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토요일 아침에 잠을 깼더니 온몸이 다 아팠다. 어깨, 등, 허리, 엉덩이까지 기분 좋은 피로감은 아마 최근 다시 시작한 운동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팔목이 뻐근하게 아픈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아! 나 엊그제 이사했구나. 나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거냐. ' 저 수많은 책들을 옮기고, 책장과 냉장고를 옮겨놓고, 게다가 이사한 집, 낯선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내가 왜 온몸이 뻐근한지 이유를 몰랐다니.


동네에서 평소 나를 아껴주는 선배가 세탁기를 사줬다. 이전 집에 있을 때부터 사주겠다고 했던 건데, 그땐 화장실에 놓을 공간이 애매해서 그냥 거절했었다. 여름엔 어떻게 손빨래를 하면서 버텼는데, 날이 쌀쌀해지고 몸이 바빠지니 도저히 세탁기 없이 살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사 하기 전날 선배가 주문했고, 이사한 다음 날 낮에 배송한다는 기사님의 연락을 받았다. 한창 바쁜 날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도중에 세탁기를 받으러 갔다.


버스에서 업무용 카톡과 이메일을 들여다보다가 안내방송을 듣고 부리나케 벨을 누르고 내렸다. 배송기사님이 거의 다 왔다고 하셨으니, 서둘러 가야지 생각하고 횡단보도를 향해 뛰었다. 길을 건너고 나서야, 잘못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내방송만 듣고 무심결에 이사하기 전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린 것이다. 새로 이사한 집은 거기서 걸어서 7분 남짓 거리이지만, 버스 정류장으로 치면 세 정거장이나 차이가 난다. (이상하게 정류장 사이 거리가 가깝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3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면 더 나았을텐데, 나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거구나 생각하며 뛰기 시작했다.


많이 문제야!


다시 토요일로 돌아와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 정리를 해야 하는데, 정말 하기가 싫었다. 전날 밤 술을 좀 많이 마시기도 했고, 몸이 뻐근하니 피곤하기도 했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한참 누워있다가 폰을 들여다보니 이런저런 연락이 많이 와 있었다. 그중에 새벽에 도착한 시민신문 편집장의 기사 교정 부탁이 있었다.


신입 기자가 쓴 기사인데, 자신은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하겠다고 교정을 봐달라는 얘기였다. 익숙한 일이다. 벌써 여러 번 그런 부탁을 받고 글을 고쳐줬다. 이 신입 기자의 기사가 대체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취재기자 출신인 편집장 입장에서는 글을 고치기가 난감할 거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냥 그 연락을 무시하고 누워 잠을 청했다.


전화가 왔다. 편집장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교정을 볼 만한 상태가 아니예요. 전화를 무시하고 잠이 들었다. 점심때가 지나서 깼더니 전화가 여러 통 와있었다. 다시 울리는 전화. 더는 무시할 수가 없어 받았더니, 대뜸 바쁘냐고 묻는다.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피곤하다고 했더니, 기사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웬만하면 하고 싶은데, 지금 아직 술이 덜 깨서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변명을 했더니, 밤까지 해주면 된다고 한다. 더 거절할 수가 없어서 뭐가 문제냐고 물었더니, "많이 문제야!" 라고 말한다.


노트북을 켜고 그 기사를 열어봤다. 아, 첫 문장부터 비문에다가 기사의 구조가 영 이상했다. 이 기사를 살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기사 안에 팩트가 부족했다. 자료를 더 찾아봐야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료를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거 제대로 쓰려면 하루는 부족할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다시 노트북을 덮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저녁때 아이들이 오기로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 좀 덜 어지럽게 정리를 하고 싶었는데, 몇 시간을 매달렸는데도 어지럽다는 측면에서는 그닥 나아진 것이 없었다. 애들엄마에게 연락했더니, 며칠 전에 조정했던 거 기억 안 나냐고? 오늘이 아니고 내일 가기로 했다고 한다. 아, 나 진짜 정신없이 살고 있구나.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배가 고팠다. 아이들이 오면 같이 밖에서 뭔가 맛난 것을 사 먹고 싶었는데, 갑자기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졌다. 주방을 정리해야 뭔가를 해먹을 수 있을 텐데, 씽크대가 너무 더러워서 싹 청소를 하기 전에는 정리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밖에 나가 밥을 사 먹고 와인을 사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간밤에 소주를 많이 마셔서 오늘은 소주를 떠올리는 것도 싫었다. 여기저기 작은 구멍이 난 낡은 티셔츠에 시커먼 잠바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섰다. 


돼지국밥과 밀면


해장을 하려고 새로 생긴 순대국집에 들어가 순대국을 시켰다. 순대국은 서울에 올라온 후로 술 마신 다음날 주로 먹는 메뉴다. 부산에서는 거의 먹은 적이 없던 음식이다. 부산에선 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문득 시장 어느 허름한 가게에 앉아 먹는 돼지국밥 생각이 간절했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음식이 둘 있는데, 돼지국밥과 밀면이다. 못 먹으니까 더 간절한 건지는 몰라도 가끔 먹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진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순대국과 냉면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 이런 맛이 아니었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거 어쩌면 향수병이려나.


맛없는 순대국을 억지로 떠먹고 있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에서 막 올라온 길이라고 얼굴을 보자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보자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단다. 난 집에 가서 씻고 옷도 갈아입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아니 그 전에 나온 김에 새 집에 필요한 생활용품들도 좀 사야 하는데, 어쩌지 싶었다. 우선 물건들을 사러 갔다. 빨리 사서 집에 돌아가서 옷 만이라도 좀 갈아입고 다시 나와야지 싶었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결국 친구가 도착해버렸다. 녀석은 내 몰골을 보더니 자기 평소 몰골이랑 비슷하다고 막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았다. 술자리는 길어졌고, 녀석은 결국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아직 짐 정리가 다 되지 않아 엉망이니 욕하지 말라고 했다. 녀석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게 무슨 엉망이냐고, 자기 집이 평소에 이보다 더 엉망이라고 했다. 너 생각보다 깔끔하게 사는구나 하길래, 아이들이 오가는 집이니 당연하다고, 오늘도 원래 애들이 올 예정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정리를 해놓고 싶었는데, 다 못 끝낸 거라고 대꾸했다.


교정은 어려워!


집에서 또 맥주를 한참 마시다가 뒤늦게 시민신문 기사 교정 건이 떠올랐다. 편집장은 지금쯤 기사를 달라고 했는데, 어쩌나? 지금 다시 본다고 뭔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기사를 열어봤다. 역시 손을 대기 어려웠다. 시민신문 기자 출신인 친구도 옆에서 그 기사를 함께 들여다봤다. 곧바로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저런 글은 고치기 어렵다고 한 마디 한다. 나는 그래도 고쳐볼 여지가 있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다. 무리였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고, 술이 그리 세지 않은 친구는 이미 주량을 채운 후, 자려고 누웠다. 나는 남은 술을 다 먹고 자려고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고 홀짝이고 있었다. 새벽 2시 경이었던가, 편집장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도저히 안 되겠다고 설명을 했다. 편집장은 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냐고 했고, 나는 왜 안 되는지를 설명했다. 통화가 길어졌다. 결국, 편집장은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지면을 채우기 위해 다른 글을 더 쓰던가, 이 글을 고쳐 쓰던가 해야 하는데,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한 편 화가 나기도 했다. 주말도 반납하고 신문을 내기 위해 기사를 쓰고 교정을 보는 편집장의 상황 때문이다. 그 새벽까지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편집장과 그 새벽 술을 먹다가도 기사 교정을 걱정하는 편집위원인 내 입장이 화가 났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다시 활동가의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반 토막 난 급여를 채울 수 있는 건, 꾸준히 부업으로 외주 편집 작업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만으로도 시간은 늘 모자랐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었다. 외주 작업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시민신문 편집위원을 비롯해서 동네에서 뭔가 교정볼 일이 생기면 모두 나를 찾았다. 


지난주 원고를 넘겼던 소책자의 교정도 내 몫이었다. 일하는 시간을 쪼개 교정을 봐야 했다. 최근 또 하나의 편집 업무를 맡았다. 짧은 시간안에 완성해야 하지만, 인건비는 최소한의 비용만 책정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은 전문 편집자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이 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기도 하다. 해당 활동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편집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작업을 해야 할 10월 말에서 11월 초에는 업무상 무척 바쁠 예정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건비가 책정되어 있으니,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겠지. 일을 맡은 이상 미리 걱정해봐야 소용없다.


※ 이 글을 써놓고 글에 교정 이야기가 있으니, 편집자들이 이 글을 읽고 비웃지 않을까? 자기가 쓴 글은 이렇게 엉망이면서, 무슨 교정을 본다고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교정을 보려고 했더니 머리가 아프다. 역시 교정은 어렵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yureka01 2016-10-1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편집자가 겁나요..ㅎㅎㅎㅎ그 끝없는 지적과 까임...그래도 굳굳하게..ㅎㅎ// 네 이사하셨다니 몸살 날만도 하죠..
이사후 정리 다하고 안정될 때까지 거의 한 달 정도가 걸리는듯 하더라구요..^^..

고생하셨습니다..

감은빛 2016-10-26 14:27   좋아요 1 | URL
편집자는 꼼꼼해야 하고, 끊임없이 지적하고 요청해야 하는 사람이죠.
저는 편집자가 저자를 많이 괴롭힐수록 책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

이삿짐 자체는 벌써 정리 했는데,
자잘한 것들을 찾기 쉽게 분류를 못하고 있네요.
큰 짐들을 다 풀어놓으니 작은 건 손대기 귀찮네요.

samadhi(眞我) 2016-10-2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라 도저히 고칠 수가 없는 글 보면 난감하죠. 그냥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낫거더라구요.

감은빛 2016-10-26 14:2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안 나니까 문제예요.
이 글에 언급한 저 글은 내년에 다시 손 보기로 합의 했어요.
과연 내년에 할 여력이 될지는 모르지만요. ㅎㅎ
 

I'd like to see you naked


지난 주였다. 어느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새벽,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싫고, 술 한 잔 더 마시고픈 생각이 간절한데 같이 마실 사람은 없었다. 물론 집에서 혼자 마실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냥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받기만 한다면 택시를 타고 달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고,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혼자 술을 더 마셨다.


다음날 친구가 전화를 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묻길래, "그냥 새벽에 술이 더 먹고 싶었는데,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미안!" 이라고 했는데, 녀석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너 상태가 많이 안 좋구나!" 한다. 뭐 솔직히 상태가 좋은 건 아니어서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자기가 당분간은 바빠 여유가 없지만, 급한 일이 마무리되면 꼭 얼굴보자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한참후에 뜬금 없이 톡으로 움직이는 사진 파일을 보냈다. 


 

웬 아리따운 여성이 손을 흔드는 장면을 카메라가 돌면서 찍은 장면이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티비 징하게 안 보는군" 이러고는 "설현"이라고 답을 보냈다. 아,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무슨 통신사에서 이 여성의 등신 입간판을 세웠다가 남성들이 가져가버렸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한참후에 녀석이 톡을 보냈는데, 아 진짜 일하다가 말고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네가 벌거벗은 여성들 사진 좋아하면, 그런 건 잔뜩 보내줄 수 있는데" 이러는 거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남자로서 왜 안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반드시 필요한 시간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카톡으로 그런 사진들을 잔뜩 보내준다는 건 좀 왠지 그랬다. 뭐 웹을 뒤져보면 그런 사진이야 잔뜩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굳이 그런 사진을 저장해두고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암튼 답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 그 순간은 지나갔는데, 나중에 몇 시간 후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가 갑자기 그 톡이 또 생각났다. 그때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로렌 크리스티의 <You make me laugh>에 I'd like to see you naked 라는 부분이 생각났다. 근데 검색해도 유튜브에 없네. 이 좋은 노래가 왜 유튜브에 없지? 저작권 때문인가? 암튼 나중에 집에 와서 그 노래를 찾아 들으며 다시 한참 웃었다.


수없이 바람에 흩어진 담배 연기의 결과물


에너지협동조합 연합회에서 조합원들을 위한 교재를 하나 만들자고 뭉쳤던 건 작년이었다. 여러 조합에서 실무자들이 모였는데, 다들 실무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교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목차를 정해놓고 각자 원하는 부분을 맡아서 쓰기로 했다. 그렇게 글을 모으면 글의 수준이나 톤이 제각각 일 것이기 때문에 내가 교정을 보면서 글을 만지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받아본 글은 생각보다 제대로 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했다. 단순히 글의 난이도를 맞추고, 톤을 조절하면 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아예 내용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수준이었다. 이건 처음부터 글을 다시 써야하는 수준이었다. 도저히 그럴만한 시간을 내지 못해, 결국 완성된 교재를 만들지 못하고, 미완성의 원고만 남았다.




올해 연합회에서는 10월 22일 토요일 청계 한빛 광장에서 '마스크 퍼레이드'를 기획했다.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없애고, 지구를 살리는 재생에너지, 햇빛 에너지로 가자는 뜻의 캠페인이다. 이날 사용하기 위한 소책자를 제작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 기본을 작년에 만들다 실패한 저 조합원 교재를 하자고 하는거다. 


일단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은 저 교재의 목차에 들어가 있겠지만, 문제는 저 교재에는 그 내용이 충실히 담겨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저 교재를 완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쨌거나 내가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바빴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 쓰겠다고 했지만, 시간 여유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감에 닥쳐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교재를 완성할만한 시간은 나지 않았고, 그 교재에서 다시 내용을 발췌해서 소책자를 만드는 건 시간낭비였다. 처음부터 소책자 원고를 다시 썼다. 소책자니까 아주 대중적으로 쉽게 써야 했다. 나는 우리 큰 아이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되도록 쉬운 단어와 표현을 쓰려고 애썼고, 많은 정보를 담기보다는 어떤 느낌인지 깨닫기만 해도 좋다는 기분으로 썼다. 어떤 내용은 쉽게 쓰는게 거의 불가능하기도 했고, 되도록 글을 간결하게 담아야 하는데, 내용이 많아서 자꾸 길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글이 막힐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태웠다. 최근에는 평소에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한 일주일 안 피다가 술 마실 때 몇 개비 피우고, 또 며칠동안 한 개비도 안 피우고 이런 패턴으로 살았는데, 그날은 진짜 오랜만에 엄청나게 피웠다. 일요일 밤을 꼬박 새고, 월요일 오전엔 회의하고 또 해야할 업무들을 보다가 오후 늦게부터 다시 매달려서 거의 11시가 다 되어서야 원고를 마쳤다.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가 멍했다. 담배를 피우고 내려와 교정을 다시 보고 원고를 넘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소주를 한 병 반 마시고 잤다.


화요일 연합회 처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고생 많았다고, 바쁜데 애 많이 썼다고 했다. 사실 미리 써서 줬어야 했는데, 내가 계속 미룬 탓에 전체적으로 빠듯한 일정이 되어버려서 나도 면목이 없던 참이었다. 지난 주에 담당자는 "오늘도 안 주면 울어버릴 거예요." 라고 협박까지 했으나 그로부터 4일이나 더 지나서 원고를 넘겼으니 말이다. 소책자 제작을 위한 실무 회의를 하려고 처장님과 담당자와 디자이너가 모였으나, 원고가 거의 완벽해서 회의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제서야 조금 내가 고생을 하긴 좀 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을 쓰느라 내가 태운 그 수많은 담배가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비록 연기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으나, 그 성과로 원고가 남았으니 말이다.


다시 쓰고 싶다. 소설


아주 오랫만에 원고 칭찬을 받았더니, 기분이 좀 우쭐해졌다. 낮에 멀리 다녀올 일이 있어서 지하철을 오래 타고 다녀왔다. 음악을 듣으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를 돌아다녔다. 출판사에 다닐 때 인연을 맺었던 후배 하나가 최근 출판사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오늘 보니 소설을 써서 응모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작가 지망생이 되려고 나선 것이다. 그의 선택이 부러웠다. 응원해주고 싶었다. 나도 20대 때는 골방에 틀어박혀서 소설쓰느라 시간을 참 많이 보냈다. 나에게 이제 그 꿈은 사라진 걸까? 지금 내가 일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걸쳐놓은 온갖 활동들을 다 정리하고 소설 쓰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극적인 목표인 등단을 할 수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쓴 글들을 하나씩 떠올려 봤다. 함량 미달의 글들. 골방에 처박혀 담배 연기에 찌든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글은 잘 나아지지 않았다. 늘 일정 수준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동아리 소식지에 실으라고 써준 단편소설 생각이 났다. 그 글은 고등학생 때 만났던 여학생과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금 각색해서 쓴 글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후배가 동아리 회장을 맡을 때 뭐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소설을 써서 소식지 원고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군대 입대일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그 전에 얼개는 구상해놓은 글이긴 했다. 대부분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각색하는 거라, 크게 어려움도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술술 써내려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우리집에 아직 컴퓨터가 없어서 나는 공책에 삐뚤빼뚤 손 글씨로 원고를 썼다. 엄청난 악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알아볼 수 는 있을 정도로 쓰느라 좀 힘들긴 했다. 하지만 그 글을 타이핑 할 후배 녀석도 어지간히 악필이라 알아보리라 예상했다. 입대 전날 원고를 완성해 입대하는 날 부산역으로 마중나온 후배에게 그 원고를 안겨주고 나는 강원도 최전방으로 떠났다.


시간이 한 1년 반쯤 지나서 휴가를 나왔다가 동아리 후배들을 만났다. 바로 한 해 후배들이 한 두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입대하고 나서 입학한 후배들이라 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인사를 하자 여학생 두 명이 "어머!"하고 깜짝 놀라며 서로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하더라. 난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 두 명이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둘 중 하나가 물었다. "선배님, 혹시 입대하기 전에 소설 써서 소식지 원고로 주고 가셨어요?" 나도 깜짝 놀랐다. 그 후배가 회장 직에 부담을 느껴 뭐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그 소식지는 내지 못했다고 들었다. 내가 악필로 쓴 원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그 녀석이 갖고 있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두 여학생은 자신들이 작년에 1학년때 회장이 시켜서 내 소설 원고를 타이핑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글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마치 유명한 연애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고, 어떤 어떤 장면은 무척 로맨틱해서 타이핑을 하다말고 한참을 글에 빠져들어 읽었다고 했다. "선배님,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세요? 멋져요!"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난 정말 어쩔줄을 몰랐다.


자, 나는 휴가나온 군인이었다. 군대라는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조직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가 잠시 나온 사람이다. 게다가 최전방이라 여성 뿐 아니라 그냥 사회인도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마치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처럼 평범한 사회와는 격리된 생활을 했다. 내가 아무리 유쾌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해도, 그때는 막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대화하고 그런게 무척 어색할 때였다. 어여쁜 여자 후배들 앞에서 완전 수줍어서 제대로 얼굴도 못 쳐다보고, 말도 잘 못하고 그런 때였다.(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랬다는 것이 별로 믿기지 않지만) 그때 난 완전 소심하고 쑥맥에 말주변도 하나도 없었다.


내 첫사랑이라고 표현해도 되려나? 그 전에 만났던 여학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기준으론 첫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런데 그럼 그 전에 진심으로 짝사랑했던 건 또 뭐지? 아! 그건 이뤄지지 못했으니 첫사랑이 될 순 없는 건가? 모르겠다. 그냥 첫사랑이라고 해두자. 그 기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내 양쪽에서 완전 나를 띄워주는 후배들과 앉아 있는 그 순간에 나는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지만, 수줍어서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 만약 평소의 나였다면 둘 중 좀 더 적극적인 아이에게 바로 작업이 들어갔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렇게 아무일도 없이 끝났다.


그때 들었던 칭찬과 찬사가 평생 들었던 어떤 칭찬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그건 어쩌면 기억의 왜곡일 수 있겠으나,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둘은 그저 휴가를 나왔다는 시꺼먼 빡빡머리 군인 아저씨가 그런 글을 썼다고 하니 신기해서 막 그렇게 칭찬하고 질문을 했던 것이겠지만, 게다가 나름 동아리 선배라고 하니 막 치켜세워 준 것이겠지만, 나는 그런 칭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진짜 좋았다.


나중에 후배에게 그 원고를 돌려받았다. 제대하고 나서 한참 후였다. 그 글을 내가 다시 타이핑해서 파일로 만들어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아까 11시 반쯤 애들을 재우면서 함께 잠들었다가 다시 깬 후 잠이 안 와서 그 글을 읽어봤다. 아! 진짜 묘사도 허술하고, 대사도 하나같이 오글거리고 기본이 안 된 글이더라. 다만 구성과 서술은 어느정도 수준은 되어 있더라. 다시 읽으며, '그래. 저때 저런 일이 있었지. 그땐 그런 일이 있었고. 어! 저때 진짜 힘들었는데'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다가가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과연 입대 직전의 나는 저 마지막을 어떻게 썼던가? 생각보다 맥 없이 끝나더라. 그 아이들 이런 허접한 글을 읽고 그렇게 나를 추켜 세웠단 말이지? 그거 그냥 예의상 칭찬하다가 조금 분위기가 올라 더 칭찬도 하고 질문도 했는데, 그렇게 진심은 아니었던 거 아닐까? 모르겠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소설 원고 하나를 응모했다는 후배의 글을 보고, 내가 썼던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그 소설에 대한 칭찬이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하기 까지 참 나란 인간 어쩔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아이들 데리러 출발하기 전에 담배를 사무실에 놓고 왔음을 떠올린다. 편의점까지 사러 가기는 너무 귀찮다. 그냥 자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10-1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2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10-1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서재에 오면 항상 누군가 맨 위에 비밀댓글을 달아두시더라고요 ㅎㅎㅎㅎㅎ 오늘도 그러네요 ㅎㅎㅎ)

소설 쓰기, 응원합니다.

저 역시 어제,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했거든요. 어제 만나게 된다면 `저 소설 쓸거에요!`라고 말하려고 했었어요. ㅎㅎ
어제는 막 자신감과 의욕에 차서 소설을 쓰리라, 쓰겠다, 쓸것이다, 했는데 얼마 안가 다시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쩌나... 생각중인데, 일단 출판이야 어떻든 써보긴 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소설 쓰세요. 우리 소설로 경쟁합시다!!

감은빛 2016-10-12 11:32   좋아요 0 | URL
아, 그 말씀을 하시니, 실제로 최근엔 그랬네요. ^^

저도 아까 다락방님이 이 댓글 달았던 시점에 다락방님 서재에 댓글 달고 있었는데,
우린 같은 시간에 서로 댓글을 달던 중이었군요.

소설을 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거예요.
현실을 최대한 잘 반영하기 위해서는 발로 뛰면서 취재도 다녀야 하구요.

당장 출판을 걱정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가장 큰 장애 요인인 것 같아요.

다락방님과의 경쟁은 자신 없어요!
그냥 동지로서 함께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성장해요!

다락방 2016-10-12 15:11   좋아요 0 | URL
동지는 무슨...

다 적이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던 글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다가 서재에 들어와 다른 이들의 글을 읽었다. 언제 읽을지도 모를 책들을 부지런히 보관함에 담고, 어떤 이의 감정에 동조해 한참을 공상에 빠져 있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갔다. 햇살은 뜨겁게 내 뺨과 정수리를 데우고, 바람은 머리칼을 흐트리고, 옷 자락을 붙잡아 흔들고, 담배 연기를 멀리 흐트렸다. 


문득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저 멀리 아파트 사이에서 희미한 분필 자국 같은 낮달을 봤다. 반달이다. 저 희미한 존재감. 눈을 찡그려가며 보지 않았으면 쉽게 찾지 못했을 저 달이 마치 내 처지인 양 안쓰럽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바람이 다 태워버린 꽁초를 바닥에 비벼끄고, 갑에서 하나 남은 담배 하나를 다시 꺼내 불을 붙인다. 지난 주에 이미 넘겼어야 할 글을 아직도 붙들고 있는 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원망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을 나는, 그냥 저 달처럼 점점 희미해지다가 문득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다.


담배를 다 피웠으니, 이제 다시 글에 집중해야지. 이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떠맡지 말아야지. 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얘기해야지 생각해보지만, 또다시 무리해서 뭔가를 받아와서 괴로워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아까 그 낮달이 어느새 밤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일을 끝내지 못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10-10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6-10-10 17:04   좋아요 2 | URL
오래전에 여러 단위의 사람들이 함께 소책자를 만들기로 했는데, 공동작업이다보니 각자의 글이 수준과 톤이 제각각이어서, 편집자 출신인 제가 편집 교정을 보면서 글의 통일성을 맞추고 톤을 일정하게 맞추는 작업을 하기로 덜컥 약속을 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손을 보려고 뚜껑을 열어보니 글을 아예 다시 써야하는 상황이라, 계속 미루고 또 미루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계속 미뤘더니 결국 이렇게 마감에 닥쳐서 괴로워고 있습니다. ㅠㅠ

cyrus 2016-10-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같은 날 옥상 위에 올라가면 찬바람 맞고 마음이 뻥 뚫릴 겁니다.

감은빛 2016-10-10 17:05   좋아요 1 | URL
마음이 너무 무거워 아직 뻥 뚫리지 못 했습니다.
좀 가벼워져야 살랑이는 바람에 뻥 뚫릴 텐데요.

samadhi(眞我) 2016-10-10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체를 다 손봐야 할 글들 보면 암담하죠. 힘이 쭉쭉 빠질 것 같네요. 작업량이 어마어마할테니. 달을 치어다 보는 감은빛님 마음이 느껴져요.
일본소설 「배를 엮다」가 떠오르네요.

감은빛 2016-10-11 02:58   좋아요 0 | URL
애초에 기획의도에 맞는 글이 별로 없었어요.

결국 처음부터 끝까제 제가 다시 써야 했어요.
물리적으로 단순히 쓰는 행위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문제는 기획의도에 맞게 써야 하고,
남들이 이 글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잘 써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내치(인상)라는 운동에 푹 빠진 지 몇 해가 지났다. 올해는 한 번도 바벨 스내치를 시도해보지 못했다. 여러번 핏니스 클럽을 가입하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집 근처와 일터 근처 열다섯 곳 이상을 살펴봤지만, 프리웨이트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여분의 바벨이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추가로 케틀벨이나 로잉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더 먼 얘기였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곳에 비싼 돈을 내고 등록하기도 아까웠다. 난 머신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데, 머신만 가득한 핏니스 클럽에 비싼 돈을 내는 건 너무 아닌 것 같다. 결국 대안은 집에서 혼자 운동하는 것 뿐. 바벨을 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주먹쥐고 푸쉬업, 오버헤드 푸쉬업


혼자 살아서 좋은 점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옷을 벗은 채로 운동할 수 있다는 거다. 애들 엄마는 내가 집에서 옷 벗고 운동하는 걸 못 마땅하게 여겼다. 운동을 하면 땀을 흘릴 수 밖에 없고, 땀을 흘리면, 옷이 젖는다. 그러면 빨래가 더 생기고, 젖은 옷은 입고 있는 건 기분이 좋지 않다. 차라리 운동할 때는 옷을 벗고 하고, 주위에 흘린 땀을 걸레로 닦은 후, 씻을 때 걸레만 빠는 것이 훨 편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옷 벗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추장스럽더라도 옷을 입고 운동해야 했고, 젖은 옷을 그냥 빨래통에 던져넣고 씻어야 했다.


지금은 옷을 벗고 편하게 운동한다. 땀을 정말 많이 흘리는 쉐도우 복싱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땐 실오가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케틀벨이나 덤벨을 들고 운동을 할 때는 팬티만 입고 운동한다. 거울을 보며 내 몸과 내 자세와 내 근육의 모양을 제대로 보면서 운동하는 건 중요하다. 특히 나처럼 고립운동이 아닌 전신운동을 하는 입장에선 특히 그렇다. 자세에 따라 힘을 쓰는 부위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깨닫기 힘들다. 가령 오버헤드 스퀏을 할 때 바벨을 쥔 양 팔이 앞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각도를 유지하며 앉는 자세가 중요한 데, 거울을 보지 않으면 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거울을 보고 상박의 근육 긴장도를 살피며 서서히 내려가는 것이 이 운동을 잘 하는 방법 중 하나다. 거울도 거울이지만, 옷을 벗고 근육의 긴징도를 살필 수 잇어야 제대로 이 운동을 익힐 수 있다.


따로 핏니스 클럽을 끊지 않은 대신, 집에서 꾸준히 운동을 했다. 한 때는 푸쉬업에 완전 몰입해서 다양한 자세와 각도로 푸쉬업을 했다. 지금을 알라딘 서재를 하지 않은 지 제법 되는 것 같지만, 알라디너 노이에자이트님과 나의 공통점은 주먹 쥐고 푸쉬업을 한다는 거였다. 손바닥을 대고 하는 것보다 주먹을 쥐고 하는 자세가 팔목 힘을 기르는데 더 도움이 되고, 주먹을 단련하는데도 더 도움이 된다. 노이에자이트 님이 어느 글에서 굳은살이 박힌 손등을 여고생이 만졌다고 쓴 기억이 난다. 내 경우에는 여성이 보고 눈치채거나 만진 적은 없고, 한 후배가 보고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냐고 걱정한 적은 있다. 어렸을 때 폭력전과를 달았던 걸 아는 후배여서, 주먹에 박힌 굳은 살을 보고 무슨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푸쉬업을 해서 그렇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그 친구는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거다. 나도 푸쉬업을 한다고 손에 그렇게 굳은 살이 박힐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나중엔 그냥 푸쉬업을 하는 건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자세와 각도를 바꿔가며 긴장이 되는 부위를 달리해봐도 지겨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헤드스탠드 푸쉬업을 해봤다. 말 그대로 물그나무 서듯 거꾸로 서서 팔을 굽혔다 폈다 하는 건데, 이거 생각보다 운동효과가 엄청났다. 동영상을 보면 아무데도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홀로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벽에 발을 기대고 물그나무를 서서 푸쉬업을 했다. 생각만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쉽지 않았다. 유연성과 자세가 중요한데, 무턱대고 힘만으로 하려던 나는 생각했던 숫자의 반도 못 채우고 쓰러졌다. 이후로도 쉽게 횟수가 늘지 않았다. 


또 집중했던 운동은 버피였다.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운동이라고 불러야 할까?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이자만, 그만큼 힘든 운동이다. 버피는 항상 타바타 인터벌로 하는데, 4분만 운동해도 1시간을 운동한 것 보다 더 큰 효과를 얻는다. 막상 8라운드를 뛰고 나면 그렇게 상쾌하고 기분이 좋지만, 하기 전에는 죽을 만큼 하기 싫은 운동이기도 하다. 초기엔 엑셀 파일에 각 라운드의 횟수를 기록하고, 총 8라운드의 합계를 기록해서 얼마나 횟수가 늘었는지를 체크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지. 나중엔 귀찮아서 횟수를 제대로 세지도 않고 운동했다.


기본은 맨손 운동을 하지만 마무리는 늘 케틀벨 운동으로 했다. 스윙과 데드리프트와 클린앤저크(용상). 클린앤저크는 바벨 운동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케틀벨로도 많이 하진 않았다. 주로 스윙을 했고, 가끔 데드레프트를 했다. 내가 산 케틀벨은 18킬로그램 짜리 인데, 스윙을 하기에 적절한 무게이지만, 데드리프트를 하기에는 상당히 적은 무게다. 24킬로그램 짜리 케틀벨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늘 돈에 허덕이는 입장에서 쉽지 않다.


혼자 살게 되면서 생각했던 건 바벨을 구매하는 거였다. 애들 엄마는 내가 벤치를 샀을 때도 못마땅한 눈치였다. 사실 큰 맘먹고 벤치를 지를 때 바벨도 함께 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큰 맘을 먹을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결국 싸구려 벤치를 샀고, 그건 오랫동안 애들 장난감에 덮혀 있어 앉아보지도 못했고, 요즘은 컴퓨터와 모니터를 놓아 두어서 벤치로서의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스내치를 하고 싶어!


바벨을 사지 못하고, 근처에 갈만한 핏니스 클럽도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스내치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니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덤벨로 바벨을 들 듯이 스내치 운동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틀벨 스내치를 하는 거였다.


처음에 시도했던 건 덤벨 스내치였다. 간단했다. 양손에 같은 무게의 덤벨을 쥐고 스내치 동작을 시연하믄 되는 거였다. 다만 바벨이 아닌 만큼 훨씬 쉬운 운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바벨을 든다는 느낌으로 해야 했다. 한가지 단점은 내가 그동안 덤벨 운동을 위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덤벨의 무게가 너무 적었다. 스내치를 한다는 느낌을 살릴만큼의 무게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스내치의 감각을 다시 살린다는 점에서 운동 자체는 재미있었다. 좀 더 무게가 있었다면 운동 자체로 효과를 거둘 수 도 있었겠다 싶다.


두번째 시도는 케틀벨 스내치였다. 이건 아무리 동영상을 보고 연구해봐도 쉽지 않았다. 케틀벨로 클린 앤 저크 까지는 종종 해봤다. 그런데 스내치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케틀벨이 돌아가는 손동작이 어렵다. 케틀벨을 들어올리는 과정은 스윙이나 클린 앤 저크와 큰 차이점이 없어서 별로 어렵지 않다. 마지막 손을 비틀어 케틀벨을 들어올리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더라.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러시아 케틀벨 스내치 챔피언 크세이나 데듀크히나의 동영상이다. 이 영상에서 그는 10분에 200번의 횟수를 채워 챔피언에 오르지만, 이후 다른 동영상에선202회를 들어 올린다. 케틀벨의 무게는 무려 24킬로그램이다. 이 여성의 동영상을 본 이후로 따라해보기 시작한 게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그간 집에 있는 18킬래그램의 케틀벨로 연습을 꾸준히 했지만, 아직 양손을 번갈아가며 해도 20회를 채 넘기지 못한다. 연습을 반복해도 늘 자세가 불안정하다. 특히 마지막에 케틀벨을 돌려쥐는 손이 불안하다.


검색을 통해 크세니아가 훈련하는 방법을 봤다. 평소 32킬래그램 케틀벨로 스윙을 연습하더라. 손동작은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자세히 알려주는 곳이 없더라. 32킬로와 24킬로 짜리 케틀벨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당장은 아니고, 지금 쓰는 18킬로 짜리로 클린만이라도 좀 익숙해진 이후에 사야겠지.


어려워~!


몇 번을 자세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로 시도하다가 왼쪽 어깨가 아파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다시 진지하게 케틀벨 스내치에 대해 찾아봤다. 


http://egloos.zum.com/hamlet1/v/920752


누군가 블로그에 자세히 정리를 해 놓았다. 그 글을 읽으며 '겟업'이라는 운동을 처음 알았다. 나름 운동을 오랫동안 해 왔고, 운동법에 대해서도 늘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겟업이란 운동은 처음 알았다. 딱 보자마자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라해봤는데, 쉬운 운동이 아니더라. 지금 집에 있는 케틀벨로는 엄두도 못 내겠더라.




다른 건 별로 바라지 않는데,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운동하기 위한 기구를 마련하기 위한 돈은 좀 있었으면 좋겠다. 늘 바랐던 건 바벨과 벤치와 샌드백과 케틀벨인데, 이번에 케틀벨을 좀 자세히 배우기 시작하면서 무게가 다양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한 12킬로그램짜리 두 개와 24킬로그램짜리 한 개와 32킬로그램짜리 한 개가 있으면 딱 좋겠다. 그리고 바벨도 한 80킬로그램까지 조합할 수 있도록 플레이트를 샀으면 좋겠다. 바가 20킬로니까 플레이트는 최대한 봤을 때 20킬로짜리 3개면 되겠지. 제법 오랫동안 80킬로 이상은 들을 일 자체가 없을 것 같다.


바벨 스내치를 잘 하기 위해 제법 오랫동안 오버헤드 스퀏과 데드리프트 운동에 매진했던 만큼, 이제 케틀벨 스내치를 잘 하기 위해 한동안 겟업이란 운동에 매진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덤벨로 시작하고, 나중에 케틀벨을 들만큼 실력을 늘려야겠지. 그리고 크세니아가 했듯이 32킬로 스윙을 마무리 운동으로 꾸준히 해야겠다. 그래야 언젠가 24킬로그램 케틀벨로 스내치를 10분에 202번 할 수 있을 거 아닌가.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난 아직 멀었다. 18킬로로 10분동안 최대 횟수가 아니라 열댓번 남짓 들고 더이상 들어올릴 힘이 없었다. 스내치는 바벨운동도 그렇고 케틀벨 운동도 그렇고 힘으로 드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스피드로 드는 것이다. 빨리 기술을 익혀 점점 횟수를 늘려가는 재미에 빠져보고 싶다. 바벨 스내치가 공간의 제약이 다소 있는 운동이라면, 케틀벨 스내치는 훨씬 좁은 공간에서 가능한 대중적인 운동이라 볼 수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케틀벨 스내치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과연 바벨 스내치는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역시 힘을 쓰는 입장에선 바벨 스내치가 제일 재미있다. 언젠가 마당이나 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간다면, 아니 그럴 것도 없이 여분의 방이 있는 집으로만 이사할 수 있어도 그 방을 샌드백과 바벨과 벤치와 케틀벨 등으로 채워놓을 텐데.


목표가 있어서 사는 것이 즐겁다. 목표가 더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건 순전히 내 몫이다. 일단 케틀벨부터 사야겠지. 역시 돈이 시간보다 더 문제구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10-09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빠가 울면 무서워


1년에 손녀들을 몇 번 보지도 못하는 부모님을 위해 해마다 휴가는 고향으로 간다. 부모님은 혼자 아이들 데리고 오는 게 힘들다고 뭐하러 오냐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기다리고 계시다는 걸 안다. 그렇게 고향에 내려가면 여동생네 식구들도 시간을 맞춰 온다. 명절을 포함해서 3번 밖에 못 보는 오빠를 보러 오는 건 물론 아닐테고,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놀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 주는 거겠지.


지난 여름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가 재밌게 놀려고 노력을 했고, 여동생네 식구들도 와서 집안은 시끌벅적했다. 갑자기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냐고 아이들을 불러 봤더니, 큰 아이와 큰 조카가 장난으로 작은 아이의 머리카락에 무언가를 발랐다. 아, 왜 그게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당시엔 왜 아이들이 그걸 머리에 발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뭔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왜 내가 화를 냈는지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암튼 작은 아이의 머리칼은 온통 그 무언가 때문에 달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동생과 어머니는 빗으로 빗어가며 아이의 머리칼을 살려보려 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달라붙은 머리칼을 빗으로 억지로 떼내려 하니 작은 아이는 아프다고 울었고, 그 울음을 들는 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고, 또 화가 났다. 여동생은 도저히 방법이 없다며 가위로 머리칼을 잘라야 한다고 했고, 난 그건 싫다고 최대한 해보자고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결국 머리칼의 일부를 잘라야 했다.


요즘도 아침에 작은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다 보면 꼭 왼쪽 앞 머리가 어중간하게 남는다. 그래서 화가 난다. 암튼 그때 고향에서 큰 아이와 큰 조카가 작은 아이의 머리칼을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화가 많이 났다.


큰 아이는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내가 더 뭐라고 화를 내거나 혼을 낼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화가 나 있었고, 대체 이게 뭐냐고,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냥 했다고 답이 돌아왔다. 큰 아이를 작은 방으로 불러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때 큰 아이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럴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을 수 있도록 타일렀다. 결국 아이는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아이와 얘기를 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울었다. 서러웠다. 큰 아이를 혼내야 하는 상황도, 작은 아이가 머리칼이 잘려 보기 싫은 모양이 된 상황도 싫었고, 짜증났고, 화가 났다. 큰 아이를 달래고 타이르면서 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큰 아이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무섭다고 했다. 그 반응이 너무 의외였다. 왜 무섭지? 아이에게 아빠는 절대적인 강자이자, 무한한 지지자여야 하는데, 그래야 할 아빠가 울고 잇으니 그게 무서운 걸까? 나도 모르게 서러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오히려 더 펑펑 울면서 아빠 울지 말라고, 아빠가 울면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큰 아이가 3.5춘기가 되면서 반항이 심해졌다. 4춘기가 되고 나면 더 심해지겠지. 아이랑 함께 웃고 떠드는 게 삶의 거의 유일한 낙이라 생각하는데, 그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아이가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서 괜한 짜증이나 화가 많아졌다. 작은 아이에게 가벼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다른 건 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데, 폭력은 그냥 두지 못한다. 큰 아이를 혼내거나, 달래거나 하다보면 아이가 무척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울면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면 안아주거나, 손을 꼭 붙들고 들어주는데,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아이는 내가 울 것 같은 표정을 보이면 무섭다고 한다. 아빠가 울면 무섭다고 한다. 그래. 아빠는 아이에게 늘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존재여야 할텐데, 바보처럼 우는 아빠라면 믿음이 가지 않을 것 같다.


눈물이 많아졌다


큰 아이는 내가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고, 울면서 "아빠 울지마. 아빠가 울면 무서워" 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난 아이를 껴안고 울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밀려들어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흘렀다. 난 아이에게 "무조건 아빠가 널 지켜줄거야. 무서워하지마. 하지만 아빠도 울 수도 있어. 아빠가 널 사랑해서 그런거야" 라고 말했다.


[부산행] 영화를 혼자 봤던 날,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딸 키우는 아빠가 보면 안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았고, 부끄러웠지만 눈물을 어쩔 수가 없었다.


세월호 사고 직후 며칠째 제대로 된 구조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때, 밤마다 기사를 읽으며 참 많이 울었다. 밀양 어르신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를 보면서도 울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곁에서 힘들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울었다. 뭐든 아이와 연결되면 눈물이 흘렀다.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을까?


며칠 전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혼자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온갖 감정이 폭발해버린 듯한 느낌.


그 순간 깨달았다. 혼자 술을 마시는 건 이래서 위험하구나. 나도 모르게 어떤 선택을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에 대한 동경


그게 몇 년이었는지, 몇 살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고 있었으니, 아마 아침이었을 것이다. 항구 근처 외진 길이었다. 버스가 왼쪽으로 크게 돌고 있는데, 저쪽에서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순간 그 컨테이너 트럭이 이 버스를 들이받아 사고가 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주 빠르게 머릿속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버스를 들이 받고, 방향이 바뀐 채 더 나아가 전봇대를 받은 후 건물에 부딪혀 쓰러지고, 컨테이너 상자 두 개가 넘어져 굴렀다. 버스는 옆구리가 크게 찢긴 상태로 뒤로 밀려나 넘어지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트럭은 정확하게 내가 탄 좌석을 들이 받고, 난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져 피를 흘리며, 찢어져 구겨진 버스 바닥에 쳐 박혀 있었다. 즉사.


이렇게 상상하는 동안 버스는 빠르게 회전을 마치고 직진 구간에 들어섰고, 달려오던 컨테이너 트럭은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내 시야를 벗어났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상상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그때 그랬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았겠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무렵부터 나는 내가 매우 불행하다고 여겼다. 나 자신이 끔찍하게 싫었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 무렵 어떤 영화를 봤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청소년인 남, 녀 주인공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어떤 어려움 때문에 함께 목숨을 끊는 영화였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를 꼭 껴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자살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것 같다. 저런 죽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문득 내가 지금 죽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람들을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장 슬퍼할 사람들은 역시 가족들일 것이다. 그땐 결혼 전이었으니, 나의 죽음에 가장 마음 아파할 사람은 부모님과 여동생일 것이다. 친구들은? 그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주위에 벽을 쌓고 살았던 것 같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슬퍼하거나, 날 기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용기


2년 전 봄이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3주기였다.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탈핵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소식을 받았다. 당시에도 글을 썼지만, 처음에는 그 부고 문자가 부모님의 부고 소식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가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라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나는 당시 꽤 오랫동안 어떤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계속 그의 삶을 이야기했다. 자리를 파하고 돌아와 혼자 책상앞에 앉아 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곱씹어보곤 했다.


그때 내가 서재에 남긴 글을 보니 이렇게 써 놓았다.


 지금 나는 한때 같은 깃발 아래서, 같은 구호를 외쳤던 동지의 죽음을 보면서, 한편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더 열심히 살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죽음을 택하는 용기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의 죽음이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때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사실 생각으로는 수없이 해 봤지만, 현실에서는 그 만큼의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역시 나는 그 정도의 용기가 없는 그런 인간이다. 그저 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 봐야겠다.


그의 선택에 대한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때 이렇게 글을 남긴 이후로 남겨진 아이 생각을 많이 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를 떠올렸을까? 아이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남겨질 아이를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용기를 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스스로 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마음 먹는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까? 아이들을 떠올리고도 그 선택을 행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전공 수업 때문에 이 책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읽었다는 기억이 날 뿐, 이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찾아보면 책장 어딘가 있을텐데. 아니 고향집 책장에 꽂혀 있겠구나. 기억나는 건 뒤르껨이 자살을 개인의 행위가 아닌 사회적인 현상으로 해석했다는 것 뿐이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 1위로 악명이 높다. 몇 년 전 자료이긴 하지만, 언론 기사를 보면 하루에 약 40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에 40명이라니. 매일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에 살고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자살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게끔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많은 이들이 계속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실행중일지 모른다. 왜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할까?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전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다. 나를 없앤다면 세상이 없어지고, 괴로움도, 슬픔도, 억울함도, 고통도 모두 다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그 선택까지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들이 느낄 감정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또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자살을 부르는 노래


한때 MP3 플레이어에 '글루미 썬데이'만 담아 듣고 다녔던 적이 있다. 유명한 노래인만큼 무척 많은 가수의 버전이 있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곡들로만 다운받아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이 노래의 마성에 제대로 빠져 있었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노래라고 생각했다. 들으면 들을 수록 어떤 매력이 느껴졌다.


하루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노래만 듣기도 했다. 밥도 먹지 않고, 씻지도 않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이 노래만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영화를 본 후 에리카 마로잔이 부른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 다른 가수의 곡은 듣지 않고, 계속 에리카의 목소리로만 이 곡을 듣는다. 내가 본 영화는 독일어 버전이었다. 노래를 잠시 멈추고 "슈필 퓌어 미히(나를 위해 연주해줘요)"라고 말하는 대사가 참 좋았다. 헝가리어 버전으로 들으니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이 곡을 하루종일 듣는다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이 노래만을 반복해서 듣는다는 사실을 안 친구는 무척 걱정을 했다. 난 그저 이 노래가 좋을 뿐. 이걸 듣고 뭘 어쩌려는 의도는 없었다. 아까도 말했듯 난 용기가 없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0-08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소년 2016-10-0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힘든 시간 잘 버티셨는지요..

글을 읽고 느꼈습니다..

아.. 이분이 정말 그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요..

정치.. 사회... 이런 부분에서만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 우울과 슬픔이 묻어나 있다는 것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6-10-10 14:2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김영성님.

아, 정말 부끄럽네요.
누구나 다 자신만의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끌어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유난히 감성적이고 바보같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런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커피소년 2016-10-11 11:09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예민하고.. 감성적인 것.. 바보 같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까 싶더군요..

저는 지금 그대로의 감은빛님의 모습..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끝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님이 올려주신 여러 글을 읽으면서 감은빛님이 아주 섬세하고 마음이 아주 곱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의 남성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무심하고 무뚝뚝한 차가운 이미지를 떠올리거든요.

냉혈한이라고 하죠..

그런데 감은빛님의 글을 쭉 둘러보면... 섬세하고 마음이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섬세하고 마음이 곱다고 여리다고.. 또 부조리에 저항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약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또 마음 굳세지는.. 그런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끌어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 고통과 슬픔 외로움... 혼자 오롯이 감당해내야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삶이란 것이 더욱 고되고 쓸쓸한 것 같긴 하네요..ㅎㅎ



진심이 담긴 댓글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