회사에 있을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 열 번, 스무 번... 아무리 해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새 공중전화박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다. 다들 통화가 되질 않는다고 난리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별일이야 있겠어. 지진 초보 경험자인 나는 다시 마트를 가다 전봇대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본다. 마트와 가게들이 문을 닫고 비상사태에 돌입하는 것을 본다. 뭔가, 심상치가 않다.
어쨌든 티비를 보면 사태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집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가슴이 철렁. 집안의 온갖 가재도구들이 떨어져있다. 이상하다,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는 가재도구들을 본 순간, 그냥 속상하고 당황스럽고 슬펐다. 티비를 켜고 신랑이 있는 곳에는 사상자와 피해가 없는 것을 확인한다. 070 전화가 울린다. 친구들이 시댁, 친정식구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신랑과 연락이 되지 않지만 괜찮은 거 같다, 고 대답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집에서 되지 않는 휴대전화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며 신랑을 기다리고 있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십 분 이십 분 사이로 여진은 계속 됐고, 집안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도 무서워서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편의점, 거리, 책방... 문을 연 곳이면 어디든.
집과 밖을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면서 수백통 전화를 걸고 또 걸고... 그리고 세 시간쯤 지나 6시가 넘었을 무렵,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고, 많이 흔들리긴 했지만 자기가 있는 곳도 괜찮았다고. 전차는 운행되지 않으니, 천천히 걸어오다가 택시라도 타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신랑이 다음날 새벽쯤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다. 전차로 한 시간 거리이니 걸어오려면 밤새 걸어야 할 거라고.
그 와중에도 배는 고파서 마침 문을 닫지 않은 근처 패밀리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많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사람들 속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혼자, 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나에게 신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외로운 거였나.
만약에 혹시 일이 잘못돼서 죽게 되더라도 누군가의 곁에서 죽고 싶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타인이라도, 심하게 냄새나는 더러운 부랑자라도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단 나으리.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이 혼자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지진과 쓰나미보다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일에 혼자 놓여 있다는 것이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장장 네 시간을 부런히 걸어 신랑이 왔다.
너무 빨리 와서 깜짝 놀란 나에게,
신랑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오로지 그 생각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그날 밤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잠을 잤다.
견딜 만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신랑의 손을 꼬옥 잡고 견디면 흔들림은 사그라들었으니까.
다시 집이 흔들리는 공포 속에서도 붙잡을 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그전부터인지
우리는 손을 잡고 자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