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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유를 즐기는 백조인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가끔은 멍때리는 것,이다.
나는 이제 커피의 크레마를 보고
향을 맡고 한모금 입에 넣어 맛을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쿱 ;ㅂ;
집에서는 조금 멀지만 이수역 근처에 이쁜 카페가 생겼다.
가게는 일본의 아기자기한 카페를 연상시키고
주인언니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 상을 연상시킨다.
역시나, 주인언니는 영화를 보고 이런 카페를 구상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작은 규모의 가게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인의 시선 안에 다 들어오는 가게 안에 있다 보면
뭔지 모를 답답함과 구속을 느낀다.
뭔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시끄러운 프랜차이즈 가게를 찾을 정도이니.
정작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애미한 관계(주인과 손님)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익명의 개인으로 남길 원하는,
나는 그런 요즘 애다.
그런데 점점 이 언니의 매력의 빠져들기 시작했다.
유별나게 살갑게 구는 것은 아닌데
이야기할 수록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의 소유자였던 것.
먹을 것을 좋아하는 나,
먹을 것을 나보다 좋아하는 언니.
'일본의 간장과 한국 간장은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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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 중이었던가,
스타벅스에서 일을 했었던 언니가 마음이 바닥까지 추락했던 일화를 시작했다.
늘 저지방우유를 넣은 거품이 만땅인 카푸치노를 시키던 손님.
게다가 그란떼사이즈를 주문했으므로 늘 그 큰 컵을 카푸치노 거품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야 했다고 한다.
번화한 스타벅스에서는 조금만 주문이 밀려도 손님이 문밖까지 줄을 서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손님이 오면 그 손님만을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음료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신입이 주문을 잘못 넣어 언니는 일반우유로 음료를 만들게 되었다.
다 만든 음료를 카운터에 내놓는 순간,
그 손님의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잘못을 직감.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짜증을 내더란다.
"이 언니 맨날 이래!!!!!!"
자기 잘못은 아니지만 모든 실수를 손님에게 설명하기도 뭣한 노릇이고
예전에도 한번 실수한 적이 있어서 뭐라 말은 못하고 묵묵히 음료를 새로 만들어 대접했다고.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드는 건
별것 아닌 일들의 연속이다.
그날따라 소개팅남과 약속이 있었고,
언니는 차가 막혀 거의 한 시간이나 늦은 남자를
엄청난 바람이 부는 날 벌벌 떨며 기다려야 했고,
게다가 언니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남자는 영화를 예매해두었는데 그 영화가 <2012>였다.
영화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과연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하며 언닌 그냥 영화를 포기하자고 했지만,
가보기나 하자는 남자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기적같이 영화의 예고편이 시작될 때 극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뭐 되는 일도 없는 오늘 같은 날,
관심도 없었던 영화.
그런데 점점 영화에 몰입이 되기 시작하더란다.
그리고 마음이 눈 녹듯 풀리기 시작했다고.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그깟 일이 뭐 그리 대수냐고.
그런 마음이 들었더란다. 푸훗.
그리고 처음으로 그 남자의 그날 스타일이 눈에 들어오면서
생각보다 괜찮았단다.
만약 그 남자와 잘되었다면 이날의 일화는 아주 로맨틱하게 끝났겠지만, 뭐. 여기까지!
그날 이후 우울한 사람에겐 언제나 <2012>를 추천하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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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일로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건
역시 별것 아닌 일이다.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다쳤을 때,
그것을 엄청난 삶의 여정 속의 자그마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삶에서 스치는 소소한 것들에
애정을 쏟을 수 있다면,
우린 풍부한 거품이 넘치는 카푸치노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에 크레마가 가득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