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지하철에서 벌어진 정말 아주아주 작은 사건이었다.

 

한 달에 두 번 복지재단의 잡지 교정을 보러간다.

다달이 날짜는 다르지만 거의 월,화로 잡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도 월요일, 무척 붐비는 날이었다.

나는 7호선 남성역에 사는데,

이수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아침시간엔 늘 만원이다.

문이 열리고, 빼곡빼곡 들어차 있는 사람들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차를 몇 대를 보내도 같은 걸 알기에

과연 내가 들어갈 수나 있을까 싶게 빼곡한 사람들 사이에

내 몸을 구겨넣는다.

옴싹달싹할 수 없는 몸의 부자유보다

제자리를 지키려 뻣뻣하게 구는 사람들의 완고함이 더 불편하다.

그날은, 차를 탈 때부터 문가에 서계시던 젊은 할머니가 팔꿈치를 내세우며 나를 공격해댔다.

오랜 세월 억척스럽게 굴며 살아왔을, 그것만이 나를 생존시켜줄 것이라 믿어왔던 사람의 방식이다.

 

그런데!

잘 달리던 지하철이 갑작스레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벌어졌고, 무방비 상태로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옆으로 기울어졌다. 내 옆의 키 큰 아저씨가 큰 고목나무가 베이듯 나를 향해 쓰러져왔다.

허우적대던 나는 순간적으로 문가의 봉을 잡았고, 겨우겨우 넘어지진 않았지만 오른팔이 아려왔다. 봉을 잡지 않았더라면 크게 넘어졌을 상황이었다.

먼저 문가에 서서 봉을 잡고 있던 할머니. 급한 김에 봉을 잡은 내 손은 할머니의 뒷목을 감싸는 형국이 되었고, 옆으로 쓰러지면서 할머니의 목이 죄는(?) 그런 형국이 되었나 보다. 뒤를 돌아 내게 한마디 쏘아붓이는 할머니의 말이 가관이었다.

"아이구, 손을 놨어야지!"

".........??"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나는, 순간 내가 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물론 만원 지하철 안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니 짜쯩이 날 수도 있다.

날 째려보면서 아프잖아, 라고 무언의 항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속으론  별별 생각을 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입밖으로 나왔다는 게,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소름이 끼쳤다. 무서웠다.

마치 존재를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괜찮으면 돼!!!!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내렸지만,

그날 하루 내내 머릿속에서 그 말이 맴돌았다.

더 큰일이 생기면 저 사람은 더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우리 좀더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

조금만 아주아주 조금만 더 다정해지고 너그러지워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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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워낙 섬세하게 잘 쓰시고 묘사력이 탁월하셔서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읽는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또한 좀더 다정한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한편의 수필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주어진 상황은 독자를 슬프게합니다.

차라리 전철의 바닦에 혼자 나뒹구는 한이 있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약간의 불편이 되더라도 관용을 베풀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는 도대체 그 어떤 윤리관을 가진 사회인지...
타자가 부정되는 사회는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애민'이라는 말은 임금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장자는 우물가의 위태로운 어린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보호하려는 인간의 마음은 본능과 같은 것이어서 그 누구라도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철에서의 상황은 마치 '장자님, 그 말씀이 틀리셨네요'라고 말하는 듯해서 더욱 슬프게합니다. 장자의 그 말씀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 여쭙고 싶은 말씀은..."할머니께서는 전철 바닦에 혼자 쓰러지실거에요?" 낙상하시면 약도 없는데 ㅠ.ㅠ


다음은 저 혼자 중얼거리는 말입니다. '마음을 데려가시는 분' 께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니 심각하게 생각하시지는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늙어가서는 타자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보다 더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타자를 이해하고 염려해주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회는 연세드신 분들께서 외롭지 않게 사실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몇해 전 유럽에서는 혹서로인하여 울.리.지. 않.는. 전.화.기. 옆에서 혼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프랑스의 언론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바로 '울리지 않는 전화기'였습니다. 가슴을 무너지게하는 개인주의를 앵커는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도 울리지 않는 전화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될까봐 더럭 겁이납니다. 말씀하신 대로 '믿어지지 않고, 소름이 돗으며, 무서운 일'입니다.

반대로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얼마나 놀랐느냐' 라는 글이었더라면 나는 그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돌았을 텐데...슬픔으로 눈물이 핑 돌려고합니다..우리집의 전화기도 울리지지 않는 날이 올까봐서요."


그나저나 마음을 더 무겁게 해드렸나봅니다. 다치시지는 않으신거죠??

차트랑 2012-01-0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따구가 싸~ 한 상쾌한 아침입니다.
그러나 겨울 날 치고는 그리 추운 날은 아닙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 귀여운 고양이는 집에있는 고양이 입니까요?
블로그에서나 볼 수 있는 이쁜 고양이라서요...ㅠㅠ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1-09 13:32   좋아요 0 | URL
저도 인터넷에서 주워온 녀석입니다.
너무 예쁘죠? 호호호

차트랑 2012-01-07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제에 비하면 더 춥습니다.

차트랑 2012-01-1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워다 키우고 있는 녀석이란 말씀이죠^^
아주 이쁜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