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글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다가 서재에 들어와 다른 이들의 글을 읽었다. 언제 읽을지도 모를 책들을 부지런히 보관함에 담고, 어떤 이의 감정에 동조해 한참을 공상에 빠져 있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갔다. 햇살은 뜨겁게 내 뺨과 정수리를 데우고, 바람은 머리칼을 흐트리고, 옷 자락을 붙잡아 흔들고, 담배 연기를 멀리 흐트렸다.
문득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저 멀리 아파트 사이에서 희미한 분필 자국 같은 낮달을 봤다. 반달이다. 저 희미한 존재감. 눈을 찡그려가며 보지 않았으면 쉽게 찾지 못했을 저 달이 마치 내 처지인 양 안쓰럽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바람이 다 태워버린 꽁초를 바닥에 비벼끄고, 갑에서 하나 남은 담배 하나를 다시 꺼내 불을 붙인다. 지난 주에 이미 넘겼어야 할 글을 아직도 붙들고 있는 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원망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을 나는, 그냥 저 달처럼 점점 희미해지다가 문득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다.
담배를 다 피웠으니, 이제 다시 글에 집중해야지. 이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떠맡지 말아야지. 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얘기해야지 생각해보지만, 또다시 무리해서 뭔가를 받아와서 괴로워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아까 그 낮달이 어느새 밤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일을 끝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