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왜 내 옆엔 아무도 없는 건지
최근에 큰애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바로 '아이유'였다. 꽤 오랫동안 '소녀시대'를 좋아했는데, 이젠 아이유로 완전히 넘어갔나보다. 나는 아이유의 노래가 꽤 유행할때까지도 그게 가수 이름인지조차 몰랐는데, 어느날 한 친구녀석에게 그 얘길 했다가 거의 싸울뻔했다. 녀석은 어떻게 '우리' 아이유를 모를 수 있냐고, '삼단고음'이란 검색어가 아주 오랫동안 포털사이트에 상위권에 있었는데, 한번도 못봤냐고 막 따지고 들었다. 아이유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촌뻘 되는 녀석이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라니!
암튼 큰애는 아이유의 '좋은날'을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그리고 한 이삼일쯤 전이었다. 아침에 작은애가 응가를 하는 통에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어쩌구 하느라고 아내와 내가 정신이 없을 때였다. 혼자 부엌(겸 거실)에 앉아서 놀고 있던 큰 애가 그 노래의 가사를 바꿔서 부르기 시작했다.
'왜 내 옆엔 아무도오 없는건지 ~ ♪ 빰빰빠바밤빰~빰~ ♪ 엄마 아빠는 모두 동생곁에 있는건지 ~ ♪~ 빰빰빠바밤~빰~♩~'
동생이 태어난 지 이제 곧 1년. 약 5년간 독점하고 있던 엄마, 아빠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에게 빼앗긴 채 지나간 세월이었다. 그동안 숱한 설움과 고통과 화를 참아왔을 것이다. 가끔 백창우 동요집에 나오는 '애기때문에 못살겠어~ ♪ 애기때문에 못살겠어~ ♪ 할퀴고~ 차고~ 할퀴고~ 차고~ ♪' 이 노래를 종종 부르기도 했는데, 이번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노래가사를 바꿔가며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도 동생만 안아주고, 동생만 예뻐한다고 섭섭해할까봐 나름 신경을 쓰긴 했지만, 녀석이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제일 언니가 되어서, 선생님이나 우리가 요구하는 점도 많아졌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평소의 어리광과 짜증내는 습관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그런 부분도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불쌍한 녀석. 나도 맏이라서 맏이의 설움을 잘 안다. 아이를 불러서 꼭 안아주고, 앞으로는 아빠가 네 옆에 있어줄꺼라고 말해줬다. 정말이야! 아빠가 늘 네 옆에 있어줄게.
둘. 빠르고 강한 녀석
우리집 막둥이, 작은 녀석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놈이다. 아마 '에너자이저' 광고를 찍어도 될 것이다. 큰애는 워낙 얌전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가만히 누워서 입을 재잘재잘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말이 무척 빨랐고, 대신 기거나, 걷는게 무척 느렸다. 큰애가 지금 둘째만했을 때, 기거나 뭔가를 잡고 서서 눈에 띄는 물건들을 낚아채고, 입에 넣고 그랬지만, 그리 재빠르지 않았고,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큰애만 보다가 작은애를 보니, 이 녀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특히 뭔가를 노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손을 뻗어 낚아 채는 실력은 정말 타고난 사냥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빠르다. 그리고 손 힘은 또 어찌나 쎈지. 순간적으로 녀석이 힘을 쓸때는 벌써 아내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다. 왠만한 물건들은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린다. 설마 이건 못들겠지 싶어서 방삼하고 있으면, 어느새 들어올려서 입으로 가져간 다음이다.
큰녀석은 작은녀석에 비해서는 순하고, 얌전한 편이다. 만약 어떤 물건을(예를들어 인형이라던가, 움직이는 장남감이라던가) 놓고 둘이 대립하면 결국 이겨서 물건을 차지하는 건 작은 녀석이다. 큰 녀석은 오히려 울면서 엄마나 아빠를 찾는다. 오늘 저녁에도 큰 애가 손에 쥐고 있던 풍선 손잡이를 작은 애가 순식간에 낚아채어 뺏아버렸다. 큰애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아내는 큰애를 달래면서, 작은애가 쥐고 있는 풍선을 도로 뺏아서, 큰애에게 주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뺏기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결국 아내도 쉽게 뺏지 못해서, 나까지 합세하여 겨우 풍선을 큰애에게 되찾아주었다. 벌써부터 이러니, 나중에 작은애가 점점 자라면, 손쉽게 언니를 이길 것 같다. 그럴 때 부모가 잘 중재를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어쨌든 녀석들은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 큰애는 작은애를 아주 귀여워하고, 작은애는 또 큰애를 엄청 좋아한다. 작은애가 큰애 얼굴을 할퀴거나 머리칼을 잡아뜯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