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거운 삶의 동반자
아마 알라딘 서재에 쓴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당시 활동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때 글을 남겼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자세히 쓴 글이 있었다. 알라딘 서재에는 ['날씬하세요'와 '니가 임신했냐?'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글에 잠시 언급을 했었다. 출판계에 들어와서 영업일을 하다가 단행본을 하나도 내보지 않은 출판사에 들어왔는데, 첫 단행본으로 학술서적을 냈다. 엄청 두꺼운 양장본 책이었다. 그 당시는 창고와 배본을 전담하는 업체를 쓸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첫 단행본이 대중을 위한 단행본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이건 학술서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사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사무실로 받아야 했다. 직접 배본하고 배송해야 했다.
책이 나오는 당일은 무지 더운 날이었다. 나는 온라인서점 담당자들을 만나기 위해 평소 반바지에 허름한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다니다가, 그날 만큼은 단추를 채우는 예쁜 셔츠를 골라 입고, 바지도 긴 바지를 입고 나왔다. 영업자로서 정장을 입진 못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이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 책을 나를 사람이 없었다. 우리 사무실은 4층이었고, 박스는 제법 묵직하고 많았다. 책을 옮기는데 도와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혼자 4층까지 올려야 했다.
사장님은 이삿짐 센터 같은 곳에 사람을 부르자고 했다. 그러면 아마 1인당 적어도 7만원에서 10만원 가까이 인건비가 들어갈 텐데, 이 책의 손익구조를 보면 절대 지출할 수 없는 항목이었다. 잡지 기자 두 명이 함께 도와줬다면 쉽게 옮길 수 있었을 텐데, 그 기자 두 명은 다른 일로 사무실에 없었다.
혼자 4층까지 수많은 책 박스를 올려야 했다. 결심을 했다. 책 한 권 팔아봐야 얼마 남지도 않는데, 그리고 이 책은 많이 팔릴 책도 아닌데, 이걸 옮기느라 돈을 또 제법 써야 한다니. 차라리 내가 혼자 옮길테니, 그 돈을 나한테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 말도 차마 하지 못하고, 그냥 사장님께 혼자 할 테니,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시라고 말했다. 까짓거 내가 이 정도도 못 해낼까? 근거없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짜 힘들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도저히 더 움직이기 힘든 상황인데, 아직 3분의 1도 다 옮기지 못했다. 빨리 해치우려고 상자 두 개를 동시에 등짐으로 지려고 했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역시 무리하면 안 된다. 그냥 하나씩 어깨에 올리거나, 등짐으로 지면서 올렸다. 쉬다가 다시 일하면서 몇 십번을 후회했다. 욕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을 욕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욕이엇다. 미쳤지. 어쩌자고 이걸 혼자 하겠다고 큰 소리르 뻥뻥 쳤냐? 왜 이렇게 바보냐? 이러면 누가 알아줄 것 같냐?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할거다. 그냥 나만 바보처럼 손해보고 마는 거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계속 책 상자를 올렸다.
막판에 사장님께서 조금 도와주셨다. 확실히 둘이서 하니 속도가 빨라졌다 .금새 남은 책을 다 옮기고 점심을 먹으로 갔다. 사장님게선 특별히 맛있는 샤브샤브 집에 데려가셨고, 맥주를 시켜주셨다. 고기를 잔뜩 먹고, 맥주도 제법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후엔 사무실에 아무도 없을 예정이었다. 나도 원래 계획대로라면 책을 갖고 온라인 서점 담당자를 만나야 했지만, 이미 옷이 땀에 다 젖어버려 그럴 수가 업었다. 대신 혼자 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다 벗은 채, 알몸으로 일했다. 땀에 젖은 셔츠와 바지를 각각 선풍기에 걸어놓고, 땀에 절은 속옷까지 벗어서 빈 공간에 널었다.
그 전까지 나는 애들 엄마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다. "몸매 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는 말도 자주 들었고, 급기야 그가 작은 아이를 임신했을때 "니가 임신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다시 결혼 전 몸매로 완벽하게 돌아가지는 못할 지라도, 최소한 지금 상항은 벗어나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그해 봄이었다.
그 날의 힘든 경험은 분명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육체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하면서 결혼 후 오랫동안 나태하게 살았던 내 몸이 그 날을 계기로 다시 예전 몸에 대해 깨닫고 돌아 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사장님이 나에게 엄청 미안해하고, 또 그걸 혼자 다 옮긴 것에 대해 경외감을 갖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사무실이 4층에서 2층으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또 육체노동을 했다. 나는 재고 도서를 관리하는 영업팀장이었기 때문에 더 짐이 많았고, 할일이 많았다.
그런 과정들이 결국 '임신한 것 처럼 뽀록한 배'를 '식스팩의 윤곽이 살아있는 배'로 만드는 데 한 몫 한 것 같다.
강의와 김장
지난 주에는 내가 쓴 '에너지전환 가이드 북' 소책자를 옮기느라 무거운 상자를 들고 제법 오래 걸었다. 팔과 등의 근육이 조금 무리를 해서 며칠간 뻐근하고 당기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바빠서 운동을 자주 하지도 못 하는데, 이렇게 일상에서 힘을 쓰는 일을 하고, 땀을 흘리면 그 자체로 기분이 좋다.
어제는 아침에 중학교 1학년 학교 수업을 했다. 예상보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느낌이 들었고, 많이 떠들어서 힘들었다. 목소리가 작은 편인데, 아이들이 떠들면 그걸 누르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소리를 크게 높게 올린다. 수업을 다 마치고 나와서 전화를 받았는데, 거의 목이 잠겨 있었다.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묻길래, 수업하고 방금 나왔다고 답을 했다.
확실히 떠드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다. 2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왔더니,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팠다. 에전에 학원 강사 시절엔느 4시간 연강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3시간 연강을 뛰기도 했는데, 그땐 무슨 에너지로 그걸 버텨냈을까? 젊었기에 가능했던 걸까?
작년에 300포기 김장을 했던 로컬푸드 식당에서 올해는 60포기만 김장을 하겠다고,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우선 밥을 얻어먹고, 김장을 돕기로 했다. 작년보다 배추가 더 컸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헹궈서 물을 빼는 작업을 먼저 돕고, 나중에 무채를 썰고, 양념을 버무리는 작업을 도왔다. 중간에 사무실에 들러 잠시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배추에 양념을 넣는 김장의 하이라이트인 작업을 했다. 일하는 도중에 저 쪽에 물을 빼려고 받쳐놓은 절인 배추 바구니를 가져와야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거운 바구니를 들고 옮겼으나, 속을 넣고 있던 언니들은 깜짝 놀라며, 아니 둘이서 들어야지, 왜 혼자서 그 무거운 걸 드냐고 난리였다. 씩 웃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다시 속을 채우는 일을 했다. 옮겨 놓은 배추를 다 쓰면 또 바구니를 옮겨왔다. 몇 차례 반복했더니, 힘도 좋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딱 한 번, 훨씬 크기가 큰 바구니를 들어올리다가 실패했다. 저 멀리서 언니들이 무리하지 말라고, 둘이서 옮기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 들어보니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다음 순간 번쩍 들어서 옮겼다.
김장을 다 끝내고 수육에 막걸리를 마셨다. 정말 맛있었다. 작년엔 300포기, 올핸 60포기. 작년에 비해 올핸 별로 도운 것도 없었다. 내년에 또 김장을 도와야 할까? 어쨌거나 이번 김장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내가 단순 육체노동을 좋아한다는 거다. 아무 생각없이, 고민 없이 이렇게 손을 움직이는 일이 좋았다. 힘쓰는 일이 좋았다. 난 아무래도 다 때려치우고 육체노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 물론 내가 일상적으로 책상 앞에 일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떠드는 사무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육체노동을 자주 하지 않다가 가끔 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 오래 해보지 않았지만, 막노동 일을 할 때는 진짜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려고 애쓰는 것 보다 몸을 쓰는 일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동네 축제에 막노동을 하러 갈 때가 있다. 뭔가 행사를 치루려면 누군가는 바닥에서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나는 그 일이 그리 어렵지 않고, 조금 힘들긴 하지만,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 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바쁜 일주일의 절반 이상이 훌쩍 지나갔다. 어제 밤 기분이 안 좋아 술을 마시고 자려고 생각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술을 먹지 못하고 멍하니 한참을 누워있었다. 숨을 쌕쌕 내쉬며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저 모로 누운 채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밤새 계속 잠에서 깼다. 악몽을 꾸기도 했고, 어이없는 코메디 같은 꿈을 꾸기도 했다. 쫓기는 꿈을 꾸었고, 간절하게 사랑을 표현했다가 거절당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아침에 배가 고파서 생굴을 넣고 굴국을 끓여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어제는 다 필요 없고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패배감에 이런 삶 살아서 뭐하는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침에 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다니. 웃음이 나왔다. 기분 나쁜 감정에 얽매여 있는 건 의미 없다. 그건 그거고 난 또 일상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