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고양이님 글을 읽고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3학년으로 기억된다. 제대하고 복학한지 한 학기쯤 지났을 것이다. 동기들보다 한해가 늦은 터라, 같은 학년 중에 홀로 최고학번이었다. 한참 어린 여자후배들과 한살 혹은 두살 어린 남자후배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전공 중에 가장 어렵기로 소문난 과목은 '정치사회학'이었다. 첫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학생들의 발표수업으로 진행되었고, 필기시험 점수보다는 발표와 과제 점수가 학점에 반영되는 비중이 더 높았다. 여학생 비율이 많았고,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그런 발표 수업을 무척 어려워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발표 수업에 익숙했다. 1학년때는 학년대표를 했고, 2학년때는 단대 학생회 간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학원 강사 일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동기들보다 1년이 늦은 터였다. 학원 강사 경험 때문에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발표 수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우리조는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물론 같은 조에 있던 여자후배들도 기본 자료 조사라던가, 과제 작성에 많은 역할을 했다. 나중에 발표 수업이 모두 끝나고 다같이 MT를 갔는데, 그때 MBTI 강사님이 오셨다. 그런 검사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검사 결과 나는 INTP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이상하게 그 유형에 해당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딱 한명 있었는데, 나와 친하게 지내던 한 학번 아래 후배였다.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점 좋기로 소문난 녀석이었다. 솔직히 1학년 때부터 늘 학점이 좋지 않았고, 한때 쌍권총(학사경고)도 받아보고, 선동렬 방어률과 유사한 학점을 받곤 했던 나와는 영 딴판인 녀석이었다. 돌아가면서 유형을 밝힌 후에 강사님이 각 유형에 대해 설명하는데, 내가 속한 유형을 설명할 때 맨 마지막에 가끔 잘난척 하는 경향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많은 후배들이 모두 적극적인 공감의 반응을 보여왔다. 좀 당황스러웠고, 좀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내가 잘난척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별로 잘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잘난 척을 하고 싶어도 할 게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누군가의 충고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내가 관심 갖고 있고, 또 잘 아는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때 무척 집중해서 말하는 편이고, 그럴 때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쎄, 정말로 그런건지, 아니면 실제로 잘난 척하고 다닌 건지 잘 모르겠다. 

마녀고양이님 덕분에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성격유형도 변한다는데, 내가 느끼기에도 그때와 비교하면 내 성격이 많이 변한 듯한데, 지금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유료 검사를 따로 받을 여유는 없으니,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아주 간략한 검사를 한번 해봤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INTP 유형이 나왔다. 기분상으로 둘째 항목에서 예전에 비해 N 에서 S 쪽으로 많이 옮겨온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거나 그래도 N 성향이 더 강해서 그때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내 유형의 특징을 설명한 글을 한번 옮겨본다. 그날 그 선생님이 설명한 거랑 거의 완전히 똑같은 것 같다. 바로 이 문구 '때로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은근히 과시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이 그 선생님이 마지막에 덧붙인 부분이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이 유형의 일반적인 특징 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조용하고 말이 없으나 자기의 관심 분야에서는 말을 많이 한다
- 충동적이다
-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잊어버린다. (건망증)
- 남들 좋아하는 연예인, 악세사리 등에 관심 없다

특히 건망증에 대한 부분은 매우 심각하다. 나는 꼭 필요한 것 조차 자주 잊어버린다. 그것이 숫자인 경우에는 기억하는게 거의 기적에 가깝다. 나는 내 전화번호 외에 어느 누구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아내의 전화번호도 기억하는데 아주 오래 걸렸는데, 가끔 헷갈린다. 집전화번호도 당연히 기억못한다. 몇 년전에 전화기를 잃어버려서 전화번호를 바꿨을 때는 내 전화번호조차 기억을 못해서 곤란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남들이 주로 관심갖는 주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 집에는 벌써 몇 년째 TV가 없다. TV를 볼 시간도 별로 없는데, 달마다 내는 시청료와 유선방송요금이 아까워서 없애버렸다.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하나도 불편함이 없다. 뉴스는 대부분 검색으로 알 수 있고, 보고 싶은 교양프로그램이나 영화도 컴퓨터를 이용해서 다 찾아볼 수 있다. 가끔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드라마 얘기나 연예인 얘길 하면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때에도 별로 상관없다. 어차피 관심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끼지 못한다고 아쉬울 거 하나도 없다. 그 시간에 나는 그냥 조용히 뭔가 생각할 꺼리를 찾아내어 머리속으로 정리를 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도 한다. 

암튼 생각보다 나랑 비슷한 특징들이 많아서 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는 I 와 E 중에서 E 에 해당하는 성향들도 좀 갖고 있고, 앞서 말한 것처럼 N 과 S 중에서 S 에 가까운 성향들도 갖고 있는 것 같다. 뒤의 T 와 P는 거의 확실한 것 같다. 다른 성격 유형들도 한번 읽어볼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냥 귀찮아졌다. 별로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이런 성향도 INTP 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거라고 우겨본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8-2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INTP셨군요.
그렇다고 반드시 해당 성향만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고, 다만 그 성향을 더 선호하시는 것 뿐이니 상황에 따라 다르시겠죠... 저두 감은빛님의 매일 술과 모임 타령(?)에 E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은빛님의 성찰에 가까운 글과 상황을 큰 범위 내에서 핵심적으로 파악하시는 경향을 보면 I와 N이 맞겠구나 싶어요. S는 사물을 관찰할 때, 하나하나 사실을 먼저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만일 사과를 본다면, 저는 아 빨갛고 사각거리겠군 이라고 말하지만, 감은빛님께서는 오 빌헬름 텔 이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른다는거죠. ^^

여하간,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자체가 흥미로와요, 저는 그렇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1-08-26 09:08   좋아요 0 | URL
그런데 INTP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무서울 수 있겠는걸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직관에 따라 숲을 보면서도 사고적으로 판단하고 그러나 자신의 결론이 마무리된 이후 천천히 말씀하시는 스탈이실테니까요.. 이야.

감은빛 2011-09-08 17:32   좋아요 0 | URL
에구구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
8월말과 9월초에 엄청 바쁘고 정신없는 일들이 있었어요.

INTP가 왜 무서울 수 있다는 건지 여쭤보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많이 안좋으시니.

부디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1-09-16 12:05   좋아요 0 | URL
무섭다는 표현은 조금 과장한거구요,,
제가 INTJ인데, 감은빛님은 INTP이신거죠.
둘 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유형은 아니예요. 그리고 두 유형 모두
통찰과 사고가 뛰어난 유형이죠. 다만 어느 쪽을 먼저 활용하는가의 문제인데
감은빛님은 사고력을 먼저 사용하여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먼저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논리적으로 나아가실거예요, 거기다 통찰의 능력까지 있으니, 문제 해결에 있어 숲을 보는 능력이 막강할거구요. ^^

잘난척 한다든가, 초연하다든가 하는 면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
'타인과의 공감'이 가장 약한 지표라서 그래요. 타인의 감정에 휩싸이기보다
일단 사고가 먼저 발동하거든요, 그래서 다소 객관적인 면이 발휘되구요.

아, 글로 쓰려니 영 어설프네요. ㅎㅎ
나중에 얼굴로 보면, 우리의 심리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날만 잡으면 되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1-09-17 00:00   좋아요 0 | URL
그럼 마녀고양이님과 저는 맨 마지막 P와 J만 서로 다른거네요!
그렇다면 다른 유형에 비해서는 비교적 비슷한건가요?
그런데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는데도,
저는 잘 이해가 안되네요.
역시 직접 얼굴을 보면서 설명을 들어야 하나봐요! ^^

그럼 이제 날만 잡으면 되나요?
소주 한병 놓고~~~ ^^

비로그인 2011-08-2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 저도 MBTI 검사할 때 그 유형의 대표자? 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강사선생님이 마지막에 덧붙인 말 덕분에 한동안 동기들이 저를 기피하던 일이 생각나 좀 웃음이 나네요.

그 이후로 교직과목 수업때문에 두 번정도 더 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당시엔 틀림이 아니라 다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훌쩍 넘어 생각해 보면 대학 신입생때 한 그 검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잘 한 거 같아요.

감은빛 2011-09-08 17:33   좋아요 0 | URL
앗! 바람결님 저와 같은 유형이신가요?
게다가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니
왠지 바람결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그 검사 두어번 했는데, 늘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치 않은 유형같은데..그죠?ㅎㅎㅎ
제가 회사 다닐때 팀장님이 이 유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평소엔 과묵하고 딴 일이나 사람에 관심 없는 듯 보이는데, 자신의 일이나 관심 분야에선 말도 많아지고 카리스마가 대단했죠. 전 그런 사람을 보고 '나쁜 남자'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름 매력 있었어요..ㅎㅎ

감은빛 2011-09-08 17:40   좋아요 0 | URL
흠. 제 생각에도 흔치 않은 것 같은데,
의외로 가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유형인 경우가 있던데요.

'나쁜남자'가 어떤 뜻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나쁜남자' 이미지는 저와는 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암튼 매력있다는 말씀은 제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yamoo 2011-08-2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둘째 문단에서 뻥~~터졌어요...ㅋㅋㅋㅋ

전, 내향직관형이에요..ㅎ

그나저나...정치사회학 수업을 들으셨었군요...^^
지식사회학하고 예술사회학 그리고 정치사회학.. 이해사회학 등과 같은 강좌를 들었는데...학부 당시에는 죄다 어렵고 빡센 과목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근데,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제 전공도 아니었는데, 저런 과목을 왜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오리무중입니다...ㅋㅋ

감은빛 2011-09-08 17:43   좋아요 0 | URL
내향직관형이 뭔지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그런데 사회학 전공한 저보다 사회학 수업을 더 많이 들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국문과 복수전공을 하다가 나중에 졸업학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결국 국문과를 포기했어요.

학구열이 많으신 것 같아요! 멋지세요!

아이리시스 2011-08-28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저 왔어요!

저도 인터넷 뒤져서 검사해봤었어요. 이 페이퍼 너무 재밌어요.ㅋㅋㅋ 저보다 다른사람 성격분석하는 거 듣는 거 모두 재밌네요. 뭐 나야 이런 거 안해도 내가 제일 잘 알테니까요.(정말?)

감은빛 2011-09-08 17:44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예요.
검사 결과는 안 알려주시는 군요! ^^
저는 이런 검사 할 때마다 저에 대해서 더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답글이 많이 늦었네요.
즐겁고 편안한 한가위 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