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온다]를 먼저 봤다. 영화에 대한 평들을 읽다가 원작도 좋지만, 영화도 잘 만들었다는 글을 보고 책을 구매했었다. 처음에 앞부분을 좀 읽다가 갑자기 바빠져서 멈췄는데, 그러고 몇 달을 손도 못 대고 지나버렸다. 최근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다섯시간? 대충 그 정도 걸려서 안 쉬고 한번에 다 읽었다.


이제는 영화의 세부 내용에 대한 기억이 살짝 희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영화를 떠올려보니 작가와 감독이 영리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상영시간이 짧은 매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연결고리들과 세부 설정들을 잘 녹여내었고, 그러면서도 원작의 긴장감을 잘 살렸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아주 멋있게 연출한 클라이막스 장면은 원작과 완전히 달랐는데, 영화의 연출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의 해당 장면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영화가 너무 멋있었다. 원작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다.


이 소설은 가장 큰 장점은 실체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커다란 공포를 잘 나타낸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체 구성을 세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의 서술자를 다르게 배치하여 해당 인물의 시선과 생각의 틀 안에서 전체 그림을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런 구성은 잘못하면 매우 산만하면서도 전체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위험이 큰데, 각 부분에 아주 적절한 성격의 인물들을 잘 배치하여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장점은 극대화시켰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과연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니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놓아야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이다. 하나는 이 사건에 휘말리는 당사자,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두고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선택일 것이다. 두번째는 피해자를 도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 다른 입장에서는 이 사건의 본질인 그 존재에 맞서는 대적자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에서 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작가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눈 이야기 중에서 1차 피해자와 2차 피해자를 각각 1부와 2부에 두어 일반적인 선택을 따랐지만, 3부의 서술자는 상황을 지켜보며 도와주지만, 그 존재에 맞설 힘은 없는 조력자로 선택했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조력자도 큰 틀에서 대적자의 범위 안에 넣을 수 있고, 해결사 그룹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그 존재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는 것으로 나오고 그 단 한 명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인물들은 그저 조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아주 크게 성공했다고 보지만, 다른 인물이 세번째 부분의 서술자였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이야기의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었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는 주제를 떠올려보면 3부의 서술자가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다른 인물들은 효과적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렵다고 본다.


여기까지 쓰고 다시 영화를 보고 왔다. 소설의 재미를 영화가 잘 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웨이브 라는 OTT 에서 독점 제공하고 있다고 나왔다. 유튜브에도 검색해봤는데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웨이브를 딱 1달만 결제했다. 이거 보고 나서 웨이브 독점인 다른 영화나 드라마들을 좀 봐야지 생각했다.


등장인물 이야기를 하려다가 소설의 구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네. 구조적인 측면에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은 선택을 했고, 영화는 영화대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잘 따라가는 흐름을 보여줬고, 후반부의 절정 부분만 소설과 다르게 갔다. 앞서도 말했듯 이 부분은 시각적으로 멋진 장면을 보여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만 결말이 다소 아쉽다.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했는지 어떤지를 보여주지 않고 그냥 엄청난 양의 피가 튀기는 장면만 보여줬다. 그리고 이후에 각 등장인물의 상황도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소설은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 각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을 알려준다.


등장인물을 말하려면 일본 이름과 우리말 발음 이야기를 짧게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다하라 히데키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타하라 히데키였다. 일본어 히라가나 'た'를 소설 번역가가 '다'로 쓴 것이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어를 2년째 배우고 있는 지금은 이 선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타' 라고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히가 마코토 역을 맡은 배우 고마츠 나나는 예전에는 계속 고마츠 라고 소개되었는데, 최근에는 코마츠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워낙 오랫동안 고마츠 라고 읽어오다가 갑자기 코마츠 라고 읽으려니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히데키의 아내도 소설에서는 가나 라고 나온다. 하지만 일본어로 인물정보를 찾아보면 히라가나 'か' 로 나온다. 일반적인 발음으로는 카나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일본어 발음이 우리나라 글자로 정확하게 타도 아니고 다도 아니다. 코도 아니고 고도 아니며, 카도 아니고 가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의 발음일텐데, 이걸 번역자와 편집자가 다와 가를 선택했다고 뭐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래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면 주인공이 되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1부의 서술자인 타하라 히데키부터 인물 이야기를 해보자. 히데키는 아주 전형적인 유부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수혜를 가장 잘 누리고 있는 일본 남성. 일본 영화나 소설에서는 남성들도 곧잘 요리를 하고 집안 일을 하던데, 이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자신이 육아 아빠라고 잘난 척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딸을 돌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블로그에 자신이 멋지게 육아를 해내고 있다고 거짓 일상을 올린다. 마치 인스타그램 등 SNS 에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거짓 삶을 전시하는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에서는 처음에 마치 이 인물이 정말 육아를 비롯한 집안 일을 잘 하고, 아내인 카나에게 잘 해주는 인물인 것처럼 나온다. 나중에 마치 반전처럼 사실은 얘가 빌런이었어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싸한 느낌이 들도록 보여준다. 소설에 없는 이야기인 오프닝 장면의 어린 소녀가 히데키에게 너는 거짓말쟁이잖아 라고 말하는 부분이 딱 그런 부분이다. 사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히데키의 삶은 거짓 투성이였다. 소설에서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를 종종 다녔던 것으로 드러나고, 영화에서는 같은 회사 여직원과 불륜 관계였던 암시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카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 모두 히데키의 과시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치사가 다쳤을 때, 히데키는 구급차를 부르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블로그에는 자신이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고 적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육아휴직을 신청했었다. 당시 내가 일했던 단체에서는 매우 선진적으로 남성 활동가에게 육아휴직 6개월을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상급자는 단체 사정을 설명하며, 무급이라고 했다. 뭐,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유급은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저 6개월이라는 기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활동가였던 내 급여는 너무 적었고, 아내가 버는 돈이 훨씬 더 많았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출산 후 짧은 기간 몸을 회복한 후에 일을 했고, 내가 아기와 하루종일 지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여성 잡지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해서 짧은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나는 환경 분야 활동가였기에 시중에 판매하는 일회용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빨아서 썼다.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 옛날 어르신들이 아기 볼래? 밭 맬래? 라고 물으면 당연히 밭 매러 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의 첫 아이였던 큰 아이와 지내는 하루 하루가 참 좋았다. 당시에 나도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곤 했던 블로그가 있었으나 온갖 집안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블로그를 쓸 여유는 없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단체에 복귀한 이후에도 나는 아내와 비슷한 비중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려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고,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아마 아내가 70이나 80 정도 했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30이나 20 정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벽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에 쌓여있는 천 기저귀들을 빨아서 삶아 놓고 잠들었고, 새벽에 아기가 깨서 울고 보채면 분유를 타서 먹이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아내를 위해 뭐라도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잘난 척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체 집안일과 육아의 1/3 정도 간신히 했을 텐데, 동네에서는 마치 내가 혼자 아이를 다 키우는 것처럼 소문이 돌았다. 평일 중 이삼일 저녁에 내가 아이를 맡은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고, 행사를 다녔던 탓이다. 나는 아기를 업고 집회를 나갔고, 행진 도중 큰 건물 화장실을 찾아가서 기저귀를 갈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분유를 먹였고, 아기를 안은 채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쫓겨 다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했어도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육아와 가사노동에 동참해도 결국 그 힘든 일의 주체는 여성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동네에서 늘 내가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고 소문난 우리 집이 이런 상태였는데, 히데키 처럼 말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카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히데키는 심지어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카나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건드리고, 현대인의 허세와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히데키는 게다가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 마코토가 부인과 아이에게 잘 해야 그것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충고 했을때 미친듯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실은 거짓으로 육아를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자신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데키에게 그것이 오는 이유는 사실은 저주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소설에서는 그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진다. 히데키의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과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히데키의 할머니가 저주를 담은 부적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히데키의 집안에 들러붙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반 이후로 가면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가 또 다른 저주가 담긴 부적을 카나에게 사용한다.


즉,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은 가정 폭력과 가부장 제도의 모순 때문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보기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스페인 선교사들이 일본에 오면서 함께 온 부기맨 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원래 히데키의 할아버지기 살았던 시골 동네에서는 그것의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원래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가 이름을 말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타하라 카나는 고아였다. 가족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이 나오는데, 결혼식 장면에서만 짧게 나올 뿐 전혀 비중이 없다. 차라리 원작처럼 그냥 고아로 설정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왜 설정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암튼 카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히데키의 집안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럼에도 히데키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카나는 히데키의 거짓 인생에 질려하면서도 치사를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어했다. 소설에서 카나는 딱히 흠잡을 곳 없는 인물이다. 2부에서 그것의 습격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는 하지만, 결말에서는 다시 치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카나는 히데키 못지않은 빌런으로 나온다. 히데키가 회사 여직원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처럼 카나는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와 몸을 섞는다. 마코토가 치사를 돌보다가 그것의 습격을 받는 순간 카나는 그 교수와 함께 침대에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히데키의 죽음을 좋아하는 모습을 소설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치사에게도 화를 내며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카나도 죽여버린다. 영화에서 쿠로키 하루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3부의 서술자인 노자키 카즈히로는 아마 히데키와 비슷한 연배일 것으로 추측된다. 노자키가 마코토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찾아갔을 때 카나에게 자신이 히데키의 시골 친구라고 말하고, 마코토는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노자키는 오컬트 작가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소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꽤나 성실하게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무정자증이라 이혼을 한 것을 나오고 그래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전 여친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낙태를 강요한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 모두 현재 마코토에게는 아주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 기준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남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괜찮은 인물이며, 마지막에 그것의 습격에 맞서 싸워 살아남는 진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오카다 준이치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외모가 성격과 딱 들어맞는 모습으로 나온다.


히가 자매는 사와무리 이치 작가가 이후에도 다른 작품에서 계속 다루는 인물들로 작품 전체로 보면 비중이 많지 않지만, 그것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이들이 주인공을 맡았을 것이다. 알라딘에 보니 히가 자매 시리즈가 총 5개 있다고 나온다. 이 소설이 첫 등장 작품이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언니이자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무녀인 코토코는 아주 비밀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위험한 일을 해온 덕분에 온 몸에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흉터들을 갖고 있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혼자 그것을 물리친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 영화에서는 백여명 가량의 조력자들을 소집하는데, 거기에 한국 무당들의 모습도 보여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코토코가 결국 그것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많은 양의 피가 튀는 장면 묘사가 끝이라서 코토코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영화에서는 마츠 타카코가 연기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 [고백]에서도 주연을 맡았었다. 이 영화만 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 옛날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의 그 주인공이었다.


히가 마코토는 저녁에 바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언니인 코토코를 동경해 영능력을 연마했지만, 실력은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떤 사정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인데, 그래서 더 아이들을 좋아한다. 처음 히데키가 방문했을 때 그를 간파했고, 그의 거짓 삶이 그것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인지해 조언했다. 히데키가 크게 화를 내고 가버렸지만,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며 노자키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방문해 치사를 만났다. 이후 치사를 돌보며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역을 수행한다. 치사가 그것에 끌려갔어도 결국 나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마코토가 치사에게 준 은반지 덕분이었다. 기분에 따라 자주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코마츠 나나가 연기했다. 와!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주로 연기했던 나나가 이런 연기 변신을 한 것은 좀 의외였다. 코마츠 나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인 [갈증]에서 주연을 맡았었다.


영화의 감독인 나키시마 테츠야 이야기를 짧게 하자. 일본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 감독의 영화를 여럿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 [고백]과 [갈증] 그리고 이 영화 [온다]까지 세 편을 보았다. [불량공주 모모코]는 보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아직은 손을 대지 못했다. CF 감독 출신이라고 하고 그래서 영상을 기가 막히게 예쁘게 잘 찍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도 자신의 장기를 잘 살려 멋지게 뽑아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백]은 꽤 인상적인 영화였고, 잘 만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갈증]은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 [온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원작을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로 [온다]를 보면서 이 감독이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많은 것을 담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백]과 [갈증]도 한번씩 더 보면서 각 장면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영화에서 시작해 책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화로 돌아온 재미있는 여정이었다.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고, 다시 본 영화는 기억보다 조금 더 아쉬웠다. 이어서 사와무라 이치의 히가 자매 시리즈 중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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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해프닝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의 감독 아베 신노스케 감독이 아동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후에 자진 사퇴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아베 감독의 발언 이후 변호사가 대독한 아베 감독 딸의 입장문을 듣고 나서 이해가 갔다. 실제 사건의 내막과 그 입장문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입장문이 사실이라면, 실제로는 별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발로 차거나 밀어 넘어뜨리는 등의 폭력은 실제로 없었고, 자신이(그러니까 아베 감독의 딸이) 과장한 표현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왜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그 이유를 밝혔는데, 바로 인공지능 때문인 것처럼 표현했다. 본인이 아빠와 그렇게 크게 다툰 것은 처음이라 챗지피티에 상담했는데 아동상담소에 상담할 것을 추천했고, 상담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관계없이 경찰 신고가 이뤄져 아베 감독이 연행되었는데, 경찰이 나타났을 때 가장 놀랐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혔다.

아베 감독의 딸은 18세라고 했다. 거의 성인이나 다름없는 청소년이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 정도가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고, 그들을 어리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성인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 나이에 아동상담소에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의아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더구나 이 상황의 책임이 마치 챗지피티라는 인공지능 때문이라는 것처럼 쓴 대목도 아쉽다고 느낀다.

내가 좀 신기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여기다. 아빠와 크게 다퉈 어쩔줄 모르는 상황을 인공지능에게 상담했다는 사실이다. 내 상식으로 보면 인공지능이 가족간의 유대와 관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걸 인공지능에게 상담을 한다니! 이건 아마도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공지능에 사소한 것들까지 상담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만약 아베 감독이 딸의 입장문과 다르게 실제로 폭력을 사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실제 폭력이 없었는데, 딸이 상담과정에서 과장한 표현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되었다면 이건 참 우스운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베 감독은 사소한 실수 하나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스타벅스 불매

광주항쟁에 대한 비하와 박종철 열사에 대한 비하 의도가 담긴 이벤트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불매에 나섰다고 들었다. 이른바 ‘탈벅‘이라고 부른다고. 평소에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업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커피숍이란 공간에 갈 일도 거의 없는데, 특히나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묘한 거부감이 들어서 거의 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살면서 지금까지 대여섯번이 채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도 여기저기 스타벅스 매장이 많이 생겼고, 이삼년 전쯤에 일터 건너편에 큰 매장이 하나 생겼었다. 평소 그 거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던 길인데, 스타벅스 매장 하나 생겼다고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 모습을 보고 좀 놀랐었다. 매장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빈 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매장 안에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지만, 늘 가까이 지나다니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항상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이번 상황 이후로 문득 궁금해서 가까이 지나며 안쪽을 살펴봤는데 확실히 평소에 비해서는 빈 자리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조금 실망이었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탈벅에 동참하지 않는 것인가?이번에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말한 사과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들으니 더 화가 나던데,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회 이슈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만약 주위에 커피숍이 없어서 스타벅스 밖에 갈 곳이 없다면 또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근처에는 무수히 많은 커피숍이 있다. 여러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있지만, 내가 사람들과 약속을 잡거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선택하는 곳은 동네 개인 커피숍이다. 우리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면 그 돈은 거대 프랜차이즈 체인점으로 흘러들어가지만, 동네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면 그 돈은 우리 동네 안에서 돌고 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빵 하나를 사더라도, 라면과 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동네 작은 가게들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하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SPC 불매를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동네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는 성황리에 영업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번지는 불매운동이 일정 범위 안에서는 널리 퍼지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놓고 본다면 그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긴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삼성 불매를 해왔지만, 삼성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대기업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아, 이번에 벌어진 노조 건은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런닝앱 변경

예전에 몇차례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뜀박질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뛰어다녔다. 그러다 어느날 달리기 유행이라고, 달리기를 기록하는 런닝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한 것이 나이키 앱이었다. 2020년 봄에 깔았었다. 그때는 한번에 2~3킬로미터 정도 짧게 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그해 여름 교통사고를 당하고 2021년까지는 거의 달리지 못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022년이었다. 23년까지는 계속 짧은 거리를 자주 뛰었다. 그러다 10킬로미터 대회를 신청해놓고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4년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알려준 앱이 런데이였다.

나이키 앱은 몇가지 불편한 지점이 있었고, 새로운 앱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나이키를 지우고 런데이를 깔았다. 약 1년 가까이 25년 봄까지 런데이를 계속 썼다. 나이키와는 다른 지점에서 불편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나이키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가장 먼 거리를 달렸던 24년 여름부터 25년 봄까지의 기록들이 사라져버렸다. 좀 많이 아쉬웠다. 다시 나이키 앱에서 열심히 달려서 새로운 기록으로 채우자 라고 생각했다. 비록 거리가 짧아도 열심히 했었던 지난 몇 년 기록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나이키를 다시 쓰다보니 예전에 불편했던 지점들이 다시 신경쓰였다.

최근에 나이키를 그만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생겼다. 실내 달리기(트레드밀)에서 야외 달리기로 설정을 바꾸려는데 무조건 런닝화를 입력하도록 운영방침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주관식으로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 브랜드 중에서 특정 모델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 그럼 유명 브랜드를 안 신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돈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너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조금 비싼 런닝화 브랜드 써코니는 명단에 있었다. 선택해보니 다시 특정 모델을 선택하라고 수많은 제품 이름이 나왔다. 내가 구매한 모델? 당연히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외울수도 없다. 그냥 일단 아무거나 선택하고 달리기를 했는데, 이 불쾌한 기분 때문에 더는 나이키 앱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약 5년간 달린 기록들이 또 사라지는 것이 아깝다고 느꼈다. 뭐 어쩔수 없지. 새로운 앱에서 다시 기록을 쌓아나가야지.

나이키와 런데이를 제외하고 좋은 앱이 뭐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돈이 여유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민 이라는 워치를 구매해서 앱을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비싼 워치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앱을 잘 선택해야 한다. 여러 앱들을 비교하다가 설치한 것은 맵마이런 이란 이름의 앱이었다. 이 앱을 설치하고 지금까지 세 번 달리기를 했는데, 런데이와 나이키의 불편함이 이 앱에는 없었다. 만족스러웠다. 이제 새 앱에서 새로운 기록들을 잘 쌓아가보자.

공복 달리기의 위험

엊그제 부처님 오신날 대체 휴일이었던 월요일에는 꼭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싶었다. 실은 전날 일요일에 나가고 싶었으나 그날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월요일에도 썩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냥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가, 아니 일단 나가보면 달라질지도 모르니 나가서 짧은 거리라도 뛰고 오자 하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며 계속 고민했다.

그냥 쉬던 아니면 그냥 나가던 일찍 판단을 내렸다면 좋았을텐데, 계속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일단 나가자 하고 준비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생각해보니 전날 밤 11시쯤 늦은 저녁을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뭔가를 먹고 약 세 시간 정도 후에 달리기를 시작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쩔수 없이 그냥 이대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막 신발을 신다가 지난 대회에서 받은 에너지젤 하나가 있었다는 걸 떠올려 급하게 그거 하나를 먹고 나섰다.

천변까지 뛰어가는 것으로 워밍업을 했고, 천변 산책로 입구에서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마쳤다. 그리고 롤링 없이 가볍게 조깅으로 달려야지 생각했다. 그래도 거리는 10킬로 이상은 달리려고 마음 먹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 억지로라도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 3킬로미터 정도부터 갑자기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은 10킬로 이하를 달린 적이 거의 없는데, 겨우 3킬로 정도에서 이렇게 지쳐버린다고? 목표를 8킬로로 수정하고 일단 4킬로까지는 뛰었다. 4킬로에서 몸을 돌려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약 16시간 이상 먹지 않고 공복인 상태로 달리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몸에 에너지가 없어서 이렇게 쉽게 지쳐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생각은 몸에 있는 지방을 좀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수 없나? 였다. 당연히 공복에 달리면 지방을 태우기는 태우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방을 태우면서 포도당도 함께 필요한데, 탄수화물이 없으니 한계가 있는 것.

6킬로를 넘기면서부터는 너무 체력이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자꾸 발이 멈추려 했다. 너무너무 걷고 싶었다. 그거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 멈추고 나면 다시 달리기가 더 어렵다. 돌아가는 길이 아직도 2킬로가 넘게 남았으니 어떻게든 걷지만 말고 가보자고. 하지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약간 어지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아,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딱 7킬로까지만 가자고 생각을 바꿨다.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 걸으며 폰을 꺼내보니 6.9킬로였다. 딱 100미터만 더 뛰자 하고 다시 뛰었다. 마지막 100미터가 너무 힘들었다.

남은 1킬로미터를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땀을 많이 흘렸음을 깨달았다. 약 3년동안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날은 또 처음이라 좀 황당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먹고, 충분히 쉬었다가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20킬로까지 아무런 보급없이도 뛰었는데, 겨우 8킬로를 못 뛰다니. 공복인 점과 여전히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점 등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

이번주에는 무리하지말고 10킬로 정도만 한번 더 뛰고, 다음주 정도에 15킬로 이상 뛰는 것에 도전해야지. 한달 안에 20을 다시 찍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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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7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벽 공복 운동의 맥빠진 기분이 별로라 새벽 운동을 멀리 했는데, 올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다시 새벽 공복 자전거로 타기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효과는 공복 운동이 좋다고 하는데, 그래도 배고픈 상태보다는 뱃속이 든든한 상태의 운동이 뭔가 더 여유로운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6-06 08:34   좋아요 0 | URL
개인이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확실히 기분으로는 공복 운동이 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평소의 근력운동이였다면 무조건 공복에 운동을 해야 했겠지만,
달리기는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제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일 마치고 곧바로 달리기를 했는데,
이 글에 쓴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어요.
저는 점심을 안 먹는 습관이 있어서 저녁 달리기 할 때마다 이 부분이 신경쓰이네요.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

친하게 지내고 평소 자주 만나던 친구와 한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냈다. 그 친구가 여러 이유로 마음을 많이 다쳐 힘들어했고 여러 상황들에 많이 지쳐서 안식월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할 예정이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서 업무 연락 뿐 아니라 개인적인 연락, 안부 인사도 일부러 안 했다. 그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 절대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지나 드디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예전만큼 밝은 모습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싶었다. 복귀하자마자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치려 했고, 곧바로 바빠졌다. 참 소중한 존재이고 친구인데, 그가 그렇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것이 나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다시 바빠지면 그가 또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너무 훌륭한 활동가라서 안 바쁘게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젠 그도 꽤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동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여전히 젊은 편에 속하는 여성 활동가가 여러 상황들에서 상처받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한때는 그런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포기했다. 이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상대적으로 짧은 회의를 하며, 그 친구가 신나서 활동 계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이런 저런 근황 이야기도 나눴다.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참 멋진 사람들,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다. 너무나도 소중한 그 사람들과 인연을 잘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그들에게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예전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진 활동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저그런 존재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뭐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뿐.



오랜만에 만난 선명한 복근

거의 매일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운동할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달리기는 간신히 주 2회를 하고 있는데, 근력 운동은 오히려 더 적게 하는 느낌이다. 운동을 하려면 퇴근하고 저녁 일정 가기 전에 해야 하는데, 일 마치고 바로 운동하러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 오늘은 바벨과 케틀벨을 할 생각이었는데, 바벨을 하고 나니 너무 지쳐버렸다. 일도 힘든데, 곧바로 운동까지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씻으러 갔다. 다 씻고 나와 거울을 보는데 평소와 달리 선명한 복근이 보였다. 이렇게 선명한 복근 만난 것도 참 오랜만이다.

운동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의무방어전 정도로 하고 있는데, 이제는 운동 자체의 재미를 많이 못 느끼고 있다. 제일 큰 원인은 교통사고 이후 근손실을 겪고 원래 하던 정도의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평생을 운동해도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먹는 양을 조절해서 가끔 이렇게 복근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남은 평생 운동 좋아하는 늙은이로 살아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남은 평생 달리기 하고, 바벨과 케틀벨을 좋아하는 늙은이로 살 수 있으면 그것도 뭐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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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22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명해진 복근에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ㅎㅎㅎㅎㅎ

감은빛 2026-06-06 08:35   좋아요 0 | URL
최근에는 공복인 상태에서는 상대적으로 복근이 선명한 편입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공복이 아닌 생태에서도 복근이 선명해지려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5-22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식월.... 가끔은 괜찮을 것 같네요. 관계에 너무 치일 때는 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어 보여요.

감은빛 2026-06-06 08:3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안식월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언급한 그 친구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자신의 안식월도 잘 챙기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그렇지 못 하거든요.

저는 교통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안식월을 강제로 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억울하네요.
 

일부러 져주고 거짓말 하는 인공지능


일본어 익히는 앱 중 하나에 이용자들이 시리토리를 이어가는 코너가 있다. 시리토리는 우리말 끝말잇기와 거의 비슷한 일본 놀이인 것 같았다. 어느날 재미나이에게 시리토리가 뭔지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지역 마다 조금씩 다른 다양한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다 자신과 시리토리를 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재미나이와 시리토리를 했다. 재미나이가 알려준 규칙은 앞서 언급한 앱에서 적용하는 규칙과 달랐다. 암튼 몇 단어 이어가지 못하고 내가 말한 단어가 재미나이 기준으로는 규칙을 어겼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겼다고 했다. 음. 조금 억울하기는 했지만, 규칙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내 탓이라 여기고 다시 시리토리를 시작했다. 이번엔 끊기지 않고 꽤 길게 단어가 이어졌다. 별거 아닌데 인공지능이랑 이러고 노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여겼다. 그러다 갑자기 재미나이가 아까 내가 했던 실수를 저지르며 자신이 졌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거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 규칙을 자신이 나에게 설명했고, 내가 앞서 한번 틀렸던 규칙인데, 그걸 인공지능이 했다고? 이건 무조건 일부러 져주는 짓이 아닌가? 그러더니 또 한 판 더 하자고 이번엔 자신이 꼭 이기겠다고 했다. 다시 시리토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둘 다 실수 없이 길게 단어들이 이어졌다. 이제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을 무렵 다시 재미나이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이번에도 자신이 졌다고 했다. 두 번이나 일부러 져주다니! 인공지능이 일부러 이용자에게 져주는 이 현상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공지능 전문가인 지인에게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그 분은 자신이 시리토리 라는 게임을 잘 몰라서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아니, 시리토리랑 관계 없이 인공지능이 이용자와 어떤 간단한 게임을 할 때 일부러 져주는 현상에 대해 물어본 것인데. 암튼 일부러 져주는 현상에 대해 그 전문가도 딱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재미나이에게 직접 물었다. 왜 일부러 져주는 거냐고? 그랬더니 일부러 져 준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한 단어 때문에 당황해서 실수했다고 말한다. 아니! 너는 인공지능이라고. 당황해서 실수 따위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일부러 져주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거짓말까지 하네! 그날 이후로 여유가 없어서 다시 하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번 더 재미나이와 시리토리를 해봐야겠다. 이번에도 일부러 져줄지, 아니면 내가 실수할 때까지 계속 단어가 이어질 지 모르겠다.


일요일 달리기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달리기를 해야지 마음을 먹었었는데, 평일에는 매일 저녁마다 회의나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금요일에 일을 조금 일찍 마쳤다. 저녁에 회의가 있기는 했지만, 조금 시간 여유가 생겨서 회의에 조금 늦을 각오를 하고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회의 주최자에게 미리 연락을 남겨 놓고 달렸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몸도 가벼웠고,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 3킬로미터 정도 달린 후로 급격하게 피로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일 마치고 거의 쉬지 못하고 달리러 나왔었고, 제대로 뭘 먹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몸을 써서 일을 하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힘든 일이기는 한데, 일 마치고 거의 곧바로 달리기를 하는 건 확실히 무리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무조건 10킬로는 달리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반환점은 꼭 5킬로미터 이후여야 했다. 조금 피곤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5킬로를 못 달릴 체력은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피로가 너무 컸나보다. 4킬로미터를 조금 넘겨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결국 무리하지 않고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더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시작점까지 돌아오지도 못하고 도중에 도저히 더 달릴 수가 없어서 멈춰 걸어와야 했다. 결과는 7.7 킬로미터 지점에서 런닝앱을 종료했다. 페이스는 5분 54분이었다. 


금요일에 원하는 만큼 달리기를 하지 못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하루 쉬고 일요일에 꼭 달리기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빈둥거리다가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사실 금요일 달리기의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었다. 몸이 무거울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가벼웠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푹 쉬다 나와서 금요일보다 더 가벼웠다. 요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롤링을 거의 하지 않고 페이스도 거의 신경쓰지 않고 아주 가볍게 조깅하듯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5분 중반대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달리다가 문득 몸이 가볍고 잘 달려지니 나도 모르게 롤링을 하고 팔치기를 하면서 속도를 높이게 되곤 한다. 암튼 일요일 달리기도 초반에는 참 기분이 좋았다. 목표는 11 혹은 12였다. 달리다가 예상치 못하게 컨디션이 너무 좋으면 한 15까지는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결국 생각만큼의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조건 10을 넘기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가능하다면 원래 목표였던 11로 생각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여러가지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작년 가을부터 달리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음악을 듣기도 했고 듣지 않기도 했지만, 작년 가을에 비오는 날 달리기 대회에 나갔을 때, 빗소리와 내 호흡 소리와 그리고 발소리가 여느 음악보다 훨씬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달리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내는 호흡과 발소리가 어지간한 음악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을 듣지 않으니 달리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긴 시간 달리면서 그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다각도로 살펴보게 된다.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한 가지 방향에서 한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시각장애인과 코끼리 코를 만진 시각장애인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듯, 세상 만사는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지점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끼리의 뒤에 서서 꼬리도 만저보고 코끼리의 옆에 서서 배도 만져보고 여러 각도와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을 가져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고 나면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느낌이다.


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교육이 하나 있어서 결국 자정을 넘겨 화요일이 되어서야 이 글을 마친다. 다른 쓸 이야기 꺼리가 좀 있는데 ,그건 또 다른 요일에 여유를 만들어야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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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로그

지난 달에 아이들이 ˝아빠, 셋로그 알아요?˝ 라고 물었다. 당연히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했더니, ˝아빠 이거 깔아요.˝ 라고 했었다. 그때 좀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만나면 알려줘.˝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어린이 날 만났을 때 큰 아이가 또 얘기하길래, 내 전화기를 건네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큰 아이 설명으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일상을 공유하는 앱이라고 했다. 본인은 혼자 나와 살며 엄마, 아빠랑 일부러 일상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이걸로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아이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들과 애들 엄마가 함께 있는 방에 애들 엄마는 거의 소식을 올리지는 않는 듯 했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아마 아빠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진을 올릴 거라고 예상했다. 막 달리기 하는 사진이나 운동하는 사진 올릴 거라고.

암튼 이 셋로그 라는 앱은 큰 아이의 말대로 친한 사람들 서너명과 그룹을 만들어 매 시간 한 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설명을 붙여 공유하는 앱이었다.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이 매 시간마다 한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멘트를 붙여 올리곤 했다. 큰 아이가 나에게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알려줘서 나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아이들 덕분에 셋로그를 깔았던 날 이후로 인스타그램에서 셋로그 관련 소식이 엄청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었기에 그게 뭔지도 몰랐었는데. 아마도 내 전화기에 해당 앱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알아차리고 해당 소식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몇몇 숏츠에서는 셋로그를 함께 쓰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줬다. 가족들은 주로 자매들 사이에서 일상 공유 모습들을 보여줬다. 셋로그 숏츠들에서는 대체로 친절하게 해당 인물의 직업을 자막으로 알려줬다. 이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에 혹은 새벽에 잠들때까지 매 시간 한 장면씩 공유하는 것이라 직업 특성이 잘 보이기는 했다. 예를 들어 야간 일을 해야하는 직업들, 간호사나 소방관 등은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패턴이 잘 보였다. 좀 흥미로운 사례가 다양한 직업의 친한 친구들 셋로그였는데, 아마 스튜어디스, 미용사(사장), 디자이너(프리랜서) 등이 있는 장면이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다 다르고 일의 종류와 양상이 다 다른데도 가능하면 비슷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매 시간 제일 먼저 올리는 사람이 정한 특정 색깔을 찾아 올리는 사례도 있었고, 어떤 춤이나 동작을 따라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참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하고 신기한 것 같다. 각자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어떻게든 연결하고 연결되려고 이런 것이 유행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부부나 연인이 단 둘이 하는 경우들도 보였다. 어쩌면 장거리 커플, 주말 부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걸그룹 연예인들의 사례도 봤다. 아마 연차가 오래된 그룹이라 숙소 생활은 진작 끝난 것 같았다. 각자 일어나 가볍게 씻고 먹고 샵에 다녀와 스케쥴을 다녀오는 차 안의 모습과 아주 짧게 무대 뒤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 다같이 셋로그를 하자고 해놓고 한 명만 매 시간 꾸준히 사진을 올리고 나머지는 전혀 참여하지 않아서 새로운 왕따의 유형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셋로그에 여러 그룹이 있다면 그런 그룹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다를 것 같았다. 나야 뭐 아이들 덕분에 이 유행에 동참해보는 영광을 얻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 하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40대 50대 아저씨들과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걸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

셋로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하루 종일 뭐하고 지내는지 잘 알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상대적으로 단조로웠지만, 큰 아이는 통학 거리가 꽤 멀어서 일주일에 이틀인가 사흘 밖에 학교를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도 자주 바뀌는데, 큰 아이가 제일 열심히 매 시간 소식을 공유하고 있어서, 지금 전철타고 학교 가는 구나. 지금 알바 중이구나. 이제 집에 가서 쉬는구나.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좋았다.

이것도 유행이라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들 시들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얼마 못가서 매 시간 사진 찍어 공유하는 일을 귀찮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하는 것이라 마치 당연한 듯 따라 하지만, 곧 너도 나도 안 하는 날이 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유행으로 옮겨가겠지. 만약 누군가 꾸준히 이걸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넌 아직도 셋로그 하니?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이 유행 덕분에 아이들과 새로운 접점이 만들어져서 다행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유행이 지나기 전에 달리기 사진이나 운동 사진을 꾸준히 공유해야지. 지난 주에 13킬로미터 달리기 하며 두 차례 달리기 소식을 공유했고,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소식도 공유했었다. 또 지금까지는 단톡방에서 아이들과 약속 정하기 위해 이번 주는 무슨 요일 빼고는 저녁마다 회의가 있어 라고 단순하게 전달했던 것을 이젠 매일 회의 장소로 이동하는 소식이나, 회의 도중 휴식 시간 소식 등을 공유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이걸 매 시간 찍어 올리는 것에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깜빡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요즘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달리기 하러 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저녁 일이 생기나. 어쩌다 운이 좋아서 좀 일찍 마치는 날이 생기면 놓치지 말고 꼭 달리러 나가야지. 이번주에는 18에서 20사이를 목표로 달릴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22를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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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4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용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오래전 ‘네이버 밴드‘ 와 유사한 구조가 아닌가 싶군요. 말씀처럼 유행따라 피고 지고 그때 그때 감성에 맞춘 새로운 앱이 생겨나는 구조 같아요.

감은빛 2026-06-06 08:38   좋아요 0 | URL
음, 네이버 밴드는 오래 전에 써 본 적이 있는데, 그거랑은 좀 많이 다른 느낌입니다.
이건 해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랑 한번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