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을 가며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황규관 / 패배는 나의 힘 / 창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살때 나는 자유로웠다. 일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놀았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그만이었다. 정 돈이 떨어져 밥을 굶을 지경이 되면, 노가다라도 한탕 뛰면 그만이었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 밥은 먹고 살 수 있었다. 돈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알바를 뛰든 어쩌든 일을 구해서 돈을 벌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갖게 되면 또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했다.

시민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 정말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다.(지금은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사정이 생겨 일을 쉬게되면 학원강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으면 전국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서 활동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바닥은 늘 사람이 아쉬운 곳이고,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더 하기 때문에 마음만 맞는다면 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점점 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다. 한때 다니던 단체를 그만두고 좀 더 안정적인 다른 단체를 찾아보다가 결국 시민단체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으로 내려가면 갈 곳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아내의 직장과 집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섣불리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에 있는 단체에 들어갔다가, 운동의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길고 지루한 시간 동안 나는 큰 보람도 없고 활동에 대한 의욕도 없었다. 그냥 당위성 하나로 버티는 나날이었다. 내가 원하는 선택은 넓은 대한민국 땅 전국 곳곳에 펼쳐져 있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좁디좁은 서울바닥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 가슴 속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그 답답함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비뚤어진 허수아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 마저도 내게는 욕심'이었던 것이다!


황규관 시인의 선한 눈매와 웃고 있는 얼굴이 기억난다. 촛불 집회를 통해 여러 차례 스쳐 지나게 되었다. 작가회의 깃발을 보게되면 근처에는 반드시 황규관 시인이 있었다. 그의 시를 찾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집 한 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보았다. 

대한민국, 시인이 살기에는 참 잔인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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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4-1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많은 장소에서 황규관시인을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그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의 시와 시인이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무모한 생각들이었지만 뭔가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이 무책임하지만 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날들입니다.
저도 집에 있는 시집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1-04-15 04:59   좋아요 0 | URL
시와 시인이 닮았다는 생각, 저도 가끔 하게 됩니다.
확실히 황규관 시인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의 시집 제목을 보고 한동안 낱말 바꿔부르기 놀이를 했었어요.
패배의 자리에 이런 저런 낱말들을 넣어서 말이죠.
질투는 나의 힘, 사랑은 나의 힘, 밥은 나의 힘 등등이요.
근데 그 어떤 것도 패배는 나의 힘 만큼 둔중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건 없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나봐요, 4월은 잔인한 달~(에고고, 이건 아니잖어?)

감은빛 2011-04-15 05:01   좋아요 0 | URL
4월은 잔인한 달! 인가요?
어느 해는 그랬던 것도 같아요.
올해는? 글쎄요. ^^

마녀고양이 2011-04-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여자는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는거 같아요.
저는 회사를 때려치워도 신랑은 회사를 때려치우지 못 하는 모습에 미안함을 느껴요.
하지만 시부모님과의 갈등이나 아이들, 남편에게 꼼짝도 못 하는
주부를 보면 감은빛님의 부자유를 떠올리죠.

결혼이란게,,, 참 다채로와요. 비단 결혼 뿐 아니라 사람 산다는게 다 그런거죠?

감은빛 2011-04-15 05: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부분들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가족 내에서도 위상이 많이 다르죠.

네, 다채롭죠. 삶의 모습은 정말 천차만별인 것 같아요.