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경련

어제 올린 글에 썼듯이 글을 올리고 이런저런 준비를 좀 하다가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사실 일요일 오후 무렵부터 SNS에 계속 올라오는 동아 마라톤 소식들 때문에 마음은 얼른 달리러 나가고 싶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수십명이 기록증과 메달 사진을 올리면서 초반 페이스와 중반 몸 상태, 마지막 상황 등을 적어서 공유하곤 했다. 동아 마라톤은 하프 코스는 없었던 건지, 아니면 유독 하프 참가자만 스레드를 안 적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하프 참가자들의 인증글이 나한테만 안 보였던 건지 눈에 띄지 않았다. 뭐, 10킬로 참가자들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겨우 10킬로 코스 대회 두 번 참가했고 기록도 좋지 않지만, 이젠 평소에도 10킬로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달릴수 있게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이나 어떻게 달렸는지 하는 경험은 이제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지금까지 워낙 많이 읽기도 했고.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풀코스 참가자들이었다. 와! 풀코스 참가자가 정말 많더라! 그뿐인가 기록들도 다들 엄청나더라. 내가 자주 언급하는 마라톤 경험이 많은 친한 형이 지난 2월 말에 대구 마라톤을 뛰고 왔는데 썩 그리 좋은 기록은 아니었다. 나랑 같이 갔던 작년 9월 철원DMZ 마라톤에서도 제한시간에 걸릴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내 주위에서 가장 잘 달리는 사람인데, 최근에는 이렇게 좋은 기록을 못 내고 있다. 아, 뭐 사실 기록은 운동 경력과 나이도 고려해야 하긴 한다. 다른 사람들의 대회 인증 글을 보면서 늘 제일 부러운 것은 젊음이었다. 물론 그냥 젊다고 다 기록이 좋은 것은 당연히 아니고 젊으면서 운동도 꾸준히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것이겠지만.

암튼 그렇게 일요일 오후에 꽤 많은 인증글을 긴 시간동안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내가 지금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는 지난 주 목요일에 조금 무리한 달리기를 하고 난 후라 일요일까지 회복이 덜 되어 있어서 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도 읽어야 했고. 그런데 어제 월요일에 책 모임이 연기되었을 때 그럼 이제 달리기 하러 가볼까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월요일에 달리고 한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조금 가볍게 달리면서 슬슬 체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암튼 그래서 거점에 두터운 잠바를 벗어놓고 몸을 충분히 풀고 나갔다. 지난 번에 바람막이와 장갑을 두고 나갔다가 후회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챙겨나갔다. 분명히 충분히 몸을 풀었음에도 날이 너무 추워서 그런지 좀 몸이 굳어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서서히 달리면서 몸에 열을 올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지난번에 무리했기 때문에 이번엔 최대한 가볍게 달릴 생각이었다. 가볍게 달리되 가능하면 거리는 최대한으로. 그런데! 그랬는데! 정말 달리고 싶어서 날이 추웠음에도 일부러 나온 것이었는데, 어이없게도 달리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갑자기 왼발 종아리 근육이 뭉쳐버렸다. 갑자기 근육이 딱딱하게 굳으며서 아팠다. 아직은 통증을 참고 달릴수는 있었는데 달리는 동작은 부자연스러웠다. 사실 이런 근육 통증은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그때 곧바로 달리기를 중단하고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욕심이 많고 미련한 나는 이왕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멈추고 싶지 않았다. 통증을 참으며 계속 달렸다. 사실 나는 몇 년째 여러 관절 통증을 겪으면서도 참으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달리기 뿐 아니라 다양한 근력운동을 하면서 계속 통증 부위에 무리가 가지는 않도록 잘 달래가며 해온 경험이 있었다. 이게 차라리 발목이나 무릎 관절 통증이라면 훨씬 익숙한 일이라 좀 더 현명한 대처가 가능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렇게 종아리 근육이 뭉치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달리다보면 혹시 저절로 풀리지 않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해버렸다.

그렇게 살짝 다리를 절면서 달리기를 계속 했는데 당연히 거리가 늘어날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아무리 달려도 근육이 풀리기보다는 더 뭉치기만 한다고 결론을 내린 시점이 약 2킬로미터 즈음이었다. 조금만 더 갔다가 돌아가면 5킬로는 채울수 있겠네. 오늘은 아쉽지만 5킬로로 만족하자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이젠 진짜 달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며 약간 경련 증상이 일어났다. 결국 그 자리에 멈추고 왼발을 벤치 위에 올리고 종아리 마사지를 했다. 일단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하면서 뒤쪽 근육을 풀면서 늘려주고, 양 손 주먹으로 딱딱하게 뭉친 종아리 근육의 측면을 쾅쾅 때렸다. 마치 돌덩이리인것 처럼 굳어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때려서 근육이 조금은 풀린 느낌이 들었다. 이제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 뛰었다. 여기서도 조금 실수를 했는데,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게 천천히 조심해서 뛰었어야 했는데, 날도 춥고 아프니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평소대로 뛰었더니 얼마 가지도 못하고 다시 통증이 심해지고 근육이 뭉쳤다. 다시 절뚝 절뚝 뛰다가 다리 난간에서 또 스트레칭을 하면서 근육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든 억지로 1킬로미터를 더 달려서 최종 3킬리미터를 찍었을 때 나는 더는 달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걸었다. 절뚝 절뚝 걸으며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약 1.5킬로 정도 되었으려나? 뛰면 7분 남짓이면 갈 거리를 절뚝이며 천천히 걸어야 했다.

갑자기 이렇게 근육이 뭉치고 경련까지 이어진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답답했고,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 갈지, 언제 완전히 회복하고 다시 달릴 수 있을지 몰라서 좀 화가 나고 불안했다. 오늘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얼른 회복하고 다시 달리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땀이 났다가 차가운 바람에 식으면서 엄청 추웠다.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는 길이 왜이리 멀게 느껴지는 건지 미칠 것 같았다.

마치 지옥이라도 겪고 온 기분으로 거점에 돌아와 물을 마시고, 앉아서 한참 종아리 마사지를 했는데 별로 소용이 없었다. 몸은 추웠고 배도 고팠다. 얼른 잠바를 껴입고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적당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경사가 급한 언덕 위에 있어서 눈이 쌓이면 큰일이다. 게다가 지금 내 다리로는 느리기도 하고 제대로 돌발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어쩔수없이 식당을 포기하고 최대한 빨리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려고 생각은 했으나 내 다리는 생각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느리기만 했다. 아까 출발지점까지 돌아오는 길이 천리 만리라도 된 듯 멀게만 느꼈는데,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랬다. 그나마 지금은 두터운 잠바를 입어서 조금 덜 추워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모든 일은 끝이 있다는 진리가 고맙게 느껴졌다. 마지막 어지간한 등산 코스 보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며 더욱 거세진 눈발을 보았다. 이거 잘못하면 내일 집 밖에 나서기가 두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배달앱을 켜서 음식을 주문하고 땀을 씻고 근육이 뭉친 종아리를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아주 아주 조금 나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걸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음식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 마시지볼과 주먹을 이용해 마사지를 했다.

음식을 받아놓고 통증 부위에 뿌리는 파스를 엄청나게 뿌렸다. 눈이 다 따가울 지경이었다. 진동하는 파스 냄새를 참으며 밥을 먹고 나서 잠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졸았다. 잠시 졸았는데 근육 통증 때문에 잠이 깨버렸다. 이번엔 아예 불을 끄고 누워서 자려고 했는데 왼발 종아리에 묵직하게 통증이 느껴지니 잠도 오지 않았다. 자야하는데 자야 조금이라도 더 회복이 될텐데. 이런 생각을 할수록 더 통증이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고 잠은 더 오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종아리에 쥐가 나서 다시 깼다. 너무 심하게 아팠다. 벽에 발을 대고 간신히 쥐를 잡았다. 다시 이불 속에서 불면의 시간이 흘렀다. 자꾸 발의 통증을 의식하다보니 이제는 허리도 아픈 것 같았다. 결국 진통제를 먹었다. 평소에는 진통제를 먹으면 졸려서 금방 잠들곤 하는데, 오늘은 진통제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별의 별 짓을 다 해보다가 창 밖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는 포기하고 음악을 켜고 폰으로 북플에 들어와 이 글을 두드린다. 뭐, 지금 상황으론 제대로 걸어다니기 어려우니 오늘 일정을 다 취소하고 진통제나 더 먹어야겠다. 진통제를 더 먹고 잠들면 어쩌면 저녁에는 조금 다리를 절더라도 걸을 수는 있겠지.
그럼 어쩌면 저녁 일정은 소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이제 좀 자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03-18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5-03-19 12:07   좋아요 0 | URL
마음 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북플에서는 비밀댓글로 답을 달 수 있는 기능이 없네요. 일단 이렇게 답을 드리고 나중에 피씨에서 수정해야겠어요.

희선 2025-03-19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울 때는 달리기 가볍게 하시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저는 많이 걸은 날 종아리 근육이 뭉친 적 있어요 고등학생 때는 자주 자다가 그래서 참 안 좋았네요 다른 거 안 하고 그냥 손으로 풀어줬어요 얼마 전에 자다가 다리가 무척 아팠는데, 그때는 다리가 풀려도 며칠 아팠습니다 근육이 뭉치면 조심해야 합니다 달리다 그랬으니 더 아팠을 것 같네요 그걸 참고 달리다니, 그런 거 생각만 해도 아프네요 며칠 아플 듯합니다 따듯한 수건 같은 걸로 찜질하면 좀 괜찮을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감은빛 님 한동안 다리 쉬게 해주세요


희선

감은빛 2025-03-19 12:01   좋아요 0 | URL
희선님,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날이 춥기도 하고 바로 직전의 달리기를 좀 무리하게 했었기에 가볍게 뛸 생각이었습니다만, 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꼬이네요. 처음에 통증을 느꼈을때 바로 멈췄어야 했는데 경험 부족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다행히 약 36시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나아져서 걸을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카스피 2025-03-19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달리가 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셨는데 아마도 건강을 위해서겠지만 유행도 한 몫 한것 같아요.달리기는 가벼워 보여서 의외로 무리하기 쉬운데 간과하기 쉬운것이 바로 운동화입니다.자신의 발생태와 맞지않는 운동화를 신고 오래 달리면 나중에 탈이 생긴다고 하덕군요.가벼운 조깅이 아니라 10km 달리기를 하실 정도면 자신의 발에 맞는 운동화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네요.

감은빛 2025-03-19 12:0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저도 예전에 짧은 거리, 주로 3~5킬로미터 정도 달릴 때에는 가벼운 런닝화만 신고 달려도 괜찮았는데요. 작년에 10킬로미터 대회를 신청해놓고 거리를 7, 8, 9 킬로미터 늘려가다보니 그냥 가볍기만한 운동화로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큰 맘 먹고 비싼 런닝화를 하나 샀어요. 그래서 대회에 나갈 때나 10킬로 이상 장거리를 뛸 때에는 그 신발을 신어요. 평소에 10킬로 미만을 달릴 때에는 비싼 런닝화를 아끼려고 가벼운 런닝화를 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