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능력


좀 더 젊었을 때는 머리 회전이 빨라 뭐든 바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 여겼다. 그리고 내가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잘못이었다는 걸 작년부터 계속 깨달아가는 중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능력은 공감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편인라 여긴다. 아마 두 달쯤 전에 어느 회의 자리에서 업무 관계에서 소통이 어려운 사람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라는 얘길 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이 늦어지거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자체에 대해 의견을 냈으나, 새로 임원으로 합류할 예정인 한 분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힘드시겠어요. 얼마나 답답할까!" 그 분의 그 말과 표정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실제로 나는 답답하고 힘들었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남성은 어쩌고 여성은 어쩌고 하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신 것과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을까? 평소에도 다른 여성분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남성은 글쎄 그다지 자주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터인 공용 사무실에 내 책상 맞은편에는 이웃 협동조합 사무국장님이 계신다. 내가 여기 활동을 시작할 때도 계셨으니 벌써 5년 넘게 마주보고 앉아 일하고 있다. 이 분은 50대 여성이신데, 각종 행정업무와 회계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본인 표현으로 간단한 서류도 어려워한다. 물론 말씀은 그리하셔도 몇 년간 조합의 업무를 혼자 해내왔으니, 다소 약한척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우리 두 사람은 평소 이런저런 업무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나,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그 보다 더 나가서 서로 도와주거나, 상대가 어려워하는 분야를 쉽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분도 나에게 공감능력의 중요성을 많이 일깨워준 분이시다.


3월 초에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이자, 가장 어렵고 힘든 행사인 총회를 마쳤다. 해마다 안 힘들었던 총회 준비는 없었지만, 올해가 유난히 더 힘들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 힘든 총회를 마치고 조합원들 중에서 수고 많았다고, 고생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한 마디씩 건넨 분들은 모두 여성분들이셨다. 아, 물론 남성 중에도 수고했다고 말을 건넨 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느낌에 진심으로 내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는 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형식적인 인사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평소 나와 친한 사람들 뿐이었다.


이렇게 공감능력의 관점으로만 보면 확실히 여성은 뛰어나고, 남성은 열등하다. 그리고 이 뛰어난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자들이 여러 영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신다. 특히 활동가들 중에서도 50대 여성 활동가들이 많다. 이 분들의 공감 능력에 나는 오늘도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여유가 뭔가요?


작년에는 1,2,3월 3달 동안 3개 법인의 총회 준비를 했다. 그 중 연합회 1개 법인 총회 준비는 각 회원조합의 임원진 5명 가량이 자주 모여서 함께 준비했고, 또 다른 연합회 1개 법인의 경우 나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해야했다. 그리고 우리 조합의 경우 임원들과 실무자가 1명 더 붙어서 함께 준비했다. 하지만 작년에 나는 혼자 3개 법인의 총회 준비를 다 했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그 이유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작업인 총회 자료집을 나 혼자 준비했기 때문이다.


3월 초에 우리 조합 총회를 마쳤고, 어제 연합회 총회를 마쳤다. 올해는 2개 법인의 총회를 준비했는데, 작년에는 총회 자료집을 혼자 정리했기 때문에 혼자 준비했다고 다소 과장해서 표현했지만, 올해는 정말 혼자 2개 법인의 총회를 준비했다. 실무자가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a부터 z까지 뭐 하나 내 손이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었고, 나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간 상태로 3달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일터에 동료가 들어와 함께 일하고 있다. 곧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청년인턴제도를 통해 20대의 활동가도 합류할 예정이다. 어제 연합회 총회를 마치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혼자 다 떠안고 죽을 힘을 다해 일하지 않겠다. 만약 그래야 할 상황이 또 생긴다면 그냥 포기하거나 떠나버릴거라고.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정신을 좀 차리고 살아야겠다. 하고 싶었던 운동도 다시 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외국어도 다시 배우고, 기타도 다시 튕기고, 제일 하고 싶었던 일, 책도 다시 많이 읽어야겠다.


금주와 금연


불규칙적으로,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는 관절 통증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어떤 날엔 손가락 관절, 어떤 날엔 손목, 또 어떤 날엔 발목과 무릎, 어떤 날엔 어깨, 어떤 날엔 골반 통증이 느껴지곤 했다. 제일 잦은 건 손가락, 손목, 무릎이었다. 작년 언젠가부터 아픈 날도 있고, 괜찮은 날도 있었지만, 이제 괜찮아졌네 하고 한동안 나았다 싶은 느낌은 없이 계속 이어졌다.


병원에 가기 전에 나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는데, 증상이 살짝 다른 면도 있었지만, 대체로 겹치는 면이 더 많다 싶었다. 의사 선생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무릎과 손목, 손가락 등 관절의 모양과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핀 의사는 외관 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음성이었다. 즉,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 외엔 이렇게 온 몸의 관절이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아팠다가 괜찮아지는 증상이 뭐가 있을까?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어쩌면 이 증상이 뭔지 답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평생 따라다니는 통증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한다.


지난 번에 병원을 찾은 후로 의사 선생님이 술을 마시지 말것과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요청했다. 담배는 많이 줄여서 이젠 평소엔 거의 피우지 않고, 가끔 술 자리에서 한 두대 피우고 말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술이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꽤나 자주 술을 마시고, 그 술 기운에 정서적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병원을 안 갔으면 몰라도, 갔으면 의사 선생님 말씀을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이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3월은 여기저기 총회가 많고, 중요한 술자리도 많았다. 하루는 친한 후배가 활동하는 협동조합 총회에 갔다가 뒤풀이를 가지 않고 그냥 떠났는데, 후배가 깜짝 놀라며 진짜 많이 아픈거냐고 물었다. 어지간히 아픈 걸로 술을 마다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만 아픔이 커서가 아니라 괜찮은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면서 계속 이어지는 이 통증이 지긋지긋해서였다.


그렇게 술의 유혹을 잘 뿌리치며 며칠을 버텼는데, 하루는 어이없이 답답한 공무원들의 태도 때문에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려서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고는 기분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결국 자주 만나는 술친구를 호출했고,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나왔다. 그날 술을 마시고 담배도 얻어 피웠으니, 금주와 금연은 며칠가지 않아 깨져버렸다.


뭐 가급적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되, 어쩔수 없는 경우에는 가볍게 술과 담배를 해주는 것이 아예 한 잔도, 한 개비도 안된다는 강박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어쨌든 의사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하고 다시 처방을 받아야겠다.


그 와중에 강양구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술에 대한 책 소식을 접했다. 어째 이 책을 읽으면 더 술이 땡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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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3-2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줄이세요...

감은빛 2019-03-27 20:11   좋아요 0 | URL
네, 술 줄이고 있다고 쓴 글이었어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03-27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3-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줄이시면 좋겠어요...

감은빛 2019-03-27 20:12   좋아요 0 | URL
네,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도 친한 선배가 제가 있는 공용사무실 한 켠에 입주해서,
입주 기념으로 한 잔 하자는 걸,
아파서 못 마신다고 거절했어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9-03-2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술줄이실수 있어요. 가늘고길게 오래 마십시다

감은빛 2019-03-27 20:14   좋아요 0 | URL
네, 사실 가늘고 길게 오래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통증은 없애고 봐야겠기에
당장은 술을 줄이려구요.
고맙습니다!
 


드라마의 영향


집에 티비가 없어서 남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면서부터 20년 가까이 티비 없이 지냈더니, 가끔 어딘가에서 티비를 보면 낯선 기분이 든다. 물론 티비가 없어도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고 싶은 건 대부분 찾아서 보는 편이다. 중요한 스포츠 경기나 영화는 종종 본다. 그러니 티비가 없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난 호흡이 긴 드라마 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가 아무래도 더 좋다. 드라마는 매우 잘 만들어서 긴장감을 팽팽하게 가져가지 않으면 늘 지루함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본 드라마가 거의 없다. 유명한 드라마도 아예 한번도 안 본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 대략 2년쯤 전부터 우리 집에 오면 노트북으로 늘 드라마 켜 달라고 난리다. 예전엔 주로 [청춘시대]를 봤다. 시즌 1과 2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서너번 이상 보더니, 아예 장면과 대사를 다 외울 지경이다.


아이들은 얼마전까지는 [뷰티 인사이드]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영화와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난 처음부터 별로였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 좋아했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94]를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면서 노트북을 가져갔다. HDMI 케이블로 화면이 큰 티비와 연결에 엄마에게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일하느라 바빴고, 겨우 시간이 나도 공중파에서 하는 막장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광고 없이 열심히 드라마를 봤다. 아까 말한 [응답하라 1994]였다.


내게도 딱 그 시절이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였기에, 드라마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X세대라고 앞선 선배들과 많이 다르다고 늘 자부했건만, 이제와 보면 뭐 그리 다를 바도 없었던 것 같다. 


암튼 드라마 덕분에 아이들과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휴대전화가 없었어. 라고 말하면 그럼 어떻게 연락했냐고 묻는다. 집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썼다고 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다고 말하면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삼천포가 서태지 카세트 테이프를 뜯어서 거꾸로 감다가 윤진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묻길래, 먼지가 잔뜩 묻은 비틀즈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서 보여줬다. 노래를 들려줘보려고 낡은 미니 콤퍼넌트에 테이프를 넣어봤는데, 고장났는지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삐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삐삐를 보면 그 옛날 커피숍 테이블마다 놓여있던 전화기들이 생각난다. 일부러 여자아이들과 연락 주고받기 편하게 웬만하면 커피숍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나경이가 매직 아이를 보지 못해 답답해 하는 모습이 나왔다. 애들은 저게 대체 뭔데 저렇게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해했다. 내게 아빠는 볼 수 있었어? 묻는다. 기억에 몇 개의 그림들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매직 아이 책을 요즘도 팔지 않을까? 알라딘에 검색해보았다. 한 권 있었다. 그럼 혹시 중고 매장에는? 아쉽게도 부산에 있는 매장들엔 그 책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주말에 작은 아이와 매직 아이 책을 사러 알라딘 중고 매장으로 향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매장에 딱 1권이 있었다. 아이가 원하는 만화책도 사주고, 나도 읽고 싶었던 인지 심리학 책을 골랐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빨리 매직 아이 책을 보고 싶었다. 과연 다시 보면 그 입체 그림이 보일까?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가 눈동자를 모으고 책을 펼쳤다. 처음엔 계속 해도 안 보이고 눈만 아팠다. 작은 아이는 자기도 해보겠다고 계속 책을 뺐어갔다. 요령을 아무리 가르쳐줘도 잘 따라하지 못했다. 반복 또 반복. 계속 실패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딱 입체 화면이 열렸다. 그 다음부턴 다른 그림들도 잘 보였다. 물론 어떤 그림은 아무리 봐도 잘 안보이는 것도 있었다. 작은 아이는 요령을 잘 터득하지 못하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만화책으로 눈을 돌리더니 더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직 큰 아이에겐 보여주지 못했다. 과연 큰 아이는 볼 수 있을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드라마 덕분에 한동안 옛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만 시간 배경과 달리 공간 배경이 서울이라는 점은 별로다. 아무래도 같은 시대라도 부산과 서울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 중 마산 출신이 많아 익숙한 사투리는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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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중력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혹은 익숙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한다. 나는 가끔 지켜보는 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어떤 일을 빨리 처리하곤 하는데, 그때의 나를 다시 분석해보면 분명 익숙한 일이거나, 좋아하는 분야가 조금이라도 포함된 일이었다. 그때의 집중력은 엄청나다. 시장 한 복판이나, 전쟁터에 갖다 놓았어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내 주의를 끌지 못했을테니. 가끔 마감에 쫓겨 일을 마무리 할때도 비슷한 집중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다 해놓고 나면 언제 다했을까 싶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도 했다.


내 경우 10대 후반부터 딱 30대 중반까지 이렇게 집중력이 좋았던 때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이제 40대가 넘은 지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집중력이 예전만 못하다. 주위에서 자꾸 늙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40년 조금 넘게 살았을 뿐인데, 벌써 늙어 집중력이 떨어지면, 남은 반평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슬프고 무섭다.


작년 연말 무렵부터 이 서재에 여러 번 글을 썼듯이 길고 긴 침체기를 겪으며 내 집중력은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도저히 이 시점을 넘기면 큰일 날 업무를 만날 때에만 반짝 불이 붙었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평소엔 어떻게 이렇게 일이 안 될 수가 있나 누구 용하다는 무당이라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게 집중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자꾸만 딴 생각. 자꾸만 딴 짓. 자꾸만 내 마음이 어디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은 상태에 빠진다.


돌아와라. 집중력. 제발! 네가 없으니 내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네가 내 곁에 당연하게 머물렀던 시절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어왔던 유능하다는 평가와 빠른 업무 처리가 지금 내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


작년 연말부터 몇 가지 일을 제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으면서 한동안 잘 쌓아놓았던 유능한 사람 이미지, 좋은 후배 이미지를 계속 까먹고 있다. 이틀이 멀다하고 누군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 정신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왜 이랬을까? 나도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다시 예전처럼 집중력이 돌아오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겠지. 집중력이 돌아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모르겠네. 


내향성과 외향성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혼자 구석에서 책 읽기를 즐겼다.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교 때부터였다. 아니 본질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인 일요일 오후는 늘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맛있는 음식에 술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여기서 혼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가끔은 혼자 시간을 보내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아, 물론 어쩔때는 혼자가 외로워 친구나 후배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곤 한다. 도무지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운 순간, 누군가 부르면 나와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지 모르겠다. 다행이도 그런 친구나 후배나 선배가 적어도 10 손가락으로 세는 것 보다는 많다는 걸 깨달으며 그래도 인생 잘 못 살지는 않았구나. 느낀다.


사람들이 겉으로 판단하는 내 모습.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고, 주도하고, 정리하는 모습은 내 기억에 대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진 혹은 길들여진 모습이다. 가끔 남들 앞에선 겸손하지만 대체로 내 잘난 맛에 살았던 나는 저런 내 모습이 익숙하다고 여겼다. 긴 시간 반복하며 익숙해진 일이니까. 혹은 원래 이런 일을 잘 했으니까. 난 원래 잘났으니까.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보면 어떤 특정한 인간관계나, 술을 마시는 등의 특정한 조건에 놓여있지 않는 한, 난 절대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게 고스란이 몸에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 편으로 남들 앞에 나서서 그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기를 즐기면서, 그 인정과 주목을 내 뛰어난 능력 덕분으로 돌리며, 이런 건 익숙하다 여기며 나를 속이지만, 실은 그 인정과 주목을 위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난 가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거나, 술을 마시는 걸 즐기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은 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빈도의 문제일뿐 때로 변하기도 한다.


친구


앞서 말했듯 내가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지금도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과거 출판 영업자로 일했던 시절에 비하면 인간 관계가 많이 줄었다. 그리고 친하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었고, 그 빈도도 줄었다. 어떤 특정한 시기마다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조금씩 바뀐다. 지금은 대학 동기이자, 초등학교 선배이고, 잠시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가장 친한 사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새삼 깨닫는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슬프고, 외롭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그래도 버텨내고 있는 건 저 친구가 자주 곁에 있어 주어서가 아닐까 싶다. 고마워 해야 겠다!


감정 나눔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을 꼭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다. 그 시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새벽에 깨서 이불을 차고 맨 몸으로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서 여며주고, 흩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만져주며,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의 따뜻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이 내게서 그 순간을 빼앗아 버린다면, 어쩌면 나는 더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점점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날 것이다. 더이상 내 품에 꼭 안겨 잠들지 않는 날이 오겠지.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 미래가 두렵고, 그 순간이 곧 닥칠까봐 두렵고, 불안하다. 지금 사춘기를 맞은 큰 아이가 가끔 너무나도 낯선 모습으로 내게 반항하곤 하는데, 그 빈도가 점점 늘어나 언젠가는 아예 내 품을 떠나버릴까봐 무섭다. 지금은 내 무릎 위에 앉길 좋아하고, 안아줘, 안아줘 어리광을 부리는 작은 아이가 곧 자라 큰 아이 처럼 되어버릴까봐 겁난다. 그런 시간이 오면 과연 난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소중함


가끔 감정이 북받쳐 극단적인 충동이 들 때도 있다. 아니 청소년 시기에 그런 충동이 가장 강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감정이 들어도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긴 시간 경험을 통해 나는 그럴만큼의 용기도 없는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을 제외하면, 평소 나는 내 삶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요즘 가끔 관절 통증으로 몸이 아프긴 하고, 아주 가끔 비염으로 힘들 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아주 건강한 몸으로 자랐다. 키도, 몸무게도, 외모도 특별히 잘나지 않았지만, 특별히 못난 것도 없어서 평범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게다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도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았고, 앞으로도 뭘 하던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또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엄청나게 똑똑하고, 잘 생기고, 돈이 많고, 몸매가 좋지는 않지만, 적당히 똑똑하고, 못나지 않은 외모에, 가난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고,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몸을 가진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들, 선후배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과의 거리만큼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좀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인지 심리학


순전히 우연히 유튜브에서 인지 심리학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봤다. 와! 완전 흥미로웠다. 같은 강의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그의 다른 강의들을 찾아서 봤다. 인지 심리학이란 학문은 진짜 신기했다. 심리학이라고 하면 대학시절 교양 수업과 책 몇 권 읽은 후로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책을 좀 읽고 싶어졌다.
















그의 강의 몇 개에서 나온 핵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지각하지 않는 법

일과 시간을 쪼개서 계획하고 행동하라. 가능하면 최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눠라.

지각하는 이유는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간 계획을 잘 못 세웠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시간 관리를 잘 못한 것이다.


2. 월요병을 극복하는 법

과거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음악 소리가 고문처럼 느꼈던 수많은 직장인들은 불안과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월요일 아침에 닥칠 일을 미리 적어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역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계획하는 것이 불안을 떨치는데 도움이 된다.


3. 빠져나가는 월급을 지키는 법

마음 속에 여러개의 계좌를 개설해서 돈을 쪼개놓아라.

가능하면 자세하게 돈을 사용할 명목을 붙여 사용처와 금액을 정해둬라.

돈에 이름을 붙이고, 한도를 정하고 최대한 작은 단위로 분산해놓아라.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자꾸 계획하고 적으라는 것.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적으라는 것. 번호 붙여가며 적으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20대 시절 한창 일 잘한다고 여기저기서 인정받던 시절에 내가 습관들였던 일이다. 특히 번호 붙여가며 적는 것. 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았을까? 아니 어쩌면 선배 활동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내 것으로 만든 것이겠지.


또 하나 창의성과 상황에 대한 그의 강의가 참 재밌고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3학년 4개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이야기는 정말 신기했다. 결국 낯설게 하기가 꼭 필요하단 얘긴데, 이것도 20대 시절 문학 공부하던 시절 그렇게 집착했던 개념이 바로 낯설게 하기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이별과 고통에 대한 인지 심리학계의 최근 발견 소식이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당할 때와 가족의 죽음이나 연인과의 이별 혹은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아픔을 느끼는 뇌의 분위가 같다는 것이다. 적어도 뇌는 고통을 느낀다는 측면에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따로 차별하지 않는 다는 얘기. 그래서 진통제를 먹으면 정신적 고통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누군가 다친 이에게 마음을 써서 위로하듯,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마음을 써서 다가가 위로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 강의를 듣고 눈물이 났다.


이 사람 책도 사서 읽고, 강의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겠다. 유튜브 자동 재생 목록 덕분에 우연히 대단한 인지 심리학자 한 명을 만났다. 고맙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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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0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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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farewell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이젠 가늠도 잘 안 되는데, 그게 정확한 시작 시점을 기억할만한 어떤 계기 없이 차츰 나를 잠식해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길고 긴 이 침체기를 좀 벗어나보려고 다양한 뭔가를 시도중이다.


영화에 몰두해보기도 하고, 잘 안 읽던 종류의 책에 손을 뻗어 보기도 하고, 꽤 오래 연락할 일이 없던 이에게 뜬금없이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건 운동인데, 이건 비정기적으로 이어지는 관절 통증 때문에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시동을 걸어보고 있는데, 과연 예전처럼 씻은 듯이 관절 통증 없이 운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부분이 내 우울한 감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다크하고 딮하고 블루한 감정의 가장 큰 원인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일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서, 일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주째 무겁게 내 어깨를 내리누르던 큰 일 하나를 일차 완료 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첫 번째 고개를 넘었다 정도로 살짝 부담감을 덜었다.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한결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좀 제발 이별했으면 좋겠다. 슬럼프여. 침체기여, 우울증이여, 무기력감이여, 이만하면 오래 만났으니 그만 떠나줄래? 너 때문에 인생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안녕! 굿바이! 페어웰! 아디오스! 아듀! 아우프 비더젠! 짜이찌엔! 사요나라! 




승진? 활동비 인상?


어제 이사회 회의에서 실무자로서 개인적인 감정을 살짝 드러냈다. 해마다 안 힘들었던 해는 없었지만, 작년 한 해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았고, 힘들었다. 일은 훨씬 더 많이 했는데,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내가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소모되는 것이 너무나도 싫고, 부당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과연 가능 할지는 모르지만.


시민단체에서 조금 경력을 쌓았을 때 팀장이란 직책을 얻었다. 출판사에서도 조금 일에 익숙해지고 한 사람 몫을 할 때쯤부터 팀장이란 직책을 달았다. 여기 협동조합에 와선 처음부터 팀장이었다. 그 위도 그 아래도 없다. 나 혼자 실무자로 일하는 곳이니까. 우리 법인의 모든 일을 나 혼자 다하고, 심지어 거기에 더해 실무자가 없었던 연합회 법인의 일까지도 나 혼자 다 해야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계속 팀원 없는 팀장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쭉 팀원 없는 팀장이었다.


어제 이사회에서 내 직책을 사무국장으로 하겠다는 언급이 있었다. 사실 주위에선 직책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벌써부터 내가 사무국장이 되어야 하는데,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가 하면,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어떤 한 가지가 부족해서 아직 사무국장이 되지 못한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사무국장이어도 관계없고, 팀장이어도 아무 상관 없다. 어차피 이 법인의 일은 나 혼자 해왔고, 지금도 혼자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확률이 높다. 게다가 밖에선 다들 나를 국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내 직책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으며, 내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국장일거라 여기고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사실 한동안 한 명 더 있었다. 1년 간 일을 배웠고, 조금 익숙해 질 때쯤 건강 악화로 병가를 냈다가 복귀 후엔 반상근으로 일을 했다. 다만 병가를 냈던 시점부터 다시 혼자가 되었고 복귀 후에도 본인 업무 영역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나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계속 건강이 나아지지 않아 곧 그만둘 예정이다. 암튼 결국 그래서 나 혼자인데 이걸 승진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그냥 직책명이 바뀌는 정도라고 여기기로 하자.


올해 지자체에 제공하는 청년 인턴 제도에 응모해, 만 39세 이하의 청년 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인건비를 제공받게 되었다. 지자체에서 인건비의 90%를 부담하고, 우리 법인이 나머지 10%를 부담하면 된다. 그런데 인건비가 딱 정해져 있더라. 그런데 생각보다 금액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지금 이 법인에서 일한지 5년차인데, 내 활동비보다 더 많더라.


그래서 이사장이 내게 한 마디 했다. 신입 활동가보다 내 활동비가 적을 수는 없으니, 다른 사례를 참조해서 상식적인 활동비 인상안을 만들어 보란다. 사실 해마다 조금씩 활동비가 오르긴 했다. 늘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지만, 해마다 최저임금도 늘 조금씩은 오르니 오를 수 밖에 없긴 하다. 처음 여기 들어올 때는 진짜 적은 액수를 받았다. 이사장도 그 돈 받아서 애들 키우면서 살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당시 나는 여기 일이 이렇게 많고, 스트레스가 많을 거라 예상 못하고 비 정기적으로 교정교열 알바와 영업 대행 알바 등 출판계에서 조금씩 돈을 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있을 때보다 터무니없이 낮아진 활동비에도 이 일을 선택했던 거였다. 다행히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내 활동비도 오르긴 했지만,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고 나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뭐 물론 내가 쓰는 돈의 대부분은 술값으로 나가는데, 술을 조금 덜 먹으면 조금 더 안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럼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할 수 있으므로 고려하지 않겠다.


얼마가 될 지 모르겠으나, 아니 얼마나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법인의 재정 상황이 뻔하기에 큰 금액을 올리진 못하겠지만, 사실 새로 채용할 청년 인턴의 월 급여액보다 많이 받는다면 현재 보다는 그래도 제법 오르는 것이긴 하니까 큰 금액을 올리는 것이라 여겨야 하려나? 암튼 활동비가 오른다니 그건 좀 기분이 괜찮다. 직책이 바뀌는 건 정말 요즘 말로 1도 기쁘지 않았건만, 역시 돈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이 달라질 수 밖에 없나보다.



그래봐야 매달 활동비가 통장을 스쳐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현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찰나의 행복이라고 해야 하나? 심할 경우 고작 하루도 가지 못할 그 행복을 차라리 느끼지 않으면 좋으련만.


지역 공동체 화폐


우리 지역 공동체 화폐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이상 지났다. 창립 회원으로 공동체 화폐의 순기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어서 열심히 사용하려 마음 먹었으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각자 수첩을 갖고 다니며 공동에 화폐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을 이용하고 수첩에 기록해야 하는데, 그 수첩을 늘 갖고 다니는 일이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몇 번 이용 후엔 영수증만 챙겨놓으면 나중에 정산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영수증까지 챙기는 일조차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난 우리 법인 영수증을 챙기는 일만 해도 너무 힘들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공동체 화폐가 진화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거기에 소액의 적립금을 추가한 금액이 앱에 충전된다. 가맹점에서 이용하면서 앱 자체에서 가맹점을 선택해 내가 이용한 금액만큼 바로 결제가 가능했다. 와! 이거 진짜 편리하더라.


대개 5만원을 입금하면 10%가량 적립금이 붙어 5만5천원이 충전된다. 게다가 몇몇 가맹점은 이 공동체 화폐로 결제할 경우 추가 할인을 제공했는데, 이 역시 5~10% 가량 되었다. 작년에 나는 10%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주로 공동체 화폐를 이용했는데, 그 결과 나는 충전한 금액보다 약 20% 가량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식당 뿐 생협과 북카페 등에서 쓸 수 있으니 점점 사용할 기회는 늘어났다. 재미있는 건 수제 생맥주집, 치킨집 등의 가맹점도 있어서 가끔 동네 술꾼 선배들이 술을 산다면서 오늘 공동체 화폐 충전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물론 가맹점이 아직 적어서 더 늘려야 한다. 내 경우엔 일터 근처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고, 가끔 생협을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지만, 그외에는 쓸 일이 별로 없다. 일터 근처 치킨집이 있긴 한데, 사실 치킨과 맥주가 취향이 아니다보니 그닥 갈 일이 없다. 수제 생맥주집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거리가 있어서 역시 갈 일이 없다. 집 근처 맛있는 식당이나, 집 근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괜찮은 술집이 가맹점에 추가된다면 아마 사용하는 금액의 단위가 바뀔 수도 있을 듯한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공동체 화폐가 꾸준히 성장해서 가맹점과 이용자가 더 늘어나고, 그래서 지역에서 사용하는 돈이 대기업이나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돌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한 몫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씩 이 자본주의의 견고한 틀을 허물었으면 좋겠다. 일단 나도 활동비가 오르면 조금 더 이용 금액을 높이겠다.(공동체 화폐 담당자가 이 글을 본다면 분명 좋아하겠지)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안화폐에 대해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이미 시도했다가 없어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사례도 많겠지만, 수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시도들이 일어나 조금씩 자본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전환마을로 유명한 토트네스처럼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대안화폐를 사갈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오늘 낮에 평소 좀처럼 갈 일이 없는 저 멀리 강남까지 회의 때문에 다녀왔는데, 그 회의가 또 정말 짜증나고, 답답하고, 암만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이어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면서부터 계속 술이 땡겼다. 남아 있는 일은 그냥 내일로 확 미뤄버리고 이제 술 마시러 가야겠다. 오늘은 무슨 안주에 소주를 마실지 고민해보자. 일을 미룬 만큼 내일의 나는 괴롭고 힘들겠지만, 그건 내일의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저 술 마실 생각에 즐거우면 될 일이다. 아, 내일의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건네자. 


미안! 쏘리! 꼬메나사이! 엔슐디궁! 빼르동! 뚜이부치! 제수위디줄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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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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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감은빛 >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 문제

북플에 예전 오늘 날짜에 쓴 글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네. 이건 아마도 페이스북 따라하기인 것 같다.

8년 전 잡지에 실었던 서평을 그대로 알라딘 서재에 올린 글이다. 그러고보면 예전엔 청탁 받고 쓰거나 짧게 연재하며 서평을 의무적으로 썼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책을 읽어도 서평을 쓰지 않는다. 서평을 쓰는 건 책을 읽는 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당시 잡지에 실린 내 서평이 좋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했던 내 경험을 살린 글이라 아마 가장 잘 쓸 수 있는 영역이어서 그럴 것이다.

마음 아픈 건, 그때 이후로 GMO, 식용색소, 합성착향료 등 다양한 식품첨가물 문제는 훨씬 더 나빠졌다. 이 글에 아이들이 매일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걸 보고 충격받은 얘길 썼는데, 요즘 사람들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게다가 혼자 살면서 가끔 나조차도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는다.

최근 작은 아이의 입을 통해 애들엄마가 내게 불만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끔 외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생협 먹거리로 식사를 준비하는 애들엄마와 달리 나는 애들과 식당에서 사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끔 집에서 먹어도 가공식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혼자 살면서 게을러진 내 잘못이긴한데, 요즘 혼자 쉽게 먹을 수 있는 온갖 가공식품들이 많다. 사실 그런 것들을 생협 재료로 만들어 먹으려면 훨씬 더 돈이 많이 들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그래야 한다는 건 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저 귀찮음이 문제이고, 정신없이 바쁜 삶이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도 주말동안 애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노력중이다. 새삼 예전의 내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고, 잘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애들이 다녀가고 혼자 남으면 다시 귀찮아진다. 내 뱃속을 채우려고 음식을 만들기에 내 삶은 너무나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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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1-16 19:00   좋아요 0 | URL
황대권 선생이었던가?
녹색연합에서 만드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은 글에
도시 아이들이 싸는 똥으로는 제대로 된 퇴비도 못 만든다고 했어요.
워낙 불량한 먹거리만 먹어서 그렇다고.
그게 그냥 한 말인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네요.

저야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몸이니,
뭐 그깟 불량한 음식들 좀 먹어도 상관없겠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답답하죠.

cyrus 2019-01-1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식품도 몸을 망가지게 하는 주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사람들은 건강관리를 꼼꼼하게 하지 않을 거고, 비타민제 같은 약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하루에 비타민제를 두 개 이상 챙겨 먹어요. 건강 방송 프로그램에 수입산 건강식품이 많이 소개됩니다. 말이야 건강 예능 프로그램이지 건강식품 홍보 방송이죠.

감은빛 2019-01-16 19:07   좋아요 0 | URL
주위에서 저보고 이제 나이가 있으니 비타민 챙겨먹어야 한다고 하던데,
저는 꼭 필요한 식사와 술 외에는 다른 건 거의 안 먹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방송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음식 먹는 거예요.
왜 그런 걸 찍고, 왜 그런 걸 보는지 모르겠어요.
남들 먹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좋은가요?
다행히 집에 티비가 없어서 그런 방송을 지나가면서라도 안 볼 수 있어요.

근데 영화에서 나오는 먹는 장면은 피해가기가 어렵더라구요.
새벽에 혼자 [내부자들] 보다가 이병헌이 라면에 소주 먹는 장면 보고
당장 소주와 라면을 사러 나가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집이 엄청난 언덕 위라, 언덕 아래 편의점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다녀올 용기가 없어서 참을 수 있었어요.

syo 2019-01-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치킨을 너무 사랑하여 지구에 죄송스럽습니다.... 뻑하면 조류독감을 발생시키는 지도관 양계환경이나 분뇨, 사료로 낭비되는 곡물들, 무자비한 살처분까지..... 이게 다 나같은 치킨환자들이 많아서 벌어지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ㅠㅠ

감은빛 2019-01-16 19:09   좋아요 1 | URL
쇼님 글에 댓글로 달았듯이,
저는 먹고 싶을 때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3끼를 꼬박 먹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자주 먹는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데,
그것도 그들이 잘못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