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달프


오늘 오랜만에 만난 동네 활동가 한 분이 나를 보고 "이젠 거의 간달프가 되셨군요." 그제서야 오늘 머리를 감고나서 채 다 말리기 전에 집에서 나온 통에 머리를 묶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그래도 흰 머리가 덜 눈에 띄는데, 머리를 풀고 다니면 흰머리가 눈에 확 들어오지. 게다가 흰 수염까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간달프는 좀 심한거 아닌가? 가끔 차라리 간달프처럼 완전히 흰 머리만 남는 것이 더 멋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흰 머리만 남은 것은 아닌데. 당연히 그가 나쁜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뭔가 좀 기분이 나쁘다.이제 정말 늙긴 늙었구나. 간달프라고 불리다니. 아, 오히려 간달프라는 훌륭한 인물(비록 창작물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에 비유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간달프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초능력이나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약속에 많이 늦었을 때 순간 이동 능력을 바라고, 순간적으로 어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때,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바라고, 시민들이 잘 이용하던 공적 공간을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철거해버리는 미친 시장과 철거 업체 용역들을 만나면 어떤 마법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몰아내 버리고 싶다. 그런 상상 만으로 아주 짧은 순간 만이라도 조금은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다. 현실에는 초능력이나 마법은 없다. 물론 존재하는데 내가 모를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관계와 단절


최근에 단체 대화방에서 이런 저런 갈등들이 많이 벌어진다. 나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 상의 대화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렇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다툼이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나도 모르게 몇차례 연루된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너무 선을 넘어서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이런 대화는 피곤하다. 상대는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받아들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근거없는 비난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 계속 교묘하게 나를 공격하거나, 비난 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당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맞섰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거의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해서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었다. 그가 나를 공격하건 비난하건 뭐 별로 상관은 없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떠들어대는 말 따위에 흔들리지는 않으니. 그렇지만 기분은 나빴다. 이제 그런 사람하고 더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일들로 이미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더 해야 하는가. 일 때문에 마주치는 일까지 다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그와 엮이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인간 관계는 늘 어렵다. 그 어려움을 다 안고 가고 싶지는 않다. 단절이 필요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오늘 북플에서 지난 오늘 내가 쓴 글을 보니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이란 책을 읽고 쓴 서평이 있었다. 그래, 이 책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토머스 페인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등에서 크게 활약했던 인물이며, [상식]이라는 책을 써서 글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 초기에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며,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때마다 늘 포함하는 책인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낼 때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토스 페인의 저 책에서 따와서 [21세기의 상식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내기를 원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자는 것이 상식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요즘 이 나라 꼬라지가 정말 상식이 없는 세상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전세계가 다 보는 앞에서 비상 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법원과 검찰이 합작해서 풀어주더니, 이제는 헌제가 탄핵 인용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이러다 기각을 시킬 작정인가? 나는 그래도 이번주 금요일, 그러니까 오늘은 꼭 판결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는 다음 주에 한덕수 탄핵 여부를 먼저 다루고 이재명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이후에 판단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그 인간들은 상식이란 것도 없나? 아니 온 국민들이 아니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미친 자식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다 아는데, 헌법 재판소의 판사라는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고? 왜?


아! 제발 이런 나라에서 저렇게 상식도 없는 인간들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다. 그런 더러운 꼴을 보느니 그냥 확 내가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든다. 이번 주 내내 하루도 못 쉬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내일도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꼬라지가 이렇게 돌아간다면...... 내일 나도 꼭 거리로 나가고 싶었다. 그거라도 해야 그래도 조금은 화가 풀리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탄핵 선고가 내려지고, 내란 수괴로 구속해서 평생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해야 조금은 화가 풀리겠지. 암튼 나는 내일 중요한 총회가 있어서 거리에 나가지 못한다. 총회 참석 확인을 위해 연락을 돌리다가 다들 지금 나라가 이 꼴인데 총회가 중요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조합은 내일 총회를 치뤄야 한다. 이 총회를 치루지 못하면 엄청 일이 틀어질 것이고, 그럼 또 엄청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다들 거리로 나가고 총회에 오지 않으면 상당히 큰 문제가 생긴다. 모르겠다. 나도 이 조합에서 임원을 맡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사실 거리에 나갔을 것이다. 


점점 현실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비상 계엄에 이어 탄핵 기가까지 벌어진다고? 내란 수괴라는 범죄자를 석방시킨다고? 뭐 이런 미친 나라가 다 있나?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시기를 나는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이 나라라면 나는 이 나라 국민이기를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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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3-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루만이 아닌 간달프였음에 감사해야죠. 인물도 좋고 게다가 악이 아닌 선이니....이게 긍정의 힘이죠. ㅎㅎ 그 긍정의 힘으로 탄핵을 기다립니다.

2025-03-2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